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웰의 장미 - 위기의 시대에 기쁨으로 저항하는 법
리베카 솔닛 지음, 최애리 옮김 / 반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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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서: 오웰의 장미 / 저 자: 리베카 솔닛 / 출판사: 반비

 

한 남자가 장미를 심었다.

-본문 중-

 

이 책은 오웰의 관한 책이다. 얼마나 조지 오웰에 알고 있을까? 대학시절 오웰의 에세이를 접하면서 알게 되었는 데 당시, 버마에서의 내용으로 접하면서 무력감이라고 할까? 그러다 근래에 [1984] 소설과 산문을 접하면서 관심을 끌게 되었다. 저자의 작품은 워낙 유명해서 읽지 않아도 어떤 내용인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책을 읽었을 때 오웰의 생각에 놀랍고 그 시대에 작가로서 위험이 되는 문장에 더 놀랍기도 했는 데 오늘 <오웰의 장미>을 통해 리베캇 솔닛은 세세하게 '조지 오웰'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첫 문장에서 시작한 한 남자가 장미를 심었다는 반복되어서 등장한다. 도대체 장미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전원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정치와 사회에 영향을 주었는지 알려준다. 사실, 정치 관련 부분은 쉽지 않는 부분으로 책을 읽는 내내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한 작가의 삶이 전쟁 통에서 어떻게 흘러갔고 그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훗날...우리에게 주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장미는 그 자체로 생명을 의미하고 다산성, 필명성,무상함, 사치 등으로 우리안에 들어와 있음을 작가를 말한다. 그저 꽃으로 보면 아름다움만 보이지만 이 한 송이 장미가 누군가에 손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은 노동과 억압이 있음을 보여준다. 책은 주로 전쟁으로 인한 폐허와 이로 인한 민중들의 삶의 고단함을 보여주는 데 특히, 자연의 섭리가 때론 귀족 계급을 보완시켜준다는 개념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연의 비정치성은 그 자체가 정치적 산물이라는 문장은 유럽의 노예 제도를 통해 부를 채운것과 소련에서 두 과학자의 엇갈린 운명을 보면서 '자연'이 인간에게 무엇을 하게 만들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또한, 오웰의 삶은 앞서 적었듯이 전쟁 속에 있었다. 스페인 내전과 세계대전 등 여기에 기관지에 약했던 그는 사는 내내 고되었다. 그럼에도 늘 정원을 꾸몄고, 살던 집이 폭격이 되었지만 장미를 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저자는 친구와 나무 얘기를 하다 오웰의 장미를 알게 되었고, 곧 그가 살았던 집으로 향하면서 여정이 시작 되었다. 그 장미가 한 그루가 정치와 이어지고 제국주의의 실제 권력을 지녔던 사람들의 후손이었던 조지 오웰은 그들과 다른 길을 감으로써 전체주의를 비난했으며, 여기에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어지면서 다시 한번 독자는 이를 생각하게 한다. 또한, 자연을 통한 귀족들이 어떻게 민중들을 억압하기 시작했는지...인클로저를 통해 공동의 소유였던 경작지에 울타리를 채우면서 시민들은 가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정원은 화려하지만 그 이면에는 빈곤과 노동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따뜻하게 집을 데우기 위해 필요한 석탄이 노동자들의 삶을 얼마나 의식을 할까? 그러나, 오웰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의식을 했다는 사실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덕스러운 방식들이 있겠지만 ,

자연에 대한 사랑이 미덕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본문 중-

 

한 남자는 장미를 다른 남자는 레몬나무를 심었다. 추운 지방에서 자라지 못하는 레몬나무를 모스크바에 심어야 했다. 그 혹한 겨울을 이기고 겨우 살아남은 레몬나무 한 그루. 단순히, 한 그루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확하게 어떻게 표현을 해야할지...독재에 억압으로 불가능을 가능케 하려는 그 상황을 더 넓은 의미로 해석을 하고 독자는 어쩔 수 없이 정치를 생각하게 만든다. 리베카 솔닛은 오웰의 장미를 찾으려는 시작으로 내가 알지 못했던 세상을 알려주었다. 사실, 어느 정도 의식을 하고 있었지만 <오웰의 장미>를 읽으면서 자연의 또 다른 모습과 인간을 어떻게 억압하기 위해 어떻게 이용을 했는지...그리고 오웰은 어떤 생각들이 우세한 것만으로도, 강요된 정설이 있는 곳에선 좋은 글이 나오지 않음을 반대로, 좋은 글은 자유 특히 진실을 말할 자유에서 나온다고 적었다.

 

마지막으로 정말 오웰의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가 써낸 작품을 그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읽었지만 이 책으로 인해 좀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읽는 내내 밑줄과 메모를 했지만 막상 글을 남기려니 쉽지가 않았지만, 조지 오웰 한 인물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생각은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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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 - 작은 삶에서 큰 의미를 찾는 인생 철학법
이충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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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서: 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 / 저 자: 이충녕 /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철학 이론은 항상 한 사람이 세상의 조건과 소통하는 경험에서 출발하며,

여기서 피어오르는 질문에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 결과다.

그렇기에 철학 이론은 결코 삶의 실질적인 문제들과 무관하지 않다.

오히려 삶의 가장 깊숙한 부분을 관통한다.

-본문 중-

 

철학이란 무엇인가? 과거엔 이 분야를 깊게 생각하지 않았고, 어렵다는 생각에 가까이 하지 않았다. 하지만, 늘 관심분야였고 여러 책을 통해 조금씩 철학을 알게 되었다. 철학은 분야를 가르지 않고 어디에서나 만날 수가 있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게 철학이 아니라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게 '철학'이다. 즉, 철학은 나를 알고 더 나아가 타인과 삶을 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만난 <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는 여러 명의 철학자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이념을 알려주는 데 저자는 여기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 놓아서 읽는 내내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기존에 알던 철학자와 낯선 철학자 그리고 붓다 등 세상을 움직이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는 게 놀라웠다. 때론 그들의 생각이 상반되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결론은 그 과정에서 걸러내는 결과는 삶의 윤택하게 한다는 공통점이다.

 

책은 크게 네 가지 주제로 나뉘고 그 안에서 다시 한번 세세하게 분류되어 설명한다. <자신을 신뢰하고 사랑하고 싶을 때> < 나와 타인의 관계를 이해하고 싶을 때 > <주변의 모든 것을 의심해보고 싶을 때 > <살아갈 날들을 고민해보고 싶을 때> 다. 산다는 건 수많은 감정과 이성과 싸워(?)가며 하루하루를 이겨내는 것 같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은 긍정과 부정에너지 두 가지를 가지고 있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평형을 이룰 때 행복이라고 했다. 언제나 어느 한쪽만을 느끼면서 산다는 건 말도 안되고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또한, 세상은 과거에 비해 윤택해진 건 확실하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거 역시 확실하고 심지어, 수명도 늘어났다. 그러나 동시에 너무 많은 물질로 통해 선택의 연속이라는 스트레스가 생겨났다. 인간의 심리는 참 오묘하다. 두 가지 중 선택은 고민없이 하는 데 그 이상이 되면 생각이 많아져 풍족함이 오히려 혼란을 가중한다. 여기서, 독일 철학자 칸트는 규칙를 따름으로써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즉, 자유의 제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건 억압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규칙을 정함으로써 본인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하며 이것을 자유라고 했다. 이성이 동반해야하는 것이라 쉽게 수긍을 하기엔 난해한 부분이나 생각해 보면 '자유'라는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을 하게 한다.


소소한 일상으로부터 통합적인 경험을 얻어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인간은 건강한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없다. 인간은 대부분의 시간을 소소함 속에서 보낸다. 이 시간이 무력하고 무의미하다면

삶의 대부분을 상실하는 것이다.

-본문 중-


 




예전에 동양신화에 대한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너무 익히 들었고, 또 어느 분야에서 종종 등장하는 데 둘의 차이는 너무 확연하다. 서양 신화는 인간의 욕망을 100% 다루고 있는 반면 동양신화는 인간으로서 해야할 인덕을 강조하는 데 여기엔 가족 역시 포함 되어있다. 두 번째 주제인 타인과의 관계에 공자를 소개하는 데 그가 생각한 사회는 부모가 자식에게 행복을 주듯 사회 역시 그래야 한다는 점이다. 표면적으로는 실천도 힘들 뿐만 아니라 왜 해야하는지...쉽게 납득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을 해보면 전혀 나와는(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관계가 없어도 누군가는 희생을 한 기록이 역사에 남아있다. 공자가 말하는 넓은 시야로는 모두가 할 수는 없지만 여력이 닿는 한 인간은 타인을 도와주는 마음이 있음을 알게 되고, 단 그 비중이 삶에서 어느 정도냐가 다를 뿐이다. 또한, 타인과의 관계를 이어갈 때는 서로 다른 사람이라 의견 차이는 있다. 대화의 본질을 이끌어 내는 게 바로 서로 다른 생각이지 대화를 어렵게 만드는 게 아니다. 어렵게 만드는 건 '상대방을 무시하는 마음'이라는 것.

 

이를 두고 미국 철학자 도널드 데이비슨은 '자비의 원리'라는 '원초적 번역 문제'라는 것과 관련해서 나온 주장으로 언어를 두고 어떻게 번역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던졌다. 결론은, 대부분의 언어는 어디서든 비슷한 의미를(합릭적, 인간적)두고 사용한다는 점이다. 분명 생각의 차이는 있고 그 안에서 인간은 차이와 우월감이 주는 즐거움은 인간 심리를 지탱하는 요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건 사태를 정확하게 보는 것을 막기에 먼저 적은 차이를 크게 보기 보단 상대방과 나의 많은 공통점을 인정하면서 대화를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득, 그동안 난 어떤 대화로 시작하고 끝을 맺었는지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난 적절하게 질문을 던졌고, 대답을 했는지... 더 나아가 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고민해 보기도 하는 데 언어란게 사람들이 쓰고 의미가 부여되면 개념이 성립이 된다. 독일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는 인간의 언어는 오래된 도 라고 비유했다. 복잡한 골목과 낡은 건물들 그 안에서 새롭게 건축되는 건물들을 마치 언어 역시 존재하고 새롭게 탄생되는 것을 말했다. 같은 의미라도 누군가에겐 보편적으로 다른 이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한 가지로 시선을 던질 필요가 없다.

 

스스로의 생각을 의심해보는 것은 제대로 된 지혜를 획득해 나가는 일의 시작점이다.

-본문 중-

 

그리고 3부에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철학으로 증오에 대한 생각을 상대방에 대한 깊은 관심을 전제라고 한 헝가리 출신 철학자 아우렐 콜나이를 소개한다. 그동안 증오가 그냥 분노로만 생각을 했었는 데 이 단어를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보기도 했다. 악이 점멸하기 위해 증오가 필요한 것인가? 오히려 악인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세상을 구한다는 넓은 의미로 설명을 하고 있다. 생각을 계속 하다보면 왜 인간에게 이런 감정이 생겼는 지 표면적으로 말고 의심을 가지고 질문하게 되면 생각지 못한 결론이(정확한 답은 아니나)나올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소크라테스 처럼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철학..사실, 사람들은 정답을 알고 싶을 뿐 그 과정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누구보다 지혜롭다고 들었지만 이마저도 타인과의 질문에서 답을 찾은 철학자다. 여기에, 어떤 어두운 상황에서도 긍정적 생각을 잃지 않도록 옥중에서 <철학의 위안>을 쓴 보에티우스 철학자를 소개하는 데 악인이 당당하게 잘 살아도 악을 행하기에 불행하다는 점을 말하는 데 누구라도 쉽게 수긍할 수는 없을테다, 하지만 인류는 문학,예술, 철학 등을 통해 위로를 발전시켰고, 보에티우스에게 있어 철학은 그런 존재였다. 말년엔 감옥에 가게 되었지만 그의 생각이 옳고 그릇된 것을 떠나 철학이 주는 위로가 무엇인지(넓은 시야로...) 생각을 할 것을 던져 주었다.

 

삶의 끝에 이르러 자신의 삶이 진정으로 행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은 경우

그 이유를 즐거움의 양보다는 질에서 찾는다고 이야기했다.

-본문 중(존 스튜어트 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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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
양세화 지음 / 델피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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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서: 감정적 / 저 자: 양세화 / 출판사: 델피노

 

감정은 찰나에 불과합니다.

똑같은 감정을 지속적으로 느끼긴 어려워요.

감정은 익숙해질수록 무뎌지니까요.

-본문 중-

 

누구에게나 감정과 이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인격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존재인 데 때로는 감정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오늘 만난 <감정적>은 감정에 삶에 무엇을 주는지...결여 되었을 때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복잡하지도 무겁지 않게 흘러가는 데 주인공 도담은 어느 날, 낯선 골목길에 들어서면서 현재와 다른 세상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곳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있었는 데 현실과 다른 너무 평온해 보이는 세상이었다. 그렇다면 도담은 이곳에 왜 오게 된 것일까? 낯선 곳에 도착한 도담을 안내하는 사람과 관리자 그리고 앤 이라는 여성을 만나게 되고 현재 서 있는 곳은 현실과 이어져 있다는 것 그러나, 그 이어짐은 과학적으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닌 오로지 '감정'으로 연결 되어 있는 곳이다.

 

도담이 도착한 이 세계는 현실과 이어져있다고 했다. 도담 뿐만 아니라 먼저 정착한 앤, 관리자, 사장 등 이들은 이곳에서 현실에서 감정을 잃어버린(슬픔과 좌절 등) 사람들을 맡아 그들이 좌절했을 때 직접적으로 감정을 제어하기보단 간접적으로 힘을 낼 수 있도록 적당한 양의 '끈끈이'를 이들과 연결되어 있는 기구에 넣고 그 결과로 별사탕이 만들어진다. 양에 따라 성공 여부를 좌우한다. 감정을 좌우하는 여러가지 색상이 있고 이를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그들의 삶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을 도와주는 이곳의 사람들 앤, 관리자, 사장은 누구이며 어떻게 이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들은 서서히 시간이 지나면서 알려지는 데 도담 역시 궁금하면서도 오로지 감정을 채우면 현실로 갈 수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인데, 반대로 감정이 비어졌기에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던 도담이다.

 



모든 게 균형 잡히면서 흘러가는 이 세상이 어느 날 무너지기 시작했는 데 그건, 바로 별사탕의 남용이다. 돈 대신 별사탕으로 운영이 되는 세상. 어느 날 갑자기 이곳의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곳으로 가는 횟수가 잦아졌다. 즉, 균형이 흔들리는 것인데 그건, 현실 속 사람들 감정을 제어 해주는 이들이 줄어드니 슬픔에 빠져드는 감정들을 조절할 수 없어 문제가 심각해진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밝은 빛만 있을 거라 생각한 이곳에 어두운 구멍이 발견되고 점점 커지면서 이곳에서 동료인 앤, 지용과 함께 그 원인을 찾기 시작하는 데 전혀 예상치 못한 또 한 명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이미, 지용과 안면이 있던 용이라는 소년을 통해 이 세계가 아이들을 위한 곳이었음을...두려움 없이 뛰어놀수 있던 곳이라는 점을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이 세상에 사라질까 걱정을 했던 도담과 앤..그러나 이들은 이곳의 시작을 알게 되고 오로지 감정으로 만들어진 이곳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이어 서서히 이곳을 떠나는 지용과 앤과의 이별 준비를 앞두고 있다. 비워진 감정을 채우더라도 현실 세계에서 적응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으며, 독자에게도 와닿는 문장이었다. 용기를 얻으면 그 힘을 반동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그 힘을 유지하면서 살아 가는 게 삶이다. 이 세상에 온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처한 상황에 더 이상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았기에 자신도 모르게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 힘을 얻고 이제 원래의 삶으로 가야 한다. 또한,이곳으로 온 순간부터 본래의 삶은 멈추게 되니 아무리 이곳에서 몇 년을 살더라도 저쪽의 삶은 그대로인 건 아마, 그 고된 시간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순간을 산다는 느낌, 오랜만에 느낀 감정에 나는 마음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고 잠깐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의 시계가 다시 움직였을 것 같다고.

-본문 중-

 

누구나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인생으로 살아갈지는 모른다 그저, 자신이 선택한 그 시간에 미래가 결정되는 것인데 분명 그 선택에 무너지고 좌절을 할 수도 있을 테다. 다만, 그때 자신의 감정에 너무 몰입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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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대멸종
엘리자베스 콜버트 지음, 김보영 옮김, 최재천 감수 / 쌤앤파커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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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서: 여섯 번째 대멸종 / 저 자: 엘리자베스 콜버트 / 출판사: 쌤앤파커스

 

나의 진짜 주제는 그들이 사라져 가는 과정이 보여주는 일정한 패턴이다.

-본문 중-

 

과학이 발전하면서 지구의 탄생과 그 과정을 끊임없이 연구해 오고 있다. 관심 밖의 주제이나 언제부터인가 지구 온난화와 자연 파괴가 심각해지면서 지구 미래의 모습은 암흑으로만 표현되어진다. 여전히 진행중인 환경 파괴는 과거와 달리 대중매체와 SNS가 널리 퍼져 먼 나라의 심각한 모습까지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오늘 읽은 <여섯 번째 대멸종>은 지구의 변화 과정에서 멸종 되었던 그 시기를 마지막으로 이제는 곧 '여섯 번째 멸종'이 다가올 수 있음을 (그럴 수도 아닐 수도)알려주는 도서다. 저자가 세계 곳곳을 둘러보고 쓴 내용도 놀랍지만 그 지역에서 생태 파괴를 비롯해 멸종되는 동식물들을 연구하는 그들을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마존을 비롯해 파나마 중부 지역, 아이슬란드 , 페루 등 지구 곳곳에서 이렇게 변해가는 자연을 지키려는 아니 그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해야할까? 하여튼 상상하지 못한 이들을 보면서 나의 짧은 소견이 부끄럽기도 했다. 하여튼, 저자는 다녔던 장소의 공통점은 멸종 되었거나, 진행중인 것을 알려준다. 그렇다보니 누구라도 이 책을 읽으면 두려움과 동시에 인류가 발전이라고 해 온 행위들이 결국 서서히 생명을 더 조이게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여기엔 인류도 포함되어 있다).

 

책은 총 13가지 내용을 담고 있는 데 첫 번째는 파나마황금개구리로 시작한다. 파나마 중부에 어느 마을에 서식하는 개구리로 엘바예 지역의 토착종이면서 행운의 상징으로 복권에도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 종이 어느 순간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 한 미국인 대학원생으로 인해 개구리뿐 아니라 양서류 동물도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포 영화도 아니고...논문으로 꼭 필요한 개구리였기에 다른 지역으로 갔지만 역시나 개구리들이 사라지고 그 여파는 점점 커지면서 지역을 넓혀갔다. 어쩌면 작은 개구리가 사라진 게 대수라 할 수도 있지만 양서류는 지구 최고의 생명력을 지닌 동물이라 한다 그런데 이런 존재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건 곧 인류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원인은 항아리곰팡이로 알려졌는 데 이동이 빠르다 보니 남미,뉴질랜드, 스위스,스페인 등 전세계적으로 지금호 퍼져나가고 있는 중인 데 여기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동시에 곰팡이 출현에 대해선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추측으로는 선박이나 비행기 등으로 이동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의견뿐이다. 즉, 인간에 의해 이동이 되었다는 설이다.

 

이어 퀴비에 라는 박물학자가 등장하는 데 이 이름은 책 중간중간에 간간히 등장한다. 1700년대 프랑스인으로 동물 해부학으로 종의 멸종을 설명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두번째 주제인 마스토톤의 어금니는 처음 유럽인들이 발견 했을 때 그저 거인의 이빨이었다. 그러나 퀴비에가 해부하고 연구를 함으로써 살아 있다는 흔적을 더 이상 보여주지 않는 거대한 동물이 있다면 그건 이미 '사라진 종'라 했다. 무엇인가를 알고 한 게 아니라 코끼리라고 생각한 뼈들이 각 맞지 않을 때, 두 동물이라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지금(당시) 존재하지 않으면 멸종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퀴비에는 더 많은 멸종된 동물들을 알아냈고, 짧은 시간 동안 찾아낸 종들이 많다는 점을 자각하면서 그는 얼마나 많은 종이 땅 속에 묻혀 있는지..의문을 던졌는 데, 이를 다르게 생각하면 퀴비에의 관심사는 종의 기원이 아닌 종의 소멸이었다는 점이다. 인류사를 보면 인간보다는 대형 동물이 살았던 시기도 있었는 데 시기별로 생존과 멸종이 반복이 되었다. 그렇기에 퀴비에가 확인한 종류가 많다는 건 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동식물이 살다 사라졌는지(이유는 모르지만)..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 후 수십 년 만에 퀴비에의 프레임워크조차 균열을 일으킬 만큼 많은 절멸종이 확인되었다.

점점 더 많아지는 그 화석 기록을 설명하려면 더 많은 재앙을 가정해야 했다.

-본문 중-

 


퀴비에는 지구의 변화로 인해 소멸에 이르렀다고 했지만 이에 상반된 의견을 낸 라이엘도 있다. 퀴비에와 친분이 두터웠지만 종의 소멸에는 의견이 달랐다. 이즈음, 다윈도 등장하는 데 아직은 저서인 <종의 기원>을 쓰기 전이나 라이엘이 쓴 <지질학 원리>에 관심이 많았고 영향을 받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여튼, 새로운 종의 탄생이라는(전체적 의미로)화두를 던졌다. 다윈 역시 살아 생전 종이 소멸되는 것을 볼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큰바다쇠오리'가 당시 멸종이 되었다. 당시 쉽게 사냥할 수 있을만큼 개체수가 많았던 원조 펭귄(세번째 주제)이라고 불리는 큰바다쇠오리의 마지막 개체는 사냥꾼에 의해 사라졌다(훗날 사냥꾼의 이름이 밝혀졌다). 식량과 기름 등 교역 상품이었다 하는 데 멸종된 이유는 인간의 무자비한 학살 때문이었다. 이를 보도못한 무역상이자 탐험가인 조지 카트라이트는 이런 행위라면 바다쇠오리는 남아 있지 않을거라는 예견을 했는 데 결국 사라진 종이 되어버렸다. 퀴비에는 대량 멸종을 자연 변화라 했지만 다윈이 겪었던 큰바다쇠오리는 보면 인간이 주된 범인이었다. 그러나 암모나이트 운명을 보면 대형 유공충들이 사라진 시점(네번째 주제)이 마지막 공룡이 죽었다는 그 시기라고 한다. 지금이야 행성 충돌이라는 말을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생각을 전혀 상상하지 못할 부분이었는 데 앨버레즈 부자에 의해 충돌 가설이 만들어졌다.

 

이것은 우리가 생물 종들에게 가하는 스트레스와 질적으로 다릅니다. 인간에 의한 다른 교란은 공간적으로 피해갈 수 있습ㄴ다. 그러나 기후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칩니다.

-본문 중-

 

대량으로 멸종을 한다는 건 어떤 재앙이 오지 않으면 쉽지 않다는 걸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황당한 가설이었으나 변화된 퇴적층을 보고 서서히 충돌 가설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젠 자연이 아닌 인간이 지배하는 지질 시대인 인류세(다섯번째 주제)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인간에 의해 건축이 만들어지고 자연을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버리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파괴는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구의 마지막 자원이라는 바다를 보면 셀 수 없고, 볼 수도 없는 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간다. 이런 바다 역시 지구 온난화로 산성화가 되어가면서 바다 생명체가 사라져 가는 데 그 중 산호초는 수백만종의 생명체와 공진화 하면서 살아간다. 만약, 바다에 산호초(일곱번째 주제)가 없다면 사막 같다는 저자의 표현이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산호초의 존재는 너무나 특별하다. 그러나 해양 산성화에 대한 인지도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는 데 1990년 후반 한 과학자가 탄소 배출이 해양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했었고 , 해양 산성화가 향후 몇 세기 안으로 발생할 것이라 했다. 당시, 심각한 결과에 외면했는 데 만약 그때 만이라도 이를 인지했더라면 어땠을까? 변화는 막을 수 없었더라도...그대로 지금과는 다르지 않을까 싶다.

 

이어, 지구의 80%이상의(지금도 맞을까..) 산소를 공급하는 아마존 숲이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다. 브라질 정부에서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에 정착하도록 장려하면서 숲 속의 나무를 베면서 목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나라의 빚으로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하게 되었다. 결국, 미국 생물학자 톰 러브조이가 제안한 벌채할 수종과 남길 수종 결정을 과학자에게 맡기자는 의견을 브라질 정부에 내면서 현재 보호구역이(아홉번째 육지의 섬) 만들어졌다. 나무들 역시 동물들과 쌍방향적이어서 동물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여덟번째 주제)는 저자의 문장은 둘의 상호관계에 생각을 하게 했다. 새는 곤충이 나무를 잠식하지 못하게 하고, 동물은 꽃가루를 옮기고 종자를 퍼뜨린다는 저자의 말에...인간 뿐만 아니라 동식물 역시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한 부분이었다. 여기에, 바다 뿐만 아니라 열대 지방에도 지구 온난화로 인한 문제는 크다는 데 그건 열대 지방이 가장 많은 종이 살고 있기 때문이란다. 여덟번째 주제인 숲과 나무를 읽을 때 각 구역마다 사는 종들이 달랐기에 만약 기후 변화 일어난다면 동물 뿐만 아니라 나무들 역시 이동을 할 거라 한다. 아주 서서히 이동하겠지만...그러나, 여기서 더 나은 곳으로 이동을 하더라도 이 역시 최선책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땅은 좁은 데 생명체가 넘쳐나면 약한 종은 죽기 마련이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생태계 파괴까지 이어진다.

 

 

호모사피엔스가 생물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침입자임에 틀림없다.

-본문 중-

 

그 옛날 하나의 대륙이 서서히 바다로 분리가 되면서 그곳에 맞게 동식물이 번식했다. 가까운 지역이 아닌 이상 이동이 어려웠던 그 시기는 이제 지나갔기에 어디서든 어떻게든 다른 종이 유입되는 건 쉬워졌다. 뉴욕주의 박쥐는 코가 하얗게 변하면서 죽는 흰코증후군에 걸려 수백마리 아니 동굴에서 흔히 봤던 박쥐들이 사라졌다. 어느 지역의 박취는 이 바이러스에 내성이 있어 죽지 않았으나 특정 지역에선 전멸하다시피 죽어나갔다. 이는 대륙이 이제는 새로운 하나로 되가는 신 판게아(열번째 주제)가 되면서 균류나 동물 등 새로운 곳으로 이동을 한다 인간에 의해서..때론, 이익을 얻기 위해 한 행동이 오히려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는 결과는 낳기도 한다는 점. 더 나아가 그럼 현 인류의 시작은 어디였는가? 독일의 네안데르 계곡에서 발견 되었다고 해서 네안데르탈인이라는 종(인류 이전..) 역시 출현했다 사라졌다 하는 데 현 인류에 DNA를 남기고 사라졌고, 이를 보고 저자는 멸종이 아닌 대체 되었음을 말한다. 왜 그들이 사라졌는지는 추측을 할 수 없지만, 대형 동물들 인간에 의해(식량으로...이들은 번식에 오랜 시간을 가지기에..)사라졌을 거라는 추측도 한다. 과거는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보는 방법이라고 하는 데 오늘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록 100% 정확한 답을 찾을 수는 없지만 멸종에 대한 특별한 주제는 모두가 고민하고 풀어야 하는 책임감을 가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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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 오베르쉬르우아즈 들판에서 만난 지상의 유배자 클래식 클라우드 30
유경희 지음 / arte(아르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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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서: 반 고흐 (클래식 클라우드 30) / 저 자: 유경희 / 출판사: 아르테

 

자신이 부분적이든 전면적이든 동일시한 이들에게 집착했으며, 그로 인해 괴로워하고 혼란스러워했다. 그에게는 자신을 투사할 대상이 필요했다. 평생을 그랬다.

-본문 중-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 반 고흐 그러나 살아생전 친부모에게 조차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동안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등 감성을 건드리는 작품들을 주로 보다보니 오늘 만난 클래식 클라우드 <반 고흐>에서 만난 다른 작품들은 마음에 어둠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만큼 고흐 역시 그랬다는 것이 아닐까? 워낙 알려진 화가이다 보니 기대를 하지 않고 여러 작품을 볼 수 있겠다 라는 생각으로 책을 펼쳤는 데 그 안에서 내가 만난 고흐는 새로운 화가였고불행해도 그럼에도 살아가려는 의지를 보여준 인물이었다. 그렇다보니 난 <반 고흐> 책을 읽은 후 총 세가지 분류로 고흐를 소개하려고 한다. 먼저, 1) 고흐의 질환은 어디서 왔는가? 다음으로는2) 고흐가 원하는 예술 공동체의 소망, 마지막으로 3)고흐의 죽음이다.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데 고흐 작품을 소개하기 보단 난 삶을 위주로 적고 싶었다.

 

고흐 하면 자신의 귀를 자르는 사건,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그곳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는 것을 단편으로만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에게 이런 걷잡을 수 없는 행동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 이를 소개 하기 앞서 먼저 고흐의 부모님을 알아야 한다. 아버지는 목사 어머니는 왕실 제본사의 딸로 소묘와 수채화를 그렸고, 청소나 뜨개질, 피아노 등 쉴새 없이 몸을 움직였다. 부지런하지만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정이었다는 것이다. 고흐는 친모의 유전을 고스란히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여기에 가족력인 질병 역시 고흐에게 이어졌다는 점이다. 동생하면 테오가 먼저 떠오르지만 남동생 코르는 전쟁에서 총으로 자살,여동생 빌레미나는 40년 동안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는 데 역시 자살, 테오도 그러했고 고흐도 그랬다질환에 대해 친모의 가문까지 올라가게 되는 데 독립 전쟁(1567~1648)으로 대혼란을 겪은 시기에 고흐의 외가 가문인 카르벤튀스는 정신병에 취약할 정도로 위태로웠고 이 시기에 외조부는 간질과 정신병으로 사망, 외숙부는 자살, 친모의 아홉 형제 중 간질병으로 또 자살로 생을 마감했었다. 여기서 조상들이 경험한 흔적인 '집단 무의식' 단어가 등장하는 데 이를 본 순간 그 상황에서 온전하게 살아간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았음을 ... 경악하면서 느꼈다.

 

고흐의 친모는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았지만 첫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죽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그러나, 그 뒤 태어난 고흐에게 사랑을 주었다면 빈센트 역시 다른 삶을 살아가지 않았을까? 어릴 적 부터 검은 상복을 입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랐고, 친모의 불안을 고스란히 받게 되었다는 점만 봐도 불안한 모습을 고흐가 떠오른다. 장남이지만 부모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고, 전도사로 화상으로 직업을 바꾸기도 했지만 한 곳에 정착하기 어려웠다. 어릴 적 부터 학교 수업을 빼먹기 일수였던 고흐에게 부모가 강제로 기숙사에 놓았던 일이 평생 상처와 상실감을 갖게 한 사건이었다. 심지어 고흐가 죽었을 때 조차도 친모는 오지 않았다. 타인과 어울리는 것 쉽지 않았고 쉽게 변하는 성정으로 주위 사람들고 부딧치곤 했었다. 고갱과의 불화 역시 서로 다른 성정이 결국 파국을 부른 일이었다. 하지만, 동생 테오에겐 의지하면서 동시에 그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 직접 병원으로 들어가기도 했었다.

 


그러나 고흐는 이런 모든 고통을 그림으로 이겨내려고 했다. 노동자의 삶을 그린 밀레를 좋아하던 고흐는 평신도로 보리나주에 갔을 때 그곳에서 가난으로 사는 사람들을 보고 자신에게 주어진 집과 빵 등을 거부했다. 오로지 이들과 같은 곳에 서고 공감하고 싶었다. 종교 영향이 강했기에 가능했던 것인데 가난의 실체를 알리려고 그린 그림을 본 한 목사가 그림을 그리라는 조언에 그때부터 그림이 시작되었다. 어릴 적 부터 틈틈히 소묘나 그림을 그렸기에 이제서야 자신의 길을 깨닫게 되면서 27살에 시작해서 37살까지 많은 작품을 남기게 되었다. 10년 이지만 그 중 마지막 3년에 남긴 작품수는 300여 점이었다. 1852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고흐는 1885년 네덜란드를 영원히 떠나 프랑스, 영구,벨기에 의 여러 도시에서 살았다. 저자는 빈센트 고흐가 거주했던 모든 도시를 가지 못하고 생애 마지막 3년에 머물렀던 세 곳을 둘러봤다. 고향을 떠나 파리에 도착했지만 모델을 구하기도 어려웠고, 화가로 살기로 했지만 주위에 비참하게 사는 여인을 보면 어떤 의무감에 상대방의 고통을 떠안으려고 했었다. 창녀 시엔과의 짧은 생활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반대로 고흐에게 위로를 해준 인물도 있었는 데 화방을 운영하는 탕기 영감이었다. 더 나아가 아를 시절에 우체부 조제프 룰랭과 지누 부인 역시 고흐에게 중요한 사람들이다. 귀를 자른 사건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그를 그들이 보살폈다는 점이다. 어디에도 쉽게 섞이지 못한 고흐는 그래도 예술 공동체 라는 희망이 있었다. 당시, 이런 공통제가 유행을 하듯 해서 여러 화가들은 시골이나 어느 지역을 삼아 그곳으로 가 그림을 그리곤 했었다. 빈센트 역시 이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여러 화가들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유일하게 답장이 온 건 고갱 뿐이었다. 그것도 흔쾌한 답변이 아닌 것으로 말이다. 마지막으로 정착한 아를에서 고갱과 같이 이상적인 꿈을 상상한 빈센트 반 고흐 그러나 그곳이 실상은 파국이 될 것란 것을 알 지 못했다. 고갱은 경제적 즉, 테오의 화랑으로 통해 더 큰 사업을 할 생각으로 고흐의 편지에 수락을 했었다. 반 고흐와 달리 거칠고 자기 주장이 강한 고갱, 반대 였던 고흐...두 성정만 봐도 오래가지 못하는 걸 알 수 있다. 문득, '가족'이 낯설었던 그에게 공동체는 가족를 투영한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자연과 상상.

빈세트와 고갱은 이 두 모티브에서 언제나 상반되는 의견을 보였다. 빈센트는 아무것도 상상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자연을 보고 느낀대로 그렸다. 반면 고갱은 먼저 사물을 보고 그것을 작업실에 와서 상상하면서 그리는 상징적인 수법을 중요시했다.

-본문 중-

 



고흐의 마지막 3년은 가장 할 수 있는 많은 작품을 남기기 위해 열정을 쏟은 거 같다. 직접 찾아 들어간 정신병원에서도 그림을 멈추지 않았다. 때론, 심각해 미술 도구를 압수하기도 했었지만 도저히 죽음을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작품들은 정말 생을 마감하려고 했던 인물인가 싶었다. 생레미를 떠나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오게 되었는 데 그건 정신과 의사인 가세를 소개 해 주었기 때문이다. 의사이면서 아마추어 화가 겸 수집가였기에 고흐에겐 더할 나위 없이 긍정적 상황이었다. 초반 서로의 모습은 실망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각자의 진가를 알게 되었지만 이 인연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아무래도, 가세의 딸과 고흐가 어떤 관계(연인 또는 집착...정확하지 않다)가 있었기에 사이가 멀어졌다는 점이다. 매번 여성에게 퇴짜를 맞는 고흐에게 있어 마지막 사랑(?) 일 수도 있었는 데 결국 결별이 되었고 이로 인해 다른 일도 겹치면서 가셰와 멀어지게 되었다. 즉, 너무나 익숙한 거절과 배반이 다시 감정을 휘몰아쳤다.

 

그러던 어느 날, 1890년 7월 27일 일요일, 빈세트는 그림을 그리러 나가던 그는 빈손으로 배를 움켜쥐고 숙소로 돌어왔다. 이를 이상하게 본 주인으로 인해 총을 맞은 것을 확인했고, 의사 가셰를 불렀지만 누구도 총알을 제거 할 수 없었다. 가셰는 정신과 의사였기 때문이다. 테오에게 급하게 연락을 취해 사고 이튿날에 도착한 동생은 형의 모습을 보고 살아있지만 정말 살 수 있는 것인지..복잡한 심정이었을 테다. 그리고 그렇게 빈센트 반 고흐는 동생 품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죽고 싶구나"라고 말하면서. 그런데, 당시 사건기록을 보면 자해한 총은 발견 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마을에서 유일하게 사라진 총을 소지한 인물이 부유층의 한 소년임을 알려준다. 훗날, 고흐가 그 총을 훔쳤다고 하는 데 그건 알 수 없는 일....고흐는 어디서? 왜?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절대 말하지 않았기에 진실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살을 할 사람이 몇 일 전 미술 도구를 다량으로 구입했다는 점에서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는 데 저자가 말한...힘겨운 날이 많았던 고흐에게 이 사건(총을 맞은 사건)은 그 순간조차 운명처럼 받아들인게 아니었나 라고 했다. 여기서 또 하나 당시 총을 맞고 있는 고흐를 외과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았던 가셰는 비난을 받았다는 데 왜 데려가지 않았고, 심지어 동생 테오 역시...왜 그랬을까?

 

이렇게 세상을 떠난 반 고흐...살아생전 명성을 얻지 못했다지만 오리에 라는 젊은 비평가로 인해 명성이 알려지는 기쁜 순간도 있었고, 비록 한 점이나 작품도 팔렸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끝은 미스터리지만...그가 남기고 간 작품들은 여전히 사랑받고, 감명을 준다는 점을 보면 열정적인면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자연에 대해 그러했듯이 예술에 대해서도 연신 감탄한 빈센트는 자주 흔들렸고, 자극받았고, 위로받았다. 그는 예술가야말로 어떤 순간에도 진정으로 감동할 줄 아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본문 중-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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