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한파이다 . 그냥 썽클이라고만 표현하기엔 지나치게 너그러운 표현이란 생각이 들만큼 거실의 공기가 숨쉴 때마다 박하 향처럼 싸아하게 온 몸에 들러 붙는다 .

분명 경보 메세지를 보았다 . 내 깜냥에 이 정도면 되겠지하고 똑 , 똑 떨궈질 만큼만 수도꼭지를 열어 두었는데 그것이 영 시원찮았던지 한파경보 다음날의 오전 , 그러니까 어제는 , 그 전날의 공기보다 더한 싸아함으로 온 집을 칭칭 감싸고 들었고 , 기어이 수도는 얼어붙은 달 그림자처럼 창백해져서 오전의 시간을 내내 그 창백함을 달래는데 집중해야 했다 .

 

그래도 오전의 시간만 온통 들어낸 것으로 어제의 한파는 물러가 주었었다 . 얼었던 수도관은 다시 쿨럭 쿨럭 쿠울럭 ~ 몇 번의 기침을 토해 낸 끝에 콰르르 온수를 뱉어내 주었다 . 아직 한 낮이니 괜찮겠지 , 보일러 배관을 감싼 보온재들을 망연하게 쳐다보며 , 안일하게 생각했다 .

 

해 질 무렵에 온수를 흘려놓아야 할지 모른다 . 계속된 고민과 날씨를 검색하느라 바빴다 . 건조주의보만 뜨고 , 다시 동파를 조심하라는 메세지는 없다 . 그저 내 동동거리던 마음을 내려 놓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 그리고 시간은 흐르고 , 설마 설마 , 설마가 ... 사람을 잡는다더니 ,  한파에 이렇게 붙잡힐 줄이야 .

 

배관을 감싸 안은 옷들은 몇 겹이나 되었다 . 맨 겉은 에어캡 포장제였고 , 그 안으로 습기가 가득 찬 채 옷들의 뭉치는 꽁꽁 얼어있었다 . 어제는 수도꼭지에만 뜨거운 물을 몇 시간 부어주고 , 보일러가 있는 베란다엔 난로를 켜 놓는 걸로 그만그만 했는데 , 오늘은 아무리 뜨거운 물을 몇 시간 째 벌서듯 서서 흘려주어 봐도 꼼짝을 않는다 . 기어이 배관을 감싼 , 저 뭉치들을 해체해 보아야 하는 가보다 . 내가 감싼 것들이 아니어서 , 몇년을 거기서 서로 끌어 안고 있었는지 모를 겉 옷들의 젖은 포옹을 풀자니 마음이 찜찜함으로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

 

사이즈는 95호 쯤 되는 기성브랜드의 검은 겨울 점퍼가 꽁꽁 얼어서 그 안의 털을 누빈 조금 더 작은 사이즈의 누비점퍼를 끌어 안고 있었고 , 또 그 팔을 풀자 , 세탁기 안의 엉킨 세탁물들처럼 엉킨 겨울옷들 뭉치가 실타레처럼 엉켜서 , 풀어도 풀어도 계속이었다 . 대체 몇몇의 사람이 이렇게 깊이 서로를 안고 얼어 죽을 수 있단 건지 , 나는 이들을 , 아니 내가 이들을 얼어 죽인 것일까 ?

 

짙은 풀색의 울셔츠는 골지 타입의 검은 목폴라를 끌어 안고 있었다 . 그것들은 시체같아서 잡아 뜯을수록 생살이 뜯기는 미묘한 감각과 질감을 불러일으켰다 . 물론 나는 아직 생살을 뜯어 본 적은 없다 . 하지만 얼어 붙은 사람들을 뜯어내면 이와 같지 않을까 , 그런 생각들이 진저리치게 만들었다 .

 

쓰레기봉지 100리터들이는 되었을텐데 , 젖어서 꽁꽁 뭉치자 그것들은 부피가 퍽 작아져서 50리터들이 봉지안에도 들어갔다 . 다만 봉지는 물 먹은 옷들이 대게 그렇듯 무거웠다 . 그것들을 말려 줄만한 공간도 여유도 내겐 없었다 . 그저 잘 치워주는 수밖에 .

 

사람의 뼈대를 드러내듯 보일러의 배관선이 온전히 제모습을 드러냈다 .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의 깊은 포옹을 받으며 몇 해를 보냈을 보일러 배관들 . 얼마나 깊은 관계면 서로가 축축해 질까 , 서로를 뜯어내야할 만큼 .

 

오전과 오후를 다 보내고 , 전기세 폭탄을 각오하고 종일 틀어놓은 난로와 , 수도꼭지에 들이붓느라 펄펄끓었던 1리터들이 찻 주전자 , 윤이 오면 쓰던 헤어 드라이기를 잠시 내버려두고 덜덜 떨며 끄적거린다 .

 

꽁꽁 언 마음이 , 수도관이 내 성의가 부족했다며 , 내 관심이 열의없다며 항의하느라 풀어질 기미조차 없는 이 시간 . 사람의 마음을 , 얼어붙은 옷을 잡아 뜯던 감각을 잊으면 안될 것 같아서 토닥토닥 자판을 두들긴다 . 어제는 한나절 , 오늘은 그정도로는 어림도 없는 한파 .

 

지독한 한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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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의스케치북 2018-01-25 20: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전철이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아니 풀로 틀었지만 추위에 무색해져 위장이 아프기까지 했습니다.. 대단하고 놀라운 추위입니다..^^

[그장소] 2018-01-25 21:08   좋아요 2 | URL
너무 추워 각자 웅크리느라 , 온기조차 퍼질 새가 없었나봐요. 그만한 한기의 기세라는 거겠죠? 건강 챙기세요. 정말 덜덜 떠느라 온 몸이 아프네요. ㅎㅎ

벤투의스케치북 2018-01-25 21: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2018-01-26 0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8-01-26 00:48   좋아요 2 | URL
도시가스요금만인가요..전기세..수도세.. 덩달아 폭등일거예요.
보일러 어는 곳을 모르니 녹일 곳도 모르고.. ㅎㅎ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할 듯 합니다. 동파 예방 경보는 왜 하루만 보내준건지.. 날씨만 봐서는 실감을 못하는데 말이죠. 정말 속상해요. ㅎㅎ

2018-01-26 0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8-01-26 23:43   좋아요 1 | URL
환경, 날씨가 만들어 내는 공통의 화제가 그만큼 큰 탓이겠네요 .^^
이 추위가 여름의 혹서와 좀 나눠진다~ 생각하니 , 기발하기도 하고 한편 계절이란 것 자체가 무경계해지는 것이니 그래도 될까 싶기도 해요 .
저는 다만 , 오래전 옷을 켜켜이 쌓아 놓고 간 얼굴모를 사람들의 겨울을 생각하고 싶었어요 . 그랬을 뿐이랍니다~^^

2018-01-27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8-01-27 04:28   좋아요 1 | URL
ㅎㅎ제 글을 기억해주고 계신다고 생각하니 넘 부끄럽고 기쁘네요 .
아마 정말 감정이 상할만한 것들은 쓰지 못하는 탓에 일기에 관한 것이나 끄적거린게 .. 기억에 남게 되셨나봐요. 다음엔 좋은 일, 행복한 일을 나누는 글로 뵐수있으면 싶어요. 저도.. ㅎㅎ 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18-01-26 2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너무 추워요. 저희집 다육식물은 많이 얼어서 엄마가 무척 ....
내일은 기온이 그래도 낮이 되면 올라간다고 합니다. 희망적인 뉴스인데, 오늘 밤 따뜻하게 잘 보내세요.^^

[그장소] 2018-01-26 23:39   좋아요 2 | URL
난로를 40시간이상 풀가동한 결과 주위 온도가 높아져 스스로 녹은 배관 . ^^
오늘 오후3시 넘어 온수가 다시 콰르르 ~
ㅎㅎㅎ 범위가 넓으니 시간도 오래 걸렸네요 . 주말까지 한파는 계속된답니다 .
사실 온수 쓸 일만 아니라면 , 난방은 그대로 되기에 , 큰 불편은 아닌데 .. 말이죠 . 옛날의 삶에선 찬물이 일상였는데... 세상 새삼 좋아진걸 느끼네요 .^^ 서니데이님도 굿밤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