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현 ㅡ
가을엔
시시한 게 좋아 시시한 하루 시시한 모임
시시한
영화 다시 시시한 하늘까지
가을엔 다시 시시한 게 좋아 알고도 모르게 영 모르지는
않게 조금씩 조금씩 슬프달 것도 없이 시시각각 바뀌어가
는 거의 아름다운 시시한 생각 생각들 가을엔 아무래도 시
시할수록 좋아 그녀가 사랑했던 월요일들과 손톱만큼 지혜
로워지는 이마들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아지는 추분과 환
타 빛깔로 빛나는 숲 그 숲속에 가마솥 뚜껑처럼 누워 있는
조상들의 무덤과 성묘를 마치고 방금 막 집으로 돌아가버
린 여자애처럼 세로쓰기를 좋아하고 안드로메다 페가수스
카시오페이아 같은 가을 별들을 사랑했으나 자꾸 희미해지
는 당신 ,
가을엔 아무래도 시시해지는 게 좋아 알고도 모르게 영
모르지는 않게 자꾸자꾸 슬퍼지려는 마음이 다시 시시해져
버리게 빨리 늙어버리게
본문 82 쪽에서 ㅡ
안현미 시집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 중에
시시하다 , 시(時)시 (詩)해 . 시시하지 , 시시한 것들 .
시간에도 말에도 시인의 환타 빛 숲이 그대로 들이부어져
포글포글 간지럽다
마시면 김은 다 빠져나간 닝닝한 맛의 달달함
간지러운 탄산의 즐거움을 잊은 시간
따라놓고 잊어버린 투명한 잔의 고독 같은 것
생각난 듯 잔을 들으면 어느새 닝닝한 온기
아무렇지 않은 우리들의 가을을 안타까워하느라
나라는 촛불잔치를 벌이게 한다
숲으로 가야할 환타의 빛은 발길을 돌려
모두의 촛대로 올라가 앉고
그럼에도 어느 주일의 상행선과 하행선은
까만 밤까지 헤드라이트를 쏘겠지 ...
그 위를 이울고 있는 하 현은 오래 잊었던 당신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