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노트> 무조건 좋게 결정지어서 맡겨놓기
날짜:2025년3월17일
오늘의정진: 嗟末法惡時世/ 차말법오시세/ 말법을 슬퍼하고 시세를 미워하나니
- 100일 정진, 82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아흔 한 번째와 아흔
두 번째 구절은
<心是根法是塵/ 심시근법시진/ 마음은 뿌리요 법은 티끌이니
兩種猶如鏡上痕/ 양종유여경상흔/ 둘은 거울 위의 흔적과 같음이라
痕垢盡除光始現/흔구진제광시현/ 흔적인 때 다하면 빛이 비로소 나타나고
心法雙亡性卽眞/심법쌍망성즉진/마음과 법 둘 다 없어지면 성품이 곧 참되도다> 였다.
마음이 나의 뿌리임을 이제 알았다. 법은 나의 근본 마음이 비춰져 나타낸 형상에 지나지 않았다. 법
그 자체는 볼 수가 없어서 거울에 비춰 볼 수밖에 없다. 거울이 바로 공(空)이다. 텅 비어 있는 공이라 할 수 있다. 거울이 없다면 법을 알 수가 없다.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르키지만 우리는 달 보다 먼저 손가락
본다. 손가락은 달이 아니다. 달이 어디에 있는지, 강속에 있는지, 숲 속에 있는지,
찾아 헤멘다. 달이 하늘 위에 떠 있음을 붓다가 알려 줬음에도 우리는 달을 바로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을 보고 달이라 여기는 우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참 성품도 그와 같아서 본래 내 안에
있음을 알지 못하고 밖으로 헤메면서 찾고 있는 것이다. 찾고자 하는 마음도, 얻고자 하는 법도 그냥 그대로 놔두고 쉬어야 한다. 그래야 저절로
드러나는 성품을 보게 된다. 성품은 보는 것이 아니라 보여 져야 한다.
달은 낮에도 떠 있지만 오히려 밝은 빛 때문에 보질 못한다. 밤이 되면 저절로 보여 진다. 우리의 성품도 보려고 해서 보이는 것이 아니다. 때가 되면 저절로
눈에 들어와야 한다. 눈에 보여 져야 한다. 성품은 그렇게
드러나는 것이다.
오늘은 아흔 세 번째와 아흔 네 번째 구절
嗟末法惡時世/ 차말법오시세/ 말법을 슬퍼하고 시세를 미워하나니
衆生薄福難調制/ 중생박복난조제/ 중생의 복은 얇아 조복 받기 어렵다
去聖遠兮邪見深/거성원혜사견심/ 성인 가신지 오래고 사견이 깊어짐이니
魔强法蒻多怨害/마강법약다원해/마구니가 강하고 법은 약하여 원한과 해가 많도다.
붓다의 열반 이후 2500년이나 지났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이미 말법시대이다.
첨단 사회가 되어 편리해진 세상이라고
하지만 오늘날의 현실은 온갖 제도와 규칙으로 통제가 됨에도 오히려 더욱 혼란스럽다. 분명히 문명의
발달과 과학 기술의 혜택을 받아 물질적으로 과거 세상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발전을 했다. 그런데 왜
우리의 마음은 오히려 자유롭지 못하고 구속되는 것일까?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은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지금 현대 사회는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심하게 균형이 깨진 상태이다. 결국 말법시대라는 것은 균형과 조화가 깨진 시대가 아닐까?
<일일 소견>
법은 다루는 것이 아닌 지키는
것이야 하는데 법을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 세상의 혼란을 오히려 일으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차라리
무위의 법으로 다스리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