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 - 작은 삶에서 큰 의미를 찾는 인생 철학법
이충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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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서: 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 / 저 자: 이충녕 /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철학 이론은 항상 한 사람이 세상의 조건과 소통하는 경험에서 출발하며,

여기서 피어오르는 질문에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 결과다.

그렇기에 철학 이론은 결코 삶의 실질적인 문제들과 무관하지 않다.

오히려 삶의 가장 깊숙한 부분을 관통한다.

-본문 중-

 

철학이란 무엇인가? 과거엔 이 분야를 깊게 생각하지 않았고, 어렵다는 생각에 가까이 하지 않았다. 하지만, 늘 관심분야였고 여러 책을 통해 조금씩 철학을 알게 되었다. 철학은 분야를 가르지 않고 어디에서나 만날 수가 있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게 철학이 아니라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게 '철학'이다. 즉, 철학은 나를 알고 더 나아가 타인과 삶을 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만난 <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는 여러 명의 철학자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이념을 알려주는 데 저자는 여기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 놓아서 읽는 내내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기존에 알던 철학자와 낯선 철학자 그리고 붓다 등 세상을 움직이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는 게 놀라웠다. 때론 그들의 생각이 상반되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결론은 그 과정에서 걸러내는 결과는 삶의 윤택하게 한다는 공통점이다.

 

책은 크게 네 가지 주제로 나뉘고 그 안에서 다시 한번 세세하게 분류되어 설명한다. <자신을 신뢰하고 사랑하고 싶을 때> < 나와 타인의 관계를 이해하고 싶을 때 > <주변의 모든 것을 의심해보고 싶을 때 > <살아갈 날들을 고민해보고 싶을 때> 다. 산다는 건 수많은 감정과 이성과 싸워(?)가며 하루하루를 이겨내는 것 같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은 긍정과 부정에너지 두 가지를 가지고 있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평형을 이룰 때 행복이라고 했다. 언제나 어느 한쪽만을 느끼면서 산다는 건 말도 안되고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또한, 세상은 과거에 비해 윤택해진 건 확실하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거 역시 확실하고 심지어, 수명도 늘어났다. 그러나 동시에 너무 많은 물질로 통해 선택의 연속이라는 스트레스가 생겨났다. 인간의 심리는 참 오묘하다. 두 가지 중 선택은 고민없이 하는 데 그 이상이 되면 생각이 많아져 풍족함이 오히려 혼란을 가중한다. 여기서, 독일 철학자 칸트는 규칙를 따름으로써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즉, 자유의 제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건 억압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규칙을 정함으로써 본인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하며 이것을 자유라고 했다. 이성이 동반해야하는 것이라 쉽게 수긍을 하기엔 난해한 부분이나 생각해 보면 '자유'라는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을 하게 한다.


소소한 일상으로부터 통합적인 경험을 얻어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인간은 건강한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없다. 인간은 대부분의 시간을 소소함 속에서 보낸다. 이 시간이 무력하고 무의미하다면

삶의 대부분을 상실하는 것이다.

-본문 중-


 




예전에 동양신화에 대한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너무 익히 들었고, 또 어느 분야에서 종종 등장하는 데 둘의 차이는 너무 확연하다. 서양 신화는 인간의 욕망을 100% 다루고 있는 반면 동양신화는 인간으로서 해야할 인덕을 강조하는 데 여기엔 가족 역시 포함 되어있다. 두 번째 주제인 타인과의 관계에 공자를 소개하는 데 그가 생각한 사회는 부모가 자식에게 행복을 주듯 사회 역시 그래야 한다는 점이다. 표면적으로는 실천도 힘들 뿐만 아니라 왜 해야하는지...쉽게 납득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을 해보면 전혀 나와는(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관계가 없어도 누군가는 희생을 한 기록이 역사에 남아있다. 공자가 말하는 넓은 시야로는 모두가 할 수는 없지만 여력이 닿는 한 인간은 타인을 도와주는 마음이 있음을 알게 되고, 단 그 비중이 삶에서 어느 정도냐가 다를 뿐이다. 또한, 타인과의 관계를 이어갈 때는 서로 다른 사람이라 의견 차이는 있다. 대화의 본질을 이끌어 내는 게 바로 서로 다른 생각이지 대화를 어렵게 만드는 게 아니다. 어렵게 만드는 건 '상대방을 무시하는 마음'이라는 것.

 

이를 두고 미국 철학자 도널드 데이비슨은 '자비의 원리'라는 '원초적 번역 문제'라는 것과 관련해서 나온 주장으로 언어를 두고 어떻게 번역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던졌다. 결론은, 대부분의 언어는 어디서든 비슷한 의미를(합릭적, 인간적)두고 사용한다는 점이다. 분명 생각의 차이는 있고 그 안에서 인간은 차이와 우월감이 주는 즐거움은 인간 심리를 지탱하는 요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건 사태를 정확하게 보는 것을 막기에 먼저 적은 차이를 크게 보기 보단 상대방과 나의 많은 공통점을 인정하면서 대화를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득, 그동안 난 어떤 대화로 시작하고 끝을 맺었는지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난 적절하게 질문을 던졌고, 대답을 했는지... 더 나아가 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고민해 보기도 하는 데 언어란게 사람들이 쓰고 의미가 부여되면 개념이 성립이 된다. 독일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는 인간의 언어는 오래된 도 라고 비유했다. 복잡한 골목과 낡은 건물들 그 안에서 새롭게 건축되는 건물들을 마치 언어 역시 존재하고 새롭게 탄생되는 것을 말했다. 같은 의미라도 누군가에겐 보편적으로 다른 이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한 가지로 시선을 던질 필요가 없다.

 

스스로의 생각을 의심해보는 것은 제대로 된 지혜를 획득해 나가는 일의 시작점이다.

-본문 중-

 

그리고 3부에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철학으로 증오에 대한 생각을 상대방에 대한 깊은 관심을 전제라고 한 헝가리 출신 철학자 아우렐 콜나이를 소개한다. 그동안 증오가 그냥 분노로만 생각을 했었는 데 이 단어를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보기도 했다. 악이 점멸하기 위해 증오가 필요한 것인가? 오히려 악인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세상을 구한다는 넓은 의미로 설명을 하고 있다. 생각을 계속 하다보면 왜 인간에게 이런 감정이 생겼는 지 표면적으로 말고 의심을 가지고 질문하게 되면 생각지 못한 결론이(정확한 답은 아니나)나올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소크라테스 처럼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철학..사실, 사람들은 정답을 알고 싶을 뿐 그 과정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누구보다 지혜롭다고 들었지만 이마저도 타인과의 질문에서 답을 찾은 철학자다. 여기에, 어떤 어두운 상황에서도 긍정적 생각을 잃지 않도록 옥중에서 <철학의 위안>을 쓴 보에티우스 철학자를 소개하는 데 악인이 당당하게 잘 살아도 악을 행하기에 불행하다는 점을 말하는 데 누구라도 쉽게 수긍할 수는 없을테다, 하지만 인류는 문학,예술, 철학 등을 통해 위로를 발전시켰고, 보에티우스에게 있어 철학은 그런 존재였다. 말년엔 감옥에 가게 되었지만 그의 생각이 옳고 그릇된 것을 떠나 철학이 주는 위로가 무엇인지(넓은 시야로...) 생각을 할 것을 던져 주었다.

 

삶의 끝에 이르러 자신의 삶이 진정으로 행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은 경우

그 이유를 즐거움의 양보다는 질에서 찾는다고 이야기했다.

-본문 중(존 스튜어트 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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