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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린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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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린

이 책의 제목은 아일린일 수 밖에 없다.

그녀는 이 책의 주인공이다.

소도시에서 자기혐오와 불행에 대해 분노하지만

불순하고 의미없는 공상으로 삶을 견디는 젊은 여자.

그녀는 떠나고 싶다는 갈망 앞에서도

현실에 대한 냉소와 막연한 두려움으로

제자리에 머물러버렸다.

12월 말의 일주일, 그동안 진정한 아일린이 완성된 것이다.

 

p. 32

시계 초침이 멈칫 떨리다 앞으로 휙 나가는 모양이, 처음에는 불안해서 겁먹었다가 절망으로부터 힘을 얻어 절벽에서 뛰어내렸으나 결국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리고 만 사람 같았다.”

 

p. 86

천국은 믿지 않았으나 지옥은 진짜 있다고 믿었다. 정말로 죽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항상 살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자살할 생각은 없었다.”

 

아일린은 삶에 대한 의지와 죽음에 대한 확신,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현실 속의 자신을 혐오하면서도 그것을 무너뜨릴 수 없는 불안 또한 있었다.

X빌이라는 소도시에서 알콜 중독인 아버지와 단둘이 살면서

청소년 교도소에서 사무를 보는 아일린의 삶은 지긋지긋할 뿐이다.

불만은 쌓여 분노가 되고 격렬한 감정의 파도는 그녀의 정신만을 덮칠 뿐이다.

현실에서는 그저 자신의 삶을 개선 없이 수긍할 뿐이다.

자기 혐오와 자기 연민이 섞인 날카로운 내면의 목소리는

섬세하게 드러나 유리처럼 투명하게 그녀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유리라고 믿었던 벽은 때때로 거울이 되어 나의 내면을 비춘다.

분노는 내면을 폭발할 만한 힘으로 자신을 뒤흔든다.

그 철저한 고통의 시간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나 또한 아일린일 때가 있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아일린의 서술로 이어진다.

특히 초반은 특별한 사건이 없다.

지루함을 예상할 수 있지만

아일린의 목소리와 내면의 일관됨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몰입감을 준다.

그리고 무언가 터지리라는 기대는 후반부에서 폭발한다.

아일린이 사라지는 이야기. 혹은 스스로 떠나는 이야기.

그녀의 뒷모습은 단호한 내면을 보여준다.

마치 그림자마저 벗어두고 가는 것처럼.


"시계 초침이 멈칫 떨리다 앞으로 휙 나가는 모양이, 처음에는 불안해서 겁먹었다가 절망으로부터 힘을 얻어 절벽에서 뛰어내렸으나 결국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리고 만 사람 같았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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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실에서 타인의 세계라는 벽에 부딪힌다. 이때 문학은 견고한 벽이 문이 되는 시도다. 문을 열고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소설을 통해 세계와 갈등하는 인간을 만나고 이해와 공감이 이루어진다. 그러면 문득 등장인물이 독자인 나와, 혹은 무의식 속에서 잠재하는 나의 욕망과 닮아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문을 열고보면 그것이 거울인 것을 깨닫는 것이다. 소설을 통해 나와 무관한 세계로 들어가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내가 경험하지 않았던 갈등의 진폭을 느끼며 현실에서의 균형감각을 돌이켜본다


소설의 세계는 인물이 등장하고 세계가 구축된다. 세계는 인물의 배경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승패없는 전장이 되기도 한다. 인물과 세계 사이에 민감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면서 극이 전개되고 갈등이 고조된다. 구축된 세계는 인물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그러나 세계에 안착했다고 해서 해피엔딩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역동적인 세계에서 쏟아져나오는 문제적 인간들과 세계를 공유해야한다. 이들은 끊임없이 정체성을 위협하며 우리의 일상과 허상을 전복시킨다. 우리의 방법적 회의는 자아의 심연에까지 미친다. 그렇게 우리는 소모되고 마모되며 의도를 배반한 나를 만나게 된다


구병모의 이창은 주인공인 '' 자체가 문제적이다. 만인에 대해 집요하게 신경쓰는 일명 오지라퍼로 등장한다. 나의 정의감은 언제나 정도를 넘어선다. 나의 사정권에 들어온 그녀는 예상과 달리 의연하며 연출된 것처럼 준비된 변명으로 나의 오지랖으로부터 방어한다. 나는 그녀의 아동학대에 관한 단서를 잡아나가고 그녀는 나의 시도를 무화시킨다. 나와 그녀의 대결은 치열하다. 나와 그녀는 각자 자신의 세계를 방어하는 동시에 상대방의 세계를 침입한다. 진술의 신뢰도를 의심받을 만한 문제적 주인공과공격과 수비의 역동성있는 전개가 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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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핸드포드의 <월리를 찾아라>가 지방 소도시의 홍보공간에서 재현된다. 책 속에서 우리는 단지 재미를 위해 월리는 찾는다. 월리를 위해 400명의 인파가 그림마다 등장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월리는 찾아달라고 간청한다. 홍보 공간을 활보하는 사람들 사이에 월리가 있지만 그를 찾는 일에는 무심할 뿐이다. 절박한 심정의 월리는 군중 사이를 애처롭게 돌아다니지만 연민과 동정을 받을 수 없다. 그와 같은 월리가 여럿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 안에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 있다. 군중의 외면과 월리들과의 경쟁을 넘어선 전쟁. 윤고은의 <월리를 찾아라>가 구축한 세계다.


소설의 주인공 제이는 스물일곱살로 주말에 이벤트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의 친구 장은 예식장에서 하객 대역 아르바이트를 한다. 하지만 장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는 이유로 일을 그만두며 회의를 느낀다. 다른 역할로 살아가는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소설 속에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이 연민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월리 역을 하려고 애쓰는 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군중 속에 섞여 있으면서 절대 숨어있어서는 안되는 존재가 되도록 강요받는 청년들은 그 비루함 속에서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책임감을 갖고 일하며 하루하루 소모된다. ‘월리의 역할을 하는 청년들은 이 소설에서 무한 경쟁 시대에서 하루하루 에너지를 고갈당하며 무익한 삶을 사는 젊은이들을 비유하고 있다


월리를 찾아라는 어린 시절 인기를 끌었던 일종의 숨은 그림 찾기 책이었다. 복잡한 그림 속에서 월리를 찾았을 때의 즐거움과 반가움을 현실 문제에 투영하며 비틀고 있는 상상력과 구성력은 이 소설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월 리가 한명이 아니라 발견되지 못한 월리들의 존재를 추측하는 대목은 현실의 비정함과 개인의 소외를 잘 드러낸다. 또한 번식된 듯 많아진 월리들과의 갈등을 드러내며 연대의식과 공동체주의가 제거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인물과 공간의 설정, 사회적 문제의식을 함의하고 있음에도 이 소설의 결말은 다소 허망하며 문제를 관통하지 못하는 비켜선 결말이다. 그렇다고 이를 거리두기의 여운을 남긴다고도 볼 수 없는데 이미 주인공의 동선과 사고에 집중하고 이야기를 전개해왔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흥미를 상쇄하는 결말이라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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