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한
임경섭
꼭 자정 넘어서야 애인은
잠도 안 자고
자라지도 않은 발톱을 깎았다
이만큼이 내 어제야
창밖으로
애인의 눈곱만한 시간들이 던져질 때마다
발톱 먹은 쥐가 둔갑해 나타날 거라는
해묵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떠올렸지만
나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 이미 아버지가 많았다
발톱이 버려질 때마다
쥐보다 내가 더 싫다며
애인은 꼭 비명을 지르고
나는 사랑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핀잔이
오늘을 잉태한다고도 믿었지만
한 번도 말하지는 않았다
고백하자면 애인은
발톱 깎는 시늉에 바쁜 날이 잦긴 했었다
창밖으로
시늉을 던지면
그 하얗던 어제가 밤보다 까맣게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리던
임경섭 시집 《죄책감》중에서
p . 38 ,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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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으로 내던질 수 있는 하루가
있기나 하면 좋겠어
있는 척 하는 것에도 지쳐
등돌리는 하루가
톡톡 톡 깍아내서 버릴 수라도 있음
그럼 좋겠어
버려질 수나 있음 좋겠어
지난 날도 앞으로 쌓일 오늘도
아무것도 버리지 못한 사람은
창 밖으로 스스로나 내 던질까..
그래도 뭘 버릴 수 있는 게 좋지
척, 한 시간이라도 버리니
버릴게 남은 사람은 좋지
하는 동안은 뭔가 있는 거니까
아직 남은 거니까
기가쿠의 하이쿠에선
ㅡ 내것이라고 생각하면
우산위의 눈도 가볍게 느껴지네 ㅡ
라던데...
붙어 있는 숨조차가 무거워
한 숨 만 내쉬는 이쪽은
등돌리며 덜그럭 무거운 몸은
손톱만큼도 발톱만큼도
살아낼 어떤게 없는
어떤 텅 빈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