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사유 - 식물 존재에 관한 두 철학자의 대화
루스 이리가레.마이클 마더 지음, 이명호.김지은 옮김 / 알렙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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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식물 신체는 식물의 영혼이 자신을 작동시키는 장소가 아니라 비파괴적인 생명 에너지가 흐르는 관입니다. 이 에너지는 다른 식물, 동물, 인간 존재들도 공유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의 윤리적 범주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습관적으로 일축해버리는 순수 도구(매체나 채널로 읽음)는 가상의 목적 그 자체보다 생명윤리에 더 부합합니다.(288)


앞선 글에서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식물은 도구가 아니다.” 이때 도구란 목적에 복무하는 수단을 뜻한다. 마더의 순수 도구는 전혀 다르다. “가상의 목적 그 자체보다 생명윤리에 더 부합한다는 진술을 뾰족하게 다듬으면 허구일 뿐인 목적을 제거하는 것이 생명윤리에 더 부합한다, . 목적을 제거했을 때, “비파괴적인 생명 에너지가 흐르는 관으로서 식물 신체는 순수 도구. 도구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통로이기 때문이고, 순수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 말고 다른 무엇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 신체도 관이다. 통로다. 생명 에너지가 흘러들어와 흘러나간다. 생명 운동은 네트워킹이다. 인간이 타락한 정신으로 이 진리를 왜곡했다. 소유와 축적이라는 목적 관념, 단도직입으로 말하면 돈에 대한 지배블록의 범죄적 합의가 생명 세계 전체를 이렇게 망쳤다. 이리가레와 마더가 식물의 사유를 화두 삼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할 일은 단 하나뿐이다. 식물 신체의 원리를 받아들여 에너지를 흐르고 돌아 번져가게 만드는 것. 에너지는 번져서 평등하게 크는 것이지 쌓아서 그리 되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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