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랑의 실험 - 독일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알렉산더 클루게 외 지음, 임홍배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부터인가 독일문학을 즐겨 읽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괴테, 카프카, 헤쎄와 같은 훌륭한 문호들이 즐비한 독일문학은 많은 작품들이 출간되어 있고 그만큼 독자의 선택 기회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흔히 "단편"은 짤막하게 지은 글, 쉽고 간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라고 한다. 나는 어떤 큰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글은 방대한 분량의 장편이라고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호프만의 『모래남자』를 읽은 후 "단편"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게 되었고 단편문학의 예찬론자가 되었다. 그러나 단편을 찾기는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선택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독일문학에서조차 단편은 변두리 장르에 속해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단편문학에 목말라하던 차에 창비에서 국가별로 단편들만 모아놓은 세계문학을 출간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가장 관심 있는 독일편을 먼저 만나게 되었다. 

창비세계문학 독일편은 무려 17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 17인의 단편 17작품!
괴테, 카프카, 헤쎄, 토마스 만, 크리스토프 하인처럼 익숙히 잘 알고 있는 작가, 그리고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가와 작품은 알고 있지만 이름은 몰랐던 작가를 만난다는 사실에 책장을 넘기기 전부터 기대만발이었다. 그리고 17편의 단편을 흡수한 지금, 17인의 작가는 나의 기대를 200%이상 충족시켜주었다.

먼저 구성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자. 유럽 중부에 위치한 독일에 대해 아시아 동쪽 대륙 끝에 있는 나로서는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정확히, 제대로 알 길이 별로 없다. 그래서 그들만의 역사가 등장하게 되면 나의 이해도는 상당히 낮아져 공감대가 떨어지는 경우가 간간이 있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의 옮긴이는 이에 대한 도움으로 괄호의 형식을 빌어서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 준다. 책을 읽는 내내 옮긴이의 설명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옮긴이는 헤벨의 "뜻밖의 재회"를 제외하고 각주가 아닌 괄호설명을 선택했다. 나는 옮긴이의 설명을 환영하지만 각주는 비교적 좋아하지 않는다. 읽는 과정에서 각주가 등장하게 되면 내용의 흐름이 끊긴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론 개인적인 성향이지만) 괄호설명은 각주에 비해 책 읽는 작업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연스런 우리말 원어표기법을 사용한다. 이 독특한 표기법은 전부터 창비에서 선호하는 형식이고 이번 작품도 고수하고 있다.

첫 번째 작품으로 등장하는 "정직한 법관"은 괴테의 작품이다. 괴테의 작품은 쉽게 읽을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이 있는데 이 작품은 전자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쉽게 읽혀지지만 인간의 심리묘사는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구체적이며 매력적이다. 왜 그를 세기의 천재 작가라고 부르는지 수긍이 가는 멋진 작품이다.
두 번째 작품인 "기발한 페르머"는 장화 신은 고양이로 유명한 작가 티크의 작품이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모두 머리 속 나사가 하나씩은 풀린 것 같았다. 주인공 페르머는 정신착란증에 걸린 돈키호테형의 인간형이다.
클라이스트의 "주워온 자식"은 인간에 대한 부정적 성향을 강하게 서술된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짧은 약 2장 분량의 "뜻밖의 재회"는 강한 여운을 주는 작품으로서 눈 여겨 봐야 할 작품이다. 시간의 흐름을 역사적 사건의 순차로 나열한 점은 정말 대단했다.
네 하인과 주인의 이야기인 "672일째 밤의 동화"와 믿음과 불신에서 반목하는 "장님 제로니모와 그의 형", 집착증에 시달리는 "광고물 폐기자", 영화감독다운 의미심장한 반짝거림을 드러낸 "어느 사랑의 실험", 안타까움 백만 배 요르단 할머니 "개 짖는 소리" 등은 쉼 없는 인간의 심리묘사를 따라잡는 재미가 쏠쏠했다.

장편이 아닌 단편으로도 충분히 작가의 사고를 독자에게 전할 수 있다. 짧고 효과적으로 전해오는 작가의 생각은 장편보다도 강렬한 무언가가 있음에 확실하다. 창비에서 엄선된 다수의 단편으로 구성된 세계문학 독일편은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5년의 긴 시간을 들여 작품을 엄선하고 작가의 문체를 살리기 위한 공을 들인 노력의 흔적이 역력히 눈에 들어오는 시리즈이다. 멋진 작가의 멋진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고 그 노력의 결과물을 선택하길 바란다. 국내에 처음 번역된 작품인 만큼 새로운 세계가 독자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제 나는 다른 나라의 이야기 속으로 여행을 떠나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플 스토리 민음사 모던 클래식 11
잉고 슐체 지음, 노선정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역설일 줄이야! '절대 간단하지 않다'는 의미의『심플 스토리』였다.
어느 날, 뉴스에서 우리집 담장보다 조금 더 높고 기다란 담벼락을 부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 어린 나는 "엄마, 저 사람들 왜 저래?" 라며 호기심과 궁금증에 물었다.
어머니는 독일이라는 나라가 통일하게 되서 이제 더 이상 저 담이 필요 없게 되었다고 알려주셨다.
그렇게 독일통일은 "독일"이라는 나라를 내게 처음으로 인지시켜 준 사건이 되었다.

『심플 스토리』는 독일통일 후 동부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스물 아홉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등장인물 역시 많은 에피소드의 개수만큼 다양하다.
특별한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전형적인 구성도 아니다. 매번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르다. 그 인물들마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역할은 하지 않는다. 그저 인물들은 부수적인 구성 소재일 뿐이다. 또한 엉킨 실타래처럼 '구성 소재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작가 귄터 그라스에게 "타고난 젊은 이야기꾼"이라고 극찬을 받은 잉고 슐체는 그 명성 그대로 여러 화법을 작품에서 활용하고 있다. 일인칭 시점의 여성적인 어조로 사용하다가 다른 장으로 넘어가면 삼인칭 시점의 남성적인 어조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화법을 따라가는 것은 일관된 시점의 이야기에 익숙한 독자로써 매우 힘이 드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 흔한 독일 인사조차 모르는 무식쟁이인 나에게 많은 인물들의 이름은 작품을 읽어 내려가는 속도를 더욱 더디게 만들었다.

서독 위주의 통일 아래에서 동독인들은 흡사 지금 우리의 88만원세대를 닮아있다.
경제위기 이후 사회에 합류하지 못하고 주위만 겉도는 88만원세대와 통일 이후의 모든 방면에서 기존의 동독의 것들을 인정받지 못한 동독인들은 "부적응자들"이다. 슬프게도 우리와 그네들의 상황은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래서 등장인물과의 공감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듯하다. 만약 여기까지가 작품의 끝이었다면 무뚝뚝할 정도로 조용하게 이야기하는 잉고 슐체라는 작가를 나는 부정적인 사람일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적응하지 못한 자"가 있으면 "적응하려는 자"도 있다고 말한다. 작지만 조그마한 희망의 불씨를 살려두면서 『심플 스토리』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 끝을 맺는다. 잉고 슐체, 그는 다행히도 부정적인 작가가 아니었던 것이다.

『심플 스토리』를 읽으면서 (내 입장에서) 나는 꽤 많은 노력을 들였다.
생소하고 어색하기만 한 독일 이름을 종이에 쓰고 이름만으로는 그 성별을 구별하기가 어려워 성별까지 기입하였다.
한번 등장했던 인물들이 재차 등장하였기에 그들의 이름과 성별을 메모한 것은 이 책을 읽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포기할까?' 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도저히 중도포기를 할 수는 없었다. 스펙터클한 사건 하나 없이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이야기를 술술 풀어가는 작가의 매력에 흠뻑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심히 부족하여 『심플 스토리』의 참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나에게 『심플 스토리』는 오래두고 마시는 술처럼 여러 번 읽어야 그 맛을 제대로 알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타고난 이야기꾼의 깊은 이야기를 제대로 음미하고자 나는 다시 한 번 책을 들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탐 - 넘쳐도 되는 욕심
김경집 지음 / 나무수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베스트셀러"라고 일컫는 소위 인기 있는 책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항상 곱지만은 않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인기 있는 책들을 멀리하는 버릇이 생겼다. 다들 좋아하는데 나 한명쯤은 그 대열에서 이탈해도 아무 문제가 없지 않는가. 대신 서점에서 독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책들을 찾고 고르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치 지루한 낚시 끝에 월척을 잡은 것 같은 기쁨이 든다. 이 기분을 즐기는 재미는 참으로 쏠쏠하다.

 현재는 자본의 논리가 통하는 세상이고 책시장도 이 "자본"이라는 놈이 한 자리를 꿰차고 있다. 이제 거대 마케팅 없이는 책의 성공은 어렵게 된 실정이다. 자본 없는 가난하지만 좋은 책은 독자에게 선택받을 기회가 줄어들었고 그마저 "절판"이라는 사형선고를 받고 사라진다. 난 단순히 책을 좋아하는 독자일 뿐이다. 그래서 세상의 많고 많은 책 중에서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내가 읽어야 하는 책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책 중에서도 선택하기 쉬운 문학 분야의 책만을 읽게 되는 것 같다. 책편식이 심한 나 자신이 안타까워서 가끔은 문학 이외의 다른 분야의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 바로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어떤 책을 선택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운 좋게 마음에 드는 책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선택하지 못해서 문학 분야로 회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이니 나의 책편식은 고치기 힘든 습관이 되었다.

 김경집 님의 『책탐』은 책들의 홍수 속에서 방황하는 나 같은 독자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여러 분야의 서적을 주제에 따라서 두 권씩 묶어 소개․비교하고 있다. 『책탐』에서 등장하는 책들은 독자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최근 것들로 이뤄져 있다. 『책탐』은 인문학분야의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술술 잘 읽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인문학자인 작가의 문체는 군더더기가 없고 독자에게 이야기하듯 잔잔하고 매끄럽기 때문이다. 또한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첫 장부터 시작해서 끝장까지 쉼없이 읽어갈 필요는 없다. 4가지 주제로 나뉘어 있고 그 주제마다 여러 소주제로 이야기하는 구성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주로 읽는 분야를 탈피하고 싶은 때 원하는 챕터를 찾아 읽으면 되는 "고르는 재미가 있는" 활용도 200% 책이다.
 
 『책탐』의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베스트셀러를 "변두리적 좌파"(작가의 말을 빌리자면)의 시점으로 대하는 나와 필자가 닮아있다는 사실에 왠지 김경집 작가와 의기투합하는 기분이었다. 마음이 맞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느라 무아지경이 된 것 같은 느낌으로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소주제가 하나씩 끝나갈 때마다 내가 몰랐던 작품들을 많이 소개받아 흡족하기까지 했다. 출간되자마자 '누워'있지 못하고 책장에 '꽂히는' 책을 저자는 매우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그렇게 바로 '꽂히는' 책들 중 보석을 찾는 작업을 '등뼈 찾기 순례'라고 부른다. '등뼈 찾기 순례', 참 멋진 이름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등뼈 찾기 순례'에 동참하길 바라며 책을 덮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모니 - Harmony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극장에 자주 가는 편이라 영화 하모니의 포스터를 먼저 접하게 되었다.
"뭐야... 김윤진이 영화 찍었네... 근데 진짜 재미없겠다....ㅡㅡ; 밀린 로스트나 보자!!!"
.....라는 게 처음 든  생각이었고 그것말고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 <출발비디오여행>에서 하모니를 소개하더라.
그동안 내마음대로 생각했던 재미없을 것 같은 영화가 아닌 너무나 재미있을 것 같은 영화로 탈바꿈되었다.
그 프로를 보고 이 영화가 너무 너무 보고 싶어졌다.
그러던 차에 어렵게 시사회표를 구하게 되어서 어제 영화 하모니를 보게 되었다. 



 

 

 

 

 

 

 

 

 

                                              < 우린 칼이 없어도 수박을 잘 썰어 먹는답니다!!!! ㅎㅎㅎㅎ >  
각자 사연을 갖고 있는 재소자들이 합창단을 결성하면서 생기는 일련의 과정을 다룬 영화이다.
영화 곳곳에 그들의 사연을 풀어가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수감 중에 죄수가 아이를 낳게 되면
그 아이는 엄마와 18개월동안 같이 지낼 수 있다고 한다.)
하모니는 감동 백배인 영화이다. 어찌나 눈물이 펑펑 흐르던지 눈물을 닦을 겨를이 없었다.
나는 원래 눈물이 적은 인간형인데 세월이 흘러 나이를 차곡차곡 먹다보니
요즘은 눈물이 많아진 것 같다. 여튼 쉴새없이 눈물이 나는 영화이다.



 

 

 

 

 

 

 

 

 

<웃음을 담당하는 정수영 님(왼쪽), 박준면 님(가운데)! 소프라노를 담당하는 고운 목소리의 강예원 님(오른쪽)>
그렇다고  마냥 눈물을 짜내는 영화도 아니다.
웃음을 담당하는 캐릭터나 요소들이 즐비해 있으니 많이 웃을 수 있는 영화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관객분들도 박장대소하면서 웃었으니 보편적인 웃음코드가 확실함...ㅎㅎㅎ
슬픈 사연의  상처많은 캐릭터를 연기한 강예원 님은  이 영화에서 처음 봤다.
실제로 성악을 전공했다는 그녀의 노래는 참 멋졌다.
다른 재소자들 앞에서 대니보이를 노래하는 장면이 있다.
어찌나 구슬프던지... 기억나는 장면 중 하나이다. 





 

 

 

 

 

 

 

 

                                                                              <안타까운 사연의 사형수, 나문희 님>
나문희 님이 연기하는 사형수를 보며
인간이 인간을 처벌로써 죽이는 게 과연 합당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문희 님의 떨리는 손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여러분~~~ 저 방금 음치탈출했어요~~~"의 김윤진 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김윤진 님의 연기...
윤진 님이 눈물을 흘리기 전에 내가 먼저 그녀의 표정을 보고 울어버리고 말았다.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자라서일까?
그녀는 영리하고, 끈기있고, 왠지모를 "쿨"한 무언가가 있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덧,
영화 하모니는 음악 영화가 아니다. 음악은 이 영화의 소재 중 하나일 뿐이다.
영화 하모니가 범죄자를 미화했다는 말도 집어치우길 바란다.
그냥 "아~~ 내가 모르는 곳에 이런 일들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하모니를 만났으면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모니의 감동을 받길 바라며....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 출간 15주년 기념 개정증보판
로버트 풀검 지음, 최정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그토록 할아버지를 갖고 싶었던 로버트 풀검 아저씨가 본인이 할아버지가 되어서 돌아왔다!
출간 15주년을 기념해서 뺄 것은 빼고 더할 것은 더해서 내놓은 알짜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남녀노소 누구나 다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우리는 가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헤매인다.
진리는 복잡한 것이 아닌 아주 단순하고 기본적인 곳에서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우리가 겪는 착각을 없애주고 잠시 잊고 있는 진리를 일깨워 주고 있다.
작가는 자신이 겪었던 일상적인 일화나 생각을 순수하게 토해낸다. 이에 독자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이야기를 읽어 내려갈 수 있다.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아~, 맞아! 그렇지! 내가 그동안 이런 걸 잊고 있었네!'라는 생각이 쉼없이 내 머리속을 들락날락했다.
물론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 역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사물의 이름>과 <나방>이었다.
나는 평상시에 "이름"에 대해서 꽤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사물뿐만 아니라 사람의 이름도 아무 생각 없이 지어서 붙인 듯한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곤 했다. 이상하다 못해 불쾌한 이름들을 보면 도대체 어떠한 생각으로 그런 이름을 지어서 붙인 것일까 지은이의 얼굴을 보고 싶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로버트 풀검 할아버지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에피소드 <사물의 이름>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또한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신기했다.
예쁜 들꽃의 이름을 입에 담기에도 민망한 것으로 지어서 붙인 "작자(로버트 풀검 할아버지는 그들을 이렇게 지칭하였다.)"를 성토한다.
하지만 예쁜 꽃들은 정작 이름에는 관심이 없고 이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라는 작가의 말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또 <나방> 에피소드, 나방을 죽이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비는 좋은 것이고 나방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편견에 쌓인 것인지를 깨달았다. 어쩌면 내가 나도 모르게 편견덩어리가 되어가고 있는 사실을 꼬집어 준 중요한 에피소드였다.
죽은 나방 한 마리를 들고 돋보기로 들여다보며 "날개달린 테디베어"처럼 생겼다고 말하는 어린 아이를 통해서 그동안 나방을 하찮게 여겼다는 죄스러운 마음에서 구원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편견이라는 쓸모없는 것도 야금야금 쌓이는 것 같다. 항상 편견 없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요즘은 유치원에서도 국영수 공부를 한다고 한다. 그것도 대기자가 많아서 바로 입학할 수 없고 예약을 해야 들어갈 수 있다니 입이 떡 벌어질 노릇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제목은 몇십 년 후에는 바꿔야 할런지도 모를 일이다.

< 책 속 이미지는 출판사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은 수없이 많이 들어서 누구나 아는 것이다.
하지만 간혹 기본을 놓치고 가는 경우에 운이 좋아서 일이 성공한 경험도 누구나 한 두번 쯤은 경험해봤을 것이다.
고사성어 "사상누각[砂上樓閣]"을 다시금 떠올려보자.
'겉모양은 번듯하나 기초가 약하여 오래가지 못한다.'는 뜻을 갖고 있는 한자성어이다. 요행덕분에 기본 없이도 성공하는 경우는 진정한 성공이 아니다. 언제 무너지더라도 하는 수 없는 불안한 성공인 것이다.
할아버지가 되어서 돌아온 로버트 풀검 할아버지는 계속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우리는 로버트 풀검 할아버지의 외침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