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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꿈을 위한 방은 없다 - 세계 1등 혁신국가를 만든 이스라엘의 아버지 시몬 페레스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
시몬 페레스 지음, 윤종록 옮김 / 쌤앤파커스 / 2018년 9월
평점 :
돌이켜보면 자서전을 끝까지 읽은 건 거의 처음인 것 같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는..."이라는 그 유명한 문구로 시작하는 러셀 자서전도 중간중간 편지 때문에 흐름이 끊겨서 중간에 그만두었고... 아무튼 평전이든 자서전이든 읽은 적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요새 이스라엘의 창업 지원 정책에 꽂혔기 때문이고, 그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싶어서였다. 이스라엘의 국부, 건국의 아버지 시몬 페레스. 벤처의 나라, 혁신의 나라가 된 것은 평생을 두고 혁신을 외쳤던 한 사람이 그토록 오랫동안 리더로 있었기 때문이라니... (돌이켜보면 놀라운 것도 아니다. 조선 초 사회가 안정되었던 것은 세종 같은 성군이 오랫동안 왕좌에 지키고 있었기 때문일테니...)
이 자서전은 페레스가 사망 1주일 전 탈고했단다. 93세. 자신의 생명이 다해 가고 있음을 알면서 필사적으로 써내려 갔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생애 전반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변곡점마다 상세하게 써 내려갔다. 이스라엘로 이주, 항공산업 추진, 원전 건설, 엔테베 작전, 경제위기 극복과 창업국가 건설, 그리고 마지막 평화에 이르기까지 그의 기나긴 생애는 마치 영화와도 같았다. 그리고 그는 그 때마다 더 기발한 상상, 더 대담한 자세로 문제를 해쳐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에 하는 말이 '가장 큰 후회는 더 큰 꿈을 꾸지 못한 것'이란다. 허허허. 나도 몽상가를 넘어 4차원 소리를 참 많이 듣는데, 이 노인에게는 못 당하겠다.
페레스는 '판타지 협회'라는 것을 두고, 상상 가능한 것을 자유롭게 토론했다고 한다. 그의 열린 자세를 보면서 요새 꽉 막힌 상사 때문에 같이 꽉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반면, 페레스도 사실 독불장군이 아니었을런지. 그는 사람들의 대담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좋아했지만, 그것에 꽂히면 결코 고집을 꺾는 법이 없었던 것 같다. 책에서는 그의 선택이 모두 성공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성공만 한 사람이었을까. 대부분의 성공은 그보다 몇배의 실패를 뒤에 두고 있는 게 아닐까. 그가 빚어낸 창업국가의 본질인 벤처기업들도, 수십번 수백번의 실패 끝에야 성공을 맛보게 된다. 그런데 책만 읽다보면 자신은 단 한번의 실패도 한적이 없는 것 같다. 이 점이 무척 아쉽다. 후세에 귀감이 되려면 '내가 이만큼 실패했기 때문에 혁신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라고 할텐데... 그는 그냥 그 자신이 신처럼 되고 말았다. 모든 자서전은 기본적으로 다 이런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