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연쇄살인범 '키지마 카나에'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소설이라고 하니 읽기 전부터 내 흥미를 끌어당겼다.
꽃뱀인데 우리의 일반적 관념을 깨뜨린 그녀의 이야기를 작가 유즈키 아사코는 어떻게 풀어나갔을지 궁금했다.
짧은 기간 동안 3명의 남성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무기징역을 받게 된 가지이 마나코는 구치소로 자신을 면회 온 한 기자의 단독 인터뷰를 거절하게 된다. 그녀가 버터와 마가린을 구별하지 못해서라니... 자신은 진짜하고만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버터 간장밥을 만들어 먹어보라는 미션을 주는데, 그게 시작이었다. 어느 순간 여기자 리카는 가지이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연령대가 다른 남자들과 사귀며 그들의 돈을 노린 그녀가 결국에 그들을 죽였다는 이야긴데 가지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뭔가 설득력이 있다.
남들이 보기엔 그냥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왜 남자들은 그녀에게 끌린 것일까? 그녀가 정말 그들을 죽인 걸까?
버터 간장 계란밥, 명란 버터 파스타, 버터시오 라면, 뵈브 부르기뇽, 그리고 버터를 바른 칠면조 요리까지 무척 많은 음식 이야기가 나오며 리카는 가자이의 길을 천천히 따라가보게 된다.
그리고 많은 버터 양에 살도 찌고 남들의 시선과 참견도 겪어보고 생각을 바꿔가기도 한다. 외모보다 내면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는다.
책을 읽으며 가지이가 말한 다양한 음식들을 하나씩 해먹어 보았다. 역시 버터는 진리다.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어떤 일이든 적당량과 조절이라는 것은 무척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할 수 있었다.
600페이지에 가까운 굉장히 두꺼운 책이었다.
추석부터 들고 있었으니 거의 2주 정도를 한 장 한 장 꼼꼼히 읽어내렸던 것 같다.
무엇이 이 책에 이렇게 집착하게 하는가? 음식인지, 여자들의 이야기여서인지, 아니면 모두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읽으면서 '뭐 이런 미친 여자가 다 있지?' '어떻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라는 의문이 들며 초반에는 가지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가 후반부로 가면서는 동정도 했다가, 가지이를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다.
가지이의 흔적을 쫓는 리카를 보며 직업의 특성이라 이해하려고 해도 그녀의 행동들이 너무 과한 것은 아닌가 싶었는데 결국 그녀만의 길을 찾아나가는 리카가 굉장히 성숙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레이코도 마찬가지다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 해야 하나, 무식할 정도로 밀어붙이는 모습이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그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끊임없이 자기를 속이고 거짓말을 하며 관계를 이어가는 가지이가 아닌 지성인이라 불리는 기자면서도 점점 가지이에게 빠져들어가던 리카에게 더 몰입해서 읽었다. 친한 친구가 있고 그녀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주변 사람들의 따뜻함에 다시 일어서는 리카 말이다.
표지에 그려져 있던 녹아내리는 호랑이와 약간 통통한 여자.
솔직히 처음에 책을 받았을 땐 띠지에 가려져 있던 호랑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책을 읽다가 표지를 보고, 또 읽다가 다시 한번 더 보고 하다 보니 표지의 그림이 어떤 것인지 이해가 간다.
녹아내린 호랑이 버터 이야기와 꼬마 삼보 이야기를 말이다.
이렇게 식욕을 돋게 만드는 미스터리 소설은 처음이다. 칼로리 높은 미스터리물이라는 띠지의 문구에 무척 공감하며 나도 모르게 다시 주방으로 향한다.
고칼로리 음식에 어느 순간 힐링 받게 되는 소설 [버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