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고 싶은 그들만의 세계사 - 망각의 20세기 잔혹사
정우량 지음 / 리빙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피카소의 〈게르니카〉

어느날 피카소의 집에 독일군이 들이닥친다.

그리고 이 그림을 가르키며 묻는다.

“당신이 그렸소?”

피카소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한다.

“아니요, 당신들이 그랬소.” 

스페인 내전때 독일의 폭격으로 무참하게 파괴된 예술 도시 게르니카의 비극을 그린 불후의 명작이다.
피카소가 자신의 조국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5주만에 그린 그림인 것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난 아마 평생 천재화가의 범상치 않은 퍼즐그림쯤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왜 책의 제목이‘숨기고 싶은 ’이  들어가 있는지  책의 첫 부분에 해당되는 스페인 내전만을 읽고서도 이해가 되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들을 저질러온 그들의 추악한 만행을, 또 경제적 이익을 위해 그런 만행을 묵인해 온 또다른 가해자도 그 사실을 숨기고 싶었으리라 생각됐다.
숨기고 싶은 그들만의 세계사는 총 2장으로 나뉘어져 있고 1장은 7개의 사건이, 2장은 11개의 사건이 수록되어 있다.
수록형식은 마치 고등학교때 늘상 봤던 세계사 교과서를 떠올리게 했다.
실제 교과서는 단지 간략하게 역사적 사건을 그 이름만 나열했다면 이 책은 그 역사적 사건의 배경부터 진행 과정, 결과까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점이 차이점이다.
역사와 관련된 책이라서 숫자가 상당히 많이 나오고 알지 못했던 지명이나 새로운 단어들이 많이 등장해서 내용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내용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책을 한장한장 넘길수록 무서웠다. 내 자신이 잔혹한 그 역사현장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특히 유대인 대량학살을 다룬 홀로코스트는 두려움을 넘어서 내 자신이 독일군에게 쫓기는 유대인이라는 착각이 들었다.
이 모든 악행이 단지 잘못된 이념과 돈의 논리라니 인간은 선천적으로 악한다는 성악설이 맞는 것 같았다.
 

스페인 내전과 타이완 228 학살사건은 현재까지 제대로 청산되지 못했다고 한다.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그 사건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금기였단다. 최근에 와서야 그 일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한다.그래서 가해자와 피해자사이의 감정의 골은 우리나라의 분단만큼이나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된 듯 싶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상처가 나면 빨리 치료를 해야 하는데 작은 아픔을 회피하려고 덮어두었다가 그 상처가 곪아터져버린 격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라이다.
작은 범위에서는 광주 518 문제가 있고 넓은 범위에서는 일본과의 지긋지긋한 역사적 문제도 그렇다.
그럼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예전에 홀로코스트를 당한 유대인처럼 비밀 경찰로 가해자를 무조건 잡아서 죽이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제대로된 역사를 알려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저지르는 우를 범하지 않자는 것이다.
다시는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된다는 사실은 그 일을 당한 당사자들이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량학살을 당했던 유대인이 그 사실을 망각한 것 같다.
십 수년뒤인 현재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죄없는 민간인을 무차별로 죽이고 있으니 말이다.
이젠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뀐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이런 악순환이 계속 되지 않길 바랄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를 좋아하고 관심있어 하는 내가 이렇게 세계역사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부끄러웠다.
세계 역사, 그 중 즐겁지만 않은 인간의 잔혹한 역사에 대해서 궁금한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책 속 이미지는 출판사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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