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을유세계문학전집 105
알베르 카뮈 지음, 김진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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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가족의 죽음이라고 어떤 글에서 본 기억이 난다.

그리고 결혼이나 배우자의 외도 같은 경험도 죽음 못지않은 스트레스를 주고 삶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요인이라고 하는 내용의 글이었는데 카뮈의 이방인 속의 주인공 '뫼르소'는 그런 경험과 스트레스에 왠지 초연해 보이는 인물인 듯 보였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일지도 모르겠다.]

로 이 책 [이방인]은 시작하는데, 어머니의 장례를 위해 찾아간 양로원에서 신랄하게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뫼르소를 비판하는 원장과, 대단치 않다는 듯 현실을 받아들이는 그의 담담한 반응이 오히려 너무 슬프다.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도 보지 않겠다 하고 그냥 그 시간을 버티는 듯 보이는 그가 자신의 삶에서 마저 철저한 이방인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몇 안 되는 지인들이 커피를 마셔가며 기침과 가래가 들끓는 불편한 밤샘을 함께하는데 그들의 친밀감이 오히려 왠지 피곤하다.

 



사장에게 모친의 죽음이 내 잘못이 아니라 말하고 휴가를 받던, 장례를 끝내고 집에 가서 잘 수 있어 기쁘다는 뫼르소의 마음이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서 나는 오히려 불쾌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장례를 어제 치렀지만 여자에게 욕망하는 그가, 일상으로 돌아옴에 있어 아무렇지 않은 그가 슬픔을 온몸으로 티 내는 이들보다 더 텅 비어 보이는 건 왜일까?

엄마가 돌아가셨는데도 마른 수건과 초록빛 하늘에 만족감을 느끼고 변한 게 없이 일상은 똑같이 돌아가고 뫼르소는 열심히 일을 한다. 사장에게 파리행과 마리에게 결혼을 제안받지만 뭔가 이 남자 굉장히 의욕이 없다.

이 책은 뫼르소가 아랍인을 살해하기 전과 후로 1,2부가 나뉘는데 살인에 대한 이야기도 크지만 나는 뫼르소 그에게 더 집중해서 읽었다. 사랑하지 않는데 결혼은 하겠다거나, 죽음에 초연한 듯했지만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엔 어머니의 죽음이 똬리 틀고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라든지, 사랑과 욕구를 별개로 생각하는 듯하다가도 분노를 표출할 줄도 알았던 뫼르소의 모습에 말이다.


살인의 동기가 햇빛 때문이라고 말하거나,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다시 살 기회를 포기해버리는 그가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였던 건 그나마 신부에게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는 모습이었지 않나 싶다.

인생의 가치를 찾지 못하고 허무주의적인 태도를 고수하는 뫼르소는 카뮈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 아니었을까?

다 읽고 난 후 왠지 책장 속 카뮈의 책을 모두 찾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해도나 느낌의 강도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을 테니까 말이다. 그의 글을 모두 읽었던 이들이라도 다시 한번 재독을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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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서술자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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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내 첫 책은 인어공주였다. 온전히 내 것이던 책이었고 한글을 뗀 기념으로 외삼촌이 사주셨던 책으로 기억한다.

얼마나 좋았는지 잠이 들어야 할 시간에도 이불 속에 손전등을 들고 들어가 읽고 또 읽어서 책이 너덜너덜해지고 페이지가 한 장씩 떨어져 나갈 정도였다. 책을 읽고 좋아했지만 풍족하게 가지지 못해서였는지 어른이 된 지금도 난 책 욕심이 많다. 읽어도 또 가지고 싶고, 다 내 거였으면 좋겠고, 같은 책도 리뉴얼 되면 또 사고 싶은 그런 책 욕심 말이다. 명품보단 저렴하고 고상한 취미려니 위안 삼지만 읽기보다 소유에 더 집중된 것은 아닌가 자꾸 돌아보게 되던 찰나에 읽기와 쓰기에 대해서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는 책 한 권을 만났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라고 하면 엄청 대단하게 느껴지고 나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 것만 같은 느낌이 먼저 드는 게 사실인데, 2018년 수상 작가인 올가 토카르추크가 독자에게 건네는 다정함이라니 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은 책일까 호기심이 일었다. 우리나라에서 다정함이란 정이 많다는 느낌인데 이 책에서 올가는 다정하기도 하지만 뭔가 상냥하고 부드럽고 친절한 곰살스런 느낌이다. 글쓰기나 독서방법을 가르쳐주겠다는 느낌이 아니라 '내가 읽은 책은 이런 책이고, 그 책을 읽으며 느낀 감정과 생각들은 이러하다.'라는 식으로 친절하게 이야기하듯 적은 글이라 느껴지니 말이다.

책을 읽다 보면 올가는 무엇이든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자신의 뇌 속에 있는 기존의 지식들과 연관 지어 생각하고 떠올리는 것을 잘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다니다 먹게 된 요리와도, 길을 걷다 듣는 행인의 말소리나 새의 지저귐도, 누군가의 움직임과 미소들과 같은 낯섦도 그녀에게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을 통과하는 의식이고 친해지는 과정 중 한 가지 정도인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상상력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닐까?


최근 고전을 읽으며 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이 책 [다정한 서술자]에서 올가가 글로 정리해 놓은 것을 보니 책에 대한 애정이 더욱 샘솟고, 고전문학을 지속적으로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독서를 통한 타인의 감정과 경험을 알게 되는 과정은 정말 경이로울 정도인데, 독서의 희열에 대한 부분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와 평범한 독서가인 내 생각이 일치하다니 전율이 일기도 한다.

그녀의 독서 이력에 서가의 왕국을 통치하는 왕과 다름없었다고 표현된 아버지(전직 사서)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글을 보다가 '우리 아들은 엄마를 따라 그리 도서관을 다니는데 왜 책을 밀어놓는데 진심인 걸까' 생각하는 나는 역시 자녀교육에 진심인 대한민국 부모라는 사실에 또 한 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언젠가는 아들도 자신만의 북컬렉션을 가질 수 있게 되길... 그 정도만으로도 좋겠다고 바라보기도 한다.



동물과의 교감이나 공감력, 여행에 대한 그녀의 생각, 번역의 힘과 중요성이라든지 번역가와 헤르메스와의 연결고리 등에 공감하며 작가의 독서 목록을 가지고 싶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돌려주지 않았다는 일화에 왜 난 공감이 되었는지...

독서로 인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해석하는 방향이 달라졌음을, 의미를 부여하고 많은 버전의 삶이 있음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다정함에 난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렇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건 책을 읽기 위해서다. p.133

그녀가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것 중에서 글쓰기보다 읽기에 더 집중해서 읽었고, 공감했는데, 글쓰기란 타고난 능력도 있어야겠지만 그만큼 많은 경험과 노력 묵직한 엉덩이가 크게 작용하는 게 아닐까? 마음속에 영혼을 심어주고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서술자를 선물한 엄마와, 서가 왕국의 왕이었던 아버지 사이에서 자란 딸은 훗날 많은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로 자라나고, 그렇게 성장한 그녀는 많은 이야기들이 소멸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도록 엮어내는 작가로 성공했으니 부모의 역할도 무시하진 못할듯싶다.

"내가 아직 세상에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날 그리워할 수 있어요?

"때로는 순서가 바뀔 수도 있어. 우리가 누군가를 그리워하면 그 사람이 거기 존재하게 되는 거란다." p.334

작가는 글쓰기에 대하여 창작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트렌드를 쫓는 분위기를 지양하고, 세상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지식을 쌓아서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가자고, 진실과 허구를 굳이 나누는 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인어공주를 읽으며 [사람이 어떻게 바다에서 숨을 쉬고 물거품이 돼?]라고 생각하진 않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어른이 된 이후의 독서는 눈으로 사실만을 쫓고 있었다. 허구와 판타지, 상상 속 이야기들을 하찮게 여기고 있지는 않았을까? 올가의 다정한 서술자를 읽으며 다시금 나의 독서를 되돌아보게 된다. 차원을 넘나들고 시간을 가로질러 다양한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책 속 세상과의 소통은 늘 옳다. 그리고 사심이 없는 다정함이라는 도구로 소통하는 세상도 늘 옳다.

올가 토카르추크가 이야기하는 다정한 서술자나 사인칭 시점이라는 새로운 관점이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글쓰기와 읽기 그리고 세상과의 소통에서도 강조되는 다정함에 대한 그녀의 생각들을 12편의 에세이와 강연들에서 읽어보았으니 이제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만나보아야겠다.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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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의 방 - 내가 사랑하는 그 색의 비밀 컬러 시리즈
폴 심프슨 지음, 박설영 옮김 / 윌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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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의 힘과 일에 이은 컬러의 방까지 컬러 시리즈가 새롭게 나왔는데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번엔 어떤 컬러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무척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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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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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극도로 가난하고 불안한 한 청년이 있다.

라스꼴리니꼬프(로쟈)라는 이름의 이 청년은 똑똑했고, 중도 포기해야 했지만 대학 공부까지 했고, 자신의 물건을 전당포에 맡겨가며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렇게 얻은 돈도 더 어려운 이들에게 선뜻 내어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불공정하고, 기회가 균등하게 돌아가지도 않는 사회였으며, 자신의 무능함에 괴로워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회피하려는 듯 보이기도 했다.

로쟈의 이야기와 더불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데 술집에서 만나 고통을 배가시키고 비애를 찾으려고 술을 마신다는 마르멜라도프의 구질구질하고 억지스러운 신세타령이나, 어머니의 편지에서 자신을 위해 희생하려는 여동생 두냐의 삶이 마르멜라도프의 딸 소냐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시대 추악한 운명의 바퀴는 왜 아들이 아닌 딸들이 짊어져야 했던 것일까?

[그 일]을 해치우며 고통과 희열과 증오와 괴로움 사이를 오가던 로쟈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도, 술을 마시며 현실을 회피하던 아내의 매질은 기쁨이지만 그녀의 눈빛만은 무서워하던 퇴역 관리 마르멜라도프의 감정도,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희생하며 내놓으려던 소냐의 마음도, 45세의 나이 많은 남자에게 시집가면 노모와 대학생 오빠에게 힘이 될 거라 생각하며 결혼을 결심한 두냐의 마음도 나는 쉽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유난히 마음이 쓰이던 인물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퇴역 관리 마르멜라도프의 부인인 까쩨리나 이바노브나였다.

남편이 돈을 벌어왔을 때는 귀염둥이~라며 추켜세워주다가도 그 돈을 몰래 들고나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자 괴물로 변신해 배고파 우는 자녀들을 걱정하는 엄마로 울부짖는 모습을 보일 때 왠지 제일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편이 죽음을 기다릴 때마저 장례비용을 먼저 걱정하는 그녀가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으로 느껴졌다.

가난에 힘들어하면서도 자신보다 없는 사람들을 보며 동정을 느껴 적선을 하고 돌아서선 후회하고, 분노와 증오에 휩싸여 죄를 짓고서는 걸릴까 봐 불안에 떨며 아파하고 환각을 보기도 하는 로쟈의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읽다 보니 미스터리 스릴러 같을 정도로 긴박감에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 정도로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역시 괜히 거장이 아니다.

1권에서 죄를 지었으니 2권에서는 벌을 받지 않겠는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음권으로 넘어가는 손길이 빨라진다.

그는 어둡고 음울하고 오만하고 자존심이 강한 친구예요. 최근에는 지나치게 회의적이고 우울해 보였어요.

관대하고 선량하지만, 자기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기를 좋아하지 않고, 자기 심정을 토로하기보다는 마음을 모질게 먹는 편이지요. 하지만 때로는 우울증 환자 같은 면이 사라지고, 그냥 냉정하고 비인간적이다 싶을 정도로 무정할 때가 있어요.

정말로 그에게는 두 가지의 서로 대립되는 성격이 교차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때는 지독하게도 말이 없지요! 계속 시간이 없다느니, 자기를 방해하고 있다느니 하고 투덜대지만, 사실 자기는 누워서 아무 일도 하지 않거든요. 농담도 전혀 하지 않았는데, 그건 재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런 하찮은 일에 신경을 쓸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는 식이에요. 사람들이 말을 해도 끝까지 귀를 기울이는 법이 없지요. 자기 자신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데, 그게 또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에요. .... p.312

죄와 벌(상) 친구 라주미힌이 바라본 로쟈의 모습.....

[선물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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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28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읽을 때도 이 단순한 이야기가 감동적인건 온갖 인간들에 대한 풍부한 이해,그리고 심리묘사의 탁월함 같은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다른 분들도 그런 면들을 보시니 거장은 거장인가봅니다.
 
다정한 서술자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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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그녀의 독서이력과 취향까지 엿볼 수 있다는데, 그녀가 말하는 다정한 서술자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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