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림지구 벙커X - 강영숙 장편소설
강영숙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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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지구

강영숙 소설가의 장편소설 <부림지구 벙커X>는
재난을 다룬 소설이다. 재난 영화와 마찬가지로 재난은 서사에서 극복의 대상이며 영웅의 등장으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는다. 그리고 일상을 회복한다. 결말과 함께 독자는 재난없는 평화로운 일상과 재난의 서사를 대조한다. 아마도 독자의 즐거움은 이와같은 거리두기에서 생성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소설을 읽고 있는 상황은 평화로운 일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시국은 불편과 불안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의 대처와 국민들의 관심과 협조로 안정적인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나로서는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한 적 없는 초유의 사태이기 때문이다. 재난을 자연의 준엄한 경고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일차적으로 답답하고 걱정스럽다. 한편으로는 국가적 차원의 노력과 헌신에 안도하기도 한다. 그런 감정을 오고갈 때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일상을 파괴하는 재난이 얼마나 인간의 존엄을 잃게 하는지 그리고 영웅과 대책이 부재한 상황이 얼마나 인간을 비참으로 몰고 가는지에 대해서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은 대지진 이후 고립된 재난지역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부림지구의 벙커X다. 정부는 이를 ‘오염 지역’으로 관리하고 그 안의 사람들은 비참한 삶을 이어간다. 그중 주인공 유진도 하나다. 부림지구의 토박이로서 이 도시의 할망을 경험한 그녀는 과거회상과 현실의 가혹함을 말한다. 영웅이 아닌 주인공이기에 현실적으로 이입될 수 밖에 없었고 그러기에 작가의 상황묘사가 불편하리만큼 실감났다. 정부는 이재민들에게 생체이식 칩을 넣어 ‘관리 대상’으로 삼고, 사람들은 긴급구호단으로부터 존엄유지키트를 받는다. 가난과 차별로 인한 계급은 재난 앞에서도 확연하게 존재한다. 고통과 절망이 일상이 되어 자리잡는다.

그럼에도 인간은 인간으로서 살아간다. 벙커 안에서도 사람들은 서로 함께하며 관계한다. 내일을 고민하고 오늘을 반성란다. 살아있다는 것이 아직까지 그들에게는 희망인 것이다. 유진은 생체이식 칩을 삽입해 떠날자 아니면 이곳에 이재민으로 남을지를 선택해야 한다. 나는 그들을 긍정한다. 지금 이곳은 재난이 아니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그들을 구경하듯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재난 속이서도 인간임을 끊임없이 증명해왔기에 그들의 삶을 존중하고 긍정하는 것이다.

“미세먼지나 황사, 바이러스 같은 물질성의 요소에 의해 우리 삶이 교란되고 있다는 걸, 2020년 2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다른 대륙으로 침투하는 이 시점에서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인간과 자연 사이의 갈등은 늘 있어왔지만 이제 정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감각일까.”

작가의 말을 통해 재난이라는 것이 일상의 화두로 자리잡고 있는 현실에 대해 생각해본다. 앞으로 우리는 여러 종류의 재난과 친숙한 삶을 살게 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인간으로서 자신을 지키는 것, 삶이 계속된다는 것을 알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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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 댄서
조조 모예스 지음, 이정민 옮김 / 살림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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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호스댄서

부는 사라의 요구에 혼란스러워하며 잠시 주저하는 듯했지만 사라가 두 다리로 압박하며 재촉하자 용기를 내더니 순식간에 등 근육을 뻗으며 차 위로 높이 뛰어올랐다. 한순간에 사라는 크세노폰이 되어 말을 타고 벌이는 전투의 함성을 들었고, 자신의 온몸과 마음을 용기 있는 동물에게 의탁했다. 보호를 받았고, 분노와 영광이 뒤섞인 상태에서 오로지 생존만을 요구했다. 온 세상이 정지해버린 것 같았다.-본문

이 책의 표지는 소녀의 눈과 말의 눈이 맞닿아있는 모습이다. 동화의 한 장면처럼 따스한 교감이 느껴지는 대목을 기다렸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새로운 가족이 만들어지기 까지 너태샤와 맥 그리고 사라가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 가족이 되어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사라의 꿈이 말과 함께 달리는 것이라는 부분에서 다시 표지를 확인했다. 읽기 전과는 다르게 이들의 교감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냉철하고 유능한 변호사 너태샤는 남편 맛과 이별을 준비하는 중에 사라라는 십대소녀를 맡게 된다. 그녀는 문제없는 가정을 설정하고 행동하지만 사라는 살갑게 다가오지 않는다. 너태샤에게도, 사라에게도 성장과 구원이 필요한 순간 그들은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자 한다. 말과 함께 달리며 마음을 두드리는 이들의 시도는 뭉클함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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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 장혜령 소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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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받아 쓰는 존재의 진정성

          장혜령의 진주



부재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서 기록이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존재하는 아버지 앞에서도 기록은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를 처음 만났던 곳, 진주 정확히는 진주 교도소를 떠올리며 성인이 되어 작가는 다시 진주로 떠난다. 여행의 실패를 예감하면서도 작가는 그곳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장혜령의 소설 진주는 해야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어찌할 수 없음의 불가피의 기록이다.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한 시도는 작가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으로 주체는 대상을 분석하지 않는다. 애초에 주체와 대상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었다. 작가는 자신의 존재 근원인 아버지에 대해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운동가로서의 삶이 우선했기 때문에 딸은 시대에 대해 사유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작업이 자신이 낼 수 있는 다수의 목소리를 불러내게 한다. 결국 이 소설은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가장 강렬한 진정성을 획득한다


이 소설이 민주화 운동을 했던 아버지에 대한 딸의 서사라는 점에서 후일담문학이라고 불릴 수 있다. 하지만 후일담이라는 말은 서사의 당사자들에게는 잔인한 표현이다. 듣거나 보는 이들은 사건의 기승전결에 대해 무의식적 요청을 한다. 그러나 그 사건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삶에 극적 구획을 나눌 수 없는 일이다. 이 소설의 아버지와 딸은 결말에 대해 언급할 수 없다. 지금까지 결말을 강요했던 무책임한 독자는 이 작품의 윤리적인 자세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아버지의 삶을 응시하며 그 자리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탐색하는 시도는 치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처절하다. 어쩌면 작가는 운명적으로 쉽지 않은 작업에 매달렸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장르의 구속을 벗어나 용감하고 아름다운 기록을 남긴다. 자신의 이야기지만 에세이를 초과하며 소설이지만 허구의 설정에 숨지 않는다. 일기를 비롯한 자료들은 작가가 살아온 삶에 대한 증거이며 작가의 시에서는 그리운 기억과 아픔이 여운으로 남는다. 어쩌면 작가는 이 소설 이전부터 이 사건의 외부에 대해 기록하고 있었다. 초등학생 소녀일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어떤 방식으로든 쓰기를 통해 존재할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조서를 받아적어야 했다. 그것은 자의가 아니었다. 그는 딸로서 아버지의 삶에 대해 적는다.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자의에 의해 시작했겠지만 어쩌면 그의 글쓰기도 순수하게 자신의 의도만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글쓰기에 쉽게 마침표를 찍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기록은 단순히 이야기를 구성하는 작업이 아니다. 현실을 고발한다거나, 부녀 간의 감동을 전하는 목적에 의한 것도 아니다. 작가는 자신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를 소환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그의 아버지는 민주화 운동에 투신함으로 시대의 야만과 부정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이 소설인 이유는 기록의 모든 경로와 결과를 하나로 함축하기 위함이다. , 에세이, 논픽션 등의 구획에 이 작품을 밀어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운동가 아버지를 그리고 시대를 섬세하게 혹은 서글프게 바라봤고 그대로를 기록했다. 이제 독자의 차례다. 과연 우리는 이 작품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쉽게 대답할 수 없다. 하지만 대답하려는 시도를 계속함으로써 그 태도로 대답을 대신하고 싶다. 작가가 보여준 진정성의 정도와 무게에 대한 최소한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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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 시절 소설Q
금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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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시절
금희
창비 소설Q

과거를 추억이라고 부른 후에
자신의 내밀한 곳까지 응시해보면
나를 닮은 그림자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천진시절.
중국의 지역인 천진에서 살던 시절이라는 뜻이지만 한편으로는 천진했던 청춘의 시절로 마음에 닿는다.

주인공 상아가 동생 금성의 결혼식을 계기로
우연히 과거 천진에서 함게했던 정숙을 만나고
자신의 과거 연인이었던 무군을 떠올리는 이야기다. 함께 일했던 공간과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해 작가의 문장은 투명하고 선명하게 담아낸다.

그러나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런 것도 사랑이라할 수 있을까? 에덴에 남겨진 단 한명의 남자와 단 한명의 여자 같은 경우. 다른 선택이란 있을 수 없고 절대적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유일하게 실재를 확인할 수 있는 낯익은 상대와 함께함으로 그에게서 느끼는 안정감과 친밀감, 의지하고 싶은 감정…… 이런 것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32)

확실한 사랑이 아니라는 생각은 마치 그녀를 시계추처럼 오고가고 만든다. 그녀는 불만과 죄책감의 경계에서 서서 자신의 얼굴을 무심히 바라본다.

나는 생각했다. 항상 그게 문제지. 상대방은 순간순간 흔들리고 생각이 변하는데, 그동안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는 것. (155)

어떤 미사여구없이
해석을 가장한 합리화없이
자신과 그 시절을 진심으로 응시하는 것이
얼마나 윤리적인 시도인지를 읽는 내내 느꼈다.
이 책, 그리고 작가는 너무나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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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 피아노 소설Q
천희란 지음 / 창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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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피아노

"나는 지금 증언을 하고 있는 것이지 설득하려는 게 아니다.”장 아메리 『자유죽음』

자동으로 기계적인 연주를 하는 자동피아노처럼
의도를 넘어서 의식을 지배하는 독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 소설은 가독성이 떨어진다. 정제되기 이전의 언어와 구상을 생략하는 전개는 소설을 읽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독자에게 불친절할 수 있다. 작가는 어느 지점에서 소설이 아니라고도 한다. 그러나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 소설의 가장 진정성있는 지점이다. 이 소설은 단순한 언어실험이 아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몸과 마음으로 오고가는 위태롭지만 진실된 기록이다.

단서를 찾으며 추리할 필요도 없으며 의미도 없다.
이 소설을 읽는 방식은 낭독이 된다.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그 울림을 느껴본다. 그 발화의 이면에 가까이 도달하면 그의 목소리와 나의 그림자가 닮아있음에 놀랄 수 밖에 없다. 불안과 공포를 함께 유영하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이 독법이다.

27
나는 나를 죽이고 싶다. 나는 나를 죽이고 싶지 않다. 나는 죽고 싶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나는 나를 죽이겠다. 나는 나를 죽이지 않겠다. 나는 죽겠다. 나는 죽지 않겠다. 나는 두렵다. 나는 두렵지 않다. 

긍정과 부정은 서로 대립하기보다는 함께 무너지는 편을 택한다. 선택할 수 없는 혼돈 속에 강렬한 느낌만이 남는다. 부정의 소거법을 활용한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의 반복은 답이 아닌 어떤 태도를 남긴다.

70
어쩌면 오늘, 아니면 내일.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욕망하는 일. 내 욕망이 머뭇거림 속에서 실패에 이르는 일. 내가 욕망하는 것은 단 한번의 선택으로만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쓸 수 없다. 오늘은 아니어야 하는데. 어제도 그랬듯이. 아직은, 나는 아직. 무슨 말로 항변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달아난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뛰쳐나간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면 이 소설의 지독한 난해를 한번에 끌어안게 한다. 위로나 공감이 아닌 이 위태로운 상태가 나에게도 그림자처럼 남아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시도는 옳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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