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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헤르만 헤세 선집 11 유리알 유희 ㅣ 헤르만 헤세 선집 11
헤르만 헤세 지음, 박계수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6월
평점 :
각성과 초월의 삶
헤르만 헤세 저, '유리알 유희'를 다시 읽고
7년 만에 나는 요제프 크네히트를 조용히 삼켜버린 깊고 푸른 호수 앞에 또다시 서 있다. 방금 티토는 간신히 물밖으로 나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목욕 가운으로 몸을 연신 문지르고 있다. 아침 햇살을 받은 그의 몸에선 김이 피어오른다. 얼굴은 경직되어 있고, 눈은 끔찍한 것을 본 듯 공포가 서려있다. 몸을 문지르는 그의 손에도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자기를 따라오던 명인을 자주 뒤돌아보며 만족스러워했던 그였다. 갑자기 명인이 보이지 않자 급하게 방향을 틀어 잠수도 하면서 명인을 찾던 그였다. 그는 명인을 찾을 수 없었다. 그에게 이 작은 호수는 너무 크고 고요했다.
날벼락처럼 닥친 이 사건은 이 젊은이에게 과연 어떤 흔적을 남기게 될까. 옆에 숨어서 우두커니 모든 걸 목격하고 있는 나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심지어 두 번째인데도 그렇다. 도대체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이게 진짜 믿을 수나 있단 말인가! 호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침묵하고 있다. 햇살이 일렁이는 호수 표면은 반짝거리는 윤슬로 아름답기만 하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유리알 유희'의 마지막 장면이 그림처럼 각인되었던 탓인지 7년 만에 이 장면을 다시 읽으며 나는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그 현장 목격자가 된 듯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그때와 똑같이 경악과 허무를 동시에 느끼며 헤세를 원망했다. 왜 카스탈리엔을 자발적으로 나온 유리알 유희의 명인, 아니 그 직책을 가뿐히 넘어섰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할 마기스터 루디, 요제프 크네히트를 죽여야만 했는지 묻고 또 물었다. 심지어 그가 진정 원했던 첫 번째 일을 시작하지도 못한 채로 말이다. 그러나 크네히트를 삼킨 호수처럼 헤세 역시 침묵을 고수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7년 전과 똑같은 지점에서 멈춰 있다.
초독 감상문에서 유리알 유희와 카스탈리엔이 무엇인지, 비록 가상공간 속의 상상물에 불과하지만, 그것의 의미와 의의에 대해 서술했기 때문에 굳이 반복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이 글에서는 조금 더 사적인 감정이 두드러진 요제프 크네히트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써볼까 한다.
요제프 크네히트는 타고난 자이자 선택된 자였다. 그의 이러한 천성을 소년일 때부터 알아보고 그의 평생 은사가 되는 음악 명인을 묘사하는 헤세의 표현은 '꿰뚫어 보는 듯하면서도 명랑한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 표현은 크네히트의 미래에 대한 묘사였다. 음악 명인은 크네히트의 '먼저 온 미래'였던 것이다. 그러나 크네히트는 스스로를 선택된 자로 여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비록 그는 그것을 알았고 예감했으며 수백 번 느꼈지만 말이다. 그의 인생은 목표를 정해두고 성취해 나가는 일반적인 엘리트 혹은 영재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예감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여정이었다. 이는 언뜻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최후의 유혹'에서 젊은 예수가 자신의 운명을 차츰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연상하게 했다. 그만큼 그의 운명은 범인들이 짊어질 수 없을 정도의 무게를 지닌 것이었다.
그는 한 세계 속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정도로 탁월함을 갖춘 사람이었고, 동시에 자신이 최고인 그 세계뿐만이 아니라 그 세계 속에서 최고점에 위치한 스스로를 객관화시켜 바라볼 줄 아는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유리알 유희'를 처음 읽었을 때도 크네히트라는 인물을 거의 신격화시켜 놓은 것 같다는 생각에 거부감이 일었었는데 (심지어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나르치스보다도 몇 배나 더), 이번에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다만 작가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니, 아마도 크네히트가 짊어질 운명의 무게를 강조하기 위해 타고난 자, 선택된 자라는 캐릭터가 반드시 필요했을 것 같다는 이해에 다다를 수 있었다. 즉, 선택된 자이기 때문에 무거운 운명을 짊어진 게 아니라, 무거운 운명을 짊어져야 했기 때문에 선택된 자가 필요했던 거라고 지금의 나는 헤세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 부분, 다시 말해 운명을 짊어지는 것과 선택된 자라는 것 사이의 인과관계가 중요한 이유는 그래야 크네히트가 고백하는 자신의 삶을 묘사하는 문장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삶이 초월, 즉 한 단계 한 단계 발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음악에 빗대어서 설명하기도 했는데, 음악이 절대 지치거나 절대 잠들지 않고 항상 깨어 있으며 항상 완전하게 현재형으로 주제에서 주제로, 박자에서 박자로 차례대로 처리하고 연주하고 끝내고 지나가는 것처럼, 그의 삶도 늘 깨어 있는 상태로 항상 현재진행형으로 유지하려 애써야 한다고 여겼다. 만약 단순히 그가 모든 능력에서 타고난 자, 선택된 자였다면, 그는 그의 삶을 '각성의 삶'으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고, 그럴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에게 주어진 무거운 운명을 예감했고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희생이라 할 수 있을 숭고한 가치를 띠는 그 무엇이었다. 그렇다. 그가 타고난 자, 선택된 자라는 것의 참된 의미는 그의 비범하고 탁월한 능력에 있지 않고 그가 그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증명했던 헌신과 희생이 상징하는 숭고함에 그 방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타고난 자, 선택된 자라는 표현을 나는 정신적인 차원이 아닌 그보다 더 근원적이라 할 수 있을 영적인 차원의 묘사로 읽고 해석하게 된다. 이것이 초독과 재독의 차이라면 차이일 수 있겠다.
크네히트의 이런 근원적인 능력은 최고의 자리에서도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었던 그의 비범함에서 빛을 발한다. 이 작품 속에서 곧 붕괴할 운명에 처한 카스탈리엔이라는 세상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위치하면서도 그 자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합법적인 명예와 권력에는 일절 관심을 두지 않고, 카스탈리엔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카스탈리엔의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현재 좌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쓴소리이지만 꼭 필요한 바른 경고를 할 줄 알았고, 그의 경고를 들을 귀가 없는 카스탈리엔 실무자들의 한계를 미리 예측하고 혼자라도 바른 미래를 위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 카스탈리엔을 박차고 나올 수 있었던 크네히트는 그야말로 늘 부름을 받으며 오로지 그 방향으로만 끝까지 순종하는 인물이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크네히트가 단순히 세속적인 능력의 탁월함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불가능한 행보였다.
이러한 크네히트의 특질은 그가 카스탈리엔을 떠나기 직전까지 보여준 그의 모든 행동들에서도 일관된다. 무엇보다 그는 치우치지 않았다. 헤세 작품에서 언제나 빠짐없이 등장하는 양극성과 합일의 변증법은 크네히트의 생애에서도 그대로 관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의 중심을 흐르는 양극성은 카스탈리엔이 상징하는 정신과 바깥세상이 상징하는 자연이다. 크네히트가 카스탈리엔이라는 정신적 세계에서도 가장 정신적인 영역이었던 유리알 유희의 명인이었다는 설정은 헤세가 자주 사용하는 극단적인 과장법이 적용될 것일 텐데, 바깥세상과 가장 거리가 먼 위치에 크네히트를 위치시켜야 그가 바깥세상의 참 의미를 간파하고 결국 그곳으로 빠져나가게 되는 행동 (소위 도약)의 의미를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크네히트는 음악 명인뿐 아니라 죽림의 노형과 베네딕트 수도회의 야코부스 신부로부터 배운 가르침을 도움 받아 카스탈리엔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그곳의 한계와 부패의 씨앗을 예감했고, 카스탈리엔의 존재 이유를 역사성을 기반으로 검증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가늠했다. 크네히트에게 세상은 카스탈리엔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크고 풍부한 곳이었고, 다듬어지지 않아 혼돈이 팽배한 곳이기도 하지만 모든 운명과 교양, 예술과 인간성의 고향이자 모태이기도 했다. 섬처럼 고립되어 고인 우물처럼 부패할 운명의 카스탈리엔이 우월감에 심취하여 깔보고 배격해야 할 곳이 아닌 전적으로 섬겨야만 하는 곳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이 크네히트에겐 있었다. 첨예한 양극 사이에서 합일을 이루는 첫 시작은 객관적인 시선의 확보일 것이다. 바로 이것이 크네히트에겐 있었다. 그는 실로 타고난 자, 선택된 자였다.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장면은 크네히트가 성공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카스탈리엔 본부장과 직접 대면까지 하면서 결코 꺼내기 쉽지 않은 그의 속내를 거짓 없이 모두 털어놓는 장면이었다. 아, 이런 대화라니!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 일들을 피하지 않고 솔직하고 담대하게 해낼 수 있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 하기 싫고 피하고 싶은 일들, 그러나 해야만 하는 일들이 우리 일상에서도 얼마나 많은가. 나는 그것들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크네히트 덕에 점검해 볼 수 있었다. 크네히트는 해야 할 일을 했고, 예상대로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계획대로 카스탈리엔을 담대히 떠났다. 그는 끝까지 선택된 자로서 운명의 부름에 순종하는 행보를 펼쳤던 것이다. 아, 이런 행보라니! 헤세가 크네히트를 선택된 자로 지목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를 여기서도 확인하게 된다. 실로 그의 삶은 각성과 초월의 삶이었다. 욕망을 이겨내고 자기 객관화의 시선을 유지하는 힘으로 가능한 삶이었다.
이제 크네히트의 죽음에 다다랐다. 그의 죽음 앞에서 나는 또 묻게 된다. 왜 크네히트는 죽어야만 했을까. 그리도 어렵고 힘든 행보 끝에 왜 그렇게 허무하게까지 느껴지는 갑작스러운 죽음이 위치해야만 했을까. 크네히트의 생애를 예수의 생애와 빗대고 싶었던 헤세의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헤세는 예수가 그의 죽음 이후 부활하여 그의 정신이 온 세상에 전파된 것처럼 크네히트 역시 죽음 이후 그의 정신이 먼저는 젊은 티토에게, 나아가 플리니오에게, 그리고 플리니오와 티토를 매개로 그들이 속한 세상 속으로, 마지막으로 카스탈리엔 속으로 침투하여 퍼져나가길 기대했던 것일까. 심장이 뛰고 있는 채로는 불가능한 그것을 그의 육체를 제거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일까.
아니, 어쩌면 헤세는 현실의 리얼리티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숭고하고 대단한 생애를 살아낸 자라도 하나의 작은 소리로 존재하다가 결국 세상의 무게에 짓눌려 거품처럼 사라지고 만다는 것. 타고난 자, 선택된 자, 크네히트도 결국 한계를 가진 인간이기에 그가 최선을 다했다 할지라도 넘지 못하는 선이 있다는 것. 궁극적으로 선지자였던 크네히트도, 카스탈리엔도 붕괴되고 말 것이라는 것. 이런 암울한 현실을 크네히트의 죽음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세가 현실의 리얼리티의 승리를 보여줬다 하더라도, 그 하나의 사건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흔적을 남긴다는 것, 그 작은 흔적은 힘이 있다는 것을 믿고 싶다. 제2의 크네히트가 나오고, 그다음 크네히트가 또 나와서 낙숫물 같은 그 흔적들이 거대한 바위를 뚫는 역사를 보고 싶다. 헤세도 궁극적으로는 이것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이번에는 헤세가 아닌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겠냐고. 그의 타고남은 그의 탁월한 능력에 있지 않고 객관성의 눈을 유지하는 각성하는 힘과 해야만 하는 일을 피하지 않고 해내는 힘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제2의 크네히트는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크네히트의 죽음을 통해 헤세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이지는 않았을까. 한참 후에 나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대답한다. "Why 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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