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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온도 -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명희 지음 / 북로드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사람의 우주라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뿐인 줄 알았는데, 『사랑의
온도』를 읽으며 또 다른 우주를 떠올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우주 안에 살고 있다. 타인을 의식하며 사는 것도, 내 우주에 그것이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사랑 역시 내 우주에서 다른 우주의 주인과 만나며
벌어지는 일이기에, 각각의 우주는 사랑이란 것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 못 할 거라 막연히
생각하며 사랑을 판단하던 작가 지망생 현수에게(여자) 진짜
사랑이 찾아온다. 두 번의 짧은 연애와 선배의 시답지 않은 조언들로 사랑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사이에 그녀의 우주에 가득 차있는 ‘착한스프’ 정선을 깨닫는다. 어딜 가나 정선이 보였고, 떠올랐다. 사랑받는 것에 익숙한 그녀의 친구 홍아와는 달리 사랑받는 것이 낯설었던 현수는 정선과 같은 곳을 보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현수, 홍아, 정선
각각 그들의 우주에서 엇갈려 가는 관계를 통해 성숙해간다.
내가 이들의 사랑에 안타까워하고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나도 사랑을 하기 때문이다. 남녀 간의 사랑도 있지만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역시 큰 경험이다. 친구와의 우정도 사랑의 하나다. 내 우주 안에
다른 사람이 채워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이들의 사랑이 쉽게 맞춰지지 않았던 것은 다양한
사랑의 경험이 적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몇 번 안되는
경험이 만족스럽지도 않다. 만족스럽지 않았던 경험은 벽을 단단하게 만들고, 쉽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문이 열리길
기다리다가 돌아가면, 그때 문이 열린다. 그들의
모든 사랑 경험 하나하나가 서로를 쉽게 이어질 수 없게 만들었단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자신에게 찾아온 사랑을 담담하게 말하는 현수의 모습이 더 슬펐다.
『사랑의 온도』는 로맨스 소설인듯하면서도, 성장소설이다. 너무나 단단한 자신의 우주의 벽 때문에 어느 하나도 쉽지 않았던 세 인물들의 성장 소설이었다. 어른이 또 한번 어른이 되는 과정을, 담담하지만
감정 가득 실린 문체로 쓰여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세련된 문체가 이런 것이구나~’라는 감탄을 하며 순식간에 읽어내려 갈 수 있었는데, 제목이 ‘사랑의 온도’보다는 구판 제목인 ‘착한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가 훨씬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드라마 때문에 바꾼 것 같다. 드라마를
보진 않겠지만 행복하고 따뜻한 엔딩이었으면 좋겠다.
모든 로맨스 소설은 오글거릴 거라 생각했는데 오글 거림은 거의 없다. 너무 건조해서
핸드크림을 바르고 싶어지기도 하다. 엄청 건조한데
어찌 이리 가슴을 찌르지? 이것이 작가의 능력인가
보다. 이런 로맨스 소설이라면 얼마든지 읽을만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