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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사유 - 식물 존재에 관한 두 철학자의 대화
루스 이리가레.마이클 마더 지음, 이명호.김지은 옮김 / 알렙 / 2020년 8월
평점 :
이리가레: 자연적 속성으로 돌아가 자연이 주는 생명 에너지를 회복하고 그 에너지를 다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는 한, 우리는 새로운 인간 존재로 이행할 수 없습니다........하지만 우리에게는 성욕이 일깨운 에너지에 관한 지침이 부족합니다........우리 전통은 성욕이 깨어나는 것에 관해서는 말할 수 있지만 육체적 사랑을 인간적으로 충족시키고 공유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인간성을 성취하는 데 가장 핵심적 요인이지만, 대부분의 동양적 전통들조차 성욕의 차원을 경시합니다.......우리의 성적 속성과 그것의 공유를 키우고 가꾸는 일은 우리의 생명 에너지 경제를 찾기 위해 계속 추구해야 하는 과제라고 생각합니다.(128~129쪽)
마더: 열매는 식물의 목적입니다. 따라서 열매는 식물 생명의 충족입니다. 사정은 성행위의 오르가즘적 목적입니다. 따라서 사정은 욕망의 충족입니다. 그러나 목적에 복무하지 않는 에너지, 최종 생산물의 에너지원이 되지 않으면서 내게서 혹은 나와 남들의 번영에서 충족을 찾는 에너지라면 어떨까요? 식물들을 소비하려는 욕구 바깥에서 식물들과 더불어 있는 것은 목적 없는 충족이 아닐까요?.......생명은 물리적 종점에서 충족되지 않고 타자들과 더불어 살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경험되는 에너지의 충만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다른 에너지를 명명할 필요가 있다면 ‘만남 에너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만남은 에너지를 추출하기 위해 연소시킬 물체나 물질에 대한 작용이 아닙니다........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을 때, 내가 만나는 타자를 진정 필요로 여기지 않을 때, 만나는 존재에게서 무엇을 얻을지 내가 나 자신과 다투지 않을 때, 오직 그럴 때만 만남은 일어납니다........만남의 에너지는 생산적 파괴의 회로 안에서 작동하는 냉혹한 경제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남는 것이며 더해지는 것일 뿐 아니라.......자신이 더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만남 에너지는 경제적 틀을 초과한 저 너머의 무엇입니다.(283~284쪽)
이리가레와 마더가 주고받은 편지는 여기서도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구태여 감추려 하지 않는다. 독자 입장에서 이런 질문을 하면 다리가 놓아지려나. “인간의 육체적 사랑은 만남의 에너지를 일으키는 양태 또는 전달하는 매체인가?” 두 사람은 식물 세계 에너지와 인간의 육체적 사랑, 이 두 문제에서 각각 장군과 멍군을 주고받는다.
마더에 따르면 식물 에너지는 인간 에너지와 다르다. 그것은 만남 에너지다. 추출, 파괴 양태로 획득하지 않는다. 전달, 확산의 방법으로 사용한다. 육체적 사랑이 인간성을 성취하는 핵심 요인이라는 통찰을 마더의 만남 에너지에 적용했더라면 이리가레는 에너지 성격과 사용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달리 사용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심지어 에너지 경제를 추구한다.
이리가레에 따르면 인간의 육체적 사랑은 인간성을 성취하는 핵심 요인이다. 옹골찬 성차화의 원인이자 결과로서 당연하다. 식물 에너지가 만남 에너지라는 통찰을 이리가레의 성차화에 적용했더라면 마더는 육체적 사랑을 만남 에너지를 일으키는 양태 또는 전달하는 매체로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정을 언급함으로써 이리가레의 육체적 사랑을 오해의 사정권 안에 배치한다.
적어도 식물세계가 건네준 생명력으로 충만해진 인간의 육체적 사랑이라면 기존 인간 세계의 에너지와 동일한 것을 일으키거나 전달할 수 없다. 일방적이든 쌍방적이든 파괴하지도 추출하지도 소유하지도 축적하지도 않는다. 어떤 목적에 복무하는 수단일 수 없다. 누가 누구를 필요로 하지도 않고,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얻어가지도 않는다.
이리가레가 식물의 만남 에너지의 결을 지각하고 충만해짐으로써 명징하게 드러냈어야 할, 마더가 성차화를 살갑게 지각하고 흔쾌히 만남의 에너지 장으로 해석했어야 할 인간의 육체적 사랑은 타자와 더불어 살고 성장하는 과정의 진수다. 경제의 틀을 초과한 저 너머의 무엇이다. “식물과 더불어 식물을 경유한”(285쪽) 이 새로운 육체의 사랑으로만 “새로운 인간 존재로 이행할 수” 있다.
새로운 육체의 사랑을 통해 이행한 새로운 인간 존재의 모습과 풍경을 스케치해보자. 사랑하는 사람 각자는 향락적 퇴폐적 육욕과 학대에서 자유로울 만큼 충분히 독립되어 있다. 각자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삶으로써 서로를 이롭게 한다. 천천히 가는 연인을 기꺼이 기다려준다. 약점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루는 삶은 적절한 빈틈이 있다. (우종영의 사유를 원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