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캘린더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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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함의 이면.

오가와 요코 저, ‘임신 캘린더’를 읽고.

오가와 요코에게 1991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작품, ‘임신 캘린더’를 포함하여 이 책에는 ‘기숙사’, ‘해 질 녘의 급식실과 비 내리는 수영장’이라는 두 단편소설이 더 실려 있다. 이 글은 세 작품 중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임신 캘린더'에 대한 감상문이다. 

임신을 경험해 본 적도, 경험할 수도 없는 내가 이 책을 손에 들게 된 이유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 먼저, 몇 달 전부터 오가와 요코의 글이 좋아졌다. 그리고 마음이 심란하고 시간에 쫓기는 일상으로 치달을 때 그녀의 글을 읽으면 환기가 되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쉬이 지나칠 사소한 것들의 소중한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되돌아보게 도와주는 내 인생의 antidote랄까. 책장에는 아직 대기 중인 그녀의 작품 두 권이 더 있다. 괜히 마음이 놓인다.

딱 한 번 나는 아내를 통해 임신 전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아내의 배가 서서히 불러오는 과정은 진기했다. 머리로 아는 지식과 현실 속 경험은 언제나 괴리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의사인 아내와 생물학자인 남편에게도 그 놀라움은 마찬가지였다. 불러오는 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나, 그 배를 옆에서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사람에게나, 생물학적 원리를 상세하게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나 똑같이 신기했던 것이다. 정확히 예정일에 맞춰 아들이 태어났고, 터지면 어떡하나 싶을 정도로 단단히 부풀어 오른 아내의 배는 곧 터진 풍선처럼 쭈그러들었다. 아이가 태어난 날을 떠올리면, 사실 나는 아들 녀석보다는 서른 시간 직접 해산의 고통을 겪어냈던 아내의 모습이 기억에 더 많이 남아있다. 다리를 벌리고 힘을 주던 그 숙연했던 장면. 땀이 범벅이 되어 머리카락이 얼굴과 목과 이마에 끈적하게 달라붙어있던 아내의 모습. 나는 그 시끄러웠던 적막 속에서 첨예한 긴장을 느끼며 무능력하게 서 있기만 했다. 모든 게 처음이었고, 모든 게 낯설었으며, 모든 게 서툴렀다. 다행히 모두 무사했다. 지금 생각하면 기적인 것만 같다. 하나님께 감사한다. 나에게 아이의 생일은 아내가 죽다 살아난 날이기도 하다. 그 이후로도 아내의 쭈그러든 배를 만지면 나는 그날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못 숙연해진다. 

위에 적은 나의 기억은 아무래도 간접적이고 정제된 입장일 것이다. 임신 당사자의 직접적인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남편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예민해진 아내와 식성이 변한 아내를 맞추려고 노력하면서도 어설플 수밖에 없는 모습을 가능한 신경전 없이 유쾌하게 헤쳐나가는 것밖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남편의 입장, 즉 임신 당사자가 아닌 임신 당사자를 간접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이 마치 ‘임신’ 하면 생각나는 자연스러운 공식 입장이 된 것 같아 나는 종종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이 작품 ‘임신 캘린더’는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물론 이것 역시 소설이라는 허구적 장치와 일인칭 관찰자 시점이라는 제한 때문에 간접적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순 없겠지만 말이다.


언니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기까지 같은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여동생이 이 작품의 화자다. 여동생은 언니의 임신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 혹은 곧 태어날 아이로 인해 생겨날 긴장 어린 행복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 자신이 직접 임신을 한 게 아니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임신 때문에 입덧을 하게 된 언니와 그 언니를 수발하며 무능력하게 조심스러운 형부, 그리고 그 때문에 요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밖에 나가서 밥을 먹어야 하는 자신의 신세를 기록해나간다.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얻어온 그레이프 후르츠로 잼을 만들어 과체중으로 임산부로서 위험한 상태에 처한 언니에게 계속해서 그 잼을 공급해준다. 그 과일에 아이에게 해로울지도 모르는 물질이 들어있다는 말을 들었고 알고 있음에도 그 일을 지속한다. 여동생의 행동에 의아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언니의 행복이나 아이의 생명을 해치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게 알 것 같으면서도 끝내 알 수 없는 입장을 고수하다가 작품은 끝에 다다른다. 

여동생뿐만이 아니다. 임신 당사자인 언니 역시 임신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기쁨과 행복에 들뜨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입덧으로 아무것도 못 먹다가 입덧이 사라진 즉시 먹는 기계가 된 것처럼 쉬지 않고 먹어대는 동물의 이미지마저도 떠오를 정도였다. 곧 태어날 소중한 생명을 품고 있는 위대한 예비 엄마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이 작품에서 거의 무시되는 형부 정도의 입장밖에 이해하지 못하지만, 어쩌면 언니나 여동생이 ‘임신’에 대한 직접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조금은 섬뜩하다는 생각, 조금은 이해할 것만 같은 생각, 그러나 나중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다다르고야 말았다. 임신 우울증, 산후 우울증 같은 단어가 언젠가부터 낯설지 않게 들리는 것도 어쩌면 그런 것들이 임신에 대한 임신 당사자의 솔직한 입장이 더 진하게 담겨있는 건 아닐까, 새로 태어나는 생명에 대한 숭고함 앞에서 감히 입 밖으로 내놓지 못하는 그 무언가가 있지는 않을까, 이런 걸 미리 알았다면 조금이라도 더 멍청하지 않은 남편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답 없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

#현대문학
#김영웅의책과일상



출처: https://rtmodel.tistory.com/1257 [흩 어 진 행 복 의 조 각 을 찾 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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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번 써봅시다 - 예비작가를 위한 책 쓰기의 모든 것
장강명 지음, 이내 그림 / 한겨레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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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기에 대한 동네 형의 진심 어린 조언.

장강명 저, ‘책 한번 써봅시다’를 읽고.

6년 만에 힘들게 박사 학위를 받아냈을 때, 사람들이 박사라고 불러주면 고맙고 기분이 좋았다. 부끄럽지 않았다. 나름대로 그에 합당한 애를 써서 성취한 대가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작년부터 새로이 듣게 된 ‘작가’라는 단어 앞에선 부끄럽기만 하다. 그 말을 듣기에 나는 여전히 무언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작년 말, 나는 한 일인 출판사 대표의 위험지수 높은 고마운 믿음 덕분에 책 한번 써본, 소위 ‘저자’가 되었고, 또 얼마 전에는 한 작은 기독교 출판사에서 개최한 신춘문예에서 단편소설 부문 가작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작가라고 불리면 부끄러움이 앞선다. 그리고 이 부끄러움은 두 번째 책을 낸다고 해서 쉽게 사라질 것 같지도 않다. 여전히 나는 나 자신을 작가라고 부르기에 한참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여전히 서점에 가면 글쓰기에 관계된 책들 앞에서 기웃거리고는 한두 권을 훑어본다. 구매하는 책은 거의 없다. 그러나 서점에 갈 때마다 빠지지 않고 하는 의식 중 하나다. 내 마음엔 여전히 글쓰기에 대한 갈증이 있다는 말이다. 

나와 같은 세대인 작가, 장강명의 ‘책 한번 써봅시다’를 구매하게 된 이유는 그의 유튜브 강의를 몇 개 들어본 경험과 그가 말하는 스타일에서 짐작되는 진정성 때문이다. 나에게 비친 장강명은 자기 자신의 객관적인 위치와 주관적인 생각을 애써 포장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담백하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말속에서 진정한 겸손함을 보았다. 거짓이 배인 입바른 겸손함이 아닌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줄 아는 겸손함이었다. 나는 그런 모습이 좋았다. 

나의 직관적인 느낌과 판단은 옳았던 것 같다. 이 책에서 그는 그가 작가가 되기까지의, 그리고 작가가 되고 나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예비작가에게 진심 어리고 실제적인 조언을 아낌없이 선사한다. 글쓰기에 관련된 많은 책들을 꽤 오랫동안 훑어본 나로서는 이 책이 가지는 차별적인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장강명이라는 사람의 진정성이 느껴져서 좋았다. 

장강명은 책이 중심에 있는 사회, 즉 책이 의사소통의 핵심 매체가 되는 사회를 꿈꾼다. 구체적인 청사진을 그릴 줄도 모르고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그런 세상을 소망한다. 그곳은 생각이 퍼지는 속도보다는 생각의 깊이와 질을 따지는 곳이라고 말한다. SNS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사람들은 점점 긴 글을 읽지 않는다. 카드 뉴스와 같은 짧은 글, 요약 버전의 글을 선호하며, 이젠 그마저도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매체로 대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글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사람들은 긴 글만이 아닌 글 자체를 읽지 않게 되고 있는 것이다. 읽기 않고 보는 시대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하지 않게 되면 나중엔 결국 그것을 못하게 되는 것처럼, 언젠가 인류가 읽지 않게 되는 세상이 불쑥 도래할까 두렵기도 하다. 평소에 내가 가진 생각과 공명을 이뤄 나는 그의 소망에 두 손을 모았다. 

뿐만이 아니다. 그는 ‘책 쓰기’라는 주제로 써진 수많은 책들의 거품을 언급한다. 많은 글쓰기 관련 책들은 자전거 타기를 가르쳐주겠다면서 연습하기 좋은 공원의 조건을 길게 나열하는 것과 같다는, 단번에 공감이 가는 비유를 든다. 그가 말했듯이 자전거는 적당히 평평하고 사람 적은 가까운 공터에 가서 연습하면 된다. 글 쓰기도 마찬가지다. 어떤 특별한 비법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비법을 찾아 글쓰기 관련 책들을 탐독하는 건 아마도 자기 계발서에 심취해 남들이 모르는 은밀한 샛길을 찾아 피라미드 위로 올라가려는 기회주의자으 마음과 같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장강명은 강조한다. 그런 지엽적인 것들 말고, 글 쓰기의 본질은 하나의 테마로 200자 원고지 600매를 쓰는 일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는 전문 레이서가 아닌 동네 형의 자리에서 글 쓰기에 대한 진정성 어린 조언을 하기 시작한다.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글 쓰기는 재능이 없어도 된다. 글쓰기 잠재력은 함부로 판단하기 어렵다. 학창 시절 들었던 선생님의 평은 참고사항일 뿐이다.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 특히 이 부분에선 단락을 그대로 아래에 옮겨본다. 아마 글 쓰기에 관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에게 확 꽂히는 말이 아닐까 해서다.

| 형편없는 책을 발표해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까 봐 무서워서 책을 쓰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선택이 있다. 첫째, 책을 쓰지 않고 계속 후회하며 사는 것. 둘째, 졸작을 내고 후회하는 것. 셋째, 멋진 책을 쓰고 후회하지 않는 것. 물론 멋진 책을 쓰는 게 제일 좋다. 그리고 형편없는 작품을 내고 괜히 썼다며 후회하는 것과 책을 아예 쓰지 않고 후회하는 것, 둘 중에서는 졸작을 내고 후회하는 편이 낫다. 졸작을 써도 실력과 경험이 쌓이고, ‘다음 책’이라는 기회가 또 있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아무 기회도 없다.| 60-61페이지 발췌.

그리고 그는 글 쓰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유독 왜 쓰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며, 그 질문하는 사람들을 향해 일갈한다. 왜 쓰느냐는 질문은 왜 골프를 치냐, 왜 산행을 하냐, 왜 달리냐는 질문과 같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프로 골프선수가 되기 위해서, 산악인이 되기 위해서, 달리기 대회 우승을 하기 위해서 골프를 치고 산행을 하고 달리는 게 아니다. 그런 것들을 목적으로 해야지만 그 행위들이 의미를 가지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글 쓰기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글은 베스트셀러 작가나 대문호가 되기 위해 쓰는 게 아니다. 그냥 좋아서 하는 거다. 그거면 된다. 책은 그러다 보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서 충고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고. 작법서를 참고는 하되 너무 신뢰하지는 마라고. 

이런 것들 말고도 꽤 많은 조언들이 담겨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딱딱한 선생님이나 교수님이 아닌 친한 선배나 동네 형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듣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어서, 글 쓰기에 관한 책을 고르느라 망설이고 있다면 나는 적극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역시 글은 멋보다는 진정성이다.

#한겨레출판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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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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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평범’의 비린내 나는 실체.

손원평 저, ‘아몬드’를 읽고.

나는 한때 정점을 찍고 잊히고 마는 베스트셀러보다는 정점을 찍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를 선호한다. 한번 가볍게 읽고 마는 대중소설보다는 조금 공을 들여야만 읽어낼 수 있고 읽고 나면 소장하고 싶어지는 고전소설을 좋아한다. 그 시대의 흐름과 사람들의 관심도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대를 관통하여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는 그 힘을 나는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알라딘 웹사이트에 들어가 책을 훑어보는 나로선 손원평의 ‘아몬드’를 놓쳤을 리가 없다. 우선 표지부터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주인공인듯한 한 소년의 얼굴. 표지 전체를 차지하는 증명사진 식의 큰 그림. 제목 ‘아몬드’, 그리고 한 소년의 얼굴. 호기심이 발동했다. 나의 짧은 상상력으로는 도무지 두 가지가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일부러 작품 소개를 들춰보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 책은 읽어볼 만하겠다는 왠지 모를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해석을 통과한 관점으로 이 책을 읽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일 년이 훨씬 넘도록 늘 보관함에만 간직하고 있었다. 며칠 전, 마침 새책과 다름없는 중고책으로 구매가 가능해서 다른 책들과 함께 구매를 했다. 두 시간 만에 다 읽었다. 정유정의 필체가 생각날 만큼 유난히 책장이 빨리 넘어가는 작품이었다. 작가 손원평의 탁월한 필력과 그녀가 사용한 단문의 연타는 흡입력과 속도감을 제대로 구현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속도와는 상관없이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를 다룬다. 한국 사회, 특히 청소년과 연결된 사회문제의 단면을 소설이라는 허구적 장치를 통해 정확히 짚어낸다. 허구에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현실을 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익명성에서 안전함을 찾아내고 그 안에 숨어들어 비겁한 자신을 옹호하는 군중들의 심리, 겉과 속이 너무나도 다른 인간의 파렴치한 모순, 그 이율배반성이 ‘정상’ 혹은 ‘평범’이라는 탈을 쓴 참혹하고도 슬픈 아이러니, 시한폭탄 같은 그 아이러니가 만들어내는 사건 사고, 그 현장에서 고스란히 피해자가 된 한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 사회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을 만한 이야기로 잘 그려진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앞서 언급한 한 소년, 이름이 ‘윤재’인 청소년의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였다. 작가는 윤재를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고 알려진 ‘알렉시티미아 (Alexithymia)’라는 선천적 질환자로 설정했다. 아마도 그 이유는 한국 사회를 가능한 한 거짓 없이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기술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가 들어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 질환에 걸린 윤재는 앞서 언급한 ‘정상적’이고 ‘평범한’ 인간들의 모순 혹은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일 수도 가질 수도 없는 결함 (?)을 가진다. 일반적으로 한 시스템을 객관적으로 기술하기에 있어서 그 시스템 바깥에 존재하는 인물의 시선을 차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작가는 이 작품 속에서 다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같은 시스템 안에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선천적으로 다른 시선을 가진, 그래서 마치 외부 인물의 시선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윤재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즉, 윤재에게 이 질환을 허용한 작가의 의도는 윤재에게 연민을 갖게 하거나 이런 질환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에 숨은 폭력성을 누설하고 수정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 시선이 의도하지 않게 가지는 고유한 객관성 (?) 혹은 솔직 담백함 (?)을 렌즈로 삼아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이 역설적인 관점은 소설만이 가지는 장점을 아주 잘 활용한 결과이고, 작가의 탁월한 인물 설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 작품이 가지는 핵심이 아닌가 한다.

(참고: 이 질환은 공식 의학용어로써 편도체의 작은 크기와 상관관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편도체가 작다고 해서 모두 이 질환에 걸리는 것도 아닐뿐더러, 이 질환의 원인이 편도체의 작은 크기 때문만도 아니다. 그리고 사이코패스와는 다른 질환이다.)

이 작품은 제10회 창비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이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은 오히려 성인이 더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청소년과 직접적인 관계를 해야만 하는 부모님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비린내 나는 어른들의 냄새와 인간의 본성, 그리고 청소년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창비
#김영웅의책과일상

출처: https://rtmodel.tistory.com/1255?category=751509 [흩 어 진 행 복 의 조 각 을 찾 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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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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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 저, ‘우연’을 읽고.

모게, 나시마, 아자르. 이름만으로도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작품. 지금까지 꽤 많은 소설을 읽었지만, 이처럼 이국적인 느낌으로 내게 다가온 소설은 없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적어도 단지 프랑스 작가의 소설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대신, 르 클레지오 특유의 색채라고 보는 게 더 적당할 것이다. 그가 만약 프랑스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이 작품을 썼더라도 분명 똑같은 느낌을 충분히 표현해내지 않았을까 싶다. 게다가 내가 읽은 책은 한국어 번역본 아닌가. 재창작이라고도 불리는 ‘번역’이라는 높은 관문을 통과하면서도 낯선 이국의 느낌을 뒤틀어짐 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작품이라니! 나는 르 클레지오가 더 궁금해졌다. 언제 내 손에 들릴진 여전히 미지수이지만, ‘황금 물고기’와 ‘사막’이 책장에서 대기 중이다. 이 두 작품은 또 어떤 맛을 낼지 은근히 기대가 된다. 

영화감독으로서 세상 성공의 정점을 찍고 난 이후 점점 쇠락해가는 중년 남성, 쥐앙 모게. 무책임하게 아내와 딸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어디론가 떠나길 갈망하던 소녀, 나시마. 그리고 이 둘을 이어준 ‘아자르 호’. 제목 ‘우연’은 프랑스어 ‘hasard’이고, ‘아자르 호’의 ‘아자르’는 행운이라는 의미를 지닌 스페인어 ‘azar’에서 따온 것인데, 이 두 단어는 같은 어원, 같은 발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즉, ‘아자르’는 우연이기도 행운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과연 모게와 나시마의 만남도 우연이기도 행운이기도 했을까?

굳이 철학적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작가의 의도에서 그런 뉘앙스를 느낄 수는 있지만, 이 작품은 그런 논의 없이도 충분히 매력을 지니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낯설고도 매력적인 환상 소설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이 작품을 단적으로 표현한 게 아닌가 한다. 

모게의 극적인 인생의 내리막길에 어느 날 갑자기 끼어든 나시마. 그녀가 소년으로 변장한 채 아자르 호에 몰래 숨어 모게와 같이 항해를 할 수 있었던 건 그녀에게 있어선 목숨 건 모험이었을 것이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나날이 훨씬 많은 나이인데도 나시마는 그만큼 벌써 인생의 코너에 몰린 것처럼 절박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절박함이 우연을 만든 것일까. 아버지가 타고 간 커다란 배, 그가 떠나버린 바다, 그 원시적인 자연, 그리고 홀로 남겨진 채 망가져가는 엄마. 다행히 모게는 나시마를 받아주었다. 그렇게 해서 짧지만 굵은 그들의 항해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 누구도 계획했던 게 아니기에, 이 두 사람 사이의 만남은 우연이라고 하는 게 옳다.

그러나 과연 그 만남이 행운이었을지에 대해선 작품을 다 읽은 나로서도 확답을 내리긴 힘들다. 모게는 과거에 자신이 연루되었던 어떤 한 소녀의 죽음이 관련된 사건으로부터 도망 다니는 신세였다. 나시마와의 항해 도중 큰 폭풍우를 만난 이후, 모게는 나시마를 더 이상 데리고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집으로 돌려보내기로 한다. 그렇게 모게와 헤어진 나시마는 어쩌다가 집을 떠나 방황하게 되었는지, 어쩌다가 모게와 만나게 되었는지 취조당한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난파된 배에서 모게에 의해 구조되었다는 거짓말을 끝내 지키지 못한다. 나시마는 유괴당한 어린 소녀가 되었고, 모게는 유괴범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를 빌미로 모게는 과거의 그 사건으로부터도 더 이상 도망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아자르 호까지 빼앗기게 된다. 바닥으로 내려앉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허약해진 심신을 이기지 못해 병원에서 죽어간다. 그러는 사이에 성인이 된 나시마는 공부를 하는 대학생이 되었고, 병원에 입원하기 전 모게가 아자르 호에 몰래 설치해둔 부탄가스통을 이용해 동료와 함께 아자르 호를 몰래 띄우고 폭파시켜버린다. 모게와의 우연한 만남의 장소가 되어주었던, 나시마에게는 처음으로 가슴 벅찬 자유와 해방을 느끼게 해주었던 아자르 호는 그렇게 영원히 사라졌다. 모게와 아자르 호는 생명을 같이 했던 것이다. 

행운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이리저리 뒤튼 뒤 나는 이 둘의 만남을 행운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우기고 싶진 않다. 우연이긴 했으나 행운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우연한 만남이 가져온 결과는 두 사람에게 있어 아픔과 슬픔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가슴 깊이 잊히지 않을 만남, 그 만남을 과연 나시마는 아픔과 슬픔 없이 기억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 만남은 불행에 가깝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는 같은 어원, 같은 발음을 가진 ‘아자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이 책의 제목이 ‘행운’이 아닌 ‘우연’으로 정해진 이유이기도 할 것이라고 조용히 생각해본다.

#문학동네
#김영웅의책과일상

출처: https://rtmodel.tistory.com/1254 [흩 어 진 행 복 의 조 각 을 찾 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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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 톨스토이와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인생
석영중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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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석된 감동, 농축된 이해: 톨스토이 삶의 맥락에서 재해석한 안나 카레니나와 그의 인생관과 도덕관.

석영중 저,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를 읽고.

작가의 필력이란 이런 걸 말하는구나, 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글. 이런 쉽지 않은 내용으로 이렇게 재미있게 글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중간중간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여러 번 웃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부분에선 사뭇 진지해진 나머지 작가가 바라보는 톨스토이에 대한 연민이 생기기도 했으며, 대문호라는 간판의 어두운 그늘도 볼 수 있었다. 톨스토이라는 러시아 고전문학 작가와 그가 쓴 작품 여러 편을 다루면서 석영중은 톨스토이의 사상과 삶에 대해 고찰한다. 제목에서 ‘도덕에 미치다’라는 표현은 이 책을 절반 정도 읽게 될 즈음이면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 의미를, 그리고 거기에 아주 약간 냉소적인 뉘앙스가 담겨있다는 점까지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도덕에 미치다’라는 말은 너무나 도덕적이라서 본받고 배워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도가 지나치다고 표현할 수도 있고, 모순이나 반어법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단지 이 문장만 읽고는 무슨 말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석영중이 풀어나가는 글을 가만히 읽어나가게 된다면 아마 나처럼 그녀의 시선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톨스토이나 이 책이 주로 다루는 작품 ‘안나 카레니나’의 위대함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나간 석영중의 유쾌한 필력을 감상하는 용도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의 목차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만 봐도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부 ‘나쁜 삶’은 1장 ‘나쁜 사랑’, 2장 ‘나쁜 결혼과 아주 나쁜 결혼’, 3장 ‘좋은 결혼’으로, 2부 ‘좋은 삶’은 1장 ‘채소만 먹자’, 2장 ‘시골에서 살자’, 3장 ‘예술을 박멸하자’, 4장 ‘메멘토 모리’로 구성되어 있다.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 카레니나’를 읽어본 독자라면 그렇지 않은 독자보다 훨씬 더 깊이 몰입하여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며, 읽는 속도 또한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몇 달 전에 읽었던 그 작품을 상기하면서 작가의 해석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톨스토이 작품을 세 편밖에 읽지 못한 나로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톨스토이의 삶’이라는 전체 맥락으로부터 나온 해석 앞에선 가만히 멈춰 서서 귀를 기울이며 이전보다 더 깊고 풍성하게 작품 그 자체는 물론 톨스토이가 어떤 사람인지까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안나 카레니나’는 방대한 작품이지만 다루는 내용이 어려운 건 아니다. 사랑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고,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결혼 이야기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유부녀 안나가 어느 날 우연히 만나게 된 브론스키라는 미혼 남자와 외도를 감행하게 되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정도가 될지도 모른다. 조금 경박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요컨대 줄거리 자체는 삼류 소설의 그것과 거의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물론 작품은 줄거리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같은 줄거리라도 그것을 전개해나가는 작가의 시선과 사상이 등장인물 안에서 어떻게 발현되게 설치해놨는지, 어떠한 서사 가운데 어떤 묘사를 혼합하여 크고 작은 그림을 그려나가는지, 어떻게 시대와 문화와 역사를 담아내어 작품이 평범하면서도 비범하게 보이도록 만들어나가는지에 바로 작가의 내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내공은 비슷한 내공을 가진 사람에게만 제대로 관찰되고 마침내 저자의 메시지가 가능한 온전하게 전달되는 해석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독자가 제2의 저자라는 말이 있다고 하지만, 원 저자의 메시지를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은 채 독자 맘대로 해석해버리는 행위는 자유가 아닌 방종이라 해야 옳다. 이런 면에서 우린 석영중과 같은 러시아 문학 전문가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석영중은 ‘안나 카레니나’를 사랑 이야기나 결혼 이야기가 아닌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소설로 읽는다. 줄거리나 작품 그 자체보다는 저자라는 그 글의 근원을 먼저 조명한 뒤 다시 작품을 읽는 것이다. 나무 하나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극찬하는 것도 안 하는 것보다 언제나 좋지만, 전체 숲의 맥락을 인지한 뒤 나무를 살펴볼 때의 상이함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석영중이 ‘안나 카레니나’라는 작품을 대표로 하여 톨스토이의 인생관 혹은 도덕관을 살펴보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톨스토이의 인생은 그의 중년의 위기 (소위 ‘회심’) 이전과 이후로 나눠질 수 있다고 한다. 그 위기 이후에 쓴 대부분의 글은 무언가를 비난하고 촉구하는 글이었다. 석영중에 따르면, 톨스토이는 불륜, 사교계, 도시의 삶, 육식, 탐식, 흡연, 음주, 그리고 거의 모든 예술까지도 당당하게 비난했다고 한다. 당시 러시아 시대 정황을 살펴보면 그의 삶의 전환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전환기 이후에 자신의 모든 작품마저도 다 부인하고, 마치 설교자나 ‘톨스토이교’ 교주가 된 것처럼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자신만의 해법을 알리는데 열을 올리다가 덜컥 생을 마감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뭔가 석연치 않은 감정과 생각이 든다.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그것이 이론만으로 들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 그의 화려한 삶의 이면이 슬퍼 보인다. 이에 대해서 석영중은 딱 잘라서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이 책을 압축하는 문장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확실히 톨스토이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일리가 있다는 것이 진리는 아니다. 톨스토이의 비극은 여기에 있다. 그는 일리 있는 것을 진리라 믿고 싶어 했다. 부분적인 진실을 진리 그 자체라고 단정했다. 그는 진리를 사랑했고 자신이 진리를 발견했다고 믿었다. 세상을 하직하기 이전에 그가 인류에게 남긴 말 역시 ‘진리’라는 단어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톨스토이에 대한 연민이 생겼다. 그의 삶 전체를 훑어보지 않고 ‘고백록’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동이 어느 정도 희석됨을 느낀다. 어떤 사실을 모르는 상태로 작품을 읽고 감동받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가질 수 있을 테지만, 아무래도 전체를 조명한 뒤 다시 돌아와 이전에 받았던 감동을 재해석하는 것은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많이 배웠다. 참 고마운 책이다.

**톨스토이 읽기.
1. 고백록: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487697067941727
2. 이반 일리치의 죽음: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562696140441819
3. 안나 카레니나: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3851864358191651
4.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석영중 저):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4362158683828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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