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 - 카툰으로 만나는 진짜 정치인 버니 샌더스
테드 롤 지음, 박수민 옮김 / 모던타임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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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부터 시작되어 7월 말에 끝나는 2016년 미국의 대통령 예비 경선이 벌써 두달이 지났습니다. 우리에게는 미국 경선 그 자체보다 왠지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헛소리가 더 주목을 받는 상황이지만, 최종적으로 누가 승자가 되건 우리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민주당에는 현재 두명의 후보, 힐러리 클린턴과 또 한사람 버니 샌더스가 치열한 경선을 펼치고 있습니다. 당초에는 인지도 면에서 월등히 우세한데다 흑인과 여성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힐러리 쪽이 "신승"을 거두리라고 예상했지만 의외로 버니 샌더스가 점점 지지도를 높이며 맹렬하게 추격하는 중입니다. 더욱이 지난주에는 워싱턴과 하와이, 알래스카에서 샌더스가 70% 이상의 지지를 받으며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아직은 힐러리가 우세하지만 이런 추세로는 7월까지 누가 승자가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버니 샌더스는 누구이며 왜 미국 사회에 강렬한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가. 솔직히 국내에서는 힐러리야 남편 덕분에라도 모를 리 없지만, 샌더스에 대해서는 이름조차 한번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태반일 것입니다.

1941년생으로 올해 75살인 버니 샌더스는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이자, 미 상원의 "유일한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는 사람입니다. 말로는 제아무리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미국도 실상 우리만큼이나 보수적이며 "사회주의"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킵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사회주의는 중국이나 북한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니라 북유럽 식 복지제도입니다.

미국의 많은 정치가들이 총기 회사, 군수 업체, 월가 등 거대 기업들의 후원을 받으면서 이들에게 발목을 잡힌 채 이익의 대변자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놓고 대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했던 부시는 둘째치더라도, 그나마 개혁에 앞장서리라고 여겼던 오바마 역시 막상 정권을 잡자 부시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비난을 받고 있죠. 주류 정치인들 치고 대기업들과 연계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없다보니 그들이 원하건 원치 않건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마불사라 하여 거대 기업은 이들과 결탁한 정치가, 관료들의 비호 아래 온갖 특혜를 보장받는 반면, 정작 보통의  소시민들은 대출 한번 제대로 받기 어려워 파산으로 내몰립니다. 미국을 상징하는 "아메리카 드림"이 없어진지는 오래이며 경제 불황으로 중산층은 무너지고 있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와 부동산 폭락으로 자산의 태반은 허공에 사라진데다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에 걸맞지 않게 복지 시스템이 매우 빈약합니다. 노후 보장은 고사하고 많은 사람들이 변변한 의료 혜택조차 받기 어렵죠. 막대한 재정 적자를 핑계로 국민 행정 서비스 예산은 축소하면서 테러를 빌미로 거대한 군사비 지출은 줄이지 않은 채 군수 업체들의 이익을 보장합니다. 이것이 세계 최강 민주국가의 모습입니다.

왜 미국 국민들은 이런 부당한 현실에 대해 비판하고 저항하지 않는가. 그들에게는 민주 국가 시민으로서의 의식이 없는가. 이는 미국 사회 자체가 갈수록 보수화되고 있는데다 정치에 대한 불신감을 큰 탓도 있습니다. 어차피 누가 되건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죠. 하지만 근래에 와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문제 인식을 가지고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주로 대기업과 슈퍼팩(억만장자로 이루어진 정치 헌금 단체)에 의존하는 여타 정치인들과 달리, 버니 샌더스는 이들의 후원을 거부하고 온라인을 통한 소액 기부를 받고 있으며 3월 한달만도 4400만 달러를 모금하였습니다. 슈퍼팩에 의존하는 힐러리가 현재까지 모금한 정치자금이 1억6천만 달러인 반면, 샌더스는 소액 기부금만으로도 힐러리를 능가하는 1억8400만 달러에 달합니다.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것이죠. 단순하게 말할 부분은 아니지만 힐러리가 여성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정치 색깔에서 다른 주류 정치인들과 다를 것이 없는 전형적인 보수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민주당 경선은 어떤 면에서느 부자와 서민의 대결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번 대선에서 가장 흥미로운 싸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 경선과 관련하여, 국내에도 이미 버니 샌더스를 다룬 책들이 여러권 나와 있지만 모던 타임스에서 나온 신간《버니》만큼 그에 대해 재미있고 알기 쉽게 다룬 책도 없을 듯 합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만화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딱딱하고 난해하기 쉬운 주제를 풍자 만화로 그려내면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저자인 테드 롤은 미국의 이름 있는 시사만화가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에 기고하고 있으며 풍자 뉴스 사이트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사람입니다.



 

도입부는 냉전 시대를 돌아보면서 왜 미국 사회가 갈수록 부자들을 위한 나라가 되어 가는지, 그리고 개혁을 외치는 좌파 정치인들이 설 곳이 없는지를 설명합니다. 그 와중에 버니 샌더스라는 진보 정치인이 어떻게 등장하였으며 그의 정치 철학과 목소리를 통해 미국 사회의 대안으로 부각되었는가를 다룹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버니 샌더스가 왜 미국 사회에서 새로운 돌풍을 불러오고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힐러리는 여성이라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주류 정치인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전형적인 보수 정치인이며 그녀가 집권한다면 오바마나 그 이전과 별다를 것이 없겠지요. 하지만 오늘날 미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미국이 흔들릴 경우 전 세계에도 엄청난 여파를 줍니다. 또한 미국 경제의 불황은 세계 경제 불황으로 이어지죠.

물론 버니 샌더스가 실제로 대통령이 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대다수 국민들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두려워 하기 때문이죠. 또한 그는 비주류 정치인인데다 나이도 너무 많습니다. 설령 실제로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해서 획기적인 변화를 끌어온다는 보장 또한 없습니다. 대통령은 절대 권력자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누가 이기건 상관없이, 그의 돌풍은 대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기에만 급급한 많은 정치인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는 사실 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겠지요.

 

"버니 샌더스가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며." 저처럼 그동안 버니 샌더스는 커녕, 미국 대선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사람조차 1시간만에 버니 샌더스의 모든 것을 이해하게 하면서 또한 그를 지지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양키 스타일의 그림체에 풍자 만화라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필히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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