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의 눈 ㅡ 박주영 , 제 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 다산책방
너와 내가 서로 모르듯 , 알지 못하는 이면을 가진 우리들은 서로에게 스파이와 같단 의미로 읽었다 .
오래 걸렸고 집중하기 쉬운 구도는 아니었다 . 수학 공식처럼 X . Y . Z . 등으로 불리는 인물들 .
나 편하자고 이해 쉬운 이니셜을 가끔 쓰는데 그러지 말아야 겠단 생각이 들었다 . 이상하게 이니셜로
대표되는 인물은 주요인물이 아니고 임팩트있지만 스쳐가는 인물 만 같아서 , 그건 내 삶의 모든 이들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고 ... 그래서
앞으론 성만 부르더라도 영자 이니셜은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그런 한편 나 개인으론 그런 이니셜로 지나가는 삶이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
이상한 기분 . 나빠지고 싶은가 나는 !! 이 이상 더 나빠질 것도 없는데 , 싶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고 죽어 잊히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삶이란
기분이 드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구나 하는 이율 배반의 생각을 한다 .
고요한 밤의 눈 ㅡ은 깊은 밤 소리 없이 내리고 쌓여 다음 날 아침의 정경을 탄식 속에 바라보도록
하는 감탄사 같은 , 밤새 그 것들이 쌓이도록 몰랐다는 데에 있는게 아닌가 했다 . 온 세상을 무언가가 와서 변화를 주었는데도 아무도 그것이 온
것을 모르는 시간이 존재한다 . 그 시간이 고요한 밤이고 온 것은 그 고요한 시간의 눈인 것이다 .
소설 속의 무수한 스파이 X , Y , Z 등등은 또 다음 X , Y , Z 들로 세대를 바꿔가며
왔다가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 우리 이웃의 범죄처럼 .
그들은 뭔가 대단한 일들로 사건에 엮이고 범죄자가 된다거나 하지 않는다 . 한 사람의 인생만 동그마니
둥둥 떠서 인생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처럼 , 그것들을 동시에 다 같이 떠받친 주변인들의 역학관계에서 사건의 편린들이 오고 그에 따른 인과가
오는 것처럼 , 또 그것들이 마침내 모두 모여 무늬를 이룬 그림이 되었을 때에야 문제가 펑하고 터지듯이 ,
여기선 D의 언니가 실종된 일이나 15년만에 깨어났으나 기억이 없어 스파이로 살아야하는 X 처럼 ,
그를 믿게 해야하는 Y 처럼 , 그저 그들은 한송이 한송이 떨어져 내리는 눈발 일 뿐 ... 아침이 되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 그들이 지난
밤 내린 고요함의 정체라는 것은 .
나중에 마음이 아주 여유로울 때 한번 더 읽어봐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의 책이었다 . 지금의 나는 너무
복잡하다 . 자꾸 눈의 결정들이 보이려고 하므로 ... 눈 온 풍경 자체가 보여야하는데 , 눈 녹은 다음의 지저분한 풍경으로 넘어가 버리는
식이라 내 마음이 아쉬웠다 .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다. 그러니까 오늘 지금 당장의 문제는 이런 것이다. 회사에서 호출이 오기 전까지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