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전집 4 - 국가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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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여러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여러 사람과 어울리네. 그리고 우리는 필요한 것이 많기 때문에 우리를 도와줄 많은 협력자와 한곳에 모여 사는데, 이렇게 모여 사는 곳에 우리는 국가라는 이름을 붙였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진실로 훌륭한 수호자가 될 사람은 천성적으로 지혜를 사랑하고, 기개가 높고, 민첩하고, 강할 것이네.

 

*가장 유능한 의사가 되려면 어릴 때부터 의술을 습득해야 할뿐더러 중병에 걸린 사람을 되도록 많이 접촉해봐야 하며, 자신도 건강한 체질을 타고나지 못해 온갖 병에 걸려봐야 하네. 왜냐하면 내 생각에, 의사는 남의 몸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건강이 나쁘거나 나빠지는 것을 용납해선 안 되겠지-자신의 혼으로 치료하기 때문일세. 그래서 병들었거나 병들어 있는 혼이 무엇을 잘 보살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네. 반면, 여보게, 재판관은 자신의 혼으로 남의 혼을 다스리네. 그래서 혼에세는 어릴 때부터 사악한 혼과 한데 어우러져 자라거나, 마치 의사가 자기 경험을 토대로 남의 몸을 치료하듯, 자신의 경험으로 남의 범죄 행위를 판단할 수 있도록 스스로 온갖 범죄를 섭렵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네. 오히려 혼이 아름답고 훌륭하여 옳고 그름을 건전하게 판단하려면 어린 시절에 사악한 성격을 경험하거나 접촉하지 말아야 하네.

 

*사악함은 자기 자신도 미덕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미덕은 타고난 본성에 교육이 더해지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자신도 사악함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네. 그래서 내가 보기에, 착한 사람은 현명해질 수 있어도 사악한 사람은 현명해질 수 없는 것 같네.

 

*우리가 앞서 요구한 것은 이보다 더 쉬운 일이네. 앞서 우리는 수호자들에게서 못난 자식이 태어나면 다른 계급으로 강등해야 하고, 다른 계급에서 탁월한 자식이 태어나면 수호자 계급으로 승진시켜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네. 그리고 우리가 그런 말을 한 의도는 다른 시민들이 모두 자기 적성에 맞는 한 가지 일에 전념해야만 개인은 여러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이 되고, 나라는 여러 나라가 아닌 한 나라가 되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네.

 

*젊은이는 어른 면전에서 적절한 침묵을 지키고 자리를 양보하고 어른이 들어오면 자리에서 일어서야 한다든가, 부모를 봉양해야 한다는 것 말일세. 그 밖에도 두발, 복장, 신발, 몸가짐 일반등에 관한 것 말일세. (...) 어떤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교육받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 같네. (...) 아마도 교육의 최종 결과물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하나의 완전하고 강력한 전체가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걸세.

 

*또한 우리는 정의란 제 할 일을 하고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을 많은 사람한테서 들었고... (...) 이처럼 각자가 제 할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정의인 것 같네.

 

*정의의 진정한 관심사는 어떤 사람의 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그의 내적인 행위, 그의 진정한 자아, 그의 진정한 기능일세.

 

*그러니 우리 여자 수호자들도 체력단련을 위해 옷을 벗어야 하네. 그들은 옷 대신 미덕을 입게 될 테니까. 그들은 전쟁과 그 밖의 다은 수호자 업무에서 제구실을 하되, 오지 거기에만 전념해야 하네. 그러나 그들은 연약한 여성인 만큼 그들에게는 남자보다 더 가벼운 업무가 부여되어야 하네. 따라서 최선을 추구하기 위해 옷을 벗고 체력단련을 하는 여자를 보고 웃는 남자는 '우스꽝스런 지혜의 설익은 열매를 따는 것이라네. 그는 자기가 무엇을 보고 웃는지도,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전혀 모르는 것 같네. 우리에게 유익한 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우리에게 해로운 것은 추한 것이라는 말은 지금도 명언이지만, 앞으로도 명언으로 남을 테니 말일세.

 

*한 가지 잊어서는 안될 것은, 우리가 앞서 치자를 선발할 때는 연장자를 선발했지만 여기서는 그것이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네. 사람은 늙어가면서 ㅁ낳은 것을 배운다는 솔론의 말은 믿을 수 없기 때문이네. 사람은 늙어갈수록 달리기보다 배우기가 더 어려우니 말일세. 오히려 큰 노고와 많은 노고는 모두 젊은이의 몫이라네.

 

*자유민은 어떤 교과목도 노예 같은 방법으로 배워서는 안 되기 때문일세. 육체적 노고는 강제로 수행된다 해도 몸을 전혀 해치지 않지만, 혼의 경우 강제로 배운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네.

 

*그러나 그들이 50세가 되면 모든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으며 실무와 학문에서 아느 모로 보나 가장 우수한 것으로 판명된 자들을 최종 목적지로 인도해서는 그들로 하여금 혼의 찬란한 광채를 위쪽으로 향하게 하고 만물에 빛을 가져다주는 것을 직접 바라보게 해야 하네. 그리하여 그들이 善 자체를 봤다면, 그것을 본보기 삼아 국가와 개인과 자신을 차례차례 정돈하며 여생을 보내게 해야 하네. 물온 대부분의 시간은 철학으로 보내게 하되 자기 차례가 되면 저마다 나랏일을 위해 노력하고 국가를 위해 치자가 되게 해야 하네. 그러나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하게 할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일을 하는 것처럼 하게 해야 하네. 그리하여 다은 사람들을 그들 자신과 똑같은 자들로 꾸준히 교육하여 자기들 대신 국가의 수호자들로 남겨 둔 뒤 '축복받은 자들의 섬들'에 갓 살게 해야 하네. 또한 국가가 그들을 위해 기념비와 제물을 공적으로 바치게 하되, 예언녀  퓌티아가 승낙한다면 그들을 수호신으로 받들어 모시게 하고, 승낙하지 않으면 행복하고 신과 같은 자들로 받들어 모시세 해야 하네. (...) 진정한 철학들이 여러 명이든 한 명이든 국가의 권력을 장악해야 하네. 그러면 그들은 오늘날 명예로 간주되는 것들을 비천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 경멸하는 반면, 올바른 것과 올바른 것에서 비롯되는 명예를 가장 높이 평가할 것이네. 그리하여 그들은 정의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한 길라잡이로 삼아 정의에 봉사하고 정의를 증진시키면서 국가의 질서를 바로잡아갈 것이네.

 

*그렇다면 글라우콘, 완벽하게 통치될 국가에서는 치자를 공유해야 하며 모든 교육은 물론이고 전쟁과 평화에 관한 업무도 공동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들의 왕은 철학과 전쟁에서 가장 우수한 자여야 한다는 점에 우리는 의견이 일치했네. (...) 또한 일단 치자들이 임명되면, 앞서 말했듯이 전사들을 사유재산을 갖지 않을 처소에 거주하게 한다는 점에도 우리는 의견이 일피했네. 자네도 기억하겠지만, 우리는 처소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재산을 그들에게 허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일치했네.

그들은 어느 누구도 오늘날 일반 시민들이 소유하는 것과 같은 것을 가져서는 안 되고, 진정한 전사로서 그리고 수호자로서 자신들이 행한 봉사의 대가로 그 봉사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만 해마다 다른 시민들한테 받되 그 대가로 자신과 국가를 돌봐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지요.

 

*인간이 선량해지느냐 사악해지느냐 하는 것은 중대한 싸움이며 보기보다 휠씬 중대하네. 따라서 우리는 명예나 돈이나 권력이나 무엇보다 시에 홀려 정의나 그 밖의 다른 미덕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네. 

 

*자네는 우리의 혼이 불사불멸한다는 것을 모르는가?

 

*소멸하게 하고 파멸하게 하는 것은 모두 나쁜 것이고, 보전하게 하고 유익한 것은 좋은 것이라 게 내 의견일세.

 

*그렇다면 우리는 올바른 사람이 가난하게 살든 병에 걸렸든 그 밖에 불행으로 여겨지는 어떤 상황에 놓이든, 이런 불행이 살아생전에 또는 죽은 뒤에 결국은 좋게 끝날 것이라고 봐야 할 걸세. 올바른 사람이 되려고 열심히 노력하며 미덕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으로서 가능한 한 최대한 신을 닮으려고 애쓰는 자가 신에게 홀대받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이네.

 

*내가 충고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혼이 불멸하며 어떤 악도 어떤 선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끊임없이 향상의 길로 나아가며 가능한 방법을 다해 지혜와 더불어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네. 그래야만 우리는 이승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경기의 우승자들이 상을 타듯 우리가 나중에 정의의 상을 탈 때도, 우리 자신이나 신들과 친구가 될 것이네. 또한 우리는 이승에서도, 앞서 우리가 이야기한 천년의 여로에서도 행복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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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 - 보통 엄마의 거창고 직업십계명 3년 체험기
강현정.전성은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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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강현정만으로 해야 좋았을 것 같다.

오로지 그녀의 주관으로 가득한 책이거늘

저자에 전성은을 함께 첨부한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다.

 

거창고등학교의 전영창 초대교장선생님이 무척 존경스러웠다.

김형석교수가 오버랩되었다.

내가 알지못했던 지성인들은 이 나라를 위해 그렇게들 애쓰고 계셨구나 싶으니

숙연해지기도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이런 지성인들의 말씀을 들으며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면

나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금이라도, 지금부터라도 이런 훌륭한 분들이 내 삶의 본보기가 되어서 나는 다만

나아가면 될 것 같다.

 

- 직업선택의 십계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 기회가 거의 업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처음에 이 십계를 읽었을 때는 무심했다.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 인터넷에 떠도는

그런 것들 중의 하나겠거니 하다가 이 책을 읽고 보니 전영창 교장선생님의 일생이

이러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이 십계가 모두 가슴으로 들어왔다.

 

 

 

 

 

 

* 아무것도 아니어도 좋아!

 

* 무슨 일이든 극복함으로써만 이길 수 있다.

 

* 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아도 괜찮아.

 

* 자식을 잘 키우려고 하지 마라. 너나 잘 살아라. 아이들을 망치고 싶은가? 부부 싸움을 해라.

아이들을 더 망치고 싶은가? 그렇다면 서로를 비하하라. 무조건 아이에 대해서는 욕심을

버려라. 부모는 그저 이 아이를 열심히 도와주라고 위탁받은 존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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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 김용택 동시집
김용택 동시집, 이혜란 그림 / 창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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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졸업한 그 초등학교가 평생 나의 직장이었던 그 느낌은 어떤 것일까?

<김용택>은 그런 사람이다.

 

 

 

 

- 철

봄에 먹을 딸기를

한겨울에 먹지요.

여름에 먹을 수박을 봄에 먹지요.

여름에 따 먹을 오이를

봄여름가을겨울에 먹지요.

사람들은 철없어요.

 

 

 

- 사람

고추에서

벌레들은 도망갔습니다.

배추에서

벌레들은 도망갔습니다.

사과에서

벌레들은 도망갔습니다.

쌀에서도

벌레들은 도망갔습니다.

도망갈 곳 없는 사람들이

그걸 먹고 살지요.

 

 

 

 

- 숙제 안 해 온 날

수수 모가지 고개를 푹 숙였다.

잘못했어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다음부터는 숙제 꼭 해 올게요.

학교 뒷밭

수수 모가지 고개를 푹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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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 (양장) 까칠한 재석이
고정욱 지음 / 애플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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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가 성실아로 탈바꿈하는 이야기는 사실 무척 식상하다.

거기에 키다리 아저씨까지 등장하면 더욱 식상해서 더 재미없어진다.

이 책도 그러한 책이다.

엄마와 둘이 가난하게 살고 있는 재석이는 불량써클에 가입한 싸움 잘 하는 학생이다.

주인공이 싸움을 못하면 어떻게 될까? 싸움조차도 잘 못하고 비겁한 아이라면

주인공이 될 자격은 없는 것일까?

 

루이스 쌔커의 <구덩이(Holes)>에서 스탠리는 이 책의 재석과 같은 배경과 성격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뚱뚱하고 무기력하기도 한, 그런 학생이 스탠리였으며,

소년원같은 캠프에서 겪게 되는 경험이 그를 성장하게 만든다.

적어도 성장소설이라면 싸움 잘하는 불량써클의 일인자보다는, 그 아래에 있는

소심하고, 용기없고, 정의감에 불타고 싶지만 베짱없이 비겁해지는 수 많은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 싶은 생각이, 이런 류의 성장소설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책들을 볼 때 마다 가지게 된다.

 

이 책의 내용을 빌리자면, 문제아가 성실아로 바뀔 수 있는 모티브는

결국 예쁜 여학생과 키다리 아저씨까지 가세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난다.

그러나 우리 곁에는 예쁘고 바른, 공부 잘하는 보담이보다는,

부라퀴처럼 도움을 주는 사람보다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법이다.

 

 

부라퀴의 정신력은 어쩌면 작가의 정신력이지 않을까 싶어서 상당히 가슴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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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 성경 행간에 숨어있던 그를 만나다
김형석 지음 / 이와우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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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성경책을 선물했다.

한 번은 읽어야지 했던터라 반갑고 고맙게 받았고, 구약부터 읽어나갔다.

구약의 하느님은 그야말로 징벌의 신이었다. 본인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죽이는

부분이 생각보다 너무 많아서 읽어나가기가 고역이었고 결국 구약의 1/3쯤 읽은 선에서

멈출수 밖에 없었다.

 

성당에 가면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혀있는 예수의 상을 보면 너무 잔인하다 싶고,

얼마나 아플까 싶어, 십자가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아픔이 일어서 애써 십자가를 외면

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나에게 "예수"라는 제목은 상당히 끌렸고, 내가 알고 싶던 어떤 것들이 분명

이 책속에는 있을 것 같았다.

 

저자는 역시 神적인 예수보다는 인간적인 예수에 더 포인트를 둔 것 같아 난 좋았고,

종교적인 느낌보다는 역사라는 사실이 더 부각된 것 같아 오히려 그것이 더 예수의 부활을

믿도록하는 설득력을 지녔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활한 예수는 정말 어디에 있을까?

톨스토이의 말처럼 사랑이 있는 곳에 예수는 있는 것일까?

어떠한 모습도 없이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을까?

모두의 모습으로 사랑과 함께 있는 것일까?

 

십자가는 형벌의 도구였으니, 그 옛날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잔인하게 벌을 주었을까

싶어 부르르 떨린다. 십자가에 못을 박고 죽을 때까지 그렇게 둔다니, 그에 비하면 총살은

얼마나 신사적인가 싶을 지경이다.

 

자신의 부활을 알고 있던 예수였는데 그는 어찌하여 그 전에 불안해했을까?

그 불안에서 나는 예수와 좀더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도 나처럼 불안해했구나 싶으니 내가 더욱 그의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이 들었다.

 

여인들이 다음 날 무덤으로 예수를 찾아갔으나 그의 시신은 없었다.

난 예수에 대해서 잘 몰랐거니와 그의 부활은 믿을 수가 없었는데

어쩐지 이 책을 읽고 나니 예수의 부활이 믿어진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어느새 나는 부활한 그가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원수를 가진다는 것은 동등한 가치 판단을 가진 사람들이 이해 관계나 감정 문제로 갈등이

생길 때 발생한다. 그러나 한쪽이 훨씬 높은 가치 판단력을 가지고 있거나 인격이 높을 때에는

상대방이 하는 모든 일이 가엾어 보이며, 그의 행동에 연민을 느끼는 법이다.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언제나 올바른 가치 판단을 내리는 일이다. 가치 판단의 기준은

언제나 뚜렷하다. 모든 것은 인간과 인격을 위해 있으며, 인간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윤리와 도덕은 귀하지만 인간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듯이, 율법과

계명은 중요하나 인간이 그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네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모두 불행해질 것이 아니냐.

 

*헌금 자체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오늘도 생활비 전체를 교회에 바치는 것을 가상스러운

것으로 말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보면, 이때 예수는 자기를 과시하려는 많은

헌금보다는 지성으로 바치는 적은 돈이 더 귀하게 평가되어야 한다는 뜻을 말했던 것이다.

마치 오늘도 가난한 사람들이 불행을 겪고 있는 이웃을 위하는 마음이 더 간절하듯이.

 

*역사는 반복된다는 주장이 있듯이 우리들도 비슷한 경험을 한 때가 있다. 필자는 일제

말기를 보내면서 군국주의 일본이 천황을 우상화시켜 종교적 신앙으로 강요하던 시기를

넘기면서 무엇인가 한 시대의 종말적인 비운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껴 보았다. 그 뒤 잘못

된 선택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희생의 제물로 삼았는지 모른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가야바는 구약 종교를 책임 맡은 성직자였고

빌라도는 로마의 파송을 받은 총독, 즉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은 배반자인 유다와 종교 지도자였던 가야바가 주동 인물이었던 것이다.

 

*사실 예수의 진정한 부활을 증거하는 사건들은 이 비겁하고 무능했던 제자들의 행적과

죽음이 아니었을까. 그들은 예외없이 예수와 같이 죽어 예수와 더불어 영원히 살 것을

믿고 있었으며, 그것이 하늘나라를 위한 사명임을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의 생애는 무덤과 더불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과 더불어 시작된 것이다.

 

*예를 들어 공자의 "논어"와 무관하게 살고 있다면 그것은 교양인도 아니며 지성인의

자격도 상실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신적 지도자의 책임을 맡고 있는 신부나 목사가

"논어"는 유교의 경전이기 때문에 우리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면 사회 지도자는 물론

기독교 이해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 결과 많은 그리스도인이 "논어"와 벽을 쌓고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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