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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융 심리학 - 이렇게 계속 살아도 괜찮을까
제임스 홀리스 지음, 정명진 옮김, 김지용 감수 / 21세기북스 / 2025년 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그 시간들을 어떻게 하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인생에 대해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갈 수록 깊이 고찰하게 되는데 어느 순간 내 나이가 이렇게 되었나? 그동안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라고 자문을 하는 때가 생긴다. 잘 살았든 그렇지 못했든 누구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오늘 만난 <마흔에 읽는 융 심리학>은 지난 온 세월을 두고 앞으로 계속 이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스스로 행복해야 주위도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러나, 정작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 이건 어쩔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이다.
책은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조언대신 흐르는 강물처럼 문장이 자연스럽게 와 닿는다. 짧은 예시를 보여주지만 만약 이론적 설명만 있었다면 공감이 쉽지 않았을 테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삶을 시작하는 것도 아니며 더더욱 지나간 시간도 아니다. 방황과 선택을 지난 시점에서 정류장이라는 곳에서 멈춰 삶을 다시 재정비를 해야할 시기라 생각한다. 사람을 변해야 하고 변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 자리에 머문다면 삶의 질은 낙후가 된다. 이는 저자가 "우리 내면에 의식적 통제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의지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일 때만 변화할 것이다"라는 것과 의미가 같다.
융을 통해 인간에게서 소멸된 감정들을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나게 하는 문장을 보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자문을 해 본다. 그 중 8장인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시대' 라는 소제목은 누구나 아차 싶었을 테다. 앞만 보고 달려가라는 사회에 아파도 느끼지 못하고 설령 그렇더라고 말하지 못하는 그 시간이 익숙해져 무엇도 표현하지 못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내면이 경험 되지 않을 때 외부로 투사됨을 불안하게 바라봤는데 이는 제대로 내면의 삶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것은 외적인 것에 더 강하게 끌리게 되는 것임을 피력했다. 외부 자극은 극단적인 것이 있으며 쉽게 자신의 내면을 잃어버리기 쉽기에 위험하다는 말이다.
고요하면서 강한 울리는 주는 도서 <마흔에 읽는 융 심리학>. 급하게 읽기 보단 책에 집중을 하면서 읽으면 더 깊이 생각할 수가 있다. 마지막으로 미래를 생각하기 보단 살아온 날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니 남은 시간을 조금은 다르게 보낼 수 있을거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