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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의 마지막 한 줄 ㅣ 청어람주니어 저학년 문고 22
이붕 지음, 송혜선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19년 9월
평점 :

일기를 쓴다는 건 자기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그래서 최대한 진실되게 쓴다. 그렇다면 우리가 써온 일기의 마지막 한 줄은 어떠했을까.
정말 마지막 한 줄에 반성과 다짐이 많았었나? 정말 그런가 싶어 아이들의 저학년 일기를 다시 들춰보았다. '어머, 진짜 그러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 마냥, 아님 무슨 일기 쓰기의 공식인 것 마냥, 일기의 마지막 한 줄이 대체적으로 그렇게 끝난다. 그런데 웃긴 건 나의 지난 다이어리를 보아도 비슷한 뉘앙스다. 그렇게 매일 반성을 하고 다짐을 했던 우리의 하루. 그런 하루가 모여 지금 우리의 모습을 이루고 있을 텐데....
나쁜 어른들(여기서 나쁜 어른이란 범죄를 저지르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일삼은 이들을 말함)을 볼 때면, 먼저 드는 생각이 있다. 저 사람들이 어린아이였을 땐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성악설을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이 환경에 의해 나쁘게 변한다고 믿는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 조금씩 사라지고 세상의 때가 묻기 시작하면 유혹에 쉽게 넘어가게 된다. 특히 나 자신을 속이고 그럴싸한 이유로 덮어버리기 시작하면 거짓된 가면을 쓰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람은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쁜 마음은 서서히 물들어간다.

이 책은 작은 거짓말이 자신도 모르게 점점 커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처음 거짓말을 했을 때의 두려웠던 감정이 떠올라서인지 하루가 느꼈을 두려움과 초조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거짓말은 무조건 나쁘다고 배운다. 하지만 잔꾀가 늘기 시작하면 슬슬 속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인간은 늘 그렇게 양심의 시험대 위에서 놓인다. 그리고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에 따른 책임도 결국 내 몫이 됨을 알아야 한다. 하루처럼 혼나는 일이 무서워 순간을 피했다가는 눈덩이처럼 일이 커질 수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매일 일기를 써야 하는 하루는 늦게까지 게임을 하다 일기를 쓰지 못하고 잠이 들어버렸다. 아침식사시간 일기를 썼냐는 엄마의 물음에 거짓말을 하고 만다. 앞전에 솔직하게 얘기했다가 부모님의 말다툼을 보고선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뭐 따지고 보면 아침에 학교 가서 쓰기 때문에 안 쓴 것도 아니니 그 정도의 거짓말은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윗집 형의 말대로 융통성을 발휘한 것뿐이다. 하루처럼 자신의 행위에 적당히 변명을 하게 되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다. 누구나 의도하지 않게 그렇게 살짝 거짓말에 익숙해져간다.

그런데 정말 진실을 숨기고픈 일이 벌어지고 만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져 주차된 차에 흠집을 낸 것이다. 아무도 보지 않았다면 더 완벽했을 테지만 하필 그때 현장에서 찬수와 마주치게 된다. 걱정과는 달리 별일 없이 며칠이 흐르자 마음은 놓였으나 찬수를 볼 때마다 불안감이 커져만 간다.
엄마가 선불결제를 해 놓았던 분식집에서 간식을 해결하던 하루는 찬수의 입막음을 위해 찬수 것까지 챙기기 시작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식집의 간식 수첩 금액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한다. 엄마에게 요리조리 핑계를 대볼까 하지만 이미 진실을 말할 기회를 놓친 것만 같아 더 불안해진다. 결국 하루는 해서는 안 되는 짓까지 하게 되고 만다. 하루는 솔직하게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을까.

시작은 별것 아닌 것이었다. 일기 쓰는데 하루가 밀리긴 했지만 매일 썼기 때문에 별일 아닌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엄마를 속였다. 하루는 남을 속이는 것만 생각했지 정작 양심을 속이는 것이 더 나쁜 일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양심에 대한 좋은 예로 환경미화원 이야기가 등장한다. 남의 돈을 주워 주인을 찾아준 환경미화원의 훈훈한 미담은 듣는 이의 기분마저 따스하게 만든다. 하지만 하루의 반 아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니 기분 상하는 얘기가 오간다. 보상금을 받으려고 주인을 찾아주었다는 둥, 가난해서 정직한 거라는 둥, 수표였으니 돌려주었다는 등의 뒷말이 난무한다. 왜 사람들은 착한 행동마저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걸까. 어른들이야말로 아이들 앞에서 입조심해야 한단 생각이 든다.
결국 자기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도 자신이다. 하루는 정직하지 못했던 자신 때문에 자꾸만 감추려다 일이 커져버렸다. 스스로 핑계를 만들다 너무나 힘든 시간을 겪었다. 오죽했으면 눈사람을 만들며 재밌게 놀았다는 일기의 마지막 한 줄에 엉뚱한 내용을 적었을까.
`앞으로는 거짓말을 절대로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라고.
누구나 거짓에 쉽게 현혹된다. 하지만 솔직한 하루가 필요하다. 하루가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았다면, 아니면 하루의 진심이 전해지지 않았다면 차 주인은 나쁜 마음을 먹고 하루에게 배상을 요구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친구 찬수를 내내 경계하는 일 따위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루의 사소한 거짓말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면서 아이들은 깨닫는 바가 많을 것이다.
책을 읽은 다음날 아침 아파트 일층 현관에서 3000원을 주웠다. 병원 주차 영수증과 함께 떨어져 있었는데 책 내용이 생각나서 경비실에 전달하고 출근했다. 예전 같았으면 내 주머니로 찔러 넣었을 텐데 오늘은 양심에 찔렸다.ㅎ 역시 선행은 또 다른 선행을 낳게 함을 차 주인과 나의 행동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 이렇듯 일기의 마지막 한 줄에 담긴 정직한 고백을 실천한다면 매일이 솔직한 하루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