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 오베르쉬르우아즈 들판에서 만난 지상의 유배자 클래식 클라우드 30
유경희 지음 / arte(아르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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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서: 반 고흐 (클래식 클라우드 30) / 저 자: 유경희 / 출판사: 아르테

 

자신이 부분적이든 전면적이든 동일시한 이들에게 집착했으며, 그로 인해 괴로워하고 혼란스러워했다. 그에게는 자신을 투사할 대상이 필요했다. 평생을 그랬다.

-본문 중-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 반 고흐 그러나 살아생전 친부모에게 조차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동안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등 감성을 건드리는 작품들을 주로 보다보니 오늘 만난 클래식 클라우드 <반 고흐>에서 만난 다른 작품들은 마음에 어둠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만큼 고흐 역시 그랬다는 것이 아닐까? 워낙 알려진 화가이다 보니 기대를 하지 않고 여러 작품을 볼 수 있겠다 라는 생각으로 책을 펼쳤는 데 그 안에서 내가 만난 고흐는 새로운 화가였고불행해도 그럼에도 살아가려는 의지를 보여준 인물이었다. 그렇다보니 난 <반 고흐> 책을 읽은 후 총 세가지 분류로 고흐를 소개하려고 한다. 먼저, 1) 고흐의 질환은 어디서 왔는가? 다음으로는2) 고흐가 원하는 예술 공동체의 소망, 마지막으로 3)고흐의 죽음이다.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데 고흐 작품을 소개하기 보단 난 삶을 위주로 적고 싶었다.

 

고흐 하면 자신의 귀를 자르는 사건,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그곳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는 것을 단편으로만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에게 이런 걷잡을 수 없는 행동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 이를 소개 하기 앞서 먼저 고흐의 부모님을 알아야 한다. 아버지는 목사 어머니는 왕실 제본사의 딸로 소묘와 수채화를 그렸고, 청소나 뜨개질, 피아노 등 쉴새 없이 몸을 움직였다. 부지런하지만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정이었다는 것이다. 고흐는 친모의 유전을 고스란히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여기에 가족력인 질병 역시 고흐에게 이어졌다는 점이다. 동생하면 테오가 먼저 떠오르지만 남동생 코르는 전쟁에서 총으로 자살,여동생 빌레미나는 40년 동안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는 데 역시 자살, 테오도 그러했고 고흐도 그랬다질환에 대해 친모의 가문까지 올라가게 되는 데 독립 전쟁(1567~1648)으로 대혼란을 겪은 시기에 고흐의 외가 가문인 카르벤튀스는 정신병에 취약할 정도로 위태로웠고 이 시기에 외조부는 간질과 정신병으로 사망, 외숙부는 자살, 친모의 아홉 형제 중 간질병으로 또 자살로 생을 마감했었다. 여기서 조상들이 경험한 흔적인 '집단 무의식' 단어가 등장하는 데 이를 본 순간 그 상황에서 온전하게 살아간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았음을 ... 경악하면서 느꼈다.

 

고흐의 친모는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았지만 첫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죽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그러나, 그 뒤 태어난 고흐에게 사랑을 주었다면 빈센트 역시 다른 삶을 살아가지 않았을까? 어릴 적 부터 검은 상복을 입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랐고, 친모의 불안을 고스란히 받게 되었다는 점만 봐도 불안한 모습을 고흐가 떠오른다. 장남이지만 부모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고, 전도사로 화상으로 직업을 바꾸기도 했지만 한 곳에 정착하기 어려웠다. 어릴 적 부터 학교 수업을 빼먹기 일수였던 고흐에게 부모가 강제로 기숙사에 놓았던 일이 평생 상처와 상실감을 갖게 한 사건이었다. 심지어 고흐가 죽었을 때 조차도 친모는 오지 않았다. 타인과 어울리는 것 쉽지 않았고 쉽게 변하는 성정으로 주위 사람들고 부딧치곤 했었다. 고갱과의 불화 역시 서로 다른 성정이 결국 파국을 부른 일이었다. 하지만, 동생 테오에겐 의지하면서 동시에 그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 직접 병원으로 들어가기도 했었다.

 


그러나 고흐는 이런 모든 고통을 그림으로 이겨내려고 했다. 노동자의 삶을 그린 밀레를 좋아하던 고흐는 평신도로 보리나주에 갔을 때 그곳에서 가난으로 사는 사람들을 보고 자신에게 주어진 집과 빵 등을 거부했다. 오로지 이들과 같은 곳에 서고 공감하고 싶었다. 종교 영향이 강했기에 가능했던 것인데 가난의 실체를 알리려고 그린 그림을 본 한 목사가 그림을 그리라는 조언에 그때부터 그림이 시작되었다. 어릴 적 부터 틈틈히 소묘나 그림을 그렸기에 이제서야 자신의 길을 깨닫게 되면서 27살에 시작해서 37살까지 많은 작품을 남기게 되었다. 10년 이지만 그 중 마지막 3년에 남긴 작품수는 300여 점이었다. 1852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고흐는 1885년 네덜란드를 영원히 떠나 프랑스, 영구,벨기에 의 여러 도시에서 살았다. 저자는 빈센트 고흐가 거주했던 모든 도시를 가지 못하고 생애 마지막 3년에 머물렀던 세 곳을 둘러봤다. 고향을 떠나 파리에 도착했지만 모델을 구하기도 어려웠고, 화가로 살기로 했지만 주위에 비참하게 사는 여인을 보면 어떤 의무감에 상대방의 고통을 떠안으려고 했었다. 창녀 시엔과의 짧은 생활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반대로 고흐에게 위로를 해준 인물도 있었는 데 화방을 운영하는 탕기 영감이었다. 더 나아가 아를 시절에 우체부 조제프 룰랭과 지누 부인 역시 고흐에게 중요한 사람들이다. 귀를 자른 사건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그를 그들이 보살폈다는 점이다. 어디에도 쉽게 섞이지 못한 고흐는 그래도 예술 공동체 라는 희망이 있었다. 당시, 이런 공통제가 유행을 하듯 해서 여러 화가들은 시골이나 어느 지역을 삼아 그곳으로 가 그림을 그리곤 했었다. 빈센트 역시 이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여러 화가들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유일하게 답장이 온 건 고갱 뿐이었다. 그것도 흔쾌한 답변이 아닌 것으로 말이다. 마지막으로 정착한 아를에서 고갱과 같이 이상적인 꿈을 상상한 빈센트 반 고흐 그러나 그곳이 실상은 파국이 될 것란 것을 알 지 못했다. 고갱은 경제적 즉, 테오의 화랑으로 통해 더 큰 사업을 할 생각으로 고흐의 편지에 수락을 했었다. 반 고흐와 달리 거칠고 자기 주장이 강한 고갱, 반대 였던 고흐...두 성정만 봐도 오래가지 못하는 걸 알 수 있다. 문득, '가족'이 낯설었던 그에게 공동체는 가족를 투영한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자연과 상상.

빈세트와 고갱은 이 두 모티브에서 언제나 상반되는 의견을 보였다. 빈센트는 아무것도 상상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자연을 보고 느낀대로 그렸다. 반면 고갱은 먼저 사물을 보고 그것을 작업실에 와서 상상하면서 그리는 상징적인 수법을 중요시했다.

-본문 중-

 



고흐의 마지막 3년은 가장 할 수 있는 많은 작품을 남기기 위해 열정을 쏟은 거 같다. 직접 찾아 들어간 정신병원에서도 그림을 멈추지 않았다. 때론, 심각해 미술 도구를 압수하기도 했었지만 도저히 죽음을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작품들은 정말 생을 마감하려고 했던 인물인가 싶었다. 생레미를 떠나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오게 되었는 데 그건 정신과 의사인 가세를 소개 해 주었기 때문이다. 의사이면서 아마추어 화가 겸 수집가였기에 고흐에겐 더할 나위 없이 긍정적 상황이었다. 초반 서로의 모습은 실망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각자의 진가를 알게 되었지만 이 인연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아무래도, 가세의 딸과 고흐가 어떤 관계(연인 또는 집착...정확하지 않다)가 있었기에 사이가 멀어졌다는 점이다. 매번 여성에게 퇴짜를 맞는 고흐에게 있어 마지막 사랑(?) 일 수도 있었는 데 결국 결별이 되었고 이로 인해 다른 일도 겹치면서 가셰와 멀어지게 되었다. 즉, 너무나 익숙한 거절과 배반이 다시 감정을 휘몰아쳤다.

 

그러던 어느 날, 1890년 7월 27일 일요일, 빈세트는 그림을 그리러 나가던 그는 빈손으로 배를 움켜쥐고 숙소로 돌어왔다. 이를 이상하게 본 주인으로 인해 총을 맞은 것을 확인했고, 의사 가셰를 불렀지만 누구도 총알을 제거 할 수 없었다. 가셰는 정신과 의사였기 때문이다. 테오에게 급하게 연락을 취해 사고 이튿날에 도착한 동생은 형의 모습을 보고 살아있지만 정말 살 수 있는 것인지..복잡한 심정이었을 테다. 그리고 그렇게 빈센트 반 고흐는 동생 품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죽고 싶구나"라고 말하면서. 그런데, 당시 사건기록을 보면 자해한 총은 발견 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마을에서 유일하게 사라진 총을 소지한 인물이 부유층의 한 소년임을 알려준다. 훗날, 고흐가 그 총을 훔쳤다고 하는 데 그건 알 수 없는 일....고흐는 어디서? 왜?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절대 말하지 않았기에 진실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살을 할 사람이 몇 일 전 미술 도구를 다량으로 구입했다는 점에서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는 데 저자가 말한...힘겨운 날이 많았던 고흐에게 이 사건(총을 맞은 사건)은 그 순간조차 운명처럼 받아들인게 아니었나 라고 했다. 여기서 또 하나 당시 총을 맞고 있는 고흐를 외과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았던 가셰는 비난을 받았다는 데 왜 데려가지 않았고, 심지어 동생 테오 역시...왜 그랬을까?

 

이렇게 세상을 떠난 반 고흐...살아생전 명성을 얻지 못했다지만 오리에 라는 젊은 비평가로 인해 명성이 알려지는 기쁜 순간도 있었고, 비록 한 점이나 작품도 팔렸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끝은 미스터리지만...그가 남기고 간 작품들은 여전히 사랑받고, 감명을 준다는 점을 보면 열정적인면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자연에 대해 그러했듯이 예술에 대해서도 연신 감탄한 빈센트는 자주 흔들렸고, 자극받았고, 위로받았다. 그는 예술가야말로 어떤 순간에도 진정으로 감동할 줄 아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본문 중-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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