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도처에 있는 죽음,

 

알거나, 혹은 모르거나

 

나는 죽음 자체를 말하고 픈 것일까..

 

고통 자체를...?

 

아님,남은 자의 상처를..?

 

차 창밖으로 비가 오는 지역을 스윽 들어서던 그 낯섬.

경계가 완연하던 이곳과 저곳의 공기.

단 3도의 차이라고 들었었다.

 

그게..지금 눈앞에 있는 것이다.

부옇게 창을 때리며..현실이라고...사선을 긋는 곳을 마른

몸이던 버스는 그렇게 삼켜 졌었다.

 

딱 한번 보았더니..이후로는 무슨 주술에서 풀린 양..그런 세계는 도처에 있었다.

마치 존재 했었어..너만 모른거야..하듯이..

 

아는가? 국토의 가로를 누비는 국도는 짝수 번호로

길게 세로를 누비는 국도는 홀수 번호로 번호가 붙어있다는 것을...

별 것 아닌 일을 대한민국 전도 한장을 펼쳐놓고

찾아 내곤 호들갑스럽다.

어쩜..운전면허시험문제풀이에 나왔을지도...

아니면 언젠가의 퀴즈 쇼 같은 곳에...하며...

내 기억에 자신이 없다.

 

나는 3 번 국도를 좋아한다.뿐인가... 45번 46번 국도도

좋아하지....

비가 오는 중심으로 들어서던 마법을 보던 곳도 3번 국도였다.

 

나와 내 아버지가 누운 곳을 잇는 선.

 

 

 

그럼 가장 멀리가본 곳은..아마..해남..땅끝마을.

가장처음 혼자 떠난 여행과 여행지는..

.

.

그 것을 이제 말 하려고 ...

 

 

저 아래 그들이 있는 곳까지..선을 잇자..하면...

그럼..

아마도 우리나라 제 1번 인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겠지.

그러다 호남선으로..줄을 갈아 탈테고...

 

그 해에는 처음 광주 빛고을 광주에서 비엔날레가 있었다.

나는 아직 가방을 매고 다니는 학생이었고, 마침

비엔날래와 수학여행이 시기가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종종 교외대회를 핑게로 수업도 빠지곤해서

그런 대규모 행사라면 특히 미술관계니까..보내줄것 같았다.

아니라도..무단을 감행했을 법한 나였다.

지금은 아주 조금 그때의 방종한 나를 후회하기도 하지만

아주 조금일뿐...언제나 그랬듯 어깨를 으쓱하고 말지.

 

비엔날레도..나를 불렀지만...

나는 내 어린시절 아버지의 책자들 사이에서 이한열과

전태일과 518을....기억하듯.

그 518 묘역이 나를 부르는 거였다.

왜...그때는 아직 죽음이 아프던 때라..물론 지금은 더욱

생생하다는 것이.문제지만..

밤 새 잠을 잘 수없는 날이 많아서 그런 날이면 새벽에 훌쩍 자전거를 타고

아버지 산소까지 가위하나를 챙겨가..

묏등에 웃자란 풀들을 가위로 쳐내고 새벽에서 아침이슬이

걷힐 때까지 공동묘지에 드러누워 있다오곤..했었다.

겨울엔 눈밭에...여름에는 초저녁부터..달무리가 깊어질 무렵까지..

나는 공동묘지가 좋았던가 보다.

죽음이 주는 위안..이랄까..대답없다는 걸 알면서 건내는

의미 무의 질문에 혼자 답하고 혼자 끄덕이던 어스름의 시간에

내가 고등학생인 내가 있었다.

그걸 몇년 하고 있자니 지겨웠는지도 

더 큰 공동묘지를 찾고 싶었나...

아니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아버지들의 아버지! 랄까.....

근원으로 좀 더 다가서고 싶었던가...

 

소년이 온다...

나는 그 쪽으로 가고...소년은 오고...우리는 만나게 될까?

그럼 나의 지긋한 이 악몽도 마침내 끝이 날까?

말을 해 보렴.

빗 방울이 떨어져 내리는 그 도로의 중앙선을 기점으로

수직으로 서서 하늘을 바라기하던 그녀와

이십여년 이전의 황량한 둘로 나눠어 이장을 진행 중이던

초창기의 묘역 한 복판에서 머리를 흩날리며 서있던 내가 ..포개어진다.

알고 싶었다고..두려움을..공포를...

살고자 하는 지극한 마음을...

그러지 않고는 나는 아버지를 이해 할 수 없으니까.

지독하게 어쩌면 어쩌면 그래요?...!

아...모르겠다..

다녀와서 감히 그에 견줄 죽음이 아니다.

하며 나는 아버지를 덮어버린 것 같았다. 적어도 표면적으론.

 

새벽 버ㅡ스를 타고 광주에서 출발해 광주로 도착...일정 대로

비엔날레 전시를 보고 오후는 비워둔 채..숙소를 돌아와

엎어져 쉬며 팜플렛 정리를 했었지.

 

아버지는 어려서 6.25로 일찍 부친을 잃은 기억과

그로 인한 형제들과의 부침 을 못견뎌 했다.

막내로 나서 두살..세살 무렵 터진 전쟁..

전쟁 중에는 잘 버티시곤 휴전이 막 이뤄지던 무렵

돌아가신 모양이니..술에 취하면

어릴 때 할아버지 할머니 잡고 잠꼬대처럼 웅얼대던 말을

그땝 껏 하셨으니...사무치긴 하셨던 모양이라고 짐작만 할 뿐... 

4.19가..5.16 있었겠고

그 것들은 전부

한 바구니 안의 달걀 같아서

아버지는그 안의 달걀이 아니었나..생각해 볼 뿐…

베트남전에 다녀오고 탈영 하고..이후 사는 것 같지 않게..

늘 죽고 싶어..하는 소릴 노래 처럼 부르고 있다가 가신..분이다.

 

저 80년대에는 내가 막 두세살 무렵..5.18이 ..

 

그러니..나는 잘 알지도 못하던 얘기임에도

아버지는 그때 주간동아.조선..등..온갖 경로로 취재 사건 책자를 구해 보시곤 하셨다.

그때가..나..초등학교 다니던 때..였지..싶다. 광주는 광주이나 서로 다른 광주.

나는, 넓을 고을 " 쓰는 광주에서 자랐고 아버지는 거기 묻혔다.

시간은 잘도 흘러서..

우리들끼리도 노태우니 김영삼이니..하는 때가 왔다.

시절이 그만큼 흘렀다는 거다.

 

한때는 밤이면 도시에 사이렌이 울리던 기억이..드문드문 나는데..

그럼 모두 불들끄고 초한자루 켜놓고 창문들을 빛이 못새나가도록 막아놓곤 했었다.

잠깐 성남 살때 기억. 내가 기억하는 어린 날도 그런데...

새파랗게 젊은 청춘들이 당했을 그 생때같은 죽음을...

살만큼 산 아버지의 죽음..어디에 견줄까..

모든 날벼락 같은 죽음은 억울하지만...

아버지는 스스로가 원하여 죽은거였다.

명백한 자살.

아무리..납득할 수 없다고 해도 나는 그들에게 같은것을

물을 수는 없었노라고..

 

작고 높은 싱글침대가 있던 호텔방.

일정을 4박5일쯤 잡아놓고 왔지만..

오후 망월동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묘역에갔다.

어..이 한열 열사 라고 생각되는 묘  즈음 한 학교의 교복줄이

길다..아..요즘은 이쪽으로 수학여행을 오기도하나?

피식..했는데..어 랏..우리 학교다.

다만..나는 과가 다른 뒷반 이고 이 쪽은 상과반인 앞반

ㅡ이래봐야..전체 세개의 과로 상과 전산과 정보처리과

그 중 비율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상과반 녀석들..

어이가 없어 웃음이 다 나왔다. 담임은 그런얘기가 없었다.

뭐...듣기나 했을까만..

줄서서 차례로 분향을 하고 덕분에 소란한 인사를 치른셈.

 

다음날.

한 차례 더 와야 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석양이 질 무렵...

아무렇게나 대충 누구에게 기댄지도 모르고 

주질러앉아  텅빈 주차장을 내려다 보며

구해 간 소주에 종이컵.

한 순배씩 돌리고 앉아있자니...무상했다.

뭐 이런가..싶어져..

터덜 터덜.걸어서 숙소까지 돌아와

그 길로..바로 버스편을 찾아 정동진을 향해 무조건..올라갔던  기억..

버스에서 버스로..기다림에서 기다림..

걷고 시간이 비면 사진을 찍고..아주 먼 길을 거슬러 올라간..나름 충실했던 여행.

그 때 찍은 필름이 ..필름만도 열 몇통..인화도 다 못한개 아직 있을 정도니까..삭았을 거다.

돌아와서 비엔날레 다녀왔노라 제출 겸 인화한 사진..들..

그 사이에 내 모습은 없다.당연하게도..

 

 

그 사이에 그녀가 끼어들 수 없는 것 처럼...

 

소년이..나에겐..아버지였는지..모르겠네..

당신들은 가당치않다..할것이지만..

 

이 십년이나 지나 아니지.그보다 더 전에 아버지가 죽었지.

아사.餓死 굶어죽음.

스스로 곡기를 끊고 생을 마침.

거기에 대해..나는 그 고통에 대해 일찌기 생각을 멈췄었다.

도대체 어떡하면 그럴수있나...그러기를..

너무 이르고 너무 빠른 죽음이 있던 광주와

너무 느리고 너무 천천한 죽음이 있던 광주를

나는 기억한다.

 

,,,어떻게 잊을까..

당신들이 누운,, 서러운 땅을….

어떻게 잊을까 목뼈가 어긋난 건 같았던 그 충격을...

소년이 온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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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5-02-01 1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86년 봄 이한열... 쓰러지는 그를 부축하는 학우의 윈망에 찬 시선... 그 사진 결코 잊을 수 없지요........
518 묘역 저도 다녀왔습니다
좀 더 일찍 망월동 묘역을 다녀오지 못했던 것이 아프더군요...

[그장소] 2015-02-01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가죽고 저는 십년 후를..본..거네요..

cyrus 2015-02-01 1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쪽은 가슴 아프면서 기억하는 자들, 또 다른 한쪽은 애써 외면하거나 아예 모르는 자들이 있는데 요즘 전자가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그장소] 2015-02-01 19:50   좋아요 0 | URL
1988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붉은 방.임철우. 해변의 길손.한승원 .
- 에 해변의 길손 편에..보면..
주인공..황두표의 아들 하나가 광주에 있다 총에 맞아 죽었다고 나와요.
그리고..국가적 배상이 있었고요.
그들은 돈을 받았고..다 그런지는 몰라도..국가유공자가..되고 배상을 받으며..침묵하기로..한 것일지도..모른다고..생각했어요..제의..생각입니다..ㅎㅎㅎ 어디까지나..1990년 수상작인.김원일.마음의 감옥..편에도..
주인공 친구는 유신때..가두행진을 같이 했다..며 열을올리지만 이후
돈버는데 바빠..연락이 뜸한데..그들도..할말은있는..시대를 열었느니..하며..주인공의낯을 붉어지게 합니다.
차이는...양심의..경중..뻔뻔과 이해의 차이..아닌가..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