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고무신
묘엄 스님 구술, 윤청광 엮음 / 시공사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청담 스님께서 딸에게 질문했다.

"니 중 된 거 후회 안하나?"

"예, 후회 안합니다."

딸의 대답에 빙긋이 웃으시는 스님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나는 왜 이 대목에서 그렇게도 눈물을 흘렸을까?

스님이든 아니든, 자식에 대한 마음 쓰임은 그 표현의 정도를 넘어서서, 깨달음의 유무를 넘어서서 질기고 질긴 것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주 옛날에 이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그 때는 불교를 알기 전이라, 도대체 묘엄 스님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왜 밝히혀고 하지 말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수행자라도 자기가 하지 않은 일을 뒤집어 쓰고 살아야 할 필요는 없는 거라고.

하지만 그때의 의문이 늘 가슴이 남아 있었던 탓인지, 어제는 다시 읽어보면서 성철 스님과 청담 스님의 가르침 속에 살아있는 따뜻함과 수행자의 정신을 느낄 수 있어 몇년 전에 가졌던 의문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억울함은 밝히지 않아도 언젠가는 드러나는 것이고, 오히려 그렇게 밝히려고 하는 데서 더 큰 시비를 불러 온다는 것을 이젠 나도 조금은 이해를 한다.

경전 공부를 하며 틈틈이 가벼운 책들을 읽는다.

하지만 결코 내용 면에서나 감동 면에서 가볍지 않다.

능엄주를 외우고 하루에 108독을 강조하셨던 성철 스님의 체취를 느낄 수 있어 좋았고, 작년 봄에 갔었던 고성 문수암에도 성철 스님과 청담 스님께서 머무셨던 인연 있는 절임을 알고 내가 그 곳을 다녀와서 가피를 입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묘엄 스님의 이야기이지만,  큰 스님들의 정감 있는 가르침을 느낄 수 있는 책, 묘엄 스님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는 가르침을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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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06-02-20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활이 가르침이 되고, 감동이 되는 그런 삶은 얼마나 흐뭇한지요..

로드무비 2006-02-20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의) 대담 -- 대답

그 대답 정말 뭉클한데요?^^

달팽이 2006-02-20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성 문수암에서 다도해를 쳐다보던 기억이 납니다.
마치 동양화에 나오는 신선의 세계같았던 풍경 속에서
문득 마음이 투명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혜덕화 2006-02-20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세를 덮고도 남을 복이 있어야 스님이 될수 있다죠. 가끔 스님들의 일대기 읽으면서 내생에 스님으로 태어나기가 원이라고 말하는 나 자신에게 물어보죠. 정말 그럴 자신이 있느냐고. 언제나 대답은 자신없는 쪽으로 가면서도.
삼세를 덮을 복이 있어야 한다는데, 원만 세우면 되는 줄 알았던 자신이 좀 교만하게 느껴지더군요. 이누아님, 로드무비님, 달팽이님. "중 된건 후회 안하나?" 하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져봅니다. 아마도 내가 이렇게 살기를 원해서 지금 이 몸 받아 사는 것이려니, 이 몸 받은 거, 지금 이렇게 사는 거 후회 안하나? 하구요._()_

니르바나 2006-03-10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청담스님과 성철스님이 호랑이 새끼를 키웠구나 생각했답니다.
비록 말씀은 찬바람 쌩쌩나는 두분이지만 자식사랑 하시기는 마찬가지구나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