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여섯 명의 한기씨
이만교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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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의 텔레비전으로그 장면을 봤다.
영화인지 뉴스인지 알 수 없었다.
뉴스라면, 외국인지 한국인지 알 수 없었다.
한국이라면, 누구의 잘못인지 알 수 없었다.
입국과 출국의 일정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은 짧게 머물렀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머릿속을 가득 채운 처참한 이미지는 계속됐다.
외국의 알지 못하는 영화의 한 장면이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날 내가 뉴스로 본 불타는 망루는 용산참사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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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여섯명의 한기씨>는 임한기라는 인물을 떠올리는 예순 여섯번의 인터뷰로 구성되어있다. 그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공사판에서 일하다가 도박으로 돈을 날리고 용역알바일을 하다가 보상금으로 국수집을 기억한다. 그리고 곧 재개발로 인해 세입자들의 집회와 투쟁에 나선다. 그는 결국 망루에 올라간다. 평상시 순박하다가도 불같이 화를 내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한다. 그는 의협심이 대단하지만 투사라고 하기에는 선뜻 믿음이 가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66명의 인터뷰이를 통해 그의 삶을 추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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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인물을 설명하는 목소리들은 하나의 사건을 치밀하게 다루고 우리가 사는 시대를 아프게 통찰하게 한다. 인터뷰라는 시도는 언어와 기억의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본질을 정확하게 포착한다. 그들은 각자의 목소리와 회상으로 대상을 재현하며 마치 잡음이 섞인 합창처럼 오해와 거짓 그리고 왜곡 또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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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자 스스로 등장하지 않는 임한기와 인터뷰어 이만기의 이름은 발음이 비슷하다. 이러한 설정은 묘한 느낌을 주는데 독자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고민하게 한다. 나의 고민은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남길 수 없다. 그리고 한기에게는 심장과 그림자가 없다는 설정도 독특하다. 실제 일어난 사건을 그리는 리얼리즘 소설이지만 소설적 재미와 호기심을 유발한다. 그리고 독자의 마음에 자리하는 상징은 각자의 것이 될 것이다. 심장이 뛰지 않았었다는 것과 그림자가 없어져버렸다는 것에 한기에 대해 독자가 가질 수 있는 소설적 상상 혹은 짐작이 이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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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국민이 아니야. 난민이지."137
"자기도 모르게 투사가 되어버려요."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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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 여섯명의 목소리가 생생하고 그들간의 구성이 치밀하다. 이 책의 가장 돋보이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설정은 상대주의적 접근을 의도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예순 여섯명의 목소리를 듣고 임한기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하나의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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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시작하면서 이 일이 실제 일어난 일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만큼 잔인하고 처참했다. 나는 이 사건에 대해 무지했고 어떤 의견도 말할 수 없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하지만 기억하는 것은 할 수 있다. 슬픔에 공감하고 진실에 귀기울이는 것 그런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부족하지만 예의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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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러브 소설Q
조우리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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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러브 /조우리





라스트러브는 짧은 시간 안에 단숨에 읽을 만큼 흡입력이 있는 소설이었다. 팬픽이라는 소재를 선택했지만 유치해지거나 감정이 과잉일 수 있는 부분에서 중심을 잘 잡은 부분이 돋보인다. 그렇다고 아이돌 산업을 중심으로 한 쇼비즈니스에 대한 비판적 서사도 아니다. 분명 이 책은 사랑을 말한다. 현실의 사랑이 아니고, 남녀간의 사랑이 아닌 무지갯빛으로 펼쳐지는 상상의 사랑을 너무나 선명하게 그려냈다. 특히 이 소설은 아이돌 제로캐럿과 그들의 팬인 파인캐럿의 팬픽 7편이 교차되어 구성되고 있다. 7편의 팬픽에는 등장인물인 제로캐럿의 멤버들이 파인캐럿의 상상에 의해 여러 역할로 등장한다.



종이심장. 준희를 좋아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다인.

FANCY. 과외 선생님 수빈에게 친구 지은에 대해 털어놓는 준희.

수채화. 송준희 작가의 개인전에서 연인이었던 다인을 떠올리는 마린.

다섯 번째 계절. 다인을 좋아하는 고등학생 육상선수 준희.

팔레트. 다인과 동거 생활을 하는 재영.

너 그리고 나. 사진동아리 선배 수진의 아이디어에 따라 과학실에 홀로 남은 준희.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우리. 재영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우리’ 모두.



하나의 대상이 다수의 상상에 따라 확대되어 재생산(?)되는 팬픽에 대해서 제대로 포착했다는 생각이 든다. 팬픽을 팬들에 의해 생산, 소비되는 그들만의 문화라며 거리를 두었지만 그들의 설정들은 하나의 대상에서 발산하고 그 상상의 시작은 애정에서 시작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러한 작품에 통용되는 설정이 있고 그들이 열광하는 서사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창작의 시도들은 단순한 애정에서 출발하여 상상의 진폭을 통해 하나의 소설이 된다.



작가는 여자 아이돌에 국한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러한 이유로 레즈비언 서사가 당연히 등장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불편해지는 지점은 없다. 너무나 정확하게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팬픽의 제목 또한 여자 아이돌들의 노래 제목인데 그 중 마지막 팬픽이 러블리즈의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우리’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작가의 이름이 ‘조우리’다. 마지막 팬픽을 읽으며 눈가가 잔잔히 적셔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 소설에 작가의 마음은 얼마나 담겨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아이돌이란 어떤 존재일까. 나의 마음에 파동은 남기는 질문이다. 그리고 같은 무게의 질문을 느끼는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대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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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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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류진 일의기쁨과슬픔

그럼에도 오늘을 긍정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성장인가 순응인가 고민하는 동안
일도 사람도 시간도 기다려주지 않는
지금의 이야기다.

등단작 <일의 기쁨과 슬픔>은 차이를 통해 읽었고
이번 서평단으로 <잘 살겠습니다>를 읽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노을 지는 테크노벨리의 퇴근길을 <잘 살겠습니다>는 출근 후 책상 위를 바라보는 느낌이다. 두편만 읽었는데도 하루의 삶의 단면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현재를 응시하는 것에 탁월한 재능이 있고
그 안에서 재치와 여운을 발휘하는 문장이 빛난다.
다만 이야기가 가볍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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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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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이 책을 읽기 전 제목을 읽으며 내용을 짐작했다. 뒤늦게 언니에게 편지를 보내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책을 읽으며 주인공 제야의 이름이었음을 알게 됐다. 동생 제니가 제야에게 편지를 쓰는 내용은 없다. 하지만 나는 읽는 내내 제목을 떠올리며 제야에게 보내야 하는 답장의 구절처럼 그녀에게 눈빛으로 말을 걸고 있었다. 위로도 격려도 아니었고 공분도 아니었다. 하지만 정확한 문장으로 구사할 수 없었다. 이제야 언니에게 라는 제목만이 입안을 맴도는 것 같았다. 제야에게 해야할 말과 해서는 안될 말, 아니 그 전에 제야에게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일들. 이 책은 끔찍한 고통의 순간에 주인공을 세워두고 그의 극복에 소설적 즐거움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것 또한 끔찍한 위선이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어떻게 고뇌하고 방황하는지 응시한다. 그리고 그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소외된 인간이 천천히 자신을 사유하고 상황을 해석하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권선징악이나 통쾌한 결말은 없다. 현실의 모습처럼. 하지만 최진영이 그리는 작품은 허황된 해피엔딩이나 슬픈 비극의 결말로 끝나지 않는다. 독자로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순간은 없지만 작품은 읽고 나면 현실에 눈을 돌리게 한다. 그의 소설에는 생각하는 인간, 성장하는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제야가 그렇다. 일기장에서 찢어버리고 싶은 그날. 그에게 일어난 일과 그림자처럼 그를 따르는 고통의 기억. 하지만 제야는 자신의 세상이 무너졌다는 것에 절망하면서도 그 무너진 세상에서 작고 미약한 희망을 본다. 소설의 구조처럼 기승전결의 계단으로 걸어가지 않는다. 삶의 모습처럼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마음을 성장시킨다. 제야의 삶을 긍정할 수 없지만 제야라는 인간에 대해서 긍정한다. 이제야 언니에게, 라는 제목이 동생 제니의 것만이 아닌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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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 1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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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

직지라는 제목은 직지심체요절을 연상하기 때문에 역사소설이기도 하지만 미스테리 기법으로 강렬한 흡입력을 선사한다. 또한 이야기는 시공간의 벽을 허물고상상 이상으로 확장해나간다. 현재에서 과거로 동양에서 서양으로 그리고 구텐베르크 금속활자가 직지와 연관되어 종횡무진하는 것이다.

니 소설은 주인공인 기자 기연이 기이한 살인사건-상징살인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서울대 라틴어 전공의 노교수가 살해되고 범인을 추적하는 동시에 이야기의 범위가 확장된다. 이야기의 무대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끈다.

직지에서 구텐베르크 그리고 조선시대의 한글과 로마 교황청까지 종잡을 수 없는 속도감으로 독자의 시선을 이끈다.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예상치 못하게 확장되는 중에도 이야기의 밀도와 긴장이 놀라울 정도로 팽팽하다. 이전작으로도 증명이 되었지만 또 다른 소재에서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힘이 대단하다고 여겨지고 또한 그간의 작품들에서 한국의 역사와 재조명으로 독자의 마음에 구심점을 심어줬다고 볼 수 있다.

템푸스 푸지트, 아모르 마네트"
은수는 라틴어를 깨우치면서 이 글귀가 '세월은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는 뜻인 걸 알게 되었다. (p157)

직지의 부제목인 아모르 마네트에 대해 궁금했다. 사랑은 남는다. 활자를 통해 전해지는 지식의 전수 그 이상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김진명작가님의 이전작과 분명 다른 소재지만 읽고나서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 잡는 정체성은 읽는 즐거움 이상이다. 다만 이 종횡무진의 이야기가 철저한 자료조사와 철저하게 직조된 소설의 힘을 분명 확인하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리하거나 지나친 설정으로 이해할 소지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스펙타클을 만나는 소설적 즐거움이 확실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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