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의 미래
알랭 드 보통 외 지음, 전병근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이맘 때에 멍크 디베이트의 공개 토론을 번역한 《감시 국가》라는 책을 인상깊게 읽은 적이 있다. 국가 감시의 정당성을 놓고 2014년 5월 2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4명의 세계 정상급 지식인이 끝장 토론을 벌인 내용을 다룬 책이다.

참고로, 멍크 디베이트(Munk Debates)란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캐나다 오리아 재단이 2008년부터 주최하는 글로벌 토론회이다. 연 2회 국제적으로 가장 이슈가 되거나 중요한 현안을 가지고 2인씩 2개조를 이루어 토론을 벌인 후 청중들을 대상으로 찬반 표결로 승패를 가른다. 이 토론회는 영국 BBC와 미국 CSPAN이 실시간으로 중계할 정도로 전 세계적인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얼마 전 인류의 미래는 과연 유토피아일 것인가, 디스토피아일 것인가라는 해묵은 주제로 2015년 11월 3천여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90분 동안 날카로운 토론을 벌였던 《사피엔스의 미래(Do Humankind's Best Days Lie Ahead?)》가 출간되었다. 출판사는 감시 국가와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존 F. 케네디의 13일, 0시 1분 전 등을 출간한 모던아카이브(前 모던타임스)이다.

그럼 "인류의 미래"를 놓고 토론에 참여한 4명의 석학은 과연 누구일까. 인류의 진보를 낙관하는 쪽에는 하버드대 교수로 타임지가 2004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한 스티븐 핑커 교수, 그리고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으로 저널리스트이자 영국 상원의원이기도 한 매트 리들리이다.

반대편에 있는 쪽은 스위스 출신 작가이자 대중 철학자인 알랭 드 보통, 그리고 워싱턴포스트 뉴욕 지부장이자 2005년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의 한 사람인 말콤 글래드웰이다. 네명 모두 오늘날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정상급 지식인들이며, 국내에서도 이들의 책과 강연은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토론 시작 전 실시된 "인류의 미래는 밝은가"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찬성이 71%, 반대가 29%였다. 그리고 90분 동안 열띤 토론을 펼치는 네명의 패널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는가에 따라서 청중의 의견 또한 달라지는 것이다.

가장 먼저 토론의 문을 연 스티븐 핑커는 "낙관론"을 제시하는 쪽이다. 그는 인간의 수명이 늘어났다는 점, 오랫동안 인간에게 치명적이었던 질병을 상당수 극복했다는 점, 물질적 번영과 전쟁의 감소 등 10가지 이유를 들어서 "앞으로의 미래 또한 밝다"고 단언한다.

다음 차례는 "비관론"을 제시하는 알랭 드 보통이다. 그는 스위스같은 가장 선진적인 나라조차 빈곤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전쟁과 질병의 위험 또한 여전히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인류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비관적인 결과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세번째는 다시 "낙관론"쪽의 매트 리들리이다. 그는 일부 학자들은 항상 "곧 위험이 닥친다"라며 떠들지만 지나고 보면 과장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또한 "폭발적인 인구 증가가 인류를 파멸로 내몰 것"이라던 멜서스의 경고와 달리 부의 불평등 해소, 경제적 번영, 환경 파괴의 개선 등 우리 주변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결국 진짜 문제는 "과거에 대해서는 좋은 추억만 떠올리면서 미래에 대해서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네번째는 "비관론"의 말콤 글래드웰이다. 그는 과거가 미래를 얘기해주지는 않는다고 단언한다. 또한 기술 발전이 테러 등 악용될 수 있다는 점, 환경은 개선되고 있지만 동시에 지구 온난화로 자연재해의 파괴력이 한층 더 높아진 점을 꼽아서 "과연 우리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들의 주장은 모두 논리적이며 설득력이 있다. 이들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얘기하는 것이지만 애초에 미래 예측이란 관점의 문제이므로 답이 나올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나아질 것"이건 "나빠질 것"이건 두리뭉실하면서 추상적인 대답일 뿐이다. 이것을 어떤 기준에서 어떻게 계량화할 수 있는가.

보다 미시적으로 말한다면 나아지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나빠지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가령 100년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지금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와졌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 풍요를 모든 사람이 누릴 수도 없을 뿐더러, 또한 결코 공짜도 아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는 단 한가지도 거저 얻는 것이 없다. 한층 치열해진 생존 경쟁, 빈부 격차, 각박해진 삶, 단절되고 소외되는 인간 관계, 우리 인생에 대한 불확실성 등. 우리의 풍요로운 삶이 비록 빈곤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아프리카의 부족 사회보다 반드시 더 낫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원시적인 삶으로 돌아간들 행복해질 것인가.

이는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가라는 가치관의 문제이지 정답은 없다. 또한 우리의 미래는 너무나 예측불허이다. 상상도 못하는 재난재해가 덮치거나 핵전쟁이 일어난다거나 또는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이 절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과연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결론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날선 논쟁이 오가지만 우리나라처럼 격한 감정과 막말이 오가는 수준 낮은 토론회가 아니라 자신의 논리를 조리있게 얘기하면서 상대의 논리상 허점을 신랄하게 파고 든다. 책을 읽는 내내 과연 어느 쪽이 옳은지 결론내리기가 쉽지 않다. 역시 최고의 논객들답다. 또한 말콤은 반대편의 리들리와 핑커를 "폴리아나 부부"라고 지칭하면서 이들의 직업이 상원의원과 대학 교수라는 점을 들어서 "확실히 이 두분의 미래는 밝다"라고 말한다.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인신공격이라며 흥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 유머러스하게 넘긴다. 이런 여유로움이 서구의 높은 토론 수준을 보여준다.

토론이 끝난 뒤 최종 투표 결과는 찬성 73%, 반대 27%였다. 찬성쪽이 2% 늘어났기는 했지만, 시작 전과 큰 변화는 없다. 그만큼 양측의 논리가 팽팽하여 서로 만만치 않았다는 얘기이다.

세계적 석학들의 토론이 어떠한지 보여주는 책이다. 만약 책이 아니라 TV를 통해 직접 생방송으로 본다면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지 않을까.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버니 - 카툰으로 만나는 진짜 정치인 버니 샌더스
테드 롤 지음, 박수민 옮김 / 모던타임스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2월부터 시작되어 7월 말에 끝나는 2016년 미국의 대통령 예비 경선이 벌써 두달이 지났습니다. 우리에게는 미국 경선 그 자체보다 왠지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헛소리가 더 주목을 받는 상황이지만, 최종적으로 누가 승자가 되건 우리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민주당에는 현재 두명의 후보, 힐러리 클린턴과 또 한사람 버니 샌더스가 치열한 경선을 펼치고 있습니다. 당초에는 인지도 면에서 월등히 우세한데다 흑인과 여성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힐러리 쪽이 "신승"을 거두리라고 예상했지만 의외로 버니 샌더스가 점점 지지도를 높이며 맹렬하게 추격하는 중입니다. 더욱이 지난주에는 워싱턴과 하와이, 알래스카에서 샌더스가 70% 이상의 지지를 받으며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아직은 힐러리가 우세하지만 이런 추세로는 7월까지 누가 승자가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버니 샌더스는 누구이며 왜 미국 사회에 강렬한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가. 솔직히 국내에서는 힐러리야 남편 덕분에라도 모를 리 없지만, 샌더스에 대해서는 이름조차 한번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태반일 것입니다.

1941년생으로 올해 75살인 버니 샌더스는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이자, 미 상원의 "유일한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는 사람입니다. 말로는 제아무리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미국도 실상 우리만큼이나 보수적이며 "사회주의"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킵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사회주의는 중국이나 북한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니라 북유럽 식 복지제도입니다.

미국의 많은 정치가들이 총기 회사, 군수 업체, 월가 등 거대 기업들의 후원을 받으면서 이들에게 발목을 잡힌 채 이익의 대변자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놓고 대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했던 부시는 둘째치더라도, 그나마 개혁에 앞장서리라고 여겼던 오바마 역시 막상 정권을 잡자 부시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비난을 받고 있죠. 주류 정치인들 치고 대기업들과 연계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없다보니 그들이 원하건 원치 않건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마불사라 하여 거대 기업은 이들과 결탁한 정치가, 관료들의 비호 아래 온갖 특혜를 보장받는 반면, 정작 보통의  소시민들은 대출 한번 제대로 받기 어려워 파산으로 내몰립니다. 미국을 상징하는 "아메리카 드림"이 없어진지는 오래이며 경제 불황으로 중산층은 무너지고 있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와 부동산 폭락으로 자산의 태반은 허공에 사라진데다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에 걸맞지 않게 복지 시스템이 매우 빈약합니다. 노후 보장은 고사하고 많은 사람들이 변변한 의료 혜택조차 받기 어렵죠. 막대한 재정 적자를 핑계로 국민 행정 서비스 예산은 축소하면서 테러를 빌미로 거대한 군사비 지출은 줄이지 않은 채 군수 업체들의 이익을 보장합니다. 이것이 세계 최강 민주국가의 모습입니다.

왜 미국 국민들은 이런 부당한 현실에 대해 비판하고 저항하지 않는가. 그들에게는 민주 국가 시민으로서의 의식이 없는가. 이는 미국 사회 자체가 갈수록 보수화되고 있는데다 정치에 대한 불신감을 큰 탓도 있습니다. 어차피 누가 되건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죠. 하지만 근래에 와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문제 인식을 가지고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주로 대기업과 슈퍼팩(억만장자로 이루어진 정치 헌금 단체)에 의존하는 여타 정치인들과 달리, 버니 샌더스는 이들의 후원을 거부하고 온라인을 통한 소액 기부를 받고 있으며 3월 한달만도 4400만 달러를 모금하였습니다. 슈퍼팩에 의존하는 힐러리가 현재까지 모금한 정치자금이 1억6천만 달러인 반면, 샌더스는 소액 기부금만으로도 힐러리를 능가하는 1억8400만 달러에 달합니다.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것이죠. 단순하게 말할 부분은 아니지만 힐러리가 여성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정치 색깔에서 다른 주류 정치인들과 다를 것이 없는 전형적인 보수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민주당 경선은 어떤 면에서느 부자와 서민의 대결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번 대선에서 가장 흥미로운 싸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 경선과 관련하여, 국내에도 이미 버니 샌더스를 다룬 책들이 여러권 나와 있지만 모던 타임스에서 나온 신간《버니》만큼 그에 대해 재미있고 알기 쉽게 다룬 책도 없을 듯 합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만화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딱딱하고 난해하기 쉬운 주제를 풍자 만화로 그려내면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저자인 테드 롤은 미국의 이름 있는 시사만화가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에 기고하고 있으며 풍자 뉴스 사이트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사람입니다.



 

도입부는 냉전 시대를 돌아보면서 왜 미국 사회가 갈수록 부자들을 위한 나라가 되어 가는지, 그리고 개혁을 외치는 좌파 정치인들이 설 곳이 없는지를 설명합니다. 그 와중에 버니 샌더스라는 진보 정치인이 어떻게 등장하였으며 그의 정치 철학과 목소리를 통해 미국 사회의 대안으로 부각되었는가를 다룹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버니 샌더스가 왜 미국 사회에서 새로운 돌풍을 불러오고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힐러리는 여성이라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주류 정치인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전형적인 보수 정치인이며 그녀가 집권한다면 오바마나 그 이전과 별다를 것이 없겠지요. 하지만 오늘날 미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미국이 흔들릴 경우 전 세계에도 엄청난 여파를 줍니다. 또한 미국 경제의 불황은 세계 경제 불황으로 이어지죠.

물론 버니 샌더스가 실제로 대통령이 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대다수 국민들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두려워 하기 때문이죠. 또한 그는 비주류 정치인인데다 나이도 너무 많습니다. 설령 실제로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해서 획기적인 변화를 끌어온다는 보장 또한 없습니다. 대통령은 절대 권력자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누가 이기건 상관없이, 그의 돌풍은 대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기에만 급급한 많은 정치인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는 사실 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겠지요.

 

"버니 샌더스가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며." 저처럼 그동안 버니 샌더스는 커녕, 미국 대선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사람조차 1시간만에 버니 샌더스의 모든 것을 이해하게 하면서 또한 그를 지지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양키 스타일의 그림체에 풍자 만화라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필히 일독을 권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왕조실톡 1 - 조선 패밀리의 탄생 조선왕조실톡 1
무적핑크 지음, 와이랩(YLAB) 기획, 이한 해설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무 재미있게 본 책이라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숨에 이해하는 군주론 클래식 브라운 시리즈 1
김경준 지음 / 생각정거장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동양에 법가가 있다면, 서양에는 마키아벨리가 있다."

​정치는 일체의 도덕 ·종교에서 독립된 존재이므로 일정한 정치목적을 위한 수단이 도덕 ·종교에 반(反)하더라도 목적달성이라는 결과에 따라서 수단의 반(反)도덕성 ·반(反)종교성은 정당화된다는 정치적 사고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이 말이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기 때문에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는 어떠한 방책도 허용된다는 뜻으로 이해되어 왔다.  - 네이버 지식백과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이란, 간단히 말해서 ​국가의 유지와 발전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허용할 수 있다는 국가 지상주의 사상입니다. 대표적으로 진시황, 나폴레옹, 마오쩌둥, 피엘 카스트로같은 패권과 혁명을 추구했던 독재자들이 마키아벨리즘을 충실히 이행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부국강병이라는 목적을 추구했지만 국민들의 철저한 희생을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즉, 이들이 말하는 국가란 어디까지나 나를 위한 국가이지, 대다수 국민을 위한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이런 소수를 위한 정치 사상은 독재국가만이 아니라 오늘날 민주국가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국가 안보를 명목으로 감시 시스템을 구축 운영하고 있다는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Joseph Snowden)의 폭로는 말로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국가 역시 모두를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지배하는 소수 엘리트들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권위의식과 소위 갑질 문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근본적으로 부와 권력을 쥔 소수는 자신들이 다수의 일반 국민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여기기 때문이죠. 그리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치"라는 명목으로 어떠한 수단을 써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법가 사상이나 마키아벨리즘의 실체란 이런 것이며, 이점이 바로 백성이 곧 하늘이며, 덕과 인을 수단으로 백성을 위한 정치를 추구했던 유교적인 왕도 정치와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따라서 마키아벨리의 저서​《군주론[II principe]》은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권모 술수 중심의 정치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부도덕하다"라며 윤리적인 비난에 직면했으며 교회는 금서로 지정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프리드리히 대왕을 비롯해 많은 군주들이 군주론을 읽고 통치의 교훈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군주론은 냉혹한 정치 현실을 드러냈고 , 마키아벨리가 부도덕한 것이 아니라 실상 인간의 본성에 부도덕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정치란 어차피 위선"이라는, 누구나 다 알지만 솔직하게 인정하기는 껄끄러운 사실을 지적했을 뿐이죠.

 

생각정거장 출판사 신작도서인 《단숨에 이해하는 군주론》은 핵심만 알기 쉽게 간추린 요약서라 할 수 있습니다. 군주론은 손자의 손자병법,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과 함께 군주의 통치 철학을 다룬 정치 사상서이자, 서양의 대표적인 고전 인문학 중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막상 이를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왠지 난해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앞서는데다 실제로도 장황하고 산만합니다. "군주론"이라는 거창한 제목과는 달리, 관직에서 쫓겨났던 마키아벨리가 재취업을 위해 자신을 어필할 목적으로 쓴 일종의 자기 소개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한 취업 이력서가 아니라 평생을 외교 일선에서 몸바쳤고 뛰어난 학식을 갖춘 당대 최고의 엘리트로서 자신의 신념과 사상을 모두 담은 평생의 역작이기도 합니다.

"군주가 자신의 군사들을 통솔하고 많은 병사들을 지휘할 때, 잔인하다는 평판에 괘념치 않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군대를 단결시키고 그들의 위무를 다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명한 군주는 신의를 지키는 것이 불리할 때 혹은 약속을 맺은 이유가 더는 존재하지 않을 때에는 약속을 지키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은 사악하고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군주 역시 그것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올바른 행동에서 가급적 벗어나진 말아야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라면 악행도 취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군주론에서 몇몇 대표적인 대목을 보더라도 왜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도덕과 윤리에 어긋난다고 그토록 비난받을 수 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군주론에는 불편한 진실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군주가 지켜야 할 덕목 또한 함께 언급하고 있습니다.

"군주에게 최고의 요새는 시민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군주가 요새를 구축한다고 해도 시민들이 그를 미워하면 요새는 군주를 구할 수 없습니다."

"군주는 자신이 재능있는 자들의 후원자로서 탁월한 기술이 있다면 어느 분야든 예우해준다는 점을 널리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시민들이 어느 분야에서든 마음놓고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사실 그는 군주에게 부도덕하기를 요구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부도덕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약소국인 피렌체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불가피함을 피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련한 관료였던 그가 피렌체의 실권자였던 메디치가의 입맛에 맞는 말을 일부러 고른 면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는 이미 미운털이 박히었기에 로렌초 메디치는 이 책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실의에 빠진 그는 1527년에 죽었고, 군주론은 그가 죽은지 몇년이 지난 뒤에야 정식으로 출간되어 세상에 나옵니다.

군주론을 읽다보면 손자병법이 떠오릅니다. 마키아벨리가 메디치가에 자신을 어필할 목적으로 군주론을 썼듯, 손무 역시 오나라의 합려에게 어필할 목적으로 손자병법을 썼다는 점, 단순히 군대를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가르치는 병법서라기보다 군주로서 국가와 신하,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 철학을 가르치는데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군주론을 다룬 책은 시중에 많이 있지만,《단숨에 이해하는 군주론》은 제목대로 군주론을 정말 쉽게 풀이한 책입니다. 포켓 사이즈에 불과한데다 분량도 180여 페이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자의 필력 또한 훌륭하여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작정하고 읽으면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책입니다.

군주론은 단순한 고전 인문학이 아니라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16세기 유럽의 정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필히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하는 전투기술 이야기 생각하는 도시전투 시리즈 1
이태훈 지음 / 지문당(JIMOONDANG)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생각이 멈추면 목숨도 멈춘다"

영화 《액트 오브 밸러(Act of Valor)》, 게임 《콜 오브 듀티》, 《배틀필드》 등 각종 전쟁 영화나 FPS게임을 하다보면 도심지에서 보병이 소대나 분대 단위로 건물에 들어가 적과 근접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는 RTS 게임에서 수많은 유닛이 우루루 몰려가서 대규모 전투를 벌이는 것과는 또다른 긴박감을 느끼게 합니다. 수많은 엄폐물 어디에 적이 숨어 있다가 튀어 나올지, 언제 총알이 날라와 게이머의 머리를 날릴지 모릅니다. 사방을 주시하다가 적을 발견하면 신속하게 사격하여 쓰러뜨려야 합니다. 그 순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 때문에 많은 게이머들이 FPS게임에 빠져드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게임 속 모니터가 아니라 실제로 생사가 오가는 상황이라면? 게임은 리셋하고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지만 현실은 한발의 총알이 한순간에 내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판단 착오로 우군이나 민간인을 적으로 착각하여 사살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병사들의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 팔루자 시내에서 건물 진입을 준비하는 미 해병대원들. 순간의 판단이 자신의 생명은 물론이고 동료들의 안전까지 좌우합니다.

이전에 플래닛 미디어에서 나왔고 박수민님이 번역했던 《전투의 심리학》에서는 급박한 전장에서의 군인들의 심리에 대해 잘 묘사합니다. 아놀드 슈왈제네거나 브루스 윌리스 같은 할리우드 액션 배우들이야 스크린 속에서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화려한 액션 신과 신기에 가까운 사격술로 수많은 적을 일발필중으로 쓰러뜨립니다. 누군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고 아무리 사방이 포위되고 위기에 처했을 때에도 냉정 침착하게 적의 약점을 재빨리 파악합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죠. 아무리 훈련이 잘 되고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라도 일단 적과 마주치면 냉정한 판단력은 없어지고 머리속은 하얗게 됩니다. 머리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나 판단과 상관없이 무의식적으로 평소 훈련받은대로 행동합니다. 이를 머슬 메모리(Muscle memory, 근육기억효과)라고 합니다. 그래서 평소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채 머리수를 채울 명목으로 전장에 투입된 오합지졸 100명보다 잘 훈련된 10명이 훨씬 효과적으로 전투를 수행합니다. 포클랜드 전쟁에서 직업군인으로 구성된 영국군 해병대는 대부분 정확하게 사격하여 적을 쓰러뜨린 반면, 아르헨티나 징집 병사들은 적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마구 사격하여 총알만 낭비했습니다. 영국군은 10명 중에 7, 8명이 전방을 향해 사격했지만 아르헨티나 병사들은 10명 중에 1, 2명만이 전방을 향해 사격했다고 합니다.

특히 적이 어디에 있는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고 자신을 엄폐할 수 있는 참호전보다 적이 언제 어디에서 불시에 튀어나오거나 저격을 받을 지 모르는 도심지 시가전일수록 병사들의 긴장감과 피로도는 훨씬 높습니다. 따라서 사상자 역시 많이 발생합니다. 시가전은 아군의 무덤이라며 가급적 피하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전략적, 전술적인 필요에 의해 시가전을 감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욱이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나 대테러 전쟁이 점차 확산되는 제4세대 전쟁은 과거처럼 적과 전장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베트남전에서 미군은 전후방이 따로 없고 끝없이 치고 빠지기 식으로 공격하는 베트콩의 전술 앞에서 전의 자체를 상실한 채 물러나야 했습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이라크 전쟁에서도 이라크군과의 정규전보다 오히려 바그다드를 점령한 뒤 게릴라들의 습격으로 사망한 미군 숫자가 훨씬 많았습니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은 아무런 이득없이 정치적 패배를 인정한 채 베트남 철수를 단행했던 닉슨의 전철을 고스란히 재현해야 했습니다.

이는 첨단 무기를 활용한 정규전과 대규모 화력전에만 치중한 나머지, 막상 분대, 소대 단위의 소부대 전투력 강화와 도심지 전투를 등한시한 결과였습니다. 이제야 미군도 소부대 전투력 향상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말로는 "북한의 20만 특수부대 위협론"을 외치면서도 막상 냉전식의 전면전에만 대비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근래에 와서 군 일각에서도 국지전, 적 소규모 특수부대의 습격에 대비해 대응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 점차 주목합니다.

 

시중에는 전쟁사나 밀리터리 서적들이야 하늘의 별만큼 많이 있지만, 소부대 또는 개별 병사의 전투 기술을 다룬 책은 단 한권도 없습니다. 그 점에서《생각하는 전투기술 이야기》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여기에 도전한 책이라 할 수 있겠지요. 저자인 이태훈씨는 특이하게도 전현직군인이나 훈련 교관이 아니라 지자체 일반 공무원입니다. 평소 밀리터리 쪽에 관심이 많았으며, 2011년에 개장한 국내 최초 밀리터리 테마파크인 전북 완주 밀리터리 파크(http://camp.wanju.go.kr)에서 근무하면서 특수 부대원들의 훈련을 보며 전투기술을 배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2013년에는 수방사 제35특공대대를 위한 도심지 근접전투 훈련교재를 만들었고 우석대학교 국방정책연구소의 선임연구원과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KTCT)의 도시지역 전투훈련 자문위원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이만하면 그야말로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보기드문 민간인 출신 군사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 듯.

책은 270여 페이지에 총 6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반부는 사격시 안전수칙과 같은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적과 조우시 다양한 전투 사격 자세, 조준 요령, 전투 중 탄알집 교환 등 병사 개개인의 전투 기술에 대한 것이고 4부는 소부대 전술을 다룹니다. 건물 내에서 계단 전투, 어둠 속에서 벌이는 저광도 전투 등 다양한 상황을 가정하여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서술합니다. 5부에서는 전투 상식이라 하여 관통탄과 도탄, 총상, 총상 시 대응절차 등을, 6부에서는 우리 군의 도시지역 전투훈련 실태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초보자 입장에서는 난해하기 쉬운 설명을 모델이 실제로 재현한 사진이나 구체적인 그림을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습니다. 출입문에 진입할 때의 절차, 통로 개척 등 워낙 설명이 쉽고 재미있다보니 이 책을 읽다보면 왠지 콜 오브 듀티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 물론 저는 게임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만.(그럴 시간도 없고) 평소 FPS 게임을 좋아하거나 서바이벌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우리가 영화나 게임에서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전투기술과 소부대 전술에 대해 깊이있게 다룬 책입니다. 밀리터리 매니아라면 일독을 권합니다. 참고로, 이 책은 아랍어와 영어로 번역되어 중동지역 전투훈련 참고 교재로도 활용될 예정이라는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