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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현대인은 ‘종 고독’이라는 크나큰 아픔을 겪고 있다(522쪽)
세밀하게 말하는 이들은 고독solitude이 외로움loneliness과 다르다고 한다. 고독은 객관적 조건으로서 홀로 있음이거나 그 홀로 있음을 정서적으로 문제 삼지 않음을 가리키고, 외로움은 홀로 있음을 쓸쓸하게 여기는 정서 상태를 가리킨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둘을 사실상 동의어로 이해했던 사람에게 이 분별은 명쾌한 느낌을 선사하는 세밀함이 된다. 기왕 세밀함 안으로 들어왔으니 온전히 세밀해져야겠다. 정말 객관적 조건으로서 홀로 있음이 있을 수 있는가? 그 홀로 있음을 정서적으로 문제 삼지 않을 수 있는가?
더불어 있지 않는 존재가 인간일 때, 여기서 특별히 문제 삼을 일은 없다. 그 곁에 나무가 진득하니 섰고, 풀이 하늘하늘 춤추고, 새가 낭랑하게 지저귀고, 시내가 졸졸 흐른다면, 이를 홀로 있다 할 수 있는가? 없다. 그럼에도 인간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들과 교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 고독인가? 그렇다고 할 때, 인간은 정말 아픔을 겪고 있는가? 적어도 대부분 인간 생각에는 그렇지 않다. 현대인 가운데 누가 자연과 교류할 수 없어서 아픔을 느낀다고 하는가. 병식 유무와 병 여부는 다르다, 에 주의한다.
많은 병이 병식을 동반하지 않고, 많은 병인이 병식을 지니지 않는다. 병식 있는 병과 병식 없는 병 둘 중에 어느 병이 병인에게 더 위험한가? 잘라 말하기 어렵지만 생사를 좌우하기도 하는 병에 병식이 없을 경우 대개 죽기 직전에 알아차리게 된다는 점에서는 병식 없는 병이 더 위험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현대인이 종 고독을 아픔으로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은 위험하다. 거꾸로 말하면 병식이 없어서 위중한 병이다. 병식 없는 종 고독이 기후재앙을 증강시킴으로써 인간의 대멸종을 초래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종 고독이란 병을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일이 화급하다. 통증이 있으면 쉬운데 아무런 느낌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전방위·전천후 자각에 도달할 수 있는가? 인간 행위가 폭로하는 비윤리성을 확인하면 된다. 병의 지성소에 모셔진 악을 대면하면 된다. 생리 통각이 마비되었을 때에는 윤리 통각을 깨운다. 종 고독은 인간 일극집중논리로 자행하는 다른 종에 대한 살해·수탈 그 자체와 결과를 인간 관지에서 붙인 이름, 즉 악의 지성소에서 불러낸 병의 얼굴이다. 병의 얼굴에서 악의 심장을 보는 눈이 어둠을 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