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공쿠르상 수상작 [아노말리] - 에르베 르 텔리에 / 민음사

아노말리
에르베 르 텔리에 지음, 이세진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다른 시간, 다른 세상의 또 한 명의 나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게다가 그 시간의 간극이 3개월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가장 먼저 하게 될까?

그런 의문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책[아노말리]는 다양한 직업과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한 비행기에 타게 되고 3개월 후 같은 사람들이 같은 비행기에 타는 일이 벌어진다는 상상이 이야기로 엮어져있다.

시간을 거슬러 같은 일을 두 번씩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 좋기만 하지는 않을 터...

어떤 이는 죽음을 2번, 어떤 이는 헤어짐을 2번, 어떤 이는 사랑을 2번씩 경험하게 될 테니 마음의 상처와 쓰라림도 2배가 될 듯하다.

2021년 3월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고 그 안에서 승객들은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 후 모두가 그저 지나가는 일이려니 생각하며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2021년 6월 딱 3개월 뒤 3월의 승객을 똑같이 태운 비행기가 뉴욕으로 향하다 난기류를 만나는 신기한 일이 또 일어난다. 불가사의한 일이 발생하며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 당시 비행기에 탑승해 있던 승객들에게 정부 요원이 한 명 한 명 찾아와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휴대폰이나 노트북 같은 전자기기는 모두 압수하면서 동행을 요구한다.

FBI, CIA, NSA, 국방부와 외무부를 포함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현 상황 프로토콜 42(일어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논의하고 상황을 정리해나가려고 노력한다. 6월인데 3월의 기장과 통화라니, 게다가 그는 한 달 전에 암 진단을 받고 죽어가고 있는 사람인데 말이다.

뭔가 얽히고설키고 꼬일 대로 꼬이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가설을 세워 이론을 내세우지만 그들도 직접 이런 현실을 맞닥뜨리게 되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하고 설명할 수 있겠는가? 정말 신의 장난일까 아니면 외계인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추기경, 랍비, 개신교, 알라신과 수니파, 불교와 같은 종교인들은 이 상황을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 것인가.

내가 온전한 내가 아닌 또 다른 나의 복제품이라면, 쌍둥이라면, 다른 시대와 공간 속의 또 다른 나라면 온갖 상상을 해보며 읽었다. 도플갱어에 대한 글을 보면 두 도플갱어가 만나게 되면 한 사람은 죽는다고 했었는데 이 책 속에서 그 세계관은 달라지는 듯하다. 엄마가 두 명이 되기도 하고, 남편이 두 명이 되기도 한다. 정부가 선택한 방법들이 과연 옳은 것일지 솔직히 나도 잘 판단할 수는 없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떠오르기도 했다. 다른 세상의 나와 킬러 그리고 존재의 의미 같은 내용들이 1Q84를 생각나게 했나 보다. 그리고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되면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뭐 이런 일이 다 있답니까, 당신 생각에는 내가 원본입니까, 사본입니까?" p.327

2020년 공쿠르상 수상작이라는데, 공쿠르 상이 뭔지 몰라 검색을 해보았다.

프랑스에서 꽤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평가된다고 하고, 수상작 중에는 보부아르의 [레 망다랭], 뒤라스의 [연인],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 등이 있다 하니 굉장한 상이라는 건 알겠는데 상금이 자그마치 10유로란다. 환율 검색해 보니 우리 돈으로 13,600원 정도다.

어~어? 겨우?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내 눈이 잘 못된 것이라 생각했다. 설마.. 상금인데? 4대 문학상이라며?

정말 명예만 주는 상이라니 ㅎㅎㅎㅎ 실소가 나왔다. 상을 받으면 따르는 명예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책이 인쇄되는 부수가 달라지는 것까지는 생각지 못하고 속물인 나는 상금이 작다고 이 상을 비웃고 있었던 것이다.

여하튼 이렇게 명예롭고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작품인 [아노말리]는 지루하지도 어렵지도 않았고, 다양한 등장인물과 스피디하게 진행되는 스토리가 굉장히 몰입하게 만들며 마지막 반전까지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게 만들었던 책이었다.

이상, 변칙, 모순이라는 뜻의 [아노말리].

너무 바빠 내 몸이 여러 개면 좋겠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씩 읽어보길 바란다. 읽어보면 내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으리라..

[선물 받은 도서입니다]

아프지만 살아야겠어 - 윤명주 / 풍백미디어

아프지만, 살아야겠어
윤명주 지음 / 풍백미디어 / 2022년 6월

최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아빠의 친구분이 폐암으로 급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증세도 없었다 했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다 하시더니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셨고, 폐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은 후 며칠 있다 돌아가신 것이다.

아저씨네 가족들은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장례를 치러야 했고 친구의 죽음에 아빠는 많이 우울해하셨다.

새삼 지인의 죽음을 경험하니 암이라는 병이 무섭게 느껴졌고, 앓는 동안 고통이나 금전적인 문제도 크다 보니 암에 걸리면 패가망신한다는 옛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암 진단을 받은 후 거치는 단계가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순이라고 한다.

자신이 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다는 저자의 감정을 내가 완벽히 이해할 순 없었고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암 진단을 받은 이는 자신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주위 시선과 암 환자라는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슬픔을 느낄 것 같다. 게다가 유방암 진단을 받은 여성의 입장인 저자의 당시 감정을 내가 헤아리긴 힘이 들었다.

혹여 내가 유방암에 걸려 수술을 받고 작아진 가슴으로 살아야 한다면 너무 비참한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을까라는 상상 정도 할 수 있었다.

삶을 암에 걸리기 전과 후로 나눈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코끝이 시큰해진다.

암 진단 후 스스로의 몸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저자의 말이 너무 와닿았고, 내 몸이니까 내 마음대로 하고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나의 몸에도 미안해졌다.

'입에서 당긴다고 병에 걸릴 것 같은 고지방 음식들만 좋아하고 쌓이게 해서 미안해.'

'1주 1치킨 너무 미안해.'

' 알코올을 종류별로 들이부어서 미안해'

'살아가며 받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스트레스만으로도 미안한데 그 스트레스 푼답시고 폭식해서 또 미안해.'

수술 후 느끼는 감정도 여성성에 대한 상실감보다 불편함과 짜증이 더 커서,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왈칵 눈물을 쏟았다는 저자의 이야기에서 암이란 녀석의 잔인함이 느껴졌다. 가는데 순서 없단 말처럼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똑같을 것이다.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있고 슬픈 날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암 환자들은 몸의 상처와 아픔의 크기만큼, 그들의 마음의 상처 또한 무척 클 것이라 생각한다. 내 삶의 고단함은 오롯이 나의 몫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모두 환자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짐으로 느껴질 테니 그 무게를 내가 가늠할 수 나 있을까?

나와 가까운 사람이나 가족 중에서는 아직 암 환자가 없었다. 그래선지 나는 이 암이라는 병을 나랑은 먼 일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듯하다.

고통과 치료의 반복들이 내게는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절대 나는 암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듯 자꾸 되새긴다. 앞일은 아무도 모르는데 말이다. 암 환자인 저자가 병을 알고, 수술하고, 수술 후 달라진 자신의 몸을 인정하고, 생활이 달라지는 변화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읽으며 괜히 내가 눈물이 났다. 덤덤한 저자의 글에서 더 아픔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우리 주변에도 수많은 암 환자가 있을 테고 나처럼 눈을 가리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 그리고 내 몸이 내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줘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꿈꾸는 무병장수가 실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아는 터라 괴롭지 않고 아름답게 노화하는 내 삶을 위해 그동안 너무 무심했으니 이제는 조금은 돌봐주는데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암 이후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는 분들과 가족들이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고 감히 추천해 본다.

[100자평] 청부 살인자의 성모

청부 살인자의 성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5
페르난도 바예호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얼마전 벌거벗은 세계사라는 프로그램에서 마약의 실체에 대한 이야기를 방송했는데 그때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알게되었다. 이 책을 보며 다시한번 그 시대와 그 나라의 이야기를 읽고 싶어졌다.

[100자평] 달려라 메로스

달려라 메로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22년 6월

재기발랄한 다자이 오사무를 느낄 수 있다니 기대를 안할수가 없네요. 그의 유머코드를 찾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작품들이 모두 실려있겠죠? 문학 본연의 즐거움을 모두 함께 느껴보아요~^^

[100자평] 붉은 무늬 상자

붉은 무늬 상자 ㅣ 특서 청소년문학 27
김선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6월

[용기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아]정말 화악~ 와닿는 문장이네요. 편견에 맞서는 작은용기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