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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말리
에르베 르 텔리에 지음, 이세진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평점 :
다른 시간, 다른 세상의 또 한 명의 나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게다가 그 시간의 간극이 3개월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가장 먼저 하게 될까?
그런 의문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책[아노말리]는 다양한 직업과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한 비행기에 타게 되고 3개월 후 같은 사람들이 같은 비행기에 타는 일이 벌어진다는 상상이 이야기로 엮어져있다.
시간을 거슬러 같은 일을 두 번씩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 좋기만 하지는 않을 터...
어떤 이는 죽음을 2번, 어떤 이는 헤어짐을 2번, 어떤 이는 사랑을 2번씩 경험하게 될 테니 마음의 상처와 쓰라림도 2배가 될 듯하다.
2021년 3월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고 그 안에서 승객들은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 후 모두가 그저 지나가는 일이려니 생각하며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2021년 6월 딱 3개월 뒤 3월의 승객을 똑같이 태운 비행기가 뉴욕으로 향하다 난기류를 만나는 신기한 일이 또 일어난다. 불가사의한 일이 발생하며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 당시 비행기에 탑승해 있던 승객들에게 정부 요원이 한 명 한 명 찾아와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휴대폰이나 노트북 같은 전자기기는 모두 압수하면서 동행을 요구한다.
FBI, CIA, NSA, 국방부와 외무부를 포함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현 상황 프로토콜 42(일어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논의하고 상황을 정리해나가려고 노력한다. 6월인데 3월의 기장과 통화라니, 게다가 그는 한 달 전에 암 진단을 받고 죽어가고 있는 사람인데 말이다.
뭔가 얽히고설키고 꼬일 대로 꼬이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가설을 세워 이론을 내세우지만 그들도 직접 이런 현실을 맞닥뜨리게 되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하고 설명할 수 있겠는가? 정말 신의 장난일까 아니면 외계인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추기경, 랍비, 개신교, 알라신과 수니파, 불교와 같은 종교인들은 이 상황을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 것인가.
내가 온전한 내가 아닌 또 다른 나의 복제품이라면, 쌍둥이라면, 다른 시대와 공간 속의 또 다른 나라면 온갖 상상을 해보며 읽었다. 도플갱어에 대한 글을 보면 두 도플갱어가 만나게 되면 한 사람은 죽는다고 했었는데 이 책 속에서 그 세계관은 달라지는 듯하다. 엄마가 두 명이 되기도 하고, 남편이 두 명이 되기도 한다. 정부가 선택한 방법들이 과연 옳은 것일지 솔직히 나도 잘 판단할 수는 없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떠오르기도 했다. 다른 세상의 나와 킬러 그리고 존재의 의미 같은 내용들이 1Q84를 생각나게 했나 보다. 그리고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되면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뭐 이런 일이 다 있답니까, 당신 생각에는 내가 원본입니까, 사본입니까?" p.327
2020년 공쿠르상 수상작이라는데, 공쿠르 상이 뭔지 몰라 검색을 해보았다.
프랑스에서 꽤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평가된다고 하고, 수상작 중에는 보부아르의 [레 망다랭], 뒤라스의 [연인],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 등이 있다 하니 굉장한 상이라는 건 알겠는데 상금이 자그마치 10유로란다. 환율 검색해 보니 우리 돈으로 13,600원 정도다.
어~어? 겨우?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내 눈이 잘 못된 것이라 생각했다. 설마.. 상금인데? 4대 문학상이라며?
정말 명예만 주는 상이라니 ㅎㅎㅎㅎ 실소가 나왔다. 상을 받으면 따르는 명예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책이 인쇄되는 부수가 달라지는 것까지는 생각지 못하고 속물인 나는 상금이 작다고 이 상을 비웃고 있었던 것이다.
여하튼 이렇게 명예롭고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작품인 [아노말리]는 지루하지도 어렵지도 않았고, 다양한 등장인물과 스피디하게 진행되는 스토리가 굉장히 몰입하게 만들며 마지막 반전까지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게 만들었던 책이었다.
이상, 변칙, 모순이라는 뜻의 [아노말리].
너무 바빠 내 몸이 여러 개면 좋겠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씩 읽어보길 바란다. 읽어보면 내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으리라..
[선물 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