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생각하기 - 나무처럼 자연의 질서 속에서 다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자크 타상 지음, 구영옥 옮김 / 더숲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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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메타유기체다. 메타유기체로서 서로 연결된 미생물들은 구성 세포의 능력을 단연 능가한다. 나무가 함께 사는 기술과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한 협력 기술을 실천하는 것이다........

  뿌리에서 결합하는 콩과 식물과 질소고정박테리아의 관계는 이미 잘 알려져 있으나, 꽃과 박테리아의 관계는 그것보다 덜 알려져 있다.

.......

  때로 꽃의 가장 미묘한 오직 식물 미생물의 발산과 관련 있다. 딱총나무를 포함한 매우 다양한 식물 종의 경우에는 박테리아가 직접 발산하는 꽃향기가 특히 중요하다. 곤충과 인간은 꽃냄새를 맡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박테리아 향기를 흡입하는 것이다. 꽃과 박테리아의 결합은 진정한 융합에서 시작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제 딸기 향기가 딸기나무 박테리아와 관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박테리아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바뀌는 것이다.(67~69)


딱총나무꽃

 

장년 이전 시절에는 살아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 많다.”는 말이 썩 어울린다. 썩 그러니까. 노년이 되면 살아갈수록 모를 일이 많다.”는 말이 똑 어울린다. 똑 그러니까. 물론, 둘 다 스스로 깨달은 경우에 한한다. 대개 이런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채 인생이 끝난다. 깨달아 촘촘히 챙기면 무슨 일이 일어나나. 나무처럼, 아니 나무로서 살게 된다.

 

나무로서 사는 일은 나무의 지식과 분리되지 않는다. 인간처럼 실천과 이념이 분리되는 일은 없다. 이데아가 따로 있고, 그 아래 모사 현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무는.......메타유기체기 때문이다. 메타유기체는 모듈 간 네트워킹으로서 구성 세포의 능력을 단연 능가하는 창발, 그러니까 군집지성을 일으킨다. 군집지성은 수직의 질서를 가로지르는 수평의 무질서다. 무질서를 용납할 수 없는 과학의 기독교적 본질저 너머 약동하는 창발의 하느님나라다. 약동하는 창발의 하느님나라가 바로 메타유기체 나무다.

 

메타유기체 나무는 진정한 융합으로 발휘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한 협력 기술의 진경 앞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곤충과 인간은 꽃냄새를 맡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박테리아 향기를 흡입하는 것이다.박테리아 향기, 이는 한 평생 들어온 말 가운데 가장 경이로운 말이 아니냐. 살아갈수록 모를 일이 많다. 에나(진짜-진주 사투리).


딸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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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타상 지음, 구영옥 옮김 / 더숲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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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어디에서나 나무는 여성으로 탈바꿈됐으며, 숲은 어머니로 인식되었다.(67)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일하시던 모습을 떠올리면 매우 의아하면서도 경탄스러운 장면 하나가 선명하게 남는다. 뒤죽박죽인 커다란 이불잇-강원도에서는 이불홑청이라 했음-을 다듬질하기 위해 다듬돌 크기에 맞게 개키는 일이 주기적으로 있었다. 내 생각에는 일어나서 전체 규격을 보고 위치를 옮겨가며 큰 단위부터 구획해 작은 단위를 순차로 접어 넣는 게 쉬울 것 같았다. 할머니의 방식은 달랐다. 할머니께서는 오도카니 앉은 상태에서 한 귀퉁이부터 초군초군 잡아당기면서 작은 단위의 정리를 계속하셨다. 내가 그렸던 큰 단위 정리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언제나 내 예상보다 일찍 아리잠직하게 개켜진 이불잇을 다듬돌 위에 착 하니 올려놓으셨다. 할머니의 표정은 시종여일하게 무표정에 가까운 고요를 유지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나는 할머니의 솔루션이 여성 솔루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 여기서 다시 보니, 여성 솔루션은 바로 나무 솔루션이다; 어머니 솔루션은 바로 숲 솔루션이다.

 

관지 변화에 즈음해 톺으니 정말 이상한 것이 있다. 여성주의자 대부분이 나무에 보이는 무관심은 이상하다. 여성채식주의자가 나무를 대하는 피상적 태도는 더욱 이상하다. 이들이 혹시 여성, 어머니 솔루션을 쓰지 않아서가 아닐까? 저들의 결곡한 언행이 마치 남성의 공격도피처럼 보였던 아픈 경험이 있어서 품는 의문이다. 10년 전인가, 여성주의자 한 사람이 여성주의 모임에서 내게 이런 공격도피를 혹독하게 한 적이 있었다. 다른 모든 구성원이 그의 공격도피가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고 발언의 철회와 사과를 권유하자 그는 발언은 철회하되 사과는 하지 않겠다고 명토 박았다. 나는 더 이상 그 모임에 참여할 수 없었다. 공격도피란 말은 공격이 솔루션이 아니라 실은 도피에 지나지 않는다는 진실을 드러내려고 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솔루션은 여성의 것이며, 나무의 것이며, 숲의 것이다. 내가 남성으로서 함부로 입댈 일 아닌 줄 알지만 여성주의가 좀 더 곡진하게 나무와 숲을 직시했으면 한다. 왜냐면

 

  세상 어디에서나 나무는 여성으로 탈바꿈됐으며, 숲은 어머니로 인식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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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5-04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불 개는 방식은 두 번을 읽어도 잘 상상이 되지 않아서 여성 솔루션이라는 개념어랑 바로 연결이 안 되네요. 백문이 불여일견일텐데, 엄청 궁금해졌습니다^^귀퉁이부터 잡아당겨 접는다는 게 뭘까..

bari_che 2021-05-05 09:30   좋아요 0 | URL
^^저도 커서 재현해보려고 여러 번 시도했었는데 실패했습니다. 할머니 양팔은 완전히 일직선으로 벌려진 적 없이 무심히 끌어당기고 접는 작은 동작을 반복했습니다. 잠시 한눈팔다 보면 어느새 다 개켜져 있었지요.
 
나무처럼 생각하기 - 나무처럼 자연의 질서 속에서 다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자크 타상 지음, 구영옥 옮김 / 더숲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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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가 예민한 성향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향적이지는 않다. 장기도 내면세계도 없는 나무는 철저히 외부를 향한다.

  나무를 정의하자면, '밖으로 드러나 많은 가지를 치고 곧게 서며, 땅과 하늘에서 자양분을 얻고 개체화된 동시에 결합된, 살아 있는 껍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껍질'이라는 말의 다의적 특성을 이용한 정의다. 껍질이라는 말은 표면은 극대화하고 부피는 극소화한, 기하학적 의미를 담는다.(58)

 

살아 있는 존재가 표면을 넓히는 것은 교류 가능성, 외부와의 공유영역, 예민한 부분을 확장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감도 향상시키는 것이다.(60)

 

나무는 자신에게 의지할 뿐만 아니라 세계에도 의지할 줄 안다. 반면 인간은 세계를 복종시키고 제 입맛에 맞추려 한다.......

  인간은 내면에 깊게 박힌, 거드름이 극대화되어 나타나는 자만심을 버려야 한다. 그러면 정신의 유연함과 세심한 주의력을 잇는'힘, 시간, 공간의 특수구조'.......를 발견하게 된다.......

  나무에게서 지혜를 찾아야 한다면,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세계와 영원히 합일하는 나무의 능력에서 우선 찾아보자.(62)

 

자크 타상의 나무는 껍질이다.”라는 말은 필연적으로 디디에 앙지외의 자아는 피부다.”라는 말과 포개진다. 나무도 인간도 우주 구조와 운동 원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면 결국 최소 범주 공변양자장도 표면이고, 최대 범주 우주 전체도 표면이라고 상상할 수밖에 없다. 삼라만상의 본령이 껍질이고 피부고 표면이다. 너무 작아 볼 수 없는 세계도 너무 커서 볼 수 없는 세계도 결국은 개체화된 동시에 결합된네트워킹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킹 바깥이 존재할 수 없듯 네트워킹 안쪽, 그러니까 내면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네트워킹의 중심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내면 운운하고 중심 운운하는 것은 죄다 망상이다. 망상은 없는데도 있다고 우기는 정신병이지만, 있도록 만들어서 바깥과 주변으로 여기는 존재를 복종시키고 수탈, 살해한다면 범죄다. 물론 현 상황에서는 양자 구분이 무의미하다. 정신병자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치료와 징벌이 결합된 처결은 필수다. 나무 앞에 무릎 꿇려 그 껍질 본질을 직면하고 그 껍질 삶, 교류 가능성, 외부와의 공유영역, 예민한 부분을 극대화하도록 엄명하는 것이다. “그러면 정신의 유연함과 세심한 주의력을 잇는 '힘, 시간, 공간의 특수구조'.......를 발견하게 된다.” “철저히 외부를 향하는 것이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감도 향상시키는 것임을 증명하게 된다. “세계와 영원히 합일하는 나무의 능력을 복원하게 된다. 다시 확인하거니와 인간에게는 내면이 없다. 다시 확인하거니와 인간은 중심이 아니다. 모두 평등하게 개체화된 동시에 결합된 네트워킹에 참여하는 껍질로 복귀하는 것만이 견성이며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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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을 지나다 길이 잠든 새를 보았다. 왜 이리 되었는지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근처 층층나무 아래 고이 묻었다. 성냥개비만한 비목을 곧게 세웠다. 일주일 뒤 다시 가보니 누가 감히 훼손하지 못했다. 이제야 미안한 마음 실어 고작 이름 하나 불러준다. 검은머리방울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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