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불이 났었다.
바람은 여기저기로 불이 펄쩍펄쩍 뛰어 다닐 수 있게 한다는 걸 얼마나 두렵게 실감했는지...
바로 집앞에 있는 이쁜 산은 모두 타버려서 지금은 살아 있는 나무가 없다.
큰 불이 온 포항을 뒤 덮던 날, 난 대로로 나와 대피해 있었다.
열려진 베란다로 불씨가 날아 들어간 우리 아파트의 한 집에선 시커먼 연기가 사정없이 뿜어져
나왔고, 그 시커먼 연기가 짙을수록, 많을수록 우리의 공포는 점점 더해져 갔다.
이러다 온 도시가 잿더미로 변해 버리는 건 아닌가......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였으리라!
소방대원들의 노고를 이때 알았다. 한번도 그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긴급한 하루를 위해 364일을 항상 준비해야하는 사람들, 언제나 비상사태만이 그들의 일인
사람들이 그들 아닐까?
그들로 인해 불은 어지간히 잡혔고, 연기도 차츰 사그러들 즈음엔 해도 뉘엿뉘엿 저물고 있어
집으로 향했다. 이만하길 참으로 다행이다 싶은 감사한 마음을 가득 안고서, 소방대원들의
노고를 거듭 새겨 보면서...
그런데 우리동 앞에 이르니 우리동 주민들이 합세하여 진화를 돕고 있었던 게 아닌가!
그들은 대피한게 아니라 자체 소방호스를 들고 앞산 진화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몹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진화는 소방대원들만 해야 하는 일이라고 나는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중고등학생들도 흙투성이가 되어 거들고 있던 그 모습에서 순간 가슴이 뻑뻑해
짐을 느꼈다. 얼른 나도 옷을 갈아 입고 내려 왔으나 거의 도울 일은 없었다. 마무리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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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무인 경비시스템으로 바뀌어서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짐이 많을때 역시 자동으로 닫혀 버리는 문 때문에 여간 성가시지 않다.
그날도 무거운 쌀자루, 가득찬 큰 장바구니, 과일 상자로 짐이 무척 많았고 한꺼번에 모두 현관
안쪽, 엘리베이트 앞으로 들여 놓을 수가 없어 현관 자동문 바깥쪽에 모두 내려 두고 지하 주차장
으로 주차하러 갔다. 그런데 올라와 보니 누군가가 내 짐을 모두 자동문 안쪽, 엘리베이트 앞으로
옮겨 둔게 아닌가! 나의 감동은 산불 진화작업을 우리 동 주민들이 합세하여 행하는 것을 본 것처
럼 진하고 뻑뻑한 것이었다. 얼마나 따스한 느낌이더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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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서 모처럼 반상회를 했다.
반상회란 늘 그렇듯이 좋은 이야기보다는 불평과 불만의 토로가 더 많은 법이다.
그래서 나는 최근의 나의 뻑뻑했던 가슴을 열어 보이고 감사의 마음을 기껍게 전하고 싶었으나
못. 했. 다. 우리 통로엔 나보다 연배가 많으신 분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섣불리 입이 떨어지질
않더라. 아~ 아쉽다. 요즘은 반상회도 일년에 몇 번 하지 않는데 말이다. 해서 이렇게 일기로
라도 남겨 놓고 싶다. 나는 우리 아파트가 참 좋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