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전기
스타니스와프 지비시 지음, 잔 프랑코 스비데르코스키 엮음, 이현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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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가톨릭교도가 아니다. 세계평화나 종교에도 무관심한 사람이다. 

이런 내가 요한 바오로 2세를 제대로 알게 된 계기는 교황의 서거 후 정신없이 앞다투어 다루는 교황의 다큐멘터리였다. 

2005년 4월 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십시오, 아멘’이라는 마지막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를 남기고 서거하셨다. 역대 교황 중 가장 친근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 그의 체취가 그대로 묻어나는 따뜻한 메시지이었다. 

한 이슬람 성직자는 “이슬람교도와 기독교인 모두 교황을 잃었다”며 애석해했다. 종교 지도자뿐만 아니라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수만 명의 신자들도 큰 별을 잃은 것을 애도하였다. 

이 책은 40여년 동안 교황의 비서직을 맡아 수행한 스타니스와프 지비시 추기경과 바티칸을 전문적으로 취재한 잔 프랑코 스비데르코스키가 공동집필을 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전기집이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는 1부 폴란드 시절과 2부 교황직 시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교황이 되기 전 폴란드에서의 생활을, 2부는 교황으로 즉위 된 후의 일을 소개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전의 보수적인 교황들과는 달리, 종교를 뛰어넘어 세계의 분쟁과 갈등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분쟁의 중재자로 나서는 행동하는 교황이었다. 그가 평화와 인류 화합을 위하여 돌아다닌 거리는 무려 지구를 서른바퀴나 돌고, 지구에서 달까지 세차례 방문한 거리와 맞먹는다. 그리고 순방한 나라만도 130여 국에 이른다고 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분명 특정종교의 울타리를 넘어선, 전 인류의 정신적·실질적 지도자였다.  

즉위 이듬해 모국인 폴란드를 전격 방문해 폴란드인들의 자유의지를 각성시킨 것은 이후 동구권·구 소련의 공산주의 정권의 붕괴를 가져왔다. 또한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를 직접 만나 냉전이 종식될 수 있도록 기여했다.  

교황이 냉전시대 종식에 기여한 공헌을 부인할 이는 없을 것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에도 두 차례 방문해 따뜻한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했다.내부적으로는 종교재판, 십자군 전쟁, 유대교 박해 등 지난날 가톨릭의 실수를 인정하며 용서를 구했다는 대목에서는 세계인은 물론이고 나에게도 깊은 감동을 남겨 주었다.  

1981년 5월 13일, 메흐메트 알리 아그카의 총탄에 맞아 며칠 간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난 후 교황은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 그 청년을 직접 만나 용서를 해 주는, 내면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책은 유럽의 정치사와 종교사가 조금은 복잡하게 섞인 전기이다. 그래서 유럽의 역사를 잘 모르는 나에겐 이 책이 조금 어려웠다. 그리고 교황을 여러 이름으로 지칭하고 익숙하지 않는 가톨릭교회 용어가 등장해서 책 초반에는 많이 당황스러웠다. 간략한 각주가 있었으면 도움이 되었을텐데 그 부분이 조금은 아쉬웠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사람들이 다니기 불편한 길을 잘 닦아서 사람들이 다니기 편한 길로 만들어 놓은 사람이었다.   

화해와 평화가 부르는 곳이라면 교황은 어디라도 마다하지 않고 나섰다. 또 가톨릭 교회의 해묵은 과오를 솔직히 참회하고 용서를 빌었다.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요한 바오로 2세는 전 세계인의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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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채송화
현고운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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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여자가 있다.
그 여자는 키만 껑충 크고 가슴도 납작하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언니와 동생때문에 평범한 외모도 더이상 평범한 것이 아닌, 그 이하 수준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는 큰 키, 넓은 어깨, 한의사라는 여자들이 군침을 흘릴만한 직업도 부족한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번씩 돌아볼 정도로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이다. 게다가 재벌가의 아들이다.
너무 많이 부족해서 채워넣을 것이 많아 보이는 여자와 무엇하나 더할것이 없이 완벽해 보이는 남자가 만났다.
그들의 만남을 남자(윤상엽)는 ‘운명’이라 하고 여자(채송화)는 ‘선택’이라고 한다.
채송화와 윤상엽은 복잡한 가족사를 가지고 있다.
경찰서장인 아버지, 새엄마 박여사, 유전자가 전혀 다른 언니 박양지, 아버지의 유전자만 같은 배다른 여동생인 채장미가 채송화의 가족이다.
큰 전자사업체를 운영하는 아버지 윤회장, 알콜에 중독된 어머니, 어릴때 죽은 동생 지혜가 윤상엽의 가족이다.
채송화의 가족은 생물학적 관계만이 복잡할 뿐 보통의 가정만큼 끈끈한 무엇이 있다. 물론 국민요정인 배우이자 배다른 여동생인 채장미의 무개념만 빼면 말이다. 그리고 송화는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동료를 아끼고 타인에게 배려가 지나친 사랑스런 아가씨이다.
하지만 겉으로 아무것도 부족한 게 없어 보이는 상엽은 마음에 큰 상처를 짊어지고 사는 사람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진정 자신의 아버지이길 바라는, 자신의 어머니가 진정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길 바라는 사람이다.
어머니때문에 첫사랑과의 사랑이 무참히 깨진 후 여자에 별 관심이 없었고 다시는 사랑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상엽은 송화를 만나고 정말로 진짜로 웃을 수 있게 된다.
 

오랜만에 읽는 사랑에 관한 작품이었다.
언제 이런 주제의 글을 읽었는지 가물가물한 걸 보면 정말 오랫만에 접하는 사랑이야기였다.
송화와 상엽의 사랑은 정말 경쾌하고 예쁘고 아기자기했다. 그래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읽게 되었다.
그들의 주변인물인 진욱과 태섭, 양지와 장미의 에피소드도 감초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그 남자 그 여자의 사랑의 훼방꾼으로 등장하는 채장미라는 캐릭터는 나에게 짜증스러운 인물로 다가왔다.
혈액의 반이라도 같아서 가족이라는 송화와는 딴판으로 혈액의 반밖에 같지 않으니 남남이라고 소리치는 채장미는 남들에게 아니 가족에게마저 주목을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여자이다. 그리고 이제까지 아무도 장미를 무시하는 사람(남자)은 없었다.
그런 공주마마를 처음으로 무시한 사람이 송화의 애인 상엽이다. 아무리 배다른 자매라지만 언니의 남자를 빼앗으려는 채장미는 내겐 정말 밥맛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그녀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표면적인 사랑이 아닌 정말 깊은 사랑을 받는 송화를 질투해서 언니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 뺏고 싶어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후에 출생신고도 못하고 이름도 없는 조카를 위한 그녀의 계획은 깜찍하다 못해 아주 사랑스러웠다.
미워할 수 없는 장미는 상엽의 친구 태섭과 연결되는 듯 싶다. 그리고 송화를 좋아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송화와 가까웠던 진욱은 송화의 언니 양지와 사귀게 된다.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자신의 게으름때문에 장미와 태섭, 진욱과 양지의 에피소드는 과감하게 빼버렸다고 한다.
솔직히 책을 덮으면서 그네들의 에피소드가 조금은 부족하다 싶었는데 역시나 였다. 이 두 커플의 이야기도 매우 궁금하다. 

“아~ 이렇게 송화와 상엽은 행복하게 결혼하는 구나”라고 생각할 찰나, 50여페이지정도 남은 상태에서 송화와 상엽은 청천벽력과 같은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무방비상태에서 아무생각없이 결말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다시 한번 책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마지막까지도 독자들의 집중을 이끌어 내는 소설의 구성과 등장인물의 관계는 아주 잘 짜여져 있다.
책 내용뿐만 아니라 책 자체가 문고판이여서 한 손에 쏙 잡혀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에도 아주 편할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왠지 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상황이 되더라도 채송화처럼 꿋꿋하게 버티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울하고 생활에 조금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행복한 꿈을 꾸고 싶은 사람들에게『나와 함께 채송화』를 추천하고 싶다.

송화가 상엽에게 했던 말이 있다.
사람일은 진심이 통하지 않으면 아무리 애를 쓰고 무리를 해도 소용없는 짓 이라는 말에
100% 공감해서인지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계속 기억나는 글귀이다. 



<책 속 이미지는 출판사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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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기고 싶은 그들만의 세계사 - 망각의 20세기 잔혹사
정우량 지음 / 리빙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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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게르니카〉

어느날 피카소의 집에 독일군이 들이닥친다.

그리고 이 그림을 가르키며 묻는다.

“당신이 그렸소?”

피카소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한다.

“아니요, 당신들이 그랬소.” 

스페인 내전때 독일의 폭격으로 무참하게 파괴된 예술 도시 게르니카의 비극을 그린 불후의 명작이다.
피카소가 자신의 조국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5주만에 그린 그림인 것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난 아마 평생 천재화가의 범상치 않은 퍼즐그림쯤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왜 책의 제목이‘숨기고 싶은 ’이  들어가 있는지  책의 첫 부분에 해당되는 스페인 내전만을 읽고서도 이해가 되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들을 저질러온 그들의 추악한 만행을, 또 경제적 이익을 위해 그런 만행을 묵인해 온 또다른 가해자도 그 사실을 숨기고 싶었으리라 생각됐다.
숨기고 싶은 그들만의 세계사는 총 2장으로 나뉘어져 있고 1장은 7개의 사건이, 2장은 11개의 사건이 수록되어 있다.
수록형식은 마치 고등학교때 늘상 봤던 세계사 교과서를 떠올리게 했다.
실제 교과서는 단지 간략하게 역사적 사건을 그 이름만 나열했다면 이 책은 그 역사적 사건의 배경부터 진행 과정, 결과까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점이 차이점이다.
역사와 관련된 책이라서 숫자가 상당히 많이 나오고 알지 못했던 지명이나 새로운 단어들이 많이 등장해서 내용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내용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책을 한장한장 넘길수록 무서웠다. 내 자신이 잔혹한 그 역사현장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특히 유대인 대량학살을 다룬 홀로코스트는 두려움을 넘어서 내 자신이 독일군에게 쫓기는 유대인이라는 착각이 들었다.
이 모든 악행이 단지 잘못된 이념과 돈의 논리라니 인간은 선천적으로 악한다는 성악설이 맞는 것 같았다.
 

스페인 내전과 타이완 228 학살사건은 현재까지 제대로 청산되지 못했다고 한다.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그 사건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금기였단다. 최근에 와서야 그 일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한다.그래서 가해자와 피해자사이의 감정의 골은 우리나라의 분단만큼이나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된 듯 싶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상처가 나면 빨리 치료를 해야 하는데 작은 아픔을 회피하려고 덮어두었다가 그 상처가 곪아터져버린 격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라이다.
작은 범위에서는 광주 518 문제가 있고 넓은 범위에서는 일본과의 지긋지긋한 역사적 문제도 그렇다.
그럼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예전에 홀로코스트를 당한 유대인처럼 비밀 경찰로 가해자를 무조건 잡아서 죽이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제대로된 역사를 알려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저지르는 우를 범하지 않자는 것이다.
다시는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된다는 사실은 그 일을 당한 당사자들이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량학살을 당했던 유대인이 그 사실을 망각한 것 같다.
십 수년뒤인 현재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죄없는 민간인을 무차별로 죽이고 있으니 말이다.
이젠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뀐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이런 악순환이 계속 되지 않길 바랄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를 좋아하고 관심있어 하는 내가 이렇게 세계역사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부끄러웠다.
세계 역사, 그 중 즐겁지만 않은 인간의 잔혹한 역사에 대해서 궁금한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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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자국 - 드래곤 라자 10주년 기념 신작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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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스스로 피해자가 되는 방법으로 다른 이를 가해자로 만드는 재주를 계속 부리면 언젠간 진짜 피해자가 되는 법이죠.

<그림자 자국>은 판타지 소설이다. 그냥 판타지 소설이라고 치부해 버리면 그만이겠지만 그것은 이영도라는 작가를 모르는 사람들이나 범할 실수이다.
<드래곤 라자>라는 작품으로 우리나라 판타지 소설계에 한 획을 그은 작가가 바로 이영도이다.

대학생이 되어서 친구의 권유로 처음 읽게 된 판타지 소설이 바로 <드래곤 라자>였다.
지금도 판타지 소설이라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런 곱지 않은 시선은 10년전에 더욱 심했었다. 나 역시 그 색안경을 착용했던 사람이었다.

<그림자 자국>은 <드래곤 라자>의 세계의 연장선이 그 배경이다.
후치가 살던 시대에서 1000년이 흐른, 드래곤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드래곤 라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대이다.
화살 대신 총을 쏘고 말 대신 바이크를 몰고 드래곤만이 "이용할 것만" 같던 하늘이라는 광장을 인간은 비행기를 타고 싸우는 시대가 되었다.

예언자이지만 미래를 예언하는 것은 폭력이라며 예언하기를 거부하는 사람과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예언은 꼭 필요하다며 고문도 불사하고 자신의 아들까지 볼모로 잡아 이용하는 왕비가 먼저 등장한다.

책을 덮을 때까지 나는 예언자가 선택한 일 하나하나를 이해할 수 가 없었고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예언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책을 펴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전쟁에서 패전하게 된 책임을 누구에게든 돌려야 하고 희생양을 꼭 만들어 내야 하는 바이서스라는 나라, 희생양을 만들어지면 마치 단체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듯이 위정자들의 잘못을 눈감아주는 바이서스 임펠의 국민들... 어디에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로 우리 정치판과 그에 대처하는 우리 국민들을 작가는 비아냥거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림자 자국>의 열쇠인 그림자 지우개는 참으로 특이했다.
그림자 지우개는 실물을 완전히 지워버린다. 그 실물이 원래 이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그 실물과 관련된 사람의 기억속에서도, 심지어 그 실물을 지워버리기 위해 그림자 지우개를 사용한 사람의 기억속에서도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지우개가 나에게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단순히 생각했지만 점점 두려워졌다. 내가 무엇을 지워버렸는지도 모른 채 계속 지워나간다면......
소설 속의 그림자 지우개를 만든 아프나이델마저도 그 두려움 때문에 그림자 지우개를 시간이 가진 망각의 힘을 이용해서 원래 없었던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가.

또 드래곤계의 이단아 프로타이스가 등장한다.
등장부터 평범치 않은 드래곤, 자신만의 영토를 정하지 않고 이리저리 방랑자처럼 떠돌아 다니는 드래곤, 방랑자이기에 자신의 보물을 본인 몸에 따닥따닥 붙이고 다니는 나에게는 매력적인 드래곤이다.

그리고 드래곤 전체를 대표하는 드래곤 레이디 아일페사스와 그녀의 오래된 친구 이루릴, 산란기를 맞게 된 시에프리너, 8갈퀴만 있으면 그 어떤 벽도 탈 수 있는 왕지네 등이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그림자 자국>에서는 인간과 드래곤이 전쟁을 벌인다.

그 전쟁으로 인해서 인간과 드래곤과의 벌어진 틈을 절대 메꿔질 수 없을 것 같아서 내내 안타까웠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는 희망이 있다. 재미있게도 그 희망을 다른 드래곤이 보기에 살짝 맛이 간 프로타이스와 내숭과는 담을 쌓은 유쾌한 도둑 왕지네가 드래곤 레이디에게 전하러 가는 것이다. 반항으로 똘똘 뭉쳐 있는 프로타이스는 왕지네와의 계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희망을 전하러 가는 모습이 참으로 이색적이었고 저절로 웃음이 났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때는 작가의 문체에 영 적응을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런 문체를 사용했는지, 과연 이영도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질감이 들어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하지만 중반부터는 점차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최소 4권정도 분량의 소설이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보다 짧았기에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에피소드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조금은 아쉬웠다.

하지만 <드래곤 라자>의 팬이라면 절대 그냥 지나치지 말고 작품을 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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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힐에서 온 편지 - 발도르프 아줌마의 삶과 교육 이야기
김은영 지음 / 지와사랑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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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자신이 왕인데 그것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왕이 아닌 것이다.(마이스터 에크하르트)



한국에서의 안정된 철밥통 직업인 교사를 당당하게 때려치운 약간은 현실감각이 부족하게 보일 수도 있는 아줌마의 소위 좌충우돌 진정한 특수교사가 되기 위한 몇년간의 이야기가 바로 <캠프힐에서 온 편지>이다.

책은 나를 찾아서,  캠프힐에서 온 편지, 인지학과 발도르프 교육으로 크게 3부로 나뉘어져 이야기하고 있다.

1부 나를 찾아서는 마흔살의 대한민국 아줌마가 어떤 과정으로 독일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는지, 유학중 여러모로 힘든 점과 즐거웠던 여행, 가족과의 관계등을 서술한다.

2부 캠프힐에서 온 편지는 졸업을 마치고 장애인공동체인 '캠프힐' 안으로 뛰어들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사는 생활을 몸소 체험하며 느낀 점들을 진솔하게 펼쳤다.

3부 인지학과 발도르프교육은 저자가 공부한 학문을 쉽게 소개하면서 자신의 실습했던 아이들과의 경험담이 담겨져 있다.

 

내가 제일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바로 2부 책 제목과 똑같은 <캠프힐에서 온 편지>였다.

캠프힐은 장애인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생활 공동체이다.

나도 이 책을 처음 접했을때 저자만큼이나 캠프힐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으며, 장애인들은 그 속에서 행복한 지, 함께 사는 비장애인들은 어떤 생활을 하는지 매우 궁금했었다.

우선 간략히 설명하자면 하우스파더와 하우스머더(장기적으로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는 비장애인)와 코워커들(단기자원봉사자들), 그리고 빌리저라고 칭하는 다양한 장애를 안고 있는 장애인들이 모여있는 공간을 한 가정, 즉 하우스라고 한다. 이런 하우스가 여러개 모여서 캠프힐이라는 마을이 되는 것이다.

나는 책을 읽기 전에 내 나름대로 캠프힐에 대해서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내 상상은 그저 상상일뿐 사실과 들어맞는게 거의 없었다.

먼저 규모면에서 캠프힐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매우 컸다.

공동체에서 상주하는 인원이 무려 180명에서 200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20명정도의 늘 오가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하우스를 관리하는 하우스파더와 하우스머더(일명 하우스페어런츠)가 꼭 엄마아빠처럼 두명씩 있는 것이 아니고 하우스의 특성에 따라 부부가 그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남자, 여자 혼자서 역할을 해 낼수 있게 짜여있었다. 이점은 매우 융통성있는 현명한 관리체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우스페어런츠와 코워커는 각 하우스에 배치되어 가정일과 캠프힐 운영을 돕는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빌리저인 장애인들은 규칙적인 생활계획아래에 적당한 노동을 하고 여가시간에는 취미생활을 즐기며 캠프힐 밖의 사회로 외출도 하면서 각자의 생활을 한다.

지금도 생각나는 부분이 저자의 빌리저 데비가 아침일찍 아침준비를 완벽하게 마쳐놓고 자기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는 대목과 키가 작은 자신을 위해서 빌리저 아취가 자전거를 마련해주고 서로 함께 기뻐했던 장면이다.

캠프힐에 사는 사람은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모두 행복하다. 비장애인의 일방적인 희생도 없다. 월요일 저녁 춤을 추는 빌리저들은 매우 기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위축되어 있지도 않다. 춤을 출때의 기분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모두 똑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항상 우리 스스로 잊고 산다는 사실이 절실히 느껴져서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우리사회는 장애인에게 그리 너그러운 사회가 아니다. 장애인에게 냉혹하며 그들의 존재를 없는 것처럼 치부해버리고 싶어한다.

그러면서도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마냥 그들을 "장애우"라고 부른다.
하지만 정작 장애인 본인들은 "장애우"보다는 당당하게 있는 그대로 자신들을 "장애인"이라고 불러달라고 하는 글을 읽고 약간의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만큼 우리사회는 장애를 특별하게 선을 긋고 차별하고 있으며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 회피하려는 것이 사실이다.

간혹 외국에서 만든 다큐를 보고 외국에서 살고 있는 장애인들이 얼마나 비장애인들과 잘 어울려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놀랄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캠프힐같은 곳이 없다. 장애복지시설이 동네에 들어온다면 집값이 떨어진다며 아이들교육에 좋지 않다며 결사 반대를 외친다.

많은 비장애인들의 시선이 장애인을 짐으로 생각하지 않고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같은 인간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었다. 
캠프힐 공동체 생활은 잔잔한 수채화와도 같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살아가는 지상낙원이 우리나라에도 하루빨리 생기길 바란다. 



<책 속 이미지는 출판사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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