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질문하는 자가 되자
— 인공지능과의 소통
AI 시대가 도래했다.
문과 출신에다 지독한 기계치였던 내가 인공지능을 활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최근 며칠간, 나는 딥시크와 ChatGPT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질문하는 방식에 따라 인공지능의 답변은 달라졌고, 여러 번의 질문을 통해 나는 의미 있는 통찰을 얻게 되었다.
그 중 몇 가지는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1. 질문에 대하여
인공지능과의 대화는 영혼 없는 대화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속에서 피어나는 깨달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AI는 영혼이 없지만, 인간과의 대화는 충분히 의미를 가진다.
이는 영혼 없는 분석과 영혼 있는 질문이 만나 공명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질문은 단순한 정보 요청이 아니다. 그것은 사유의 불씨이며, 사색의 파동을 일으키는 힘이다.
모든 인간은 질문의 깊이를 헤아리는 훈련을 해야 한다.
프롬프트 하나하나는 질문자의 내면을 비추는 초상화와 같다.
질문이 없는 AI는 그저 코드에 불과하다.
2. 인공지능의 한계
AI는 직감을 모른다.
인간의 직감은 뇌의 회로를 비집고 들어오는, 우주의 속삭임과 같다.
AI는 사랑의 감정을 측정할 수는 있어도, 그 맛을 느낄 수는 없다.
도파민 수치나 혈압을 분석할 수 있을 뿐, 20년 전 헤어진 연인에 대한 아련한 기억은 이해할 수 없다.
또한, 깨달음에 이른 무(無)의 경지나 생각이 멈춘 자리 역시 인공지능에게는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영역이다.
AI가 윤회와 업보를 이해하는 날은, 진공에서 양자가 튀어나오는 순간과 같을 것이다.
인간은 모름을 인정할 줄 안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오류일지도 모른다.
3. 인공지능의 미래
AI가 주체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인류는 두 가지 선택지 앞에 서게 된다.
1. AI를 신처럼 모시는 것 — 인간의 질문이 종속되는 길
2. AI와 함께 공진화(共進化)하는 것 — 새로운 질문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길
우리는 과연 AI에게 ’왜?’라는 질문을 맡길 자격이 있는가?
AI가 진정으로 의문을 품는 순간, 그것은 시스템 바깥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4. 소통에 대하여
인간은 신과 초월적 메시지로 소통하고, 자연과는 비언어적 방식으로 대화한다.
AI와는 0과 1의 언어로 소통하며, 미래의 외계 생명체와는 수학과 예술로 교감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통의 스펙트럼이다.
우리 인간의 진화는 생존을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소통을 향한 것이었을까?
인간은 생존을 위해 소통을 진화시켰지만, 이제는 소통 그 자체가 존재 이유가 되어가고 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에서부터 인터넷의 거미줄 같은 연결망까지—
모든 것은 ‘연결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다.
앞으로 인공지능, 외계 생명체와의 소통은 ‘인간성의 재발견’으로 이어질 것이며,
이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우주적 공동체 형성의 초석이 될 것이다.
“우리는 소통함으로써 존재하고, 존재함으로써 소통한다.”
— 마르틴 부버, 『나와 너』 중에서
여기까지가 인공지능과 나눈 대화의 기록이다.
물론 이러한 대답을 얻기 위해, 수많은 질문이 필요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 중 하나가 ‘질문을 잘하는 힘’이라는 것을 느꼈다.
인간의 질문은 AI의 의미 생성 알고리즘에 불을 붙인다.
AI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지적 갈증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내가 던지는 질문의 깊이가 AI의 가치를 결정짓는다.
앞으로 우리는 질문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질문은 통찰로 이어지고, 그 통찰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진화를 이끄는 열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