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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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이 책을 읽기 전 제목을 읽으며 내용을 짐작했다. 뒤늦게 언니에게 편지를 보내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책을 읽으며 주인공 제야의 이름이었음을 알게 됐다. 동생 제니가 제야에게 편지를 쓰는 내용은 없다. 하지만 나는 읽는 내내 제목을 떠올리며 제야에게 보내야 하는 답장의 구절처럼 그녀에게 눈빛으로 말을 걸고 있었다. 위로도 격려도 아니었고 공분도 아니었다. 하지만 정확한 문장으로 구사할 수 없었다. 이제야 언니에게 라는 제목만이 입안을 맴도는 것 같았다. 제야에게 해야할 말과 해서는 안될 말, 아니 그 전에 제야에게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일들. 이 책은 끔찍한 고통의 순간에 주인공을 세워두고 그의 극복에 소설적 즐거움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것 또한 끔찍한 위선이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어떻게 고뇌하고 방황하는지 응시한다. 그리고 그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소외된 인간이 천천히 자신을 사유하고 상황을 해석하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권선징악이나 통쾌한 결말은 없다. 현실의 모습처럼. 하지만 최진영이 그리는 작품은 허황된 해피엔딩이나 슬픈 비극의 결말로 끝나지 않는다. 독자로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순간은 없지만 작품은 읽고 나면 현실에 눈을 돌리게 한다. 그의 소설에는 생각하는 인간, 성장하는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제야가 그렇다. 일기장에서 찢어버리고 싶은 그날. 그에게 일어난 일과 그림자처럼 그를 따르는 고통의 기억. 하지만 제야는 자신의 세상이 무너졌다는 것에 절망하면서도 그 무너진 세상에서 작고 미약한 희망을 본다. 소설의 구조처럼 기승전결의 계단으로 걸어가지 않는다. 삶의 모습처럼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마음을 성장시킨다. 제야의 삶을 긍정할 수 없지만 제야라는 인간에 대해서 긍정한다. 이제야 언니에게, 라는 제목이 동생 제니의 것만이 아닌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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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 1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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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

직지라는 제목은 직지심체요절을 연상하기 때문에 역사소설이기도 하지만 미스테리 기법으로 강렬한 흡입력을 선사한다. 또한 이야기는 시공간의 벽을 허물고상상 이상으로 확장해나간다. 현재에서 과거로 동양에서 서양으로 그리고 구텐베르크 금속활자가 직지와 연관되어 종횡무진하는 것이다.

니 소설은 주인공인 기자 기연이 기이한 살인사건-상징살인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서울대 라틴어 전공의 노교수가 살해되고 범인을 추적하는 동시에 이야기의 범위가 확장된다. 이야기의 무대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끈다.

직지에서 구텐베르크 그리고 조선시대의 한글과 로마 교황청까지 종잡을 수 없는 속도감으로 독자의 시선을 이끈다.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예상치 못하게 확장되는 중에도 이야기의 밀도와 긴장이 놀라울 정도로 팽팽하다. 이전작으로도 증명이 되었지만 또 다른 소재에서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힘이 대단하다고 여겨지고 또한 그간의 작품들에서 한국의 역사와 재조명으로 독자의 마음에 구심점을 심어줬다고 볼 수 있다.

템푸스 푸지트, 아모르 마네트"
은수는 라틴어를 깨우치면서 이 글귀가 '세월은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는 뜻인 걸 알게 되었다. (p157)

직지의 부제목인 아모르 마네트에 대해 궁금했다. 사랑은 남는다. 활자를 통해 전해지는 지식의 전수 그 이상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김진명작가님의 이전작과 분명 다른 소재지만 읽고나서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 잡는 정체성은 읽는 즐거움 이상이다. 다만 이 종횡무진의 이야기가 철저한 자료조사와 철저하게 직조된 소설의 힘을 분명 확인하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리하거나 지나친 설정으로 이해할 소지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스펙타클을 만나는 소설적 즐거움이 확실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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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가능하다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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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가능하다
책을 읽으면서 무엇이든 가능하다라는 제목을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무한한 긍정이라고 믿었지만 불행을 예언하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말의 주어는 삶일 것이다. 삶은 무엇이든 가능하다.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불행, 감내해야하는 수치심과 좌절감, 그리고 놀라운 회복의 시간까지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내 이름은 루시바턴>의 등장인물들의 이후를 다루고 있다. 후일담이라기보다는 무대의 조명을 비춰주며 새로운 이야기들이 전개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9개의 이야기는 각각의 단편소설이면서 하나의 장편소설 된다. 어떤 이야기의 진실이 다른 이야기에서 의외의 인물에 의해 설명되기도 한다. <올리브 키터리지>처럼
생생한 인물들은 소설의 경계를 오고가며 살아간다. 단편소설이 삶의 단면을 예리하게 절단하여 보여준다면 이 작품은 단면 이상의 입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작품은 마치 돌림노래를 부르듯 인물이 조연에서 주연으로 등장하며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루시를 중심으로 주변의 인물들은 각각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된다. 9개의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계시"와 "풍차"였다.
토미는 화재로 농장을 잃은 비극에서도 담담히 살아간다. 돌이킬 수 없는 사고였지만 토미는 화재가 신의 계시였다고 생각해왔다. 자신이 불타는 집과 농장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계시를 떠올리는 그를 상상하며 현현에 대해 떠올랐다. 그리고 피트와의 대화에서 무너지는 그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음으로 "풍차"는 수치심과 회복에 대한 이야기다. 고등학교 진로상담교사인 패티는 상담중에 무례한 학생에게 심한 말로 상처를 준다. 그후 패티는 우연히 루시 바턴의 책을 보게 되고 고통과 좌절에 대해 공감한다. 패티에게도 공유할 수 없는 고통의 기억이 있었음을 떠올고 회복의 용기를 내본다.
어떤 영화 대사에서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라고 말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치심은 누구에게 쉽게 경고할수 있는 것 아니다.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외면하고 있던 트라우마는 스스로 극복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가능하다. 불행이 가능했으니 회복 또한 가능하다. 나는 그 가능성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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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사람
윤성희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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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사람

표지의 작은 별빛들이
우리가 아는 이들의 눈빛처럼 보인다.
그리고 꼬리를 남기는 별 하나.
노란 빛의 네모는
누군가가 있는집의 창문이다.
환하게 불켜진 창문에서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다.

윤성희 소설가의 이야기에는 사람이 있다.
비범한 영웅이나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라
너무나 생생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평범하다는 통념에 근접하지만
나는 그들의 삶을 그렇게 무심하게 단정할 수 없다.
<상냥한 사람>의 주인공 형민은
아역배우였던 어린시절을 회상한다.
38년후 텔레비전 프로그램 '그때 그 사람들'에
출연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형민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여러 인물로
가지를 뻗는다.
소제목도 없이 하나의 호흡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고 생생하다.
인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과하거나 말하지 않고
삶 그 자체를 충실하게 담아낸다.
슬픔과 기쁨, 성공과 실패, 시작과 끝.
반의어들의 교집합에 사람이 있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에도 서사가 숨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강렬하고 긴장감을 주는 극적인 서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생각하는 소설이다.
거울을 보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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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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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자연 속에서 얼마나 단단해질 수 있으며 그 과정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대한 대답이 이 책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 있다. 평생 야생동물을 연구한 일흔의 과학자가 출간한 이 소설은 미국 남부의 해안 습지를 배경으로 카야라는 소녀의 성장과 사랑 그리고 삶을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자연의 풍광 속에서 살아남는 인간의 강인함과 신비로운 습지의 묘사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시간의 병렬적 구조로 추리소설과 법정스릴러의 흥미로움까지 만날 수 있다. 작가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습지라는 공간에 대한 빛나는 묘사와 함께 인간 카야를 통해 여성, 계급, 본성, 과학, 문학을 아우그는 깊이를 감상할 수 있다.

습지의 판잣집에 홀로 남겨진 소녀 카야. 난폭한 아버지를 떠난 엄마와 형제 자매들을 그리워하지만 습지에 남는 것과 그들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아버지마저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마을 사람들로부터도 습지 쓰레기라며 배척당한다. 학교도 평생 하루밖에 다가오지 못한 그녀는 습지를 떠돌며 자연을 배운다. 다행히 점핑아저씨의 도움으로 습지에서 홍합을 따며 생활을 해나간다. 테이트의 도움으로 글을 배우고 그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그는 대학에서의 연구를 위해 떠난다. 혼자 남겨지는 것에 익숙한 줄 알았지만 거절당한다는 생각이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이어진 체이스와의 인연을 기대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 시체로 발견된다. 누가 그를 죽였는지에 대한 의심은 마틀을 시끄럽게 한다.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450장이 넘는 장편소설의 분량이지만 추리소설 기법과 법정스릴러로 독자의눈을 사로잡는다. 이 소설은 인간의 성장소설을 시작으로 추리와 스릴러까지 눈을 떼지 못하는 몰입감을 준다. 하지만 이 많은 이야기들이 하나로 결집될수 있는 것은 신비롭고 강렬한 생명력이 가득한 공간인 습지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잘 구성된 이야기의 재미는 읽는 순간의 즐거움을 약속하지만 언젠가 잊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생태학의 교본과도 같이 섬세하게 자연을 묘사하며 그풍요로움에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습지라는 공간이 작가의 과학자로서의 경험과 상상력에 의해 재현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만날수 있는 습지라는 공간은 카야의 강렬한 주체를 빛나게 한다.

살림출판사의 사전서평단으로 이 책을 만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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