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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곰 - 스웨덴식 행복의 비밀
롤라 오케르스트룀 지음, 하수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균형과 절제 그리고 중립이라는 키워드를 대신하는 단어들이 있다. 하쿠나 마타타(스와힐리어), 카르페 디엠(라틴어), 페른베(독일어), 휘게(덴마크어)에 담긴 의미들은 하나같이 최적의 삶을 지칭하는 라이프스타일 용어들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 한국 사회에 이러한 용어들이 주목받고 있는 걸까.
쉴 새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대한민국! 삶의 가치를 따져보기 이전에 일 인당 국민소득을 끌어올리기에 바빴던 한국인들에겐 느림의 문화란 존재할 시간이 없었다. 줄 세우기 바쁘고 누군가를 밀어내야 이길 수 있었던 사회적 분위기는 시대가 변해도 좀처럼 그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이렇게 현대인들의 부자연스러운 삶의 패턴은 결국 자신을 한계로 몰아넣었고 늘 지치고 쫓긴다. 누군가와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일이 대한민국 사회의 전반적 기류이고 내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를 쫓는 일은 많은 이들을 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에 놓이게 한다. 그래서 마치 대한민국은 스트레스 공화국 같다는 이미지를 지워 내기가 힘들다.
그러나 최근 한국 사회에는 치유의 바람이 불고 있다. 타문화에서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심은 무엇보다 삶의 가치관의 변화를 가지고 왔고 특히 북유럽 스타일은 젊은 층에게 사랑받고 있다. 이미 대한민국 디자인 곳곳에 북유럽이라는 키워드가 자리 잡으며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그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그들의 교육과 삶의 철학 등을 향한 관심도가 급상승하고 있다. 이 책은 스웨덴 사람들의 행복의 열쇠라고 불리는 라곰(Lagom)에 관한 이야기로 라곰의 정의와 라곰적 생활이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있다.
아마도 나와 같은 의문을 먼저 가지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라곰(lagom)이 뭐지?' 나도 스웨덴의 피카(fika) 문화에 대해선 짧은 포스팅을 본 적이 있지만 라곰은 낯선 용어다. 우습지만 처음엔 빼꼼 때문에 캐릭터 이름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스웨덴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대변하는 용어이며 일상에서도 자주 쓰이는 용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좀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곰은 2017 미국 <VOGUE>매거진이 선정한 라이프 스타일 키워드이다. 덴마크의 '휘게'의 뒤를 이어, 새롭게 떠오르는 북유럽 출신의 라이프 스타일 키워드로 삶의 균형, 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워라밸)를 중시하는 최근 트렌드와 맞아떨어지는 개념이다.
라곰(lagom)은 스웨덴어로 ‘너무 적지도, 많지도 않은 적당한, 충분한, 딱 알맞은’이란 뜻으로 그 의미를 정확히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다. 우리의 '정(情)'이라는 의미를 말로 풀어내기가 어렵듯이 그런 맥락이라고 이해하면 쉽게 다가올 것인데 너무 욕심내지도, 너무 앞서가지도 않는 균형 잡힌 삶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깊이 들어가 그 유래를 찾아보면 그들의 바이킹 문화와 관련 있다는 설이 유력하고 또한 역사적으로 루터교와 청교도의 가치가 덧입혀져 지금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이렇듯 라곰은 스웨덴 사람들의 삶의 질을 대변한다. 그들의 적절하고 적당한이라는 생각은 삶의 모든 부분을 지배한다. 식탁문화, 주거문화, 일, 패션등 생활 전반에 녹아있으며 그뿐 아니라 그 의미에 내재된 중립성은 세계적인 외교관과 협상가를 배출하며 스웨덴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물론 모든 스웨덴 사람들이 라곰에 대해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들의 삶에 라곰이 주는 교훈을 들여다보며 우리 삶의 전반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 북유럽 사람들의 성향 뒤엔 자연이 있다. 험한 자연지형을 잘 이용하고 자연의 위대함을 알기에 인간을 낮춘다. 그리고 자연에게서 빌린 것을 잘 돌려주려 하며 최대한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다 간다. 자연이 주는 시간의 흐름에 삶을 맡긴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느리지만 과하지 않으며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줄 안다. 어려서부터 자연과 친밀감을 형성하다 보니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라는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게끔 만든다.
" 누구든 자유롭게 숲을 누비고 즐길 수 있는 권리는 알레멘스라텐 즉 '자연에 대한 공공이용권'이라는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입장 금지 표지가 붙은 곳이 아니라면 원하는 곳 어디에서든 캠핑을 하고, 식용 열매를 채집하고, 드러누울 수 있다. 자연을 가까이하다 보면 자연스레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게 된다. 알레멘스라텐을 통해 누구든 뒷산에서 나는 열매를 따 먹고, 지역 농산물을 섭취하며, 모두가 평등하게 숲 속에서 노닐 수 있다."-p.69
하루의 시작을 명상으로 열고 아침식사는 소박하고 간소하다. 늘 양으로 승부를 보려는 한국의 음식문화와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그리고 스웨덴 사람들은 피카(Fika) 타임을 놓치지 않는다. 토론하고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이야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의 의견도 조율하고 합의점을 찾아나간다. 그래서 관공서나 회사에서도 피카를 위한 공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문화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강한 팀워크를 이끌어내고 있으며 비즈니스 문화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스웨덴 기업의 신뢰감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스웨덴의 대표 브랜드 이케아(IKEA)도 'Live Lagom'프로젝트를 통해 균형 잡힌 삶의 실천을 독려하고 있으며 그들의 제품 또한 한국인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환경을 중시하는 문화 또한 곳곳에 드러난다. 아름다운 장식품과 불필요한 장식은 편안하고 소박한 것으로 대신한다. 또한 불필요한 물건을 소유하지 않는다. 이는 쓰레기를 줄이고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또한 실용성을 꼼꼼히 따지며 리사이클 문화도 자리 잡혀 있다. 작년에 미니멀 라이프를 접하고 버리고 난 후 오히려 얻은 것이 더 많았던 경험을 몸소 체험하였다. 정말 중요한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는데 그들의 생활에서 또 하나 배운 점은 무조건 싸고 저렴한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상품의 질을 고려하여 오래 쓸 수 있는 상품을 우선으로 하다 보니 질만 좋다면 중고라도 괜찮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스웨덴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일한다. 일하기 위해 살지 않는다." -p.184
무엇보다 눈여겨 볼 것은 그들은 웰빙 추구를 기본권으로 본다는 사실이다.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제일 짧은 나라,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해서 여유 있는 휴가를 즐기며 개개인의 공간을 존중한다. 하지만 이것이 지극히 개인주의로 대변되지 않는다. 그들은 팀과 공동체도 중시한다. 라곰이라는 단어 자체가 팀을 뜻하는 '라게트 옴'의 줄임말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저자는 '스웨덴은 폐쇄적인 사람들이 사는 열린 사회'라고 함축하며 그 의미를 함축한다. 상대방에게 신뢰를 심어주는 일은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아주 중요한 덕목이다. 철저한 시간관념, 자신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는 문화 등은 개개인에게 꼭 필요한 덕목일 것이다.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 편견과 차별이 없는 사회가 선진국 상위 링크에 올라있음은 당연한 결과이다. 무엇보다 탄탄한 복지를 위해서는 국민들의 세금이 잘 거두어져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금에 대해 갖는 인식은 부정적이다. 하지만 스웨덴 사람들은 그들보다는 세금에 대한 이해도가 넓은 편인듯하다. 세금이란 안락한 삶을 위한 보험이라는 개념이 더 자리 잡고 있는듯한데 이는 물론 나라의 운영 시스템을 신뢰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품고 있는 생각이 다르고 주어진 환경도 다른데 과연 우리네 삶이 바뀌어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안타깝지만 자연에 대한 동경은 있으면서도 자연을 아끼는 마음보다는 누리려는 마음이 더 크고 미세먼지로 인해 사람들은 더더욱 실내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 지역주의, 물질만능주의, 빠름으로 대변되는 문화와 냄비근성 따위들이 사라지려면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그래도 라곰을 만나고 자연을 사랑하는 그들의 문화와 더불어 소박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자라났다. 때론 평범함이 주는 단조로움이 불만스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적당히 잘 해서 오히려 삶이 다채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좀 더 평안해졌다. 타인의 뒤꽁무니를 쫓아가기 바쁜 현대인들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며 결국은 우리가 바꾸어 나가야 할 몫이다. 라곰의 정신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 즉 균형 잡힌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을 '라고머(Ragomer)'라 칭한다고 한다. 저자가 라고머로 거듭나기 위해 생활속에서 실천한 경험담도 풀어내고 있는데 관심있게 바라보면 좋을듯하다.
만족을 느끼는 정도는 바라보는 시각에 머문다. 의식적 가치관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책장의 책도 빽빽하게 꽂혀 있는 것보다는 여유를 두고 꽂아야 책들도 숨쉴 수 있다고 하듯 삶에도 공간을 열어두자. 빠름이라는 변화에 허덕이지 말고 조금은 느림의 여유를 즐기다보면 어느새 라곰의 정신이 우리의 삶에도 스며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