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사진
 

올 해는 처음 텃밭 농사를 짓게 되었다. 

친정 아버지와 남편은 텃밭 일을 하고 엄마와 나는 들여놓은 조그만 컨테이너에서 점심을 만들어 먹는 재미로 -나는 거의 엄마가 야심차게 준비해 온 찌게, 매운탕 등을 먹어주기만 했지만- 일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있다. 

비 오거나 바람 불거나 햇살이 좋거나, 동생 생각에 눈물 짓던 엄마 입에서, 엄마의 눈에서, 엄마의 마음에서 살던 슬픔은 봄 볕과 바람이 서서히 거두어 가는 것이 보였다. 

일요일 늦잠도 자고 쉬고 싶었지만, 동생을 향한 그리움과 슬픔을 바람과 햇살이 거두어가는 것을 보고 있으니, 한 주도 빠질 수가 없었다. 

흔히 자연은 한 없이 베푸는 고마운 것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뼛 속 깊이, 이렇게 무한하게, 무진장하게,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이 한없이 한없이- 이 말을 백번쯤 해도 모자랄 거다-베푸는 자연 앞에서 <나>라고 알고 살아온 것이 정말 한 알의 씨앗보다도 적은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알의 씨앗과 내가 동등한 존재이구나, 바람과 햇살과 비가 없다면 씨앗처럼 나도 보잘 것 없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무한한 우주가 나와 씨앗 속에 들어있구나, 짧은 순간의 일치감과 희열 속에서 여름의 뜨거움을 견딜 수 있었다. 

농사 지어서 우리 집도 엄마 집도 먹을 입은 많이 없으니 결국 식당을 하는 올케네로 이웃으로 가져다주기 바빴지만, 자연이 준 것을 내가 단지 옮기기만 했다는 것도 한 해의 농사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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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1-10-24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배추가 실한게 거름이 좋았던가봐요.
저 배추로 김장 담그면 맛있겠당^^
저도 텃밭에 대해선 늘 아쉬움이 남는답니다.
한 해 지어보곤 그만 두었거든요.

흙은 참 이상해요. 속상한 마음, 슬픔, 걱정거리....잔뜩 안고 와서 호미 들고 흙을 파헤치기 1시간이면 갖고 왔던 것들이 다 사라져버리더라구요. 땀 흘리며 흙 만지고 풀 만지다면 한 두 시간도 후딱 지나버리고, 내가 일한 흔적을 뒤돌아보면 어느 새 마음엔 평안이 고여있지요^^ 평안 뿐인가요? 어설픈 내 손길에도 기특하게 열매 맺히는 걸 보면 아주 기뻐 날뛰었죠 ㅎㅎ 평안과 기쁨, 텃밭이 주는 선물인데 말이죠...혜덕화님 보기 좋아요. 곁에 살면 저 채소들 다 억어 먹는건데..아깝다...ㅎ

혜덕화 2011-10-24 22:0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정말 농약 하나 안한 진짜 유기농, 옆에 사시면 함께 나누어 먹을텐데......
자연이 주는 은혜를 몸으로 체득한 한 해였어요.
조그만 수박도 두 덩이 열려서 아들 휴가올 때 나눠 먹었고, 방울토마토, 토마토, 가지, 고구마, 감자, 많이는 아니라도 조금씩 맛은 다 보았어요.
참 재미있어요.
진주님도 남편분이랑 다시 텃밭 농사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진 2011-10-24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추하나, 무 하나라도 농사라는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닌데 잘 해내셨군요! 농작물이 튼실해 보입니다 ㅎㅎ

혜덕화 2011-10-24 22:03   좋아요 0 | URL
주말마다 퇴비 실어나르느라 차에서 퇴비 냄새 사라질 날이 없었답니다.^^
반가워요. 처음 뵙네요.
_()_

북극곰 2011-12-20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잘 지내시죠? ^^ 저기가 양산텃밭인가요? 우리 부모님은 양산에서 이번에 금곡동 산옆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셨어요.

혜덕화 2011-12-21 15:57   좋아요 0 | URL
북극곰님.
저는 아주 잘 지내고 있답니다.
막내가 수능까지 마쳐서, 아이도 저도 신나는 인생이랍니다.^^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를 인도에서 맞을 예정이라 미리 인사 드립니다.
고맙습니다._()_

북극곰 2011-12-21 17:52   좋아요 0 | URL
와,정말요?!
인도 잘 다녀오시고 좋은 한 해 되시길 바라요.

내년에도 뜨믄뜨믄이라도 서재에 글도 올려주시고,
자리 지켜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