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한

​ 임경섭

꼭 자정 넘어서야 애인은
잠도 안 자고
자라지도 않은 발톱을 깎았다
이만큼이 내 어제야
창밖으로
애인의 눈곱만한 시간들이 던져질 때마다
발톱 먹은 쥐가 둔갑해 나타날 거라는
해묵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떠올렸지만
나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 이미 아버지가 많았다

발톱이 버려질 때마다
쥐보다 내가 더 싫다며
애인은 꼭 비명을 지르고
나는 사랑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핀잔이
오늘을 잉태한다고도 믿었지만

한 번도 말하지는 않았다

고백하자면 애인은
발톱 깎는 시늉에 바쁜 날이 잦긴 했었다

창밖으로

시늉을 던지면

그 하얗던 어제가 밤보다 까맣게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리던

                                     임경섭 시집 《죄책감》중에서
                                     p . ​38 , 39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창 밖으로 내던질 수 있는 하루가 
있기나 하면 좋겠어
있는 척 하는 것에도 지쳐
등돌리는 하루가 
톡톡 톡  깍아내서 버릴 수라도 있음
그럼 좋겠어
버려질 수나 있음 좋겠어
지난 날도 앞으로 쌓일 오늘도
아무것도 버리지 못한 사람은
창 밖으로 스스로나 내 던질까..
그래도 뭘 버릴 수 있는 게 좋지
척, 한 시간이라도 버리니
버릴게 남은 사람은 좋지
하는 동안은 뭔가 있는 거니까
아직 남은 거니까
기가쿠의 하이쿠에선
ㅡ 내것이라고 생각하면
우산위의 눈도 가볍게 느껴지네 ㅡ
라던데...
붙어 있는 숨조차가 무거워 
한 숨 만 내쉬는 이쪽은
등돌리며 덜그럭 무거운 몸은
손톱만큼도 발톱만큼도
살아낼 어떤게 없는 
어떤 텅 빈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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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8-05 0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라지도 않은 발톱을 깎는 행위에는 주술적인 의미가 있을까요?

[그장소] 2016-08-05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주술보단 미신에 가까운데 뭐, 시늉이라니 이 부분은 주술적으로도 (스스로 암시를거는)효과가 없진 않을 것도 같아요.^^ 이전부터 어떤 금기는 행위보단 그 금기 자체를 떠올리는 것만도 불경한 일 였으니까...말이죠 .( 불온?)그냥 하면 안된다 ㅡ를 넘어서는 차원으로 바뀌니까요..^^

cyrus 2016-08-05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발톱도 은근히 빨리 자라는 것 같아요. 발톱이 손톱과 다른 점은 길어 보이는 티가 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의 눈에는 제 발톱이 길다고 하는데, 저는 짧다고 느껴져요.

[그장소] 2016-08-05 15:02   좋아요 0 | URL
네 ..발톱은 손톱 만큼 자주 보는곳이 아니어서 더 그렇게 느끼지 싶어요 . 자주 쓰는 손도 손톱이 빨리 자라는것처럼 느끼듯 ...상반된 생각으로 발톱은 빨리.자라기도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