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우울한 날들에게
마이클 킴볼 지음, 김현철 옮김 / 갤리온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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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우울한 날들에게 나온 주인공 Mr. 조너선에게 먼저 추도의 인사를 건네고 싶다. 물론 그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에서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다” 처럼, 조너선의 이야기는 시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시는 현실 속에 살아가는 불운한 어린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방된 현실 내지 재현된 현실이라 말해주고 싶다.

 

조너선의 자살을 읽어가다 보면 그의 일기를 읽고, 그가 남긴 메모와 스크랩, 주변 사람들의 증언과 기록들이 외롭게 죽어간 조너선의 과거를 찾아간다. 불운하게 죽은 조너선을 찾아가는 사람은 조너선의 단 하나뿐인 동생인 로버트다. 로버트는 자기 형인 조너선의 죽음을 통해 그의 행적을 추적한다.

 

그의 일기를 찾아 그의 아버지를 찾아 그의 기억을 더듬어 로버트는 어린 시절 형을 돌이켜 보려고 한다. 그토록 문제만 일으키고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형을 말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이내 곧 후회를 불러 일으켜 왔다. 아니 그 모든 비극적인 결말은 결국 자신도 가해자 중에 하나였다.

 

형인 조너선은 너무 우울하고 슬프고 거기다 못해 이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외면당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제일 처음 대하는 존재는 어머니고, 그 다음에 어머니 주변 사람이다. 어머니인 Mrs. 앨리스는 아들인 조너선과 로버트를 끔찍하게 아끼던 좋은 어머니였다. 조너선이 괴로워하면 언제나 안아주던 어머니이었다.

 

그런 앨리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너선은 비뚤어진 청소년기와 청년기, 그리고 어른이 되어 일을 하고 결혼까지 함에도 불구하고 조너선은 안식처를 얻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과거의 망령들이 그를 죽을 때까지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인간의 시작이 어디서부터인가? 라는 근원적인 부분이다.

 

인간의 근원은 어머니가 존재하는 가족이란 커뮤니티이다. 인간이 가지는 최소한의 사회규모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이는 곳은 가족이란 뜻이다. 그런 가족이란 인간적 유대가 깨어지면 어떻게 인간이 망가져 가고, 그 망가져 가는 인간이 얼마나 괴롭고 외로워 눈물이 앞을 가리야 하는 일들이 생기는지 알려준다.

 

소설의 비극적인 주인공 조너선은 항상 강박관념에 시달려왔다. 그의 강박관념은 자신도 알고 있었으나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인간은 이성이란 사유로 통해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은 분명하나 그 이성 안의 본질적인 감정과 무의식의 세계는 이성의 통제가 한계가 있었다. 조너선의 무의식 속에 갇혀진 우울과 공포는 이미 어른이 되어서도 존재했다.

 

그 모든 배후는 조너선을 세상에 나오게 한 아버지 토머스였다. 토머스는 젊은 시절 제법 인물도 괜찮았고, 월급도 좋았던 남자였던 모양이었다. 아마 어머니 앨리스와 만나기 전에도 많은 여자와 만나 그는 청춘을 누렸을 것이다. 문제는 어머니 앨리스와 만나면서 앨리스가 임신을 했고, 피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앨리스는 심한 복통에 괴로워하면서 정해진 출산일로부터 2주나 지연되었다.

 

당시 계절은 매우 추운 겨울, 밖에는 심한 눈보라로 차들이 도로에서 도저히 달릴 수 없었다. 그때 심한 복통이 앨리스를 덮친 것이다. 어렵게 겨우 제설차의 도움으로 병원에 가서 무사히 조너선을 출산했으나, 조너선의 탄생은 가족들에게 행복이란 대신 불운 내지 비극이었다. 아버지 토마스는 조너선을 매우 싫어했고, 그것이 나이를 먹어가며 조너선에게 누적이 되어버렸다.

 

어린 시절 아이들과 그보다 어린 아기들은 매우 감정에 민감하고, 주변 상황에 그대로 몸에 베여 버리는 시기이다. 조너선은 그때부터 이미 비뚤어져 가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미움을 받고, 겨우 어머니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몇 년 뒤에 태어난 앨리스의 두 번째 아들인 로버트는 조너선에게 하나의 위협이었다.

 

로버트가 나오면 자신을 유일하게 바라보는 어머니가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말이다. 그런다고 앨리스는 로버트가 태어나도 여전히 조너선을 사랑했다. 조너선을 위해 그녀가 바친 헌신은 마음이 아프다. 일일이 조너선을 챙겨주고, 지켜봐주고 학교를 다른 곳에 갈 때도 짐도 챙겨주었다. 정신병원에서 처음 진료 받을 때 조너선의 자신감을 채워주기 위해 좋은 옷에 치아교정까지 해주었다.

 

특히 인상 깊은 점은 아버지 토마스가 조너선을 심하게 구타하려 할 때 옆에서 앨리스가 막아준 것이다. 대신 어머니 앨리스는 밤에 아버지 토마스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했다는 내용이다. 조너선은 이런 기억 속에서 계속 성장했다. 아버지 모든 것이 저주했고, 아버지로부터 도망치기 원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아버지를 보지 않으려고 했으며, 그의 죽음 전에 유언은 하나의 저주였다.

 

저주의 주문이 아버지에게 돌아가도록 한 것이다. 그의 모든 인생은 아버지로부터 시작하여 우울증과 편집증으로 이어졌다. 키도 크고 아주 멋진 사랑스러운 여자 사라와 살아가면서도 조너선은 그의 우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사라의 기억에서도 그녀는 조너선의 일들을 보이면서 그가 얼마나 심한 병세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자기도 못알아 봤다는 기억만으로 괴로워했다.

 

그러나 조너선의 기록에는 그녀가 매우 슬픈 얼굴로 울고 있는 사실도, 자기도 너무 슬프고 우울한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어도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 그의 이성은 마지막까지 놓친 게 아니라 표출될 수 없었다. 분명 모든 것이 자신이 원하는 바로 될 수 없으나 그는 강박관념과 편집적인 증세로 그렇게 되자고 신념하기를 원했다. 물론 이룰 수 없었지만, 그것이 되고자 알 수 없는 행위를 하였다.

 

남들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오직 본인만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의 일기를 보고 로버트는 당시 자신의 눈에서 형은 그저 문제아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일기로 통해 보는 형은 지극히 정상은 아니나 그 모든 일들이 형의 문제가 아니라 형의 주변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로버트가 본 조너선은 어떤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해 모두 기억하고 그것에 대해 자기의 입장은 명확히 서술했다.

 

게다가 자신의 과오도 자신이 저지른 실수도 알았다. 물론 거기에 대한 사과와 후회도 알았다. 죽기 전에 자신과 관련된 모든 사람의 이야기까지 적어놓았다. 과연 그가 제 정신만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었을까? 어째든 이 일기를 본다면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엄청 많을 것이다. 사소한 뭔가에 집착하여 현실이란 공간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인물을 말이다.

 

또한 생각해보면 나도 조너선과 같은 증세가 아니나, 그런 정신적인 억압이나 우울은 있다. 뭔가 나 자신이 갇혀있고, 터질 수 없는 응어리 같은 것이 말이다. 조너선의 경우 정말 정신병적인 증세가 있겠지만, 그런 증세의 표출의 강약일 뿐이지 우리 인간 역시 조너선처럼 뭔가 과거에 시달리거나 거기에 자신의 마음을 죽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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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구광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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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지 않았으나, 그가 유명한 인물이라는 것만은 안다. 그를 주인공으로 하여 만든 영화도 있는 것을 안다. 그의 고장 난 500cc 오토바이 포데로사를 타고 남미 대륙을 횡단하고 모험하는 이야기에서 말이다. 물론 영화에서는 아마 영화의 특성답게 뭔가 강렬한 느낌이나 혹은 감동을 전해줄 것이다.

 

직접 그 영화를 본 것은 아니나, 이 책에서 나온 단편적으로 나온 체 게바라의 남미대륙 여행은 큰 영화가 되었다. 하지만 보통 우리가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처럼 아름답고 절절한 이야기보다는 아름답고 절실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발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똑똑한 머리와 감수성으로 많은 사람들을 감화시킨 체 게바라, 그는 매우 매력적이고,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감수성은 많은 독서와 사고, 그리고 시 낭송, 그리고 길가에 만나는 많은 사람들, 이 모든 것이 체 게바라의 인생을 바꾼 하나의 소재였다.

 

그의 여행은 참으로 인상 깊다. 나는 사람을 고치기 위해 의사가 되었으나, 여행을 하고 난 뒤에 세상을 고치는 의사가 되겠다고 말이다. 그는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 혁명가로 태어났고, 그의 투쟁은 전 세계 모든 자유와 평등, 인권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큰 메신저가 되었다.

 

프랑스에서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에 의해 실존주의가 막을 내릴 때, 그 실존주의자 대표적인 인물인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이 인상 깊다. “우리 세기 가장 성숙한 인간”이라고 말이다. 이런 장 폴 사르트르를 체 게바라는 직접 만났다. 장 폴 사르트르는 내가 아는 영역에서는 마르크스주의자였다.

 

역시 체 게바라도 마르크스의 도서를 청소년 시절에 읽었다. 그가 바라는 세상이란 마르크스가 외치던 약자들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체 게바라는 투쟁을 한 것이다. 내가 아닌 이 세계의 억압받고 탄압받고 피눈물을 매일처럼 흘리는 그들을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체 게바라의 마지막은 자신의 피눈물로 마감하게 되었다.

 

10월 7일 볼리비아 정부군에 포획당한 후에 9일에 총살을 당했다. 그의 두 손은 증거확인을 위해 무참히 잘라나가고, 그의 시체는 포르말린을 주입당한 후 아무렇게 버려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많은 학자들이 그의 유골을 찾아 역사의 기억으로 돌려놓았다. 하지만 체 게바라의 해골이 보는 세상이란 아직도 아름답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해골을 대신하여 사람들은 체 게바라가 새겨진 티를 입고, 그의 이미지와 로고가 이제 젊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자유란 무엇일까? 청춘이란 무엇일까? 이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가 지녀야 할 가치관이란 무엇일까? 그것을 체 게바라는 목숨을 걸고 투쟁을 한 것이다.

 

그의 죽음은 비록 눈을 제대로 감지 못했지만,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에서는 그의 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의 인생, 그의 주변 인생, 그가 보아온 주변 사람들의 인생, 그는 독서를 좋아하여 늘 손에 책을 떠나보내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죽을 때의 배낭에는 책이 많이 들어있기 보다는 낡아져 버린 수첩이 들어있었다.

 

그래도 그 수첩에는 자신이 좋아한 69편의 시가 담겨있었다. 아주 강렬하고 열정적인 사랑의 노래도 있었으나, 사랑보다 크고 웅장하며 슬픈 애환이 담겨있었다. 그중에 가장 인상 깊은 시는 아버지는 백인, 어머니는 원주민인 노래다. 남미가 침공 받아 백인들에게 노동을 착취당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는지 원주민 여성까지 범했다.

 

원주민 아이들은 혼혈로서 다시 재착취 대상이 된다. 이 부분을 읽다 보니 전에 읽은 하워드 진의 도서가 생각나기도 하고, 노암 촘스키의 저서도 생각난다. 남미에서 벌어진 잔혹한 행위와 그리고 숨은 진실들을 말이다. 체 게바라는 그런 강대국들의 횡포에 맞서 싸운 것이다.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태어나거나 혹은 살아있거나 앞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 공간에서 말이다.

 

그 억압되고 부당한 공간은 당장 없어질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을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아주 잔혹한 사건을 보았던 것이다. 어느 흑인 소년이 백인아가씨에게 말 한번 잘 못해서 무참하게 맞아 죽었는데, 거기에 모자라 머리에 총을 맞아 얼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다는 점, 그리고 무거운 물건을 시체에 달아 강에 버려 시체가 썩어버리게 한 그 잔혹함, 오죽했으면 흑인을 죽이는 행위는 동네 행사로 여기고, 신문광고를 내는 모습은 정말 민주주의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에서 일어난 일인가? 하고 의심하게 했다.

 

물론 그 나라는 볼리비아 정부군에 지원을 해주었고, 볼리비아 정부군은 그들의 조직인 CIA에게 명령을 받아 체를 총살시켰다. 체 게바라의 죽음은 체 게바라라는 인물의 생물학적인 죽음이었으나, 그는 결코 죽지 않았다. 그의 이상향인 자유와 평화는 아직도 젊은이들의 입속에서 되풀이 된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국가자본주의에 반한 체 게바라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이미지가 자본주의 상품 기호로 변질되었다. 이런 체 게바라의 영향이 워낙 큰지 안티 체 게바라 이미지도 나온다. 이미 그는 1967년 10월 자신의 심장이 정치적 폭력이 단긴 총알로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도 그의 유령은 다시 세상 어디라도 좋으면 나타난다. 민중에 대한 폭력과 착취가 이 세상에서 멈추지 않은 그날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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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좌절 - 노무현 대통령 못다 쓴 회고록
노무현 지음 / 학고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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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정치인들이나 유명 인사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적으면 대부분 좋은 부분을 적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최근에 이르기까지 큰 중요 사건들을 나열하여 거기에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였고, 그것으로 인해 어떻게 잘 되었는지를 보여주기 바쁜 것이 대부분의 자서전이다.

 

그런데 이번에 보았던 성공과 좌절은 조금 다른 자서전이었다. 그것은 성공과 좌절처럼 성공을 담은 이야기가 아니라 성공보다는 좌절에 순간에 초점을 맞추었다. 물론 어느 정도 성공한 부분도 있었으나 그것은 단지 일부분이지 이 책의 중심은 성공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많은 이야기였다.

 

노무현이 대통령을 지내면서 이 문구가 정말 생각나게 했다. “시대는 한 번도 나를 비켜가지 않았다.” 라고 말이다. 노무현의 이야기는 어떻게 본다면 개인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한국 근현대사의 이야기도 닮아내었다. 한국이 일제강점기와 625사변 이후 어려운 경제, 정치, 사회적인 변화 속에서 이른바 독재정치라는 큰 압박 속에 대중들이 살고 있었던 시기이다.

게다가 독재정치만 문제가 아니라 독재로 통한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노무현이 가장 싫어했던 부분이 반칙하는 플레이였다. 그리고 기회주의적인 인간들과 사회들도 싫어했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기회주의적인 인간이 득세할 수 있게 해주었다.

 

가령 나도 그런 생각을 버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흔히 겉으로 공정하고 모든 국민이 자신이 바라는 목표를 향해 노력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즉 개인 어느 한 사람이 끊임없이 노력하고 성실한 자세로 임한다면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끔은 이런 이야기도 듣는다. “돈 없고 백 없는 인간들은 그저 죽어야지” 라고 말이다.

내가 지금 이런 문구를 적는 것이 이상할지 모르나 그것은 내가 일상적으로 듣거나 혹은 느끼는 이야기다. 심지어 회사에 가서 직장동료와 밥 먹는 중간에도 쉽게 나오는 말들이다. 지금 이것이 내가 혹은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일 줄은 모르겠다. 노무현은 아마 이런 것이 무척이나 싫어했던 모양이다.

 

그의 저서 중에서 다른 책을 보니, 그는 대학교를 나오지 않고 고등학교만 나왔다. 지독한 가난함과 집안가정이 어려워서 대학진학은 꿈도 꾸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사법시험에 고졸 출신이 붙은 것이다. 막상 사법연수원에 가보니 많은 동기들이 좋은 대학교에 다녔던 사람으로 모두 노무현을 무시했다.

 

심지어 밥을 먹는 순간에 혼자서 먹어야 했던 그로서는 이미 대한민국의 현실에 많은 턱을 절실히 느꼈던 것이다. 물론 얼마 후에 노무현과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서로 도움을 주던 동기들도 나타났다. 그러나 노무현이 느끼는 당시 70년대 중후반의 한국사회는 가장 엘리트적이고 가장 국민을 받들어야 할 판검사 및 변호사 조직들이 특권의식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노무현이 청문회 스타로 혹은 부림사건 이후의 변호사로 활약하기 전에 큰 두각을 나타나지 않았으나, 적어도 그는 계속 대한민국의 모순된 구조와 싸웠다. 물론 대통령이 되어 활동할 때도 계속 싸워야 했다. 전에 어느 신문기사에서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 모두 일어나며 박수칠 때 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박수치지 말아야 할 타이밍에 누가 노무현에게 박수를 쳤다고 한다.

 

고등학교 출신에 백도 없는 이유로 야유를 당하기도 했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백이란 단어를 많이 생각했다. “돈도 없고 백도 없으면 그저 입 다물고 구석에 쳐 박혀야 하냐고?”, 물론 위에서도 언급했으나 깨끗한 미사어구를 날리는 양반들이야 원칙이 서는 나라, 모두가 자유롭게 생활하는 나라, 행복하고 밝은 나라라고 외치는 경우가 많으나 가끔 그들의 행보에선 그런 것이 전혀 느끼지 못할 경우가 많다.

 

당하는 자와 그 당하자는 자의 옆에서 관찰하는 자에 비해 멀리서 방관하고 가해하는 자는 아무런 느낌을 가질 수 없다. 본래 가해자들은 자신이 가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이 당연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사회에서 이런 점은 “나만 잘되면 된다. 우리만 잘되면 된다. 남은 어떻게 되는지 관심 없다. 그저 힘없으면 닥치고 있든지?” 라는 이야기로 당하는 자의 가슴을 상처투성이로 만든다.

 

노무현은 그것이 싫어했던 것이다. 아마 그가 가장 큰 좌절을 느낀 것은 이런 사회를 개선하고 싶었으나, 그것이 되지 않음이다. 모두 먹고 사는 경제만을 외치고 있으나, 조금만 이상해도 경제가 죽니 사회가 죽니 라는 이야기가 그의 눈과 귀에 전달되었다. 아마 당시 1997년 IMF 위기 이후 조금씩 그 과정을 해결해 가는 도중 많은 서민들이 희생되어야 하는 점을 보았을 것이다.

 

노무현은 그런 서민들이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 항상 마음속으로 고민을 느끼고 있었으며, 이들도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바랐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5년이란 세월에 바꿀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정부조직의 변화와 언론의 자율성과 윤리성을 지키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에게 언론이란 과연 중립을 유지하고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인지 혹은 정치적인 압박을 넣기 위한 수단인지 고민하게 만든 부분이 많다. 또한 언론의 기능은 국민들에게 올바른 사회, 정치, 경제관을 심어주는 미디어인데, 그것이 제대로 못한다면 국민의 귀와 눈을 속인다고 보았다. 결국 언론과의 싸움에서 노무현을 좌절로 많이 이끈 것 같았다.

 

그가 정치 전반에 다 잘 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몇몇은 분명히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것으로 힘든 상황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진정 그가 국민들을 위한 업적들이 있다는 것과 그것으로 한층 나라가 좋게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공적인 부분은 보여주지 못한 것이 많았다. 그의 좌절은 단순하게 좌절이 아니라 그런 정치적 행위에서 그가 고치고 싶어한 기회주의적인 사회를 개선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좌절이다.

 

기회주의적인 사회에서 그가 바라는 사람 사는 세상은 너무나도 멀게만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 자신의 좌절을 이야기하여 성공을 본인이 찾기보단 이 회고록을 보는 이로 하여금 찾기를 바란 것이다. 자신의 실패와 좌절 그리고 눈물과 애한에서 말이다. 그래서인지 책 표지에 적힌 이 문구가 참 인상 깊다.

 

“나의 실패가 여러분의 실패는 아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갈 길을 가야 한다. 여러분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또 뒷면에 “사람답게 대우받는, 사람 노릇을 하는, 사람이 돈과 시장의 주인 노릇을 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처럼 인간이 시장경제의식에 따라 지배받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바란 것이다.

 

솔직히 나나 혹은 세견을 둘러보면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거나 알고 싶지 않은 일들을 종종 본다. “가난한 사람들, 고된 노동을 하는 사람들, 배가 고픈 사람들, 가족이 없는 사람들,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 희망을 잃은 사람들....”

 

노무현의 꿈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 꿈을 가지고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 수 있는 그 인간의 권리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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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사고 한길그레이트북스 7
레비 스트로스 지음, 안정남 옮김 / 한길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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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사고”를 읽어보기 전에 나는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읽어보았다. 야생의 사고와 달리 슬픈 열대는 학문적인 관점에서 기술하기 보다는 학문을 하는 사람이 남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하면서 그리고 그 밖의 공간을 이동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적은 하나의 기행문에 가깝다.

 

그래도 그런 기행문일지라도 레비 스트로스의 학문적인 영역에서 인류학자의 관점에서 적어 내려갔기에 거기에 살고 있는 원주민에 대한 현재와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살아온 과정을 서술한 점에서 인류학적인 가치가 있었다. 또한 인류학적인 관점에 떠나 레비 스트로스가 보는 원주민들은 기존에 서구사회에서 가지고 있던 사고방식이 아닌 레비 스트로스의 새로운 관점으로 그들을 관찰하였다.

 

레비 스트로스가 인류학을 연구하기 전에 레비 브릴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연구한 내용은 분명 인류학적인 부분에서 당시 기준의 근현대 문화에 살고 있는 유럽사회의 관점을 그대로 반영했는지, 레비 브릴과 레비 브릴 같은 사람이 관찰하는 인류학이란 그저 오만과 편견에 가득한 입장에서 본 학문이었다.

 

이에 반해 레비 스트로스는 그런 서구사회의 이성을 중시하는 일방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아마 그것은 오랫동안 서구 사회를 가지고 있던 이성중심사고 방식이 오히려 이성적인 영역만 치중한 것 자체가 이성적이지 못한 것을 알릴 계기라고 본다. 앞서 보았던 슬픈 열대의 경우 레비 스트로스가 보는 남아메리카를 비롯한 다수의 원주민들을 볼 때 레비 스트로스의 깊은 관찰력과 이해력이 돋보였다.

 

레비 스트로스 본인이 서구인으로서 원주민들을 관찰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고 했다. 아마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계속 발전해 오면서 문명사회를 이룩한 서구사회가 아닌 말 그대로 원주민들의 사회구조에서 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아마 레비 스트로스가 프랑스에서 만들었으나, 곧 세계적으로 크게 학문과 사상의 발전을 이룩한 구조주의가 시작됨을 알린 것이다.

 

구조주의에 대해 내가 설명하고자 하면 그렇게 쉽게 간단히 하지 못한다. 그러나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레비 스트로스의 글에서 모든 것을 1가지 기준으로 하여 2원화적인 대립구도로 나누어 차별하기 보다는 그 2원화 대립이 보이는 각각 영역에서 보자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런 레비 스트로스의 시점이 마음에 든다.

 

왜냐하면 최근 서구사회의 문화가 세계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정치, 군사,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인간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구사회는 이미 자기들의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서구화가 되었다면, 이에 반면에 비서구사회에서는 그 자체적으로 역사적 흐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구화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고유한 문화적 영역이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물론 시대가 변하면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변모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것은 기존에 있던 것을 지키기 위해 변화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유한한 생존을 가진 동물로서 어느 한 개인이 그것을 유지하고 가꾸고 지키고 싶어도, 그의 수명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적 흐름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지키고 하려한 그 가치가 그대로 소멸할 수 없다는 점이다.

 

레비 스트로스에겐 인류학이란 현재의 모습에서 미개사회라고 하는 곳은 보고 서구사회의 입장으로 독단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서구사회에 있는 인간이 그 세계의 인간의 관점에서 보자고 한 것이다. 단지 미개인들은 문명인과 달리 문자문화가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지식적인 영역의 축적이 되는 문자와 그 지식을 체계적으로 전파할 언어학적인 체계가 없다는 점이다.

 

그런 미개인이란 존재라도 문명사회가 가진 이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가 이성적이지 못하면서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들이 그들이 가진 하나의 과학이란 점이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문명사회의 인간보다 더 그들은 과학적인 면모를 가질 수도 있다. 그들이 생존하는 것은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 자연 있는 그대로를 따르고 적응하였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적으로 물리공식이나 화학반응에 대한 내용은 원주민들은 모를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자연에 놓인 어느 현상을 유심히 관찰하여 그것을 하나의 생활화 시킨 점은 분명 과학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중 제일 인상 깊었던 점은 식물분류학적인 내용이었다. 일반 식물학자들도 발견하지 못한 식물들을 매우 상세하게 관찰하여 분류한 점과 그 식물의 잎, 씨앗, 뿌리 등의 식물체 특성을 보고도 어떤 식물인지 알 수 있는가이다.

 

당시 20세기 중반이 지났다고 하더라도 생물학 영역의 식물학자들도 활발히 활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식물분류체계를 훨씬 자세히 아는 반면 식물학자들은 같은 식물을 다른 종으로 착각하여 중복되는 식물종이 8종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원주민들이 과연 비과학적이란 사실이 맞을까?

 

그런 점을 시작하여 레비 스트로스가 보는 원주민들의 생활은 단지 그들이 미개하였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큰 착각이란 것을 보여주었다. 단지 내가 아쉬운 부분은 야생의 사고를 읽기 전에 레비 스트로스의 신화학과 구조인류학을 읽지 않은 것이다. 또한 레비 스트로스가 원주민과 그들의 생활에서 신화에 대해 연구하면서 신화는 공시론적인 영역 즉 시간의 영원성을 강조한 점, 역사는 통시성으로 공시적이지 못한 점을 내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점이다.

 

일단 레비 스트로스의 학문적 영역은 구조주의라고 하여도 그의 구조주의 영역 아래 있는 학문은 마크르스의 사회과학,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 또한 기호학을 만든 소쉬르의 언어학이다. 이전에 마르크스 자본, 공산당 선언을 읽어보았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문도 읽어보았지만, 메를로 퐁티와 소쉬르의 일반언어학은 제대로 읽지도 못했다.

 

그런 학문적 체계의 연계성에서 각각 이어주는 고리가 없는 상태에서 읽다보니 야생의 사고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레비 스트로스의 인류학적인 고찰 역시 매우 깊이 들어가고, 그들의 신화를 풀이하고, 그들의 이름과 토템까지 풀이하면서 원주민들의 생존방식을 해석하였다. 그러나 나는 레비 스트로스가 해석하기 위한 전초과정에 대한 부분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야생의 사고를 읽는 내내 조금 힘들었다. 물론 다른 서적도 마찬가지이나, 야생의 사고는 어떤 이론과 그 이론에 대한 정립을 내세우기 보단 인류학적 고찰로 인해 탄생된 학술서적이기 때문에 못내 아쉬운 것이다.

 

단지 내가 알 수 있는 부분은 역자후기에서 나온 것처럼 레비 스트로스가 얼마나 원주민들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는 점이다. 당시 서구사회에서 장 폴 사르트르와 같은 마르크스주의자와 그리고 마르크스에 의해 영향을 받은 구조주의 시초자인 레비 스트로스 사이에 벌어진 학문적 논쟁이었다. 야생의 사고 9장에 레비 스트로스는 장 폴 사르트르와 그동안 벌어온 논쟁에 대해 다루고 있다.

 

장 폴 사르트르가 레비 스트로스에게 학문적으로 패배한 것은 프랑스 학문과 사상이 구조주의로 변화한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본다면 미개인들이나 혹은 미개인까지 아니지만 비서구사회에 대한 오리엔탈리즘 적인 서구지식인들에게 큰 여파를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일단 슬픈 열대와 야생의 사고 서적 앞부분에 흑백과 컬러 사진이 있는데, 거기에 언제나 원주민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많은 사진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찍은 사진도 있다. 1980년대 레비 스트로스가 안동 하회마을에 찾아와서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관찰한 것이다. 레비 스트로스는 분명 어느 국가와 민족, 하물며 국가와 민족으로 규정하기도 어려운 소수 부족들까지 계속 생존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원주민들의 신화이야기에 서구사회의 야만성이 엿보인다. 사실 기존에는 원주민과 같은 미개족속들이 야만적이라 하지만, 그들은 야만적이라 생각하면 안될 존재였다.

 

그들은 그저 자신만의 영역, 즉 인간 역시 자연이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원주민 신화와 그리고 토템에서 초반엔 동물, 식물, 돌, 생체 일부부분, 생활도구 등에서 칼, 총, 비행기와 같은 무기나 기계문명이 올라가 있었다. 이들의 생활영역에 새로운 변화가 생긴 것이다. 물론 인간은 통시성과 공시성을 둘 다 가지고 있으나, 이들의 통시성은 자신 스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외부의 영역에서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인지 슬픈 열대나 야생의 사고를 읽으면 원주민들이 무참히 자신의 서식처를 잃고, 희생되는 장면이 머리 안에서 그려진다. 또는 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 등을 비롯한 그의 서적 내용도 생각난다. 욕망으로 가득한 문명사회보다 자연의 순리에 따르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미개사회가 문명사회보다 행복하지 말란 법은 없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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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
유시민 지음 / 개마고원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어느 책에서 이런 글을 본 것 같다. 국가에서 국민들을 통제하는 방법에서 국가 자체의 정치권력보다는 미디어로 통한 것이 효율적이라고 말이다. 미디어 즉 매체라는 의미이다. 매체는 우리가 보고 듣는 것으로 생각하고 느끼거나 혹은 판단할 수 있을 있게 해주는 정보적인 수용방법 경로이다.

그런 정보경로에서 미디어라는 이름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가령 이전에 봤던 섹스와 돈이라는 페미니즘 정치경제학 도서에서 미디어로 통한 언론의 활약은 국민들의 인식과 행동 자체를 변환시키고 또한 그것에 알맞도록 맞춤식까지 될 수 있다고 한다. 과연 그 말은 사실이다. 현재 독재국가 중의 하나인 북한에서는 언론을 오로지 (마르크스-레닌과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독재정당이 장악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언론이 나라 그 자체를 북한과 같은 괴뢰정부가 아닌 이른바 자유주의국가에서 한다면 어떻게 될까나? 물론 언론으로 통한 미디어의 전파는 경제적인 위력과 동시에 정치적인 압박도 들어간다. 그래서 그것이 하나의 독재가 아니지만 독재 내지 혹은 은폐, 조작, 공작의 방법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최근 내가 읽고 있는 도서 중에서 정치사상에 대한 안내 도서를 읽고 있다. 거기서 그 동안 내가 알고만 있었던 철학자 이름 한 명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마키아밸리이다. 마키아밸리는 이른바 군주론(君主論)이란 정치에 필요한 하나의 교본을 저술한다. 그의 저술명저인 군주론에선 군주가 어떻게 대처해야만 정치를 잘 이끌어갈 수 있는가이다.

따라서 과거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이 정치는 철학적인 영역에서 분리시킨 철학자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군주독재의 방법설을 알려준 마키아밸리 역시 알고 보니 그도 인권을 생각했다는 점이다. 군주가 집정하는 집정관, 우수한 엘리트 관료의 원로원, 그리고 국민들이 하는 호민관에서 3가지 정치적인 구도로 통해 독재정치를 피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사회에서는 군사·외교적으로 불안하여 다소 군주에게 강한 권력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정치라는 것은 한 곳에 독재되어서는 안되고, 권력의 이동이 계속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안되면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변모하여 모든 정치적인 간섭과 견제를 제외하고, 횡포를 부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국가적인 권력기관 문제가 내내 한국사회의 신문과 방송에서 탑을 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이런 정치적인 권력과 올바른 정보를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국민 대부분은 일일이 정치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을망정, 하나하나 정치적 안건에 대해 참관할 수가 없다. 따라서 국가에서 뽑는 공무원도 있는 반면, 국민들이 선택하여 투표권으로 지정하는 선거도 있다. 문제는 이 선거로 통해 창출되는 정치가들은 상당히 높은 권력을 소유하고 있다. 그들의 움직임에 많은 국가적인 대사가 좌우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들이 좋은 정치가로서 활약하기보단, 역으로 그것을 이용하여 사익을 누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을 견제하는 방법으로 국가공무원이라고 모두 그들을 제어할 수 없다. 오로지 그들을 손으로 뽑은 국민들만 가능하다. 그들에게 주어진 그러니깐 그 개인 자신들은 작고 외소하나, 그 개인들이 모이면 아주 크고 웅장한 심판관이 되어 자신들이 선발한  권력들을 심판할 수 있다.

문제는 그 권력을 심판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얼마나 제대로 하고 있는가? 혹은 하지 않은가를 알아야 필요성이 있다. 이때 그 충실한 국민의 눈과 귀를 해야 할 존재가 바로 언론이다. 언론들이 타락하면 국민들이 거짓말에 넘어가고, 진실은 어두운 저 황혼 아래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언론인들의 양심과 언론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선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자유가 없다면 그것인 민주주의국가가 아닌 그저 독재정치 세계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언론의 자유를 방해하고, 오히려 매도한 언론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이 책을 보는 나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한다. 이전에 그토록 이 책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나, 최근 가질 수 없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했다. 그것은 조선일보에 대한 진실한 언론의 진실성이다.

내가 최초로 조선일보에 대해 의심하던 것은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임과 더불어 터진 김해 봉하마을의 사택이다. 참고로 본인이 사는 집은 경남 김해 옆의 부산이다. 부산 옆에 김해라면 당연히 어느 정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는 길가거나 혹은 가게에 물건 사러가거나 심지어 친구와 가족들 사이에도 듣는다.

이때 뉴스에 뜬 김해 봉하마을 아방궁 소식, 국가예산을 막대한 손해를 주면서 만든 그 개인 사택에 대한 기사가 조선일보에서 내내 터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김해 봉하마을 다녀온 주변 사람이나 그밖에 동네 소식으론 순 거짓말이었다. 아니 내가 직접 두 눈으로 봉하마을을 가서 확인했다. 그런 헛소문과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하는 것에서 말이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를 보면 안정되어 가기보다는 서민경제가 어려워지고, 중소기업들은 모두 힘들어하고, 엔지니어업체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물론 그런 올가미와 같은 불황들은 나의 목도 조르고 있다. 어느 사람들은 아마 조금 더 노력하면 좋은 곳에 가라고 하나, 내가 그런 곳에 가도 한국사회에는 반 이상의 사람들이 그런 생활에 처해지게 된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언론의 역할이라면 국가정책의 문제점과 부정부패나 개선사항을 알리는 것이 우선할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권력에 대한 욕망에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노무현이 조선일보와 싸운 이유이다. 조선일보에 대한 내용은 과거 “부자 신문, 가난한 독자”에서 읽어봐서 어느 정도 짐작했다. 일제치하 고종을 폐위한 송병준이 운영하다가 훗날 독립군인 이상재에게 양도되다, 이상재가 독립적인 행태에 조선일보가 방응모에게 넘어가면서 친일의 역사는 조선일보에서 떼어낼 수 없는 과거이나 그들은 부정했다.

과거 신문기사에 대한 스크랩이 있는데 말이다. 어째든 그들은 친일세력으로 일제에 봉사하고, 해방 후에는 군사정권에 봉사했다. 한국 정치계에서 이른바 반공정치가 하나의 큰 과제일 때 그들은 매카시즘(McCarthyism)이란 정치적인 공세로 통해 민주주의를 억압했다. 당시 한일해방과 625전쟁에 막 휘말린 이후라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이란 미명을 수긍할 수 있으나, 문제는 그것이 계속되는 점이다.

뭔가를 좋은 것을 가져가는 부분이 있다면 뭔가 나쁜 것을 가져가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에 대한 사람들에 대해 인권적인 보장이 없을 때, 이들이 가만히 있으면 선량한 시민이고, 이들이 항의하면 나라에 대항하는 이적행위로 간주했다. 부림사건이나 노동자탄압에서 많은 노동자나 서민들이 희생당했다. 그때 노무현이 등장하여 이들의 변호해주고 조선일보에 대하여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5공 청문회에서 스타와 각종 정치적인 대립에서 노무현과 조선일보는 적으로 맞붙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책에서는 그런 노무현과 조선일보의 전쟁을 2002년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 선거후보로 출마하기 전에 나온 도서이다. 이 책에서도 밝히듯이 지금 나는 꼼수다로 한참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군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이때 재미있는 어록을 남겼다.

“‘우리는 대단히 편파적이다.’ 그러나 편파적이 되는 과정은 대단히 공정하다.” 공정함이란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자기가 태어나고 자라고 주변에서 보는 환경적인 기준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기 마련이다. 교육수준, 경제적 조건, 사회적인 위치, 그리고 주변 사람들 등 그 많은 것들이 인간의 판단력을 좌우할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의 판단력은 언제나 자기에게 편하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이끌리게 한다. 따라서 한 가지 이데올로기만 집중하여 초점을 맞춘다면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보일 것이다. 특히 이런 2원화적인 대립구도는 참 무섭고도 위험하다. 혹은 칸트가 제시한 3원화적인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는 할 수 없을까? 물론 해도 두 갈래 길 중에 선택해야할 순간은 없다.

인간은 선택에 의해 살아가는 동물이고, 선택의 순간은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 변화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각해야하는 것은 이것이다. 그 사고에 대한 판단기준을 어떻게 제대로 보고 듣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한 쪽에 치우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 개인적으로 절대적인 중립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절대적 중립이라 외치는 자들이 더 심각한 이원화적인 대립구도를 가진 사람이라 본다.

그렇다면 노무현과 조선일보라는 여기의 이원화된 구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느 사람은 노무현을 어느 사람은 조선일보에게 손을 들어줄 것이다. 그래도 일단 여기서 이 글을 적고 있는 본인으로서는 노무현의 편이다. 내가 그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내가 살아온 공간에서 자라온 환경이다. 노무현의 고향은 김해이고, 그의 운동지역은 부산이다.

내가 그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여기 공간적인 상황에서이다. 아니라면 그의 어록처럼 “조선일보 사장님 회장님처럼 그렇게 고상한 말만 쓰고 살지 않는지 모르지만, 그분들처럼 천왕폐하를 모시고 일제에 아부하고, 군사독재 정권에 결탁해서 알랑거리고, 특혜 받아 가지고 뒷돈 챙겨서 부자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기회주의자적인 인생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이 땅에 가난하고 힘없고 정직한 사람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말을 고치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시대 기회주의와 편의주의에 절은 그들의 사고방식은 결코 고칠 수 없습니다.”

이 말에 어느 사람은 공감 내지 부정을 할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정치인들은 이런 말을 이구동성을 외친다. 서민을 위해서 가난하고 힘없는 시민들을 위하여 라는 미사어구를 말이다. 그런데 적어도 그런 현실에 놓여있거나 관찰하는 입장과 그것을 직접 보지도 않고 먼발치에 방관하는 자들에겐 이 말에 대하여 과연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도 노무현을 싫어하기도 한다. 그래도 서민들은 누구를 더 좋아할까?

이미 죽어 온 몸을 불살라 뼈만 남아 가루로 되어 어느 단지에 모셔진 노무현이나, 그의 죽음은 조선일보와 전쟁을 끝내지 않았다. 오히려 조선일보의 전쟁을 하게 된 사람은 노무현이 아니라 노무현이 아닌 존재로 되었다. 노무현은 아직도 셰익스피어의 명작 햄릿에 등장하는 유령처럼 혹은 칸트나 마르크스처럼 유령이 되어 계속 전쟁을 하고 있다. 망령이 되어버린 진짜 유령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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