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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이 뼈에 사무친 사람과 대화하고 있습니다.

는 강요된 천사를 내면화해서 살아왔습니다.

강요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내면화도 아직 뿌리깊습니다. 

그가 눈을 뜨고 있습니다. 

그 영혼에 새겨줍니다.

 

"천사에서 전사로!


이 사람 누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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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에는 별이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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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위대한 질문 - 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위대한 질문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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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보다 지극한 사랑을 지닌 엄마라고 자부하는 한 여성이 스무 살 갓 넘은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아들은 알코올의존에 깊은 우울장애가 결합된 상태였습니다. 상담하면서 드러난 진실은 아들과 엄마 사이에 정서적 연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아들의 생활 조건을 풍요롭게 해주는 뛰어난 수완과 사랑을 혼동하고 있었습니다. 제 지적을 들은 엄마는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해주었습니다.


“사랑은 아이의 감정이 형성되는 과정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 동참은 언제나 맑은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우리사회 가정의 풍경에서 맑게 질문하는 엄마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의문문은 난무합니다. 의문문을 쓴다고 해서 질문한다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일방적 선언과 지시를 내장한 의문문은 질문으로 위장하는 전술입니다. 이 위장된 질문이 모든 맑은 질문을 봉쇄합니다. 엄마의 이런 타락은 남성가부장적 지배질서를 내면화한 데서 옵니다.


남성가부장적 지배질서는 근본적으로 질문을 알지 못합니다. 통치자는 질문을 하지도 않고 받지도 않습니다. ‘연쇄담화범’이란 우스개가 돌 만큼 이 번 정변 동안 자주 담화를 발표했던 박근혜는 단 한 차례도 질문하거나 받은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자기 말만하고 등을 돌렸습니다. 이것은 국민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선포입니다. 도발입니다.


질문한다는 것은 존중한다는 것입니다. 존중은 사랑의 극진한 표현입니다. 사랑한다면 질문해야 합니다. 질문해야 정서적 연대가 형성됩니다.


신이 인간에게 질문해오는 것은 신이 인간을 존중하는, 사랑하는 가장 근원적 방식입니다. 신에게서 존중, 사랑의 질문을 받은 인간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대답은 무엇일까요? 모름지기 신이 원하는 가장 위대한 인간의 대답은 ‘질문’일 것입니다. ‘질문하는 영혼’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 신은 질문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질문하는 영혼은 하나하나 사랑의 화신입니다. 사랑의 화신이 신입니다. 신은 다시 광장으로 갑니다. 신의 위대한 질문을 들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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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위대한 질문 - 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위대한 질문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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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놀라움과 신비로 가득 차 있다.·······삶은 경외로 가득 차 있다.

  삶의 지혜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익숙한 것을 덜 익숙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며, 또한 덜 익숙한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노력이기도 하다. 삼라만상을 통해 인간에게 말을 거는 신은 우리의 양심에 호소한다. 그 목소리는 바로 우리의 심연에 숨어 있는 “섬세한 침묵의 소리”다.(386쪽)


성서, 특히 구약성서의 매혹 가운데 하나는 등장인물의 실수와 실패는 물론 편집자의 실수와 실패까지 고스란히 보존한 채 최종 텍스트로 확정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숭고의 길에서 빚어지는 인간 군상의 역동적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에 매끈하고 고답적인 교훈이나 휴먼스케일을 벗어난 관념만의 내러티브가 지닐 수 없는 진한 냄새와 끈적이는 촉감을 잘 전해줍니다.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며 읽는 책이 결코 아닙니다.


<욥기>는 그런 면에서 백미로 꼽힐만합니다. 무엇보다 배철현이 지적한 ‘편집자의 어설픈 실수’가 트인 독자의 사유공간을 넉넉하게 제공해줍니다. 물론 막힌 독자가 대다수여서 장구한 세월 동안 욥의 심연은 찰방거리는 냇물로 ‘해결’되어왔습니다. 욥이 제기한 문제는 통속한 기독교 너머에서 ‘해소’됩니다. 신을 사유함으로써 장엄을 복원하는 것은 말글 밖에 있는 “섬세한 침묵의 소리”를 인간이 곡진하게 경험할 때뿐입니다.


말글이 끊어진다는 것은 앎이 끊어진다는 것입니다. 앎이 끊어진다는 것은 그렇고 아님, 맞고 틀림, 옳고 그름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고 아님, 맞고 틀림, 옳고 그름이 사라진다는 것은 무도덕의 경지가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고 또 그럼, 맞고 또 맞음, 옳고 또 옳음이 서로 어긋나는 진실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어긋남이 경이, 신비, 경외를 불러일으킵니다. 경이, 신비, 경외 앞에 겸허하게 무릎 꿇을 때 욥의 심연이 열립니다.


서구 사상사에서 신정론神正論 논쟁이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제로 남는 것은 형식논리의 한계 때문입니다. 하나의 명제가 참이면 그 모순 명제는 거짓이라는 ‘어설픈’ 진리 인식으로는 이 문제를 도저히 풀 수 없습니다. 깨닫기 이전 욥의 생각이 바로 이 덫에 걸려 있었습니다. 내가 잘못한 게 없으니 나를 이리 만든 신에게 잘못이 있다는 논리였으니 말입니다. 정반대 입장이긴 해도 그를 논박한 친구들 역시 동일한 수준이었습니다.


우리사회의 지배집단이 걸린 덫은 본질 상 악마적인 것입니다. 욥은 옳아서 옳다 한 것이지만 저들은 옳지 않은데도 옳다 하니 말입니다. 박정희가 옳으므로 반-박정희는 그르다는 확신을 가진 미치광이 한 무리가 온 촛불시민을 빨갱이로 몰아가며 강도질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저들을 응징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여 다시는 흔들리지 않게 하려면 트인 시민 각자가 자신의 심연에서 울리는 신의 목소리에 결곡히 응답해야 합니다.


“내가 공화국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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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위대한 질문 - 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위대한 질문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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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짙은 어둠이 지나야 여명이 찾아오듯 희망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절망의 과정을 겪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갑작스러운 선물이다. 그런 측면에서 희망은 고통과 절망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364쪽)


광화문광장에 시위하러 나왔다가 공황의 습격을 받아 무너졌던 청년 하나가 저와 상담하고 있습니다. 우울과 깊이 결합된 상태로서 처음 와서는 숨죽여 흐느끼느라 말을 잇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한참 듣다가 티슈 박스를 통째로 내어주면서 제가 고요히 말했습니다. “엉엉 소리 내서 우세요.” 그 말 듣기 무섭게 커다란 통곡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흐느낄 땐 영 멈출 것 같지 않던 울음이 통곡하자 얼마 못가 멈추었습니다. 깊고 짙은 어둠을 지나 여명을 맞이한 것입니다. 이치를 전해주자 그는 환하게 웃었습니다.


절망이 자라고 있는 중에 보이는 희망은 희망이 아닙니다. 희망은 절망의 벼랑 끝에서 뛰어내리는 찰나 날개 치며 달려드는 비상의 사건입니다. 목하 절찬리에 시판되고 있는 절망과 희망은 가짜입니다. 자본주의가 타락시킨 대표 언어 상품들입니다. 가짜 희망을 팔아먹으려고 영글지 않은 절망에 엄살떨도록 부추기는 자본의 마케팅에 놀아나는 판국입니다. 박근혜가 저지른 짓도 결국은 이 가짜 놀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가 팔아먹은 창조, 원칙, 소명, 순수, 심지어 혼, 우주, 급기야 대통령직까지 몽땅 가짜였습니다.


박근혜의 가짜 놀이로 민낯을 드러낸 대한민국의 시스템, 공화국의 민주주의, 지배층의 윤리의식 상태야말로 절망입니다. 그 절망의 벼랑 끝에서 뛰어내리자 촛불에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비상의 날갯짓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날갯짓에 참여하려고, 공황에 무너졌던 그 청년이 용기를 내어 오는 토요일 친구들하고 풍물 친다 합니다. 마음치유가 공적참여와 결합할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 격려해주었습니다. 허름한 동네 음식점에서 5천 원짜리 백반 함께 먹고 돌아서는 청년의 등에도 날개가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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