위 진실에는 다음 내용도 l'acceptation이 아니란 사실이 숨겨져 있다. 

 

J'aime la pluie.

J'aurais voulu qu'il pleuve.

Ma journée serait plus belle

s'il pleuvait.

Ma journée est réussie.

Il pleut toujours.

Tous les jours c'est comme ça.

Pourquoi il pleut quand

je veux qu'il fasse b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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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다. 더군다나 문학적 글쓰기는 감불생심. 루시아 벌린을 읽으면서 단편소설 쓸까 하는 생각이 벼락치듯 일어났다. 내 생에 일어났던 일 가운데 숙의치료 부분부터 손을 대기 시작했다. 미리 써둔 글을 바꾸는 일이었으므로 생으로 시작하는 것보다 쉽다고 판단한 것이다. 20여 일에 걸쳐 간단한 초벌 작업을 했다. 그 중 하나가 이것이다. 본디 글은 <망상이라도 좋다>였다. 


*    


치유자의 길을 가다보면 순간순간 전능한 존재가 되는 망상에 잠깁니다. 고통 가운데 망가져가는 사람의 참담한 모습, 좀처럼 변하지 않는 상황을 보면서도 이렇다 할 수를 내지 못하고 뭔가 계속 말해야 할 때, ‘손을 얹은 즉 병이 나았더라.’는 신약성서 속의 예수가 되는 헛꿈을 꿀 수밖에 없습니다. 어제도 이제도 다음도 모두 사기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회의가 밀려들면 모든 생각이 확 뭉그러집니다.


20대 초반의 청년이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들어섰습니다. 복잡하고 거대한 강박증후군에 시달려 심신이 극도로 피폐해진 상태였습니다. 5가지 화학합성약물을 처방 받아 복용하고 있었습니다. 효과는 미미한데 부작용이 뚜렷하고 다양해 약을 먹는 것인지 독을 먹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나마 약이라도 먹는다는 심리적 위안 때문에 끊지도 못한 채, 부작용으로 100kg이 넘어버린 몸을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학령기 이전 시골마을에서 누군가 개를 잡아 내장 손질하는 광경을 우연히 목격하고 충격 받은 이래 결벽 경향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동네 노인에게 성추행을 당해 그 경향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급기야 중학생 시절에는 야동을 접하고 다양한 더러움(!)에 치를 떤 이후 완연히 병적 상태로 돌입했습니다. 몇 시간씩 쏜을 씻어댔습니다. 자위행위를 하고 나면 손과 성기가 더럽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하루 종일 씻고 확인하느라 다른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소변을 보고도 그랬습니다. 성폭행의 가해자와 피해자 의식이 번갈아 찾아들면서 성기를 확인하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태를 대처하는 데 미숙했던 부모는 강제로 그를 정신병원 또는 수용시설에 4차례나 가두었습니다. 심지어 개신교 기도원 같은 곳에 감금해 놓고 결벽을 도리어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학교는커녕 그 어떤 외부 활동도 불가능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게 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혼신의 힘을 다해 그와 상담했습니다. 그는 처음에 저의 치료 방식과 효과에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강한 신뢰를 표시했습니다. 그 또한 혼신의 힘을 다해 상담에 임했습니다. 한두 달 만에 상황은 몰라보게 호전되었습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외부 생활을 조금씩 재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안정에 도달하자 더 이상은 진전이 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어느 하나가 좋아지면 다른 하나가 불쑥 나타나는 방식으로 헛돌면서 교착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저도 그도 서로 안타까워하며 힘을 내었으나 좀처럼 타개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시나브로 지쳐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달리 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참으로 간절한 마음이 되어 대상 없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기도가 끝나면 참담할 따름이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일심으로 수련하면 기적의 영성을 획득할 수 있으려나, 부질없는 상념이 무시로 스며들었습니다. 가난했던 그는 쌓여만 가는 치료비 때문에 미안했고, 저는 나아지지 않는 게 미안했습니다. 서로 격려하며 견뎌온 연대는 는적는적 끊어져갔습니다.


이 과정이 진행되던 바로 그 무렵 저는 개인적으로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아 삶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그에게로 뻗었던 손을 지탱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한의원을 닫았습니다.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었습니다. 여태까지 많은 실수와 실패가 있었습니다. 소년티 그대로 묻어 있는 그의 선한 눈매가 이따금씩 떠오르면 전능한 신이란 정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뜬금없이 들고는 합니다.


*


이 글을 <소식>이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바꾸었다. 


*


나는 다섯 살 무렵, 누군가가 죽은 개 내장 주무르는 광경을 우연히 목격하고 크게 충격 받았다. 그 때문에 결벽증이 자리 잡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동네 노인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그 증상은 더욱 강해졌다. 급기야 중학생 시절, 야동을 통해 들이닥친 강도 높은 음란함을 더러움으로 인식한 이후, 극심한 병적 상태로 빠져들고 말았다.

 

하루 7-8시간씩 피가 나도록 손을 씻어댔다. 자위행위를 하고 나면, 손과 성기가 더럽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하루 종일 씻고 확인하느라,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나중에는 소변을 보고도 그랬다. 성폭행의 가해자와 피해자 의식이 번갈아 찾아들면서 성기를 확인하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확인하는 과정에서 가족을 때리기도 했다.

 

이런 상태를 대처하는 데 미숙했던 부모는 강제로 나를 정신병원 또는 유사한 수용시설에 4차례나 가두었다. 심지어 개신교 기도원 같은 곳에 감금해 놓고 결벽을 도리어 부추기기도 했다. 결국 복잡하고 거대한 강박증후군에 시달려 심신이 극도로 피폐해졌다. 5가지 화학합성약물을 처방 받아 복용했다. 효과는 미미한데 부작용이 뚜렷하고 다양해, 약을 먹는 것인지 독을 먹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약이라도 먹는다는 심리적 위안 때문에 끊지도 못한 채, 부작용으로 100kg이 넘어버린 몸을 견뎌내고 있었다. 학교는 진즉 그만두었고 아예 외부생활 자체가 불가능했다. 천신만고 끝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가 찾아간 사람이 바로 숙의치료자 ㅂㅇ.

 

ㅂㅇ는 극진히 나를 대했다. 나는 그의 치료 방식과 효과에 매우 놀랐다. 강한 신뢰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또한 혼신의 힘을 다해 치료에 임했다. 한두 달 만에 상황은 몰라보게 호전되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외부 생활을 조금씩 재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안정에 도달하자, 더 이상은 진전이 되지 않았다. 어느 하나가 좋아지면 다른 하나가 불쑥 나타나는 방식으로 헛돌면서 교착상태에 빠져들었다. 나도 그도 서로 안타까워하며 힘을 내었으나, 좀처럼 타개되지 않았다. 나는 시나브로 지쳐갔다. 어느 순간 나는 더 이상 그에게조차 갈 수 없는 상태로 굴러 떨어졌다. 나는 어렵사리 그에게 소식을 전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석 달 째 못가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모든 것이 멈춰버렸습니다.

도통 밖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가난했던 나의 부모는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수백 만 원이 밀려 있기까지 했다. 나는 이래저래 그에게 미안했지만 달리 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도리어 내게 미안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치료연대는 그렇게 는적는적 뭉그러져갔다. 얼마쯤 지나 짤막한 그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의 진료소가 없어졌다는.


*


함량미달, 아니 아예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말이 되는 것은 이 작업을 하는 그 20여 일 동안 내 삶에 분명하고 구체적인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이 글들을 문학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삶이 변화하는 과정의 증언으로 삼기 위해서 계속해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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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 팔은 팔꿈치마저 없고, 왼 팔은 팔꿈치 아래 부분이 살짝 남아 있어 손 구실을 한다. 눈도 오른 쪽이 없어 안대 비슷한 물건으로 가리고 모자를 깊숙이 눌러 썼다. 어떻게 식사를 하고 옷을 입으며 신발을 신는지 상상하기 어려운 장애인 한 사람이 매일 같은 역에서 승차한다. 그는 매번 움직임도 소리도 없이 앉아 있다.

 

오늘은 어쩌다 그가 걸어 들어와 자리에 앉는 모습 전 과정을 보게 되었다. 그가 앉은 자리 바로 옆에 앉아 있던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사람이 그가 앉자마자 아래위로 그를 훑어본다. 잠시 뒤 그 남자사람은 냉큼 자리를 뜬다. 대각선 맞은편으로 이동한다. 옮겨가서도 여전히 힐끔거리며 그를 본다. 대체 왜 저러는 걸까.

 

그 장애인이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다고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 장애인은 평소 소매 속에 팔을 감추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남자사람의 행동 직후부터 그 장애인은 반복해서 왼쪽 팔을 드러내 모자를 추스르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 보란 듯 그 팔을 들어 옆 철제 구조물 가로대에 걸치기까지 한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실체를 단박에 알 것만 같은 어떤 역동이 내 심신을 두드린다. 구별해내기 어려운 몇 가지 감정들이 어우러져 춤을 춘다. 육체적 장애를 지닌 사람에게서 자신을 격리하고도 힐끔거리는 저 남자사람의 정신적 장애가 꼭 타자의 것이기만 하지는 않다는 사실이 통렬하다. 종일토록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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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내 인생은 열린 책 + 청소부 매뉴얼 - 전2권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유머란 무엇인가이후 한 달 보름 동안 리뷰를 쓰지 않았다. 4천 쪽 분량의 책들을 천천히 읽기만 했다. 특히 지난 2주 동안은 루시아 벌린과 밀착해 있었다. 그를 만나는 동안 내 생각은 복잡했다. 비대칭의 대칭 사유구조가 팽팽히 형성되는가 하면 어느 순간 백지 상태 속에 놓이곤 했다. 와중에 나는 구체적인 변화의 단서를 낚아챘다. 그 변화를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서 불현듯 루시아 벌린 이야기의 틈이 열렸다.

 

먼저 발견한 것은 내 인생은 열린 책인데 먼저 읽은 것은 청소부 매뉴얼이다. 온갖 찬사를 물리치고 맨얼굴로 루시아 벌린을 만났다.

 

외국 작가와 만날 때 언제나 그렇듯 루시아 벌린과도 한참을 버성겼다. 번역 문제도 분명히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외국어 자체의 문제다. 다른 언어가 자아내는 사회역사의 생경함은 독자의 능력과 무관하게 이해와 감흥의 즉시성을 앗아가기 일쑤다. 대체 이런 글을 왜 쓰는 걸까, 왜 이렇게까지 쓰는 걸까, 하는 의문이 수시로 덮친다. 가장 가려운 것은 서구의 자랑인 유머가 도처에 깔려 있는데 즐기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번역자가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각주를 다는 것도 좋지만 원문을 병기하는 것이 더 나은 친절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훼방꾼을 제치고 루시아 벌린의 체취가 맡아지는 거리까지 왔을 때, 내게 가장 뚜렷하게 일어난 변화는 단편소설 쓰고 싶다였다. 열네 살 때 단편소설 하나를 쓴 뒤 처음 든 생각이었다. 며칠 뒤, 나는 출판을 거절당해 묶여 있는 내 의학 저술의 구조와 내용 전반을 해체하고 재구성해 단편소설집으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물론 대단히 황당한 짓임에 틀림없지만, 내게는 이 변화를 말하는 것이 루시아 벌린을 달리 표현한 어떤 말보다 결곡 곡진한 것이다.

 

나는 앞으로 저 황당한 짓거리를 계속하는 내내 루시아 벌린의 삶, 그 모호함과 내 자신의 삶, 그 명료함을 대면시켜볼 작정이다. 이미 그 한계의 어떠함을 알고 있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아니다. 큰 함정이다. 큰 함정에 빠질 것이므로 계속 대면시킨다. 그것이 루시아 벌린에 대한 나만의 예의다.

  

루시아 벌린이 평생 남긴 단편은 모두 77개다. 내가 써 놓았다는 그 의학 책도 숙의치료 임상 기록을 77편의 이야기로 만든 것이 주된 내용이다. 내 변화를 이 이야기에서 시작하기로 한 까닭이 바로 이 숫자의 우연적 비본질적 일치 때문이다. 이런 유치함을 마다않고 품은 것은 루시아 벌린의 삶을 관류하는 어떤 천치미학의 울림 탓이다.

 

천치미학이란 표현은 자기 삶을 이끄는 어떤 주술적 에너지와 파동을 따라 계산하거나 흥정하지 않은 채 무심히 번져가는 루시아 벌린의 영혼에 가닿았을 때 문득 떠오른 말이다. 내가 처음 품었던 의문, “대체 이런 글을 왜 쓰는 걸까, 왜 이렇게까지 쓰는 걸까는 루시아 벌린의 영혼에 다가갈수록 대체 이런 삶을 왜 사는 걸까, 왜 이렇게까지 사는 걸까로 깊이 가라앉았다. 아직도 그의 영혼에 온전히 감응할 수 없어 변죽만 울리면 루시아 벌린은 자기 안의 천재에 무심히 저항한 천치로서 살았다. 이 도저한 비대칭의 대칭이 77개의 단편소설을 낳은 것 아닐까.

 

루시아 벌린의 글을 두고두고 곰씹을 생각은 내게 없다. 내게는 루시아 벌린의 삶을 두고두고 곰삭힐 생각이 있다. 내 삶과 어떻게 포개지고 어떻게 쪼개지는 지 톺아가며 단편소설 쓰고 싶다란 변화 욕구를 삼가 발효시키기로 한다. 이런 날이 올 줄은 정말 몰랐다. 여태도 내가 알코올중독에 미치지 못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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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가분 한의원이 세들어 있는 곳은 비가 줄줄 새는 오래된 건물이다. 오래된 시간 벽을 뚫고 창에 올해의 담쟁이 덩굴이 저마다 끌림으로 생명을 펼쳐간다. 그 풍경 앞에서 내 손은 무심히 옷깃을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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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30 23: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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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31 07: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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