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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상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여기 극도로 가난하고 불안한 한 청년이 있다.
라스꼴리니꼬프(로쟈)라는 이름의 이 청년은 똑똑했고, 중도 포기해야 했지만 대학 공부까지 했고, 자신의 물건을 전당포에 맡겨가며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렇게 얻은 돈도 더 어려운 이들에게 선뜻 내어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불공정하고, 기회가 균등하게 돌아가지도 않는 사회였으며, 자신의 무능함에 괴로워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회피하려는 듯 보이기도 했다.
로쟈의 이야기와 더불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데 술집에서 만나 고통을 배가시키고 비애를 찾으려고 술을 마신다는 마르멜라도프의 구질구질하고 억지스러운 신세타령이나, 어머니의 편지에서 자신을 위해 희생하려는 여동생 두냐의 삶이 마르멜라도프의 딸 소냐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시대 추악한 운명의 바퀴는 왜 아들이 아닌 딸들이 짊어져야 했던 것일까?
[그 일]을 해치우며 고통과 희열과 증오와 괴로움 사이를 오가던 로쟈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도, 술을 마시며 현실을 회피하던 아내의 매질은 기쁨이지만 그녀의 눈빛만은 무서워하던 퇴역 관리 마르멜라도프의 감정도,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희생하며 내놓으려던 소냐의 마음도, 45세의 나이 많은 남자에게 시집가면 노모와 대학생 오빠에게 힘이 될 거라 생각하며 결혼을 결심한 두냐의 마음도 나는 쉽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유난히 마음이 쓰이던 인물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퇴역 관리 마르멜라도프의 부인인 까쩨리나 이바노브나였다.
남편이 돈을 벌어왔을 때는 귀염둥이~라며 추켜세워주다가도 그 돈을 몰래 들고나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자 괴물로 변신해 배고파 우는 자녀들을 걱정하는 엄마로 울부짖는 모습을 보일 때 왠지 제일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편이 죽음을 기다릴 때마저 장례비용을 먼저 걱정하는 그녀가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으로 느껴졌다.
가난에 힘들어하면서도 자신보다 없는 사람들을 보며 동정을 느껴 적선을 하고 돌아서선 후회하고, 분노와 증오에 휩싸여 죄를 짓고서는 걸릴까 봐 불안에 떨며 아파하고 환각을 보기도 하는 로쟈의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읽다 보니 미스터리 스릴러 같을 정도로 긴박감에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 정도로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역시 괜히 거장이 아니다.
1권에서 죄를 지었으니 2권에서는 벌을 받지 않겠는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음권으로 넘어가는 손길이 빨라진다.
그는 어둡고 음울하고 오만하고 자존심이 강한 친구예요. 최근에는 지나치게 회의적이고 우울해 보였어요.
관대하고 선량하지만, 자기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기를 좋아하지 않고, 자기 심정을 토로하기보다는 마음을 모질게 먹는 편이지요. 하지만 때로는 우울증 환자 같은 면이 사라지고, 그냥 냉정하고 비인간적이다 싶을 정도로 무정할 때가 있어요.
정말로 그에게는 두 가지의 서로 대립되는 성격이 교차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때는 지독하게도 말이 없지요! 계속 시간이 없다느니, 자기를 방해하고 있다느니 하고 투덜대지만, 사실 자기는 누워서 아무 일도 하지 않거든요. 농담도 전혀 하지 않았는데, 그건 재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런 하찮은 일에 신경을 쓸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는 식이에요. 사람들이 말을 해도 끝까지 귀를 기울이는 법이 없지요. 자기 자신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데, 그게 또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에요. .... p.312
죄와 벌(상) 친구 라주미힌이 바라본 로쟈의 모습.....
[선물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