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된 순례자들 사형집행인의 딸 시리즈 4
올리퍼 푀치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독일의 장르소설은 처음 만났다. 일본 소설을 좋아해서 다른 나라의 소설들은 '찾는 것' 자체를 잘 안 한다. (사실 안중에도 없다-_-;) 우연한 기회로 읽게 된 「중독된 순례자들」은 사형집행인의 딸 시리즈 중 네 번째로, 역시나 안중에 없던 책이다. 평소 전혀 찾지 않는 독일 소설이고, 생소한 사형집행인이라 하니 더 거리감이 느껴졌다. 내 머릿속의 사형집행인은 영화나 게임에서의 이미지처럼 무시무시한 처형자에 가까웠다. 윗사람의 지시로 죄수를 죽이기만 하는 그런 처형자의 모습이다.  하지만 「중독된 순례자들」에서 만난 사형집행인 '야콥 퀴슬'은 괴팍한 성격이긴 해도 단순 무식하고 힘만 센 처형자가 아니었다. 마음 따뜻한 아버지이면서 다정한 남편이다. 게다가 사형집행인들은 신체에 대한 이해도 높고, 약초에 대한 지식은 약제사보다 더 뛰어났다. 고문과 동시에 치료를 해야 하는 것도 사형 집행인의 일이라서 그들은 잔인한 처형자인 동시에 뛰어난 의사이기도 했다. 물론 중세 독일에서 사형집행인의 신분은 매우 낮아서 그들에게 치료를 받으려는 자들은 없었을 것이다.



 사형집행인의 딸 '막달레나'는 남편 '지몬'과 안덱스로 순례 여행을 떠나는데, 그곳의 안덱스 수도원에서 예기치 못한 살인사건들이 일어고, 의도치 않게 말려들게 된다.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안덱스 수도원의 약제사가 붙잡히지만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돌면서 목욕탕 의사인 지몬은 아픈 이들을 돌보게 된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위기의 옛 친구를 돕기 위해 사형집행인 퀴슬까지 어린 손자 둘을 데리고 나타나면서 퀴슬 가족은 안덱스에 묶이게 된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이 두꺼운 소설의 초반은, 집중이 잘 안되고 읽기에 매끄럽지 않았다. 1660년대가 배경인 낯선 독일의 모습이, 내가 자주 읽던 일본과 영미 소설과는 너무나 다른 스타일이어서 당황하기도 했다. 주인공들 말고 다른 인물들의 이름은 헷갈려서 메모지에 써놓고 보면서 읽었고, 낯선 사회상에 적응하면서 읽어나간 것이 초반이었다. 아무리 낯선 소설이라도 3분의 1 정도 읽으면 익숙해지고, 그때부터는 재미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힘든 초반이 지나가자 나머지는 쉬웠다. 빠른 전개는 아니었지만 적당한 템포로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는 퀴슬가 사람들의 고군분투를 느끼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욕설과 독한 말들을 밥 먹듯이 하지만, 강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야콥 퀴슬의 매력에도 빠져버렸다. 막돼먹은 오줌싸개들이라고 손자들을 부르지만 누구보다 손자들을 사랑하는 야콥의 모습에서 사형집행인 역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내 아버지의 모습까지 떠올렸다. 작가가 사형집행인의 후손이라 하니 이런 점들을 더 부각하고 싶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도 해보았다.



 신성한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과 음모들이 중세 이야기 다웠으며, 긴 페이지만큼 자세하고 꼼꼼한 스토리로 이질감 없이 공감을 사기엔 충분했다. 중세 독일은 내가 잘 몰라서 이해가 어렵고 공감이 안될까 봐 걱정했었지만 정말 재밌게 읽었다. 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각각 인물들의 성격도 확실히 알 수 있었으며, 이들의 끈끈한 애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장르 소설이지만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을 읽은 것 같이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사형집행인에 대한 새로운 면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책이 좀 두껍고 글이 많아서 부담일 순 있겠지만 재미있는 장르 소설을 원한다면 추천해주고 싶다. 그리고 나도 어서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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