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구 파괴의 역사 - 과학자의 시선으로 본
김병민 지음 / 포르체 / 2023년 9월
평점 :
지구
파괴의 역시 – 김병민
생명의 기원도, 태양과 지구의 관계도 모두 신의 뜻이었던 시대를 지나, 모든 것이
과학적으로 분석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으며,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까지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이 모든 것은 신의 뜻이기에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모든 과학자들의
의견이 같진 않지만 대부분 일치하는 (또는 일치되어 가는) 기후
변화에 따른 우리의 위기. 이것은 분명 신의 뜻이 아닌, 인간이
자초한 일이다.
나를 포함하여, 소중한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것도 마다하지 않는 요즘의 부모들은 사실 기후 변화에 대해서는 흐린 눈을
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 세대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았기에 어떤 미래가 닥칠지 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당장 오지 않을 것 같고 당장 내 삶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모른 척을 빙자한 외면으로 계속 같은 생활을
한다.
… 인류는
이미 자본과 경제 논리 위에 놓인 영악한 자신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당장 닥치는 위험이 없다면, 이미 그 거대한 구조 속에 속해 있으면서 아직 움직이지 않는 자신은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예전에는 정복자의 존재가 명징했다면, 지금은 흐릿한 모습으로
우리 자신의 세포 일부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
-p. 36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월등한 지능을 가졌지만 무엇도 파괴할 권리는 없다. 타인에게
혹은 다른 생명체에게 겸손한 적도 없다. 우리가 지구의 주인인 양 진화했고,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나조차 가끔 자연스러운
파괴 행동에 자기혐오를 느낀다.
지금의 편안함, 안정감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관심을 선택한다.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고, 이런 책을 읽으면서도 생활은 달라지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
우리의 삶을 윤택하고 편하게 해준 많은 것들은 각자 다른 역사를 갖고
있다. 그 역사들은 한 길로 모여, 우리가 최첨단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해주지만, 반대로 우리가 지구와 함께 평온하게 지낼 수 있는 시간 또한 앗아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대화형 AI 모델 Chat GPT는 많은 장단점이 있지만 하나의 큰 단점이 있다. 알고리즘을
돌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전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Bitcoin을 채굴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단순히 여름에
냉방기구를 많이 돌리고, 전자제품을 많이 사용하는 것보다 여러 기업체에서 Chat GPT를 몇 번 돌리는 것이 더 많은 전기를 잡아먹을 수도 있다. 이렇게
잘 몰랐던 우리 주변에서 지구를 파괴하는 것들, 그리고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던 것들에 대한 역사와, 지금의 우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책으로 써낸 것이 바로 ‘지구 파괴의 역사’이다.
단순히 기후 위기에
대한 경고가 아닌, 과학자인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무지함 (잘
알면서도 외면하고, 흐린 눈을 하는 것과 같은 무지함)을
자책하며 쓴 글이기에 좀 더 잘 이해가 잘 되고, 책 후반부에 가서는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일반인들보다는 미래에 대한 예측으로 공포심을 더 많이 갖게 되는 과학자의 마음을, 책을 통해 토해내고 있다는 걸 느꼈다.
과학자의 입장에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사실만을 전하려고 한 듯하지만, 그 자체에서 그의 감정이 더 잘 느껴진다.
뉴스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성장률.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것 같다. 성장이 멈추면 정말 큰일이
날까. 성장은 반대급부로 무언가를 파괴할 수 있다. 지금까지
너무나 멋지게 성장해온 것들을 되돌아보고, 조금 천천히 가도 충분하지 않을까. 더 이상 어떻게 편리해지고 성장해야 우리는 만족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 나는
질문이 더 많아졌다. 정말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책이다. 지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천천히 읽어보길 추천한다.
최근 IPCC가 발표한 6차 평가 보고서에서 기후 위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그 과정 또한 심각하다는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했음에도, 큰 이슈가 되지 못하고 조용히 묻히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내가
깔고 뭉개고 있는 집값이 내려가는 것을 걱정하고, 소비는 증가하는 인구의 수만큼 늘어나고 있다. 기후 위기가 큰 이슈가 되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이 잔혹한 동화 이야기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믿을 수 없기 때문일까?
…. 메신저는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우리가 무시할 뿐이다. 깨닫지 못한 인간을
위해 자연이 메신저로 직접 나서고 있지 않은가. 절대 자연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자연에서 인류가 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p. 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