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비프케 로렌츠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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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불킥을 할 만큼 잊고 싶었던 경험이 지워지는 꿈을 꿔본 적이 있다누구나 꿔보는 봄바람 같은 꿈이다작게는 사소한 무언가를 잃어버려서 안타까웠던 일부터크게는 부모님과 싸워서 며칠간 싸늘한 집안 공기를 마시며 지내야 했던 일이런 일들을 지운다면 지금의 인생이 어떻게 변해있을지까진 상상해보지 않았지만생각해보니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 꽤 된다.

 

  29살의 찰리는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줄 알고 계시는 부모님께는 이야기할 수 없었지만 모범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며 지내고 있다남자들과의 원나잇유부남과의 사랑술에 취해 주정 부리는 것은 기본꿈도 없고 희망도 없다며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책 소개에선 미워할 수 없는 그녀라던가 왈가닥이라는 등의 나름 귀여운 단어로 그녀를 설명하지만전형적인 자존심 강한 루저의 모습이다직업이나 생활이 못나서 루저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한없이 깎아내리는 모습이 제대로 루저다이런 찰리는 잊고 싶은 기억투성이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싶어 한다.. 그리고 찾아간 의문의 헤드 헌팅 회사에서 그녀는 과거의 허점들을 지우고 새 인생을 살아간다.

  잊고 싶었던 기억들이 제대로 지워진 찰리의 삶은 180도 바뀌어 있었다기억을 지웠을 때 나비효과처럼 크게 변해버린 삶이처음에는 즐거웠고 자신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 줄 알았다멋진 약혼자와제대로 된 직업이 있었고술에 찌들지 않아도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하지만 그녀의 내면은 사라진 기억들 모두 기억하고 있었고본능적으로 이전 삶에서의 찰리의 습관을 갖고 있었기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현재의 삶에 100%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사람은 항상 무엇을 위해 태어났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의문을 안고 살아간다하지만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한 인생에서 나 자신에 대한 생각해보는 것은 쉽지 않다그럴 여유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어쩌다 친한 누군가와 술잔을 기울이며 이 얘기 저 얘기하다 보면 스치듯 흘러가는 이야기들 중 하나일 것이다그마저 불평만 하다가 이야기는 끝나고 정신 차려보면 술기운과 두통으로 짜증 나는 아침을 맞이하고… 결국 또다시 같은 삶을 반복한다이전 삶의 찰리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누군가 나에게 지금의 삶에 만족하냐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아니요”라고 대답할 것이다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만족하는 삶을 사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그냥 열심히 사는 것이다이전 삶에서의 찰리처럼 자신의 환경과 주어진 것들에 대해 불평만 하며 대충대충 하루를 살아간다면새로운 삶에서 찰리는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는 내가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환경이 아닌 마음가짐에 있다는 것을찰리의 이전 삶과 새로운 삶을 통해서 이야기해준다그 이야기들을 내 삶에 적용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찰리의 이야기가 재미있기도 했지만가끔씩 지치는 내 삶에 대해서도 한 번씩 되돌아 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현재의 삶에 대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과거의 잘못이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나와 마주한다나뿐만 아니라 찰리와 같이 하루하루 지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어주는 이야기이다새싹이 돋듯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계절인 봄에 딱 어울리는 책이 아닐까 싶다.

 

  생각해보니 초등학생 때 재밌게 보던 MBC 테마게임이 생각난다주말 밤마다 보고 잠들었는데이런 비슷한 이야기들이 꽤 많았었다어린 초등학생이 보기엔 그냥 재밌는 이야기였지만 지금의 내가 보면이 책을 읽었을 때와 같은 기분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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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온도 -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명희 지음 / 북로드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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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우주라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뿐인 줄 알았는데『사랑의 온도』를 읽으며 또 다른 우주를 떠올렸다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우주 안에 살고 있다타인을 의식하며 사는 것도내 우주에 그것이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사랑 역시 내 우주에서 다른 우주의 주인과 만나며 벌어지는 일이기에각각의 우주는 사랑이란 것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 못 할 거라 막연히 생각하며 사랑을 판단하던 작가 지망생 현수에게(여자진짜 사랑이 찾아온다두 번의 짧은 연애와 선배의 시답지 않은 조언들로 사랑을 안다고 생각했지만어느 사이에 그녀의 우주에 가득 차있는 ‘착한스프’ 정선을 깨닫는다어딜 가나 정선이 보였고떠올랐다사랑받는 것에 익숙한 그녀의 친구 홍아와는 달리 사랑받는 것이 낯설었던 현수는 정선과 같은 곳을 보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현수홍아정선 각각 그들의 우주에서 엇갈려 가는 관계를 통해 성숙해간다.

 

 내가 이들의 사랑에 안타까워하고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나도 사랑을 하기 때문이다남녀 간의 사랑도 있지만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역시 큰 경험이다친구와의 우정도 사랑의 하나다내 우주 안에 다른 사람이 채워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이들의 사랑이 쉽게 맞춰지지 않았던 것은 다양한 사랑의 경험이 적었기 때문일지 모른다몇 번 안되는 경험이 만족스럽지도 않다만족스럽지 않았던 경험은 벽을 단단하게 만들고쉽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문이 열리길 기다리다가 돌아가면그때 문이 열린다그들의 모든 사랑 경험 하나하나가 서로를 쉽게 이어질 수 없게 만들었단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자신에게 찾아온 사랑을 담담하게 말하는 현수의 모습이 더 슬펐다.

 

 『사랑의 온도』는 로맨스 소설인듯하면서도성장소설이다너무나 단단한 자신의 우주의 벽 때문에 어느 하나도 쉽지 않았던 세 인물들의 성장 소설이었다어른이 또 한번 어른이 되는 과정을담담하지만 감정 가득 실린 문체로 쓰여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세련된 문체가 이런 것이구나~’라는 감탄을 하며 순식간에 읽어내려 갈 수 있었는데제목이 ‘사랑의 온도’보다는 구판 제목인 ‘착한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가 훨씬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아무래도 드라마 때문에 바꾼 것 같다드라마를 보진 않겠지만 행복하고 따뜻한 엔딩이었으면 좋겠다

모든 로맨스 소설은 오글거릴 거라 생각했는데 오글 거림은 거의 없다너무 건조해서 핸드크림을 바르고 싶어지기도 하다. 엄청 건조한데 어찌 이리 가슴을 찌르지? 이것이 작가의 능력인가 보다이런 로맨스 소설이라면 얼마든지 읽을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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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일제강점실록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 9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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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일제강점실록 박영규

 

 학창시절까지 역사에 대한 흥미도 재미도 부족했지만, 어쩌다 어른이 되어 살다 보니 관심도 생기고 알아야겠다는 의지가 자라나면서 역사를 조금씩 배우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라는 말이 나에게 하는 말 같았고, 가슴에 새겨서 기억해야하는 말이란걸 깨달으면서 그때 그때 궁금한 역사들을 찾아 읽는 모습으로도 발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역사는 넓고도 깊으며 어렵다.

 

 『일제강점실록』은 일제가 조선에 대한 침탈 야욕을 드러내보인 1875년부터 한일 강제 합병을 거쳐 해방이 있던 1945년까지의 일제 강점기를 한 권으로 압축시킨 책이다. 10년 단위로 잘라 큰 장을 세우고, 그 시대에 있었던 주요 사건들을 요약하여 순차적으로 나열했다. 책이 얇은 편은 아니지만 일제 강점기를 한 권으로 요약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문체에는 우리 민족의 고통스러웠던 나날들을 보여주려한 노력이 보이지만, 작가의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며 사실만을 전달하려한 노력이 더 크게 보인다. 그 노력에 보답하려 나도 한자씩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일제 강점기를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겠지만, 시대별로 자세히 아는 국민 역시 적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그랬고 책을 읽으면서 그 사실은 더욱 확실해졌다. 학창시절 억지로 외웠던 것들 말고 우리나라의 주권과 독립을 위해 싸웠던 많은 이들에 대해,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극히 적었다. 안중근 의사처럼 많이 알려진 인물 이외에도 수 많은 이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잊혀진 이들도 많았고, 그들의 후손들은 가난 속에 사는 경우도 많았다. 반대로 친일파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돌려달라며 나라에 소송이나 하고 있다. 친일파 후손들이 무조건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자기 조상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려는 모습은 보여줘야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같은 책에서도 꽂히는 부분이 다르다. 내가 이 책에서 꽂힌 부분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과, 사익을 위해 나라와 민족에 등을 돌리고 창을 꽂은 친일파들을 소개한 부분이었다. 시대별로 주요한 인물들을 소개하는 부분이 따로 있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친일파들을 읽었을 때의 분노보다는, 우리나라를 위해 노력했던 분들 덕에 우리가 나라를 찾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했고 한 번 더 가슴에 새길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 참 좋았다.

많은 친일파들이 해방 후에도 호의호식하며 잘 살 수 있었다. 해방 속 혼란스러운 정국에 미국이 개입하면서, 해방 전 관료들을 그대로 임명한 것이 하나의 이유이다. 나라에 힘이 없으면 어느 쪽으로든 휘둘리게 되어있는 슬픈 현실은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하다. 이것이 역사를 배우고 나라의 지식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역사란 거창한 것도 숭고한 것도 아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낸 개인들의 삶이 물이 되어 개천을 이루고, 그 개천들이 다시 뭉쳐 강을 이루고, 그 강물이 도도하게 흐르는 오늘의 연속이 곧 역사다.  – 들어가는 말 中-

 

 작가의 말대로 역사는 거창한 것이 아니지만 역사를 모르면 무너졌던 벽은 또 다시 무너질 수 밖에 없다. 뭘 잘못했는지 다시 공부한 뒤 벽을 세운다면 벽은 더 견고해지고 단단해질 수 있다. 역사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나의 역사 공부는 책 한 권 읽으면서 지식의 그릇을 조금씩 채우는 과정이다. 이 책으로 내 그릇을 조금 채웠고,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발전할 수 있었다는 사실 또한 강렬하게 기억했다. 우리 땅 위에 남아있는 일제의 나쁜 뿌리들이 사라지는 날을 기대해보며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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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전쟁 - 최순실 국정농단 천 일의 추적기
안민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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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안민석, 김성태 의원의 대격돌(?)을 듣는다. 지난 청문회를 통해 큰 임팩트를 주었고 활약을 했던 서로 다른 진영의 정치인이 티격태격하는 것이 재밌다. 이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안민석 의원의 출간 소식을 들었다. 처음엔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없는데 책까지 낼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건 언론이 보여주는 선이 다였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많은 것은 분명한데 일개 소시민인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의심은 하지만 베일에 싸여 벗겨내기 쉽지 않은 진실을 알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첫 시작은 2014년 한 신부의 전화로부터였다. 승마계가 난리가 났다는 전화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2014년 4월 8일 정기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정유라 승마 공주 문제' 제기가 등장할 수 있게 해준 운명의 전화였다. 이를 시작으로 근 3년간의 최순실 추적기가 담겨 있다. 정치인을 하기 전에 사회체육부 교수였고, 국회의원이 된 후 우리나라 체육계 개혁을 위해 뛰어온 그였기 때문에 그가 정유라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건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언론에서 보여주는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많이 담고 있어서 읽으면서 놀라움과 경악은 필수 옵션이다.



 개인적으로 최순실 보다 더 분노하게 만든 이는 김종 전 차관이다. 그는 진정한 꼭두각시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었다. 그로 인해 많이 아팠을 사람들의 모습도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국민을 불면 날아가는 먼지로 알고, 최 씨 일가의 비위를 맞추며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그의 모습에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욕이란 욕은 다 쏟아부었다.



 이 책의 특성상 안 의원의 사견이 많은 건 사실이다. 읽을 때 너무 감정이입하지 말고 사실만을 보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그의 추적이 단순한 미움과 의심으로 시작되고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 또한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최순실이 구속되고, 박근혜가 탄핵 대통령이 되어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지금도 꼭꼭 숨겨진 진실이 10분의 1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의 끝나지 않은 추적기가 끝날 그날을 간절히 바라고, 추악한 국정 농단을 밝혀질 수 있게 노력한 안민석 의원과 많은 이들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어떠한 사회파 미스터리보다 더 실감 나고 살벌한 추적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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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된 순례자들 사형집행인의 딸 시리즈 4
올리퍼 푀치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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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일의 장르소설은 처음 만났다. 일본 소설을 좋아해서 다른 나라의 소설들은 '찾는 것' 자체를 잘 안 한다. (사실 안중에도 없다-_-;) 우연한 기회로 읽게 된 「중독된 순례자들」은 사형집행인의 딸 시리즈 중 네 번째로, 역시나 안중에 없던 책이다. 평소 전혀 찾지 않는 독일 소설이고, 생소한 사형집행인이라 하니 더 거리감이 느껴졌다. 내 머릿속의 사형집행인은 영화나 게임에서의 이미지처럼 무시무시한 처형자에 가까웠다. 윗사람의 지시로 죄수를 죽이기만 하는 그런 처형자의 모습이다.  하지만 「중독된 순례자들」에서 만난 사형집행인 '야콥 퀴슬'은 괴팍한 성격이긴 해도 단순 무식하고 힘만 센 처형자가 아니었다. 마음 따뜻한 아버지이면서 다정한 남편이다. 게다가 사형집행인들은 신체에 대한 이해도 높고, 약초에 대한 지식은 약제사보다 더 뛰어났다. 고문과 동시에 치료를 해야 하는 것도 사형 집행인의 일이라서 그들은 잔인한 처형자인 동시에 뛰어난 의사이기도 했다. 물론 중세 독일에서 사형집행인의 신분은 매우 낮아서 그들에게 치료를 받으려는 자들은 없었을 것이다.



 사형집행인의 딸 '막달레나'는 남편 '지몬'과 안덱스로 순례 여행을 떠나는데, 그곳의 안덱스 수도원에서 예기치 못한 살인사건들이 일어고, 의도치 않게 말려들게 된다.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안덱스 수도원의 약제사가 붙잡히지만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돌면서 목욕탕 의사인 지몬은 아픈 이들을 돌보게 된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위기의 옛 친구를 돕기 위해 사형집행인 퀴슬까지 어린 손자 둘을 데리고 나타나면서 퀴슬 가족은 안덱스에 묶이게 된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이 두꺼운 소설의 초반은, 집중이 잘 안되고 읽기에 매끄럽지 않았다. 1660년대가 배경인 낯선 독일의 모습이, 내가 자주 읽던 일본과 영미 소설과는 너무나 다른 스타일이어서 당황하기도 했다. 주인공들 말고 다른 인물들의 이름은 헷갈려서 메모지에 써놓고 보면서 읽었고, 낯선 사회상에 적응하면서 읽어나간 것이 초반이었다. 아무리 낯선 소설이라도 3분의 1 정도 읽으면 익숙해지고, 그때부터는 재미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힘든 초반이 지나가자 나머지는 쉬웠다. 빠른 전개는 아니었지만 적당한 템포로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는 퀴슬가 사람들의 고군분투를 느끼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욕설과 독한 말들을 밥 먹듯이 하지만, 강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야콥 퀴슬의 매력에도 빠져버렸다. 막돼먹은 오줌싸개들이라고 손자들을 부르지만 누구보다 손자들을 사랑하는 야콥의 모습에서 사형집행인 역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내 아버지의 모습까지 떠올렸다. 작가가 사형집행인의 후손이라 하니 이런 점들을 더 부각하고 싶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도 해보았다.



 신성한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과 음모들이 중세 이야기 다웠으며, 긴 페이지만큼 자세하고 꼼꼼한 스토리로 이질감 없이 공감을 사기엔 충분했다. 중세 독일은 내가 잘 몰라서 이해가 어렵고 공감이 안될까 봐 걱정했었지만 정말 재밌게 읽었다. 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각각 인물들의 성격도 확실히 알 수 있었으며, 이들의 끈끈한 애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장르 소설이지만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을 읽은 것 같이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사형집행인에 대한 새로운 면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책이 좀 두껍고 글이 많아서 부담일 순 있겠지만 재미있는 장르 소설을 원한다면 추천해주고 싶다. 그리고 나도 어서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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