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의 미래
알랭 드 보통 외 지음, 전병근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이맘 때에 멍크 디베이트의 공개 토론을 번역한 《감시 국가》라는 책을 인상깊게 읽은 적이 있다. 국가 감시의 정당성을 놓고 2014년 5월 2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4명의 세계 정상급 지식인이 끝장 토론을 벌인 내용을 다룬 책이다.

참고로, 멍크 디베이트(Munk Debates)란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캐나다 오리아 재단이 2008년부터 주최하는 글로벌 토론회이다. 연 2회 국제적으로 가장 이슈가 되거나 중요한 현안을 가지고 2인씩 2개조를 이루어 토론을 벌인 후 청중들을 대상으로 찬반 표결로 승패를 가른다. 이 토론회는 영국 BBC와 미국 CSPAN이 실시간으로 중계할 정도로 전 세계적인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얼마 전 인류의 미래는 과연 유토피아일 것인가, 디스토피아일 것인가라는 해묵은 주제로 2015년 11월 3천여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90분 동안 날카로운 토론을 벌였던 《사피엔스의 미래(Do Humankind's Best Days Lie Ahead?)》가 출간되었다. 출판사는 감시 국가와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존 F. 케네디의 13일, 0시 1분 전 등을 출간한 모던아카이브(前 모던타임스)이다.

그럼 "인류의 미래"를 놓고 토론에 참여한 4명의 석학은 과연 누구일까. 인류의 진보를 낙관하는 쪽에는 하버드대 교수로 타임지가 2004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한 스티븐 핑커 교수, 그리고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으로 저널리스트이자 영국 상원의원이기도 한 매트 리들리이다.

반대편에 있는 쪽은 스위스 출신 작가이자 대중 철학자인 알랭 드 보통, 그리고 워싱턴포스트 뉴욕 지부장이자 2005년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의 한 사람인 말콤 글래드웰이다. 네명 모두 오늘날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정상급 지식인들이며, 국내에서도 이들의 책과 강연은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토론 시작 전 실시된 "인류의 미래는 밝은가"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찬성이 71%, 반대가 29%였다. 그리고 90분 동안 열띤 토론을 펼치는 네명의 패널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는가에 따라서 청중의 의견 또한 달라지는 것이다.

가장 먼저 토론의 문을 연 스티븐 핑커는 "낙관론"을 제시하는 쪽이다. 그는 인간의 수명이 늘어났다는 점, 오랫동안 인간에게 치명적이었던 질병을 상당수 극복했다는 점, 물질적 번영과 전쟁의 감소 등 10가지 이유를 들어서 "앞으로의 미래 또한 밝다"고 단언한다.

다음 차례는 "비관론"을 제시하는 알랭 드 보통이다. 그는 스위스같은 가장 선진적인 나라조차 빈곤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전쟁과 질병의 위험 또한 여전히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인류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비관적인 결과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세번째는 다시 "낙관론"쪽의 매트 리들리이다. 그는 일부 학자들은 항상 "곧 위험이 닥친다"라며 떠들지만 지나고 보면 과장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또한 "폭발적인 인구 증가가 인류를 파멸로 내몰 것"이라던 멜서스의 경고와 달리 부의 불평등 해소, 경제적 번영, 환경 파괴의 개선 등 우리 주변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결국 진짜 문제는 "과거에 대해서는 좋은 추억만 떠올리면서 미래에 대해서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네번째는 "비관론"의 말콤 글래드웰이다. 그는 과거가 미래를 얘기해주지는 않는다고 단언한다. 또한 기술 발전이 테러 등 악용될 수 있다는 점, 환경은 개선되고 있지만 동시에 지구 온난화로 자연재해의 파괴력이 한층 더 높아진 점을 꼽아서 "과연 우리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들의 주장은 모두 논리적이며 설득력이 있다. 이들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얘기하는 것이지만 애초에 미래 예측이란 관점의 문제이므로 답이 나올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나아질 것"이건 "나빠질 것"이건 두리뭉실하면서 추상적인 대답일 뿐이다. 이것을 어떤 기준에서 어떻게 계량화할 수 있는가.

보다 미시적으로 말한다면 나아지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나빠지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가령 100년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지금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와졌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 풍요를 모든 사람이 누릴 수도 없을 뿐더러, 또한 결코 공짜도 아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는 단 한가지도 거저 얻는 것이 없다. 한층 치열해진 생존 경쟁, 빈부 격차, 각박해진 삶, 단절되고 소외되는 인간 관계, 우리 인생에 대한 불확실성 등. 우리의 풍요로운 삶이 비록 빈곤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아프리카의 부족 사회보다 반드시 더 낫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원시적인 삶으로 돌아간들 행복해질 것인가.

이는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가라는 가치관의 문제이지 정답은 없다. 또한 우리의 미래는 너무나 예측불허이다. 상상도 못하는 재난재해가 덮치거나 핵전쟁이 일어난다거나 또는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이 절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과연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결론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날선 논쟁이 오가지만 우리나라처럼 격한 감정과 막말이 오가는 수준 낮은 토론회가 아니라 자신의 논리를 조리있게 얘기하면서 상대의 논리상 허점을 신랄하게 파고 든다. 책을 읽는 내내 과연 어느 쪽이 옳은지 결론내리기가 쉽지 않다. 역시 최고의 논객들답다. 또한 말콤은 반대편의 리들리와 핑커를 "폴리아나 부부"라고 지칭하면서 이들의 직업이 상원의원과 대학 교수라는 점을 들어서 "확실히 이 두분의 미래는 밝다"라고 말한다.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인신공격이라며 흥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 유머러스하게 넘긴다. 이런 여유로움이 서구의 높은 토론 수준을 보여준다.

토론이 끝난 뒤 최종 투표 결과는 찬성 73%, 반대 27%였다. 찬성쪽이 2% 늘어났기는 했지만, 시작 전과 큰 변화는 없다. 그만큼 양측의 논리가 팽팽하여 서로 만만치 않았다는 얘기이다.

세계적 석학들의 토론이 어떠한지 보여주는 책이다. 만약 책이 아니라 TV를 통해 직접 생방송으로 본다면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지 않을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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