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전투기술 이야기 생각하는 도시전투 시리즈 1
이태훈 지음 / 지문당(JIMOONDANG)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생각이 멈추면 목숨도 멈춘다"

영화 《액트 오브 밸러(Act of Valor)》, 게임 《콜 오브 듀티》, 《배틀필드》 등 각종 전쟁 영화나 FPS게임을 하다보면 도심지에서 보병이 소대나 분대 단위로 건물에 들어가 적과 근접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는 RTS 게임에서 수많은 유닛이 우루루 몰려가서 대규모 전투를 벌이는 것과는 또다른 긴박감을 느끼게 합니다. 수많은 엄폐물 어디에 적이 숨어 있다가 튀어 나올지, 언제 총알이 날라와 게이머의 머리를 날릴지 모릅니다. 사방을 주시하다가 적을 발견하면 신속하게 사격하여 쓰러뜨려야 합니다. 그 순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 때문에 많은 게이머들이 FPS게임에 빠져드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게임 속 모니터가 아니라 실제로 생사가 오가는 상황이라면? 게임은 리셋하고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지만 현실은 한발의 총알이 한순간에 내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판단 착오로 우군이나 민간인을 적으로 착각하여 사살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병사들의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 팔루자 시내에서 건물 진입을 준비하는 미 해병대원들. 순간의 판단이 자신의 생명은 물론이고 동료들의 안전까지 좌우합니다.

이전에 플래닛 미디어에서 나왔고 박수민님이 번역했던 《전투의 심리학》에서는 급박한 전장에서의 군인들의 심리에 대해 잘 묘사합니다. 아놀드 슈왈제네거나 브루스 윌리스 같은 할리우드 액션 배우들이야 스크린 속에서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화려한 액션 신과 신기에 가까운 사격술로 수많은 적을 일발필중으로 쓰러뜨립니다. 누군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고 아무리 사방이 포위되고 위기에 처했을 때에도 냉정 침착하게 적의 약점을 재빨리 파악합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죠. 아무리 훈련이 잘 되고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라도 일단 적과 마주치면 냉정한 판단력은 없어지고 머리속은 하얗게 됩니다. 머리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나 판단과 상관없이 무의식적으로 평소 훈련받은대로 행동합니다. 이를 머슬 메모리(Muscle memory, 근육기억효과)라고 합니다. 그래서 평소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채 머리수를 채울 명목으로 전장에 투입된 오합지졸 100명보다 잘 훈련된 10명이 훨씬 효과적으로 전투를 수행합니다. 포클랜드 전쟁에서 직업군인으로 구성된 영국군 해병대는 대부분 정확하게 사격하여 적을 쓰러뜨린 반면, 아르헨티나 징집 병사들은 적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마구 사격하여 총알만 낭비했습니다. 영국군은 10명 중에 7, 8명이 전방을 향해 사격했지만 아르헨티나 병사들은 10명 중에 1, 2명만이 전방을 향해 사격했다고 합니다.

특히 적이 어디에 있는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고 자신을 엄폐할 수 있는 참호전보다 적이 언제 어디에서 불시에 튀어나오거나 저격을 받을 지 모르는 도심지 시가전일수록 병사들의 긴장감과 피로도는 훨씬 높습니다. 따라서 사상자 역시 많이 발생합니다. 시가전은 아군의 무덤이라며 가급적 피하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전략적, 전술적인 필요에 의해 시가전을 감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욱이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나 대테러 전쟁이 점차 확산되는 제4세대 전쟁은 과거처럼 적과 전장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베트남전에서 미군은 전후방이 따로 없고 끝없이 치고 빠지기 식으로 공격하는 베트콩의 전술 앞에서 전의 자체를 상실한 채 물러나야 했습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이라크 전쟁에서도 이라크군과의 정규전보다 오히려 바그다드를 점령한 뒤 게릴라들의 습격으로 사망한 미군 숫자가 훨씬 많았습니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은 아무런 이득없이 정치적 패배를 인정한 채 베트남 철수를 단행했던 닉슨의 전철을 고스란히 재현해야 했습니다.

이는 첨단 무기를 활용한 정규전과 대규모 화력전에만 치중한 나머지, 막상 분대, 소대 단위의 소부대 전투력 강화와 도심지 전투를 등한시한 결과였습니다. 이제야 미군도 소부대 전투력 향상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말로는 "북한의 20만 특수부대 위협론"을 외치면서도 막상 냉전식의 전면전에만 대비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근래에 와서 군 일각에서도 국지전, 적 소규모 특수부대의 습격에 대비해 대응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 점차 주목합니다.

 

시중에는 전쟁사나 밀리터리 서적들이야 하늘의 별만큼 많이 있지만, 소부대 또는 개별 병사의 전투 기술을 다룬 책은 단 한권도 없습니다. 그 점에서《생각하는 전투기술 이야기》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여기에 도전한 책이라 할 수 있겠지요. 저자인 이태훈씨는 특이하게도 전현직군인이나 훈련 교관이 아니라 지자체 일반 공무원입니다. 평소 밀리터리 쪽에 관심이 많았으며, 2011년에 개장한 국내 최초 밀리터리 테마파크인 전북 완주 밀리터리 파크(http://camp.wanju.go.kr)에서 근무하면서 특수 부대원들의 훈련을 보며 전투기술을 배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2013년에는 수방사 제35특공대대를 위한 도심지 근접전투 훈련교재를 만들었고 우석대학교 국방정책연구소의 선임연구원과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KTCT)의 도시지역 전투훈련 자문위원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이만하면 그야말로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보기드문 민간인 출신 군사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 듯.

책은 270여 페이지에 총 6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반부는 사격시 안전수칙과 같은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적과 조우시 다양한 전투 사격 자세, 조준 요령, 전투 중 탄알집 교환 등 병사 개개인의 전투 기술에 대한 것이고 4부는 소부대 전술을 다룹니다. 건물 내에서 계단 전투, 어둠 속에서 벌이는 저광도 전투 등 다양한 상황을 가정하여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서술합니다. 5부에서는 전투 상식이라 하여 관통탄과 도탄, 총상, 총상 시 대응절차 등을, 6부에서는 우리 군의 도시지역 전투훈련 실태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초보자 입장에서는 난해하기 쉬운 설명을 모델이 실제로 재현한 사진이나 구체적인 그림을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습니다. 출입문에 진입할 때의 절차, 통로 개척 등 워낙 설명이 쉽고 재미있다보니 이 책을 읽다보면 왠지 콜 오브 듀티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 물론 저는 게임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만.(그럴 시간도 없고) 평소 FPS 게임을 좋아하거나 서바이벌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우리가 영화나 게임에서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전투기술과 소부대 전술에 대해 깊이있게 다룬 책입니다. 밀리터리 매니아라면 일독을 권합니다. 참고로, 이 책은 아랍어와 영어로 번역되어 중동지역 전투훈련 참고 교재로도 활용될 예정이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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