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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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의 책은 이 책의 옮긴이 김현우 작가의 책 <건너오다>를 읽다가 호기심에 들였다. 대체 어떤 작가이길래 그리 마음에 담아두고 계신 걸까 궁금하기도 했고 그의 문장이 이토록 좋은 이유가 존 버거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존 버거가 미술평론가였단 사실도 이 책을 펼치고서 알았다. 책에 실린 그의 드로잉을 보면서 사진도 좋지만 앞으로 선을 써보는 건 어떨까 하는 마음도 꿈틀댄다. 좀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팔십 년간 글을 써온 작가의 내공은 어떨까. <자화상> 도입부를 읽으며 다양한 사유를 즐길 수 있겠다 싶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새해가 되서 습관들이기 목록에 매일 글쓰기를 넣었다. 책 리뷰 쓰는 거 외엔 글쓰는 일이 거의 없다 보니 쓰는 일이 자꾸만 버거워진다. 게다 언어의 한계에 자꾸만 부딪히는 것 같고.

 

저자가 말하는 언어에 관한 여러 가지 견해를 읽다 보니 언어의 모습에 대해 고심해 보게 된다. 나는 언어로 나의 의미를 잘 찾아가고 있긴 한 걸까. 스스로를 그저 빈 곳을 메우는 사람 정도로 생각한다는 저자처럼 나도 그런 마음가짐을 가져야겠다.

 

이 책은 그냥 그의 문장을 찬찬히 따라가다 괜찮은 지점에서 잠깐씩 쉬어갔다. 요즘 매일 필사하며 책을 읽고 있는데 오늘은 찰리 채플린에서 잠시 멈췄다.

 

채플린의 익살이 지닌 에너지가 복수성(같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인 어떤 사람)에서 기인한다고. 그 복수성이 있었기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음.. 그 복수성도 좋은 쪽으로의 복수성이야겠지. ㅎ 이중인격자말고.ㅋㅋ 그의 노년의 모습은 처음 보았는데 정말 렘브란트의 자화상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다. 렘브란트의 노년의 자화상들이 대체적으로 분위기가 우울하던데 저 작품에서는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네. 찾아보니 그가 죽기 6년 전에 그린 작품으로 나이 많은 노파가 자신을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처럼 그려달라며 옷을 벗고 포즈를 취하자 그 모습을 보고는 배꼽을 잡고 웃다가 죽었다는 그리스 화가 제우크시스와 동일시 한거라는데...ㅋㅋㅋㅋ real?? 믿거나 말거나?

스스로를 비웃은건지 아님 해탈?의 경지에 이른건지 그의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웃는 모습이라 좋네.^^

​채플린의 익살이 지닌 에너지과 렘브란트의 웃음.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는듯하다.

 

 

프랑스 화가 니콜라스 푸생의 그림은 <세월이라는 음악의 춤>이라는 작품으로 알게 되었다. 그의 그림에는 언제가 이야기가 가득하고 깊은 의미들이 숨어 있다. 그의 작품 아르카디아의 목자들도 마찬가지다. 존버거는 오십 년 지기 친구였던 스벤의 장례식 후 불현듯 그와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푸생의 그림을 떠올린다. 이 그림의 시선은 한 목동이 가리키고 있는 그림자로 향한다. 비문을 읽어주고 있는 장면으로 마치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는 걸 상기시켜 주는 듯하다. 석관에 쓰인 글: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Et in Arcadia Ego).

 

언어가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을 대변해 줄 수는 없다. 때로는 노래로 때로는 풍경으로 때로는 한 송이 꽃으로, 서랍 속 물건으로 삶의 이치를 읽어내기도 한다. 자연의 외양들을 텍스트로 읽어내는 일이 가능할까.-p.104

물론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듣고 자연을 찾는다. 언어로 이해받을 수 없는 순간을 이해하고자.

미디어의 무차별적인 언어에서 조금 멀어져 문학의 언어로 심신을 닦고 살자.ㅎㅎ

언어에 관한 사유보다 그림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아졌지만 나름 괜찮은 시간이었다.

 

 

 

시간은 선적인 것이 아니라 순환적인 것임을 기억하자. 우리의 삶은 하나의 선 위에 찍힌 점이 아니다. 이 선은 전례가 없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 질서의 일시적 탐욕에 의해 절단되고 있다. 우리는 선 위의 점이 아니라, 원의 중심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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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20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건빵님 이페이퍼 넘 좋아 존버거 저책 구판으로 갖고 있는데 이책번역가 김현우님이 본업을 거의 포기하고 존버거 책번역 에 매달리며 존버거가 살던곳도 답사했던 분인데,,[,시간은 선적인 것이 아니라 순환적인 것임을 기억하자. 우리의 삶은 하나의 선 위에 찍힌 점이 아니다. 이 선은 전례가 없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 질서의 일시적 탐욕에 의해 절단되고 있다. 우리는 선 위의 점이 아니라, 원의 중심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생태계질서 파괴로 전염병공포 환경오염속에 살고 있는 현재 인류에게 말하는 문장 같네요 건빵님 필사 멋져요!

건빵과 별사탕 2021-01-20 10:30   좋아요 1 | URL
김현우 번역가님의 열정이 너무나 궁금해서 저도 찾아읽게 된 책인데 사유들이 너무 고급져서 감탄사 연발하며 읽었습니다.ㅎㅎ

대충 끄적인 필사에도 감탄사를 쏘아주시다니 기분 너무 좋은데요^^
오늘도 멋진 하루 되시길요. scott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