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계약론 펭귄클래식 86
장 자크 루소 지음, 김중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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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빌의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을 읽으면서 프랑스혁명이 장점보단 그 자체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원인을 나열했다. 그런데 중요한 부분은 장 자크 루소에 대한 부분이 매우 희박했다는 점이다. 프랑스혁명에서 주체자요, 또한 망가뜨리기 시작한 로베스피에르를 생각하자면, 그는 항상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덕분에 지롱파와 귀족, 왕족들의 목은 단두대 아래 무참히도 몸에서 분리되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프랑스혁명의 촉진제에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을 가졌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분명히 민주주의 사회체계를 지닌 국가에서는 반드시 인용해야할 서적이다. 아마 헌법 내지 각종 법률이 루소,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에서 많은 부분을 가지고 왔다. 삼권분립 내지 자유와 평등, 인권과 자유 시민에 대한 부분에서 말이다. 프랑스혁명이 구한말 조선시대에서 군주제를 해체하는 직접적 요인이 되지 못했지만, 적어도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을 생각하면 피할 수 없다.

 

당시 3·1운동에서 민족주의자, 유학자, 사회주의자, 자유주의자 모두가 모여 선언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진정한 자유라는 것은 위와 같이 보수와 진보만이 아니라 이미 허물어진 구체제의 잔재인 전통의 역사마저 흡수한 것이다. 민족의 자유와 공화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권리들은 모두 소유하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거기서 루소의 이론 역시 피하기 어려운 매력일 것이다. 프랑스혁명이 직접 우리에게 역사적인 여파를 전해주지 못해도 우리의 민주주의 사회체계에서 생각해보면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담긴 내용은 분명 민주자유주의사회에서 반드시 새길 필요가 있다.

 

그는 진정한 시민사회를 원했던 것이다. 그의 진정한 시민사회는 모든 것이 멈춘 정지가 아니라, 시민사회에서 그리고 시민사회가 이룩한 국가체계가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생명체로 나아가길 바란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가 숨 쉬는 민주주의는 우리가 흔히 바라는 평화롭기만 한 상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반대로 폴란드 왕의 로렌공작이 의회에서 발언했던 “나는 노예의 평화보다는 위험한 자유를 택할 것이다”라는 말은 상당히 깊은 맛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사회계약론> 3부의 ‘민주정치에 관하여’에서 나온 문구였다.

 

루소의 문장을 생각하면 어려운 말로 채워져 있기보다는 간략하면서 논리적인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마 그의 집필능력에서 당시 프랑스를 비롯한 수많은 왕국들이 그의 도서를 불태워 그의 사상을 부정하고, 그가 무슨 일을 벌이지 못하도록 수배령을 내릴 정도이니 루소가 당연히 프랑스혁명에 빚이 지게 했던 이유는 아마 그렇다고 본다. 토크빌이 비록 루소에 대해 언급을 크게 하지 않았으나, 프랑스혁명 이전의 지식인들은 혁명에 대해 준비했다면, 프랑스혁명 실행자들은 도시 노동자나 농민이었다.

 

후자들이 혁명을 이끌어갔다고 인정하더라도 그들에겐 루소란 존재가 과연 큰 존재였을까? 기실 프랑스혁명과 더불어 세계에서 놓칠 수 없는 혁명으로 러시아혁명이 있다. 러시아혁명에서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과 같은 인물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레닌 이전에 많은 혁명가들이 활동했으나, 결정적인 행동으로 본다면 1917년 2월 혁명과 동시에 11월 혁명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혁명의 자리에 있기까지 레닌은 마르크스와 레닌이란 정신적 지주가 존재했다. 레닌과 많은 볼셰비키들은 마르크스주의였다.

 

물론 아쉽게도 스탈린의 집권 아래 소비에트는 마르크스의 가르침을 비우고, 그들이 절대로 동조해서 안 될 파시스트인 히틀러와 불가침동맹을 맺었다. 그런 점에서 루소와 마르크스는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나, 결국 그들의 가르침은 오래 가지 못한 채 독재자인 나폴레옹과 스탈린에게 전달되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지식인들의 의지보단 대중의 잠재적인 의식에 의해 침식당했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프랑스혁명에서 당통의 죽음과 러시아혁명의 트로츠키의 추방은 역사의 반증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우리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멈출 수 없다. 루소는 지상의 완벽한 민주주의는 그리스에서 펼쳐졌다고 하나, 그것은 노예에게 받아온 착취로부터 가능했다. 노예가 그리스시민의 수배에 이르던 그 시절에서 근대로 접어드는 프랑스에서 노예제도는 합리적인 제도가 아니었다. 있어보았자 귀족이나 영주들의 농노정도만 있어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자신들의 노예를 없어진 만큼 자신이 노예가 되어야 했다. 주인이 없는 노예, 즉 자신의 판단력과 이성이 없는 충동에 의해 말이다.

 

생각하면 테르미도르반동 이전까지 로베스피에르와 일부 지식을 가진 자들만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프랑스 시민이 알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루소는 자신의 <사회계약론>에서 주석을 달고 있는 글을 보면 알다시피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난 것은 왕실의 사치도 있었지만, 행정 그 자체의 문제였다. 루소는 넓은 토지에 그만큼 어울리는 인원과 그 지역에 알맞은 직업이나 산업체계가 필요하다 보았다.

하지만 프랑스에선 농민들에게 지나친 세금과 황폐화되어가는 농촌이 있었다. 귀족과 귀족처럼 되어버린 부르주아는 권력을 공익이 아닌 사익에 투자하고 루소가 지적한 “좋지 않은 정부에서는 이 평등이 허울뿐이며 눈속임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그 평등은 가난한 자는 계속해서 가난 속에서 살게 하고 부자는 계속해서 침탈하게 하는데 이용될 뿐이다. 실제로, 법은 언제나 가진 자들에게 유익하고 못 가진 자들에게는 해롭기만 하다. 따라서 사회 상태는 인간들 모두가 어느 정도씩 갖고, 그들 가운데 누구도 지나치게 많이 갖지 않는 한 유익하다”

 

이 문구는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닮아 있다. 약 250년 전에 적어 내려간 이 한권이 도서가 루소에겐 보편적 현상이고, 이런 모순을 타파하는 것이 일반의지로 연결되어야 할 점이다. 루소는 정치적 관점을 매우 잘 보았던 것 같다. 정치적 참여인 선거로 통해 대표되는 자와 그 대표를 뽑아내는 주권자의 비율이 늘어나면 날수록 주권자에게 돌아오는 권리나 혜택은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사실 토크빌의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에서 프랑스 왕정의 실수는 바로 지역자치기구의 저지이다.

 

지역자치기구를 중앙집권화하기 위해 많은 금액을 투여하고, 게다가 지사들을 임명하여 지역마다 통치하게 하여 행정력의 왜곡과 모순만 남겼다. 결국 지역사회는 그만큼 피폐하게 변해가고, 지역사회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하던 문제들은 중앙정부가 해결해야 하나 그 인원과 물자, 행정력은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루소는 바로 이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에서 주권자로서 행정력을 행사하는 자로 하여금 감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시민들이 직접 대표를 뽑고도 그들과 같이 시민사회를 만들어 도시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좁은 국가는 불가능하고, 땅의 규모나 국가적 체계가 클수록 필요했다. 즉 지방자치 기능은 토크빌이 주장하는 점과 많은 유사성이 있다는 점이다. 주권자 만 명에 대표자 1인과 주권자 10만 명에서 대표자 1인에서 주권자들이 후자로 가면 갈수록 대표자에 대한 접근성이 떨이지게 되며, 그 대표자는 10만 명에 대한 권력을 소지하게 되어 그만큼 공권력을 커지게 되는 점에서 민주주의사회에서 권력의 집중화는 바로 최악이란 사실을 알리는 것과 같다.

 

그것을 반하여 시민들로 하여금 피해를 주는 자에 대해 혹은 기타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 루소는 그들을 시민이 아니라고 한다. 시민이란 존재는 서로 간의 계약으로 통해 이루어진 하나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회계약을 하였기에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인권을 주장할 수 있으며, 그것에 대한 의무를 자발적으로 수행하여야 한다. 문제는 그 자발성의 여지에서 우리는 로마와 같이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권을 주어야 하는 점이다. 로마시민들은 전쟁이 발발하면 스스로 칼과 창을 들고 전장을 향하여 달려간다.

 

시민들만 전쟁에 참전이 가능했기에 로마후기로 가면 시민들의 인구가 많이 줄어드는 문제가 생겼다. 하지만 시민들이란 존재들은 공화정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스스럼없이 대변하는 존재다. 가끔 우리는 민주주의국가에서 민주주의 역시 공화주의라는 공공선을 추구하는 것일까? 아니면 전제군주를 위한 참두제로 가고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도 들기도 한다. 2012년 대통령 선거가 있다고 한다면 대통령과 그 밖의 조직 그리고 지식인들과 사회적 지각이 있다는 사람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반드시 읽어봐야 생각한다.

 

오늘날 민주주의사회와 보편적 국민들의 정치권에서 루소의 영향은 막대하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체계에서 루소가 주장한 바는 무엇이며, 그것으로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볼 것인가? 물론 프랑스혁명의 자기이성적이라고 여기는 반이성적 행위는 폭력을 합리화하였다. 하지만 그 이전의 바스티유감옥과 같은 상징적인 구체제의 폭력 역시 합리화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결코 프랑스혁명이 부정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루소의 사상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나,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그가 행한 행동은 우리가 분명히 인정하고 배워야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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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곶의 찻집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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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항상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거나 자신만이 머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 현실이란 공간과 시간에서 현대인들은 언제나 고독, 슬픔, 절망, 이별 등의 고통을 피할 수 없다. 그런 감정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새로운 마음으로 나갈 수 있는 해방구가 필요하다. 물론 거기서 해방되는 기분을 맛보아도 현실 앞에 놓인 문제를 비켜나갈 수 없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하나의 정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자기에게 언제나 멈출 수 있는 존재적 자아에 대한 휴식이 필요하다.

 

더구나 요새처럼 인간의 꿈들이 산산이 파도처럼 깨지는 세상에서 말이다. 무지개 꽂의 찻집은 그런 인간들을 위한 정지된 공간처럼 보였다. 물론 그 공간의 지배자인 에쓰코 씨는 반겨주는 이들에게 영원한 안식처였으나, 한편으로 그녀 자신은 늙어가고 있는 노인이었다. 초반에 아내인 사에코를 떠나보낸 한 남자에겐 초로의 여인이었으나, 마지막에 고지의 어여쁜 두 딸에게는 할머니였다. 나이는 먹어가고 그녀는 기력이 쇠하고 있어도, 자신만의 공간을 포기하려고 하나 마지막에 아침놀을 보면서 새로운 내일을 기대한다.

 

남들의 꿈과 희망을 채워주고 있는 만큼 자신의 꿈과 희망은 그저 그대로 접어 가지 않았나 하는 심정이다. 그녀의 그런 심정은 어느 기업의 중견간부가 오사카로 전직되면서 그의 마지막 도시생활을 마무리하기 위해 에쓰코 씨와 나누던 대화에서 곶의 찻집에 모든 이에게 기쁨의 희망을 안겨주던 에쓰코 씨가 오히려 기쁨의 희망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개 이름이 고타로라고 지을 정도로 남편이던 고타로의 죽음을 아직까지 안고 가는 그녀의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해 볼 정도였다.

 

남편이 30살에 암에 걸리고, 32살에 세상을 떠나는 순간 그녀는 영원히 혼자와의 싸움을 진행했다. 남편이 그린 아름다운 무지개가 보이는 그림을 느끼기 위해 살아온 그녀, 처음 이 가게를 만들 적에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진정한 외로움과 절망을 알기에 절망과 외로움을 안고 있는 이들을 누구보다 더 다정하게 다가간 것이라고 본다. 누구에게 다정하게 대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만큼 그 대상보다 더 깊은 상처를 안고 있어야 가능할지 모른다.

 

다정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마음의 상처를 그대로 안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승화 하면서이다. 덕분에 조카인 고지에게 에쓰코 씨는 자신의 마음을 버팀목으로 여길 수 있었다. 자기 가게 옆에 고지는 아내와 두 딸과 같이 있었다. 손녀들은 이모할머니 에쓰코 씨에게 바나나 아이스크림과 쥬스를 얻어마시고, 고타로와 같이 산책을 다니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 행복을 보는 노인에게 어떤 행복인가? 남편의 사후로 인해 그녀에게 자손이 없다.

 

자손이 없이 산다는 것이 마음 편할지도 모르나, 다니 씨가 오사카로 전근 간 후 2년 후에 부음을 알린다. 그는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쓸쓸히 눈을 감았다고 한다. 아무도 없이 혼자 외롭게 눈을 감는다는 사실은 너무 외롭고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쓰코 씨는 자신에게 친구처럼 다정한 다비 씨를 생각하면 눈물을 흘리며, 절규한다. 다소 내용은 동화처럼 다가오나, 인간의 지친 마음에 누군가의 죽음은 큰 충격은 분명하다. 사에코를 떠나보내고 딸을 데리고 온 한 남자의 이야기에서 아내의 미소가 담긴 영정사진과 딸의 얼굴을 보며 혼자 몰래 눈물 훔치던 남편의 심정에서 희망적이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희망에 대해 본다면 단순히 아내의 죽음만이 아니다. 이마겐이라고 불리는 청년은 4학년 대학생으로 취업도 안 되고, 꿈과 목표도 없이 그저 방황하던 청춘이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것들이 없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원하는지 젊은 청춘들의 방황과 좌절은 누구나 다가오기 마련이다. 아니 고지처럼 40대 건장한 남성도 일을 하고 있어도 방황은 다가온다. 누구나 그것을 피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하지만 이마겐은 미대를 다니던 미도리를 만나게 되고, 몸은 작은 편이고 티에 청바지, 운동화, 뿔테 안경, 긴 머리를 그저 뒤로 묶은 그녀를 보면서 새로운 불꽃이 타올랐다.

 

고지의 말대로 인생은 “rock and roll"이라며, 가슴이 원하는 곳으로 가라고 한다. 그는 청춘 최대의 위기에서 미래와 사랑을 찾으려 뛰어다닌 것이다. 그 후에 에쓰코 씨의 가게를 소개하는 잡지기사를 적고 말이다. 희망이란 과연 자신의 열정대로 갈 수 있는 것일까? 다소 동화처럼 다가오는 이 서적에서 현실을 바라본다. 우리는 너무 삭막하고 차가운 세상에서 공기를 마시며, 숨이 막힐 것처럼 답답한 일상을 보낸다. 조금이라도 숨을 쉬고 마음이 지친 나를 달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한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아주 작고 작은 일이라도 커피 한잔에 음악 한곡도 좋다. 인간이란 사소한 계기로 인생을 앞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렇게 찾지 못한 것 같다. 어쩌면 나도 앞이 보이지도 않고 보고 싶지 않은 나의 일상에 무지개가 보이는 저 곶의 찻집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또 다른 내일과 사랑, 그리고 우정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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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
알렉시스 토크빌 지음, 이용재 옮김 / 박영률출판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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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토크빌의 냉정하고 분석적인 비판적인 사고로 적어내린 <구체제와 프랑스혁명>을 읽어가면서 나는 솔직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토크빌이 저술한 <구체제와 프랑스혁명>이 그가 죽기 전인 3년 전에 나왔다는 점에서 분명 지금으로부터 150년 이전의 서적이란 점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어 가면 갈수록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다시 본다는 기분이었다. 토크빌이 지적한 보편적인 인간군상과 거기에 대한 행정과 관리제도, 계급과 사회적 변화로 통해 당시 프랑스의 지식인이 보는 프랑스혁명과 지금 그 지식인의 서적을 보는 나로서 같은 시대와 공간에 살지 않아도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역사적인 존재란 분명히 공시적인 존재가 아니라 통시적인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시적인 영역으로 보는 민주주의사회 과정이란 그야말로 공감이 갈 수밖에 없었다. 1856년 토크빌이 보던 1789년의 프랑스혁명이란 지금 내가 한국사회를 보고 있는 냉소적인 시선과 많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단지 차이는 봉건주의사회인 전제군주이냐 아니냐의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물론 심각성은 군주정의 시대가 심한 것은 당연하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군주정이 아닌 시절에 그런 문제를 현재 안고 있는 상황인 한국사회를 생각하면 후자 쪽이 더욱 심각하지 않은가 싶다.

 

프랑스혁명에 참가한 사람들과 지금의 우리 사회를 비교하여 생각하면 이 구절이 너무 와 닿는다. “오늘날 민주적 전제주의(despotisme democratique)라고 부르는 특이한 통치형태−이는 중세에서 생각조차 할 수 없던 것이다−에 이미 친숙해 있었다. 사회에는 계서제도 계급적 차별도 고정된 서열도 있을 수 없으며 국민들은 서로 비슷비슷하고 완전히 평등한 개인으로 구성될 것이었다.

 

전체 국민이라는 이 무차별적 다수가 이론상 유일한 합법적 주권으로 인정되긴 하지만 사실상 정부의 행동을 통제하거나 감시할 권한마저도 교묘하게 박탈당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는 국민의 동의 없이 국민의 이름으로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수권자(mandataire)가 전체 국민 위에 군림하게 된다. 그 엄청난 힘은 여론이나 법률의 통제도 미치지 아니하는 바, 그것을 타도하려면 엄청난 혁명을 동반해야만 할 것 것이다. 요컨대 그것은 법적으로 하위 기구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지배자인 것이다.”

 

우리도 ‘국민의 정부, 국민의 주권, 국민의 사회’와 비슷 무리한 슬로건이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으나, 실제 국민 중에서 정치적 참여에 관여할 수 있는 자는 극히 제한적이다. 프랑스와 같이 일개 농민이나 노동자들의 정치적 발언과 참여 그리고 현실로서 표현되는 일들은 없었다는 점이고, 그것은 오늘날의 우리도 마찬가지다. 토크빌의 이런 정치적 문제에 대한 논쟁을 거론한 점과 프랑스 혁명 이전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볼테르가 영국을 다녀오면서 보았던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을 지적했다.

 

가령 영국의 경우에는 정치적 자유주의가 다른 유럽사회보다 빨리 정착된 것이 분명하다. 토크빌의 친구이면서도 19세기 유럽 지식인 중에서 탁월한 인물이었던 존 스튜어트 밀이 영국 하원에 의원직에 당선되던 일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고려해볼만 하다. 존 스튜어트 밀이 살았던 시기에 프랑스는 나폴레옹이 전제군주로 등장하고, 몇 번이나 혁명이 있었고, 나폴레옹 3세까지 나온 시기다. 그에 반해 존 스튜어트 밀이 살던 영국사회에서 그가 정치인이 되면 자신을 지지한 시민들을 위해 정치하는 게 아니라 이상적인 사회를 위해 의정 생활할 것이란 말에도 그를 의원으로 만들어주었다. 물론 지속적인 정치생활을 하지 못했어도 적어도 할 수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토크빌이 지적했다면, 그에 대한 적절한 문제점을 전반적으로 구조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판단하여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구체제와 프랑스혁명>에서 토크빌은 다소 프랑스혁명에 부분을 냉소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보수적인 관점으로 기술했다. 그리고 보수적인만큼 그 보수에 대한 부분은 더욱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다. 결국 진보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변증법적인 논리를 그의 도서에서는 마지막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아무리 농민이 어리석어도 그 원인은 농민이 아니라 농민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구체제의 어리석음이란 점을 분명하게 명시하였기 때문이다.

 

루이16세의 통치기간 통안 토크빌은 루이16세에 대하여 무능하기보단 그저 마음이 약한 왕이란 점과 선의를 가지고 정치를 하였으나 그 선의 자체가 틀렸다고 적었다. 결국 루이16세에 대해 직접적으로 무능하다고 말한 것이라 간접적으로 무능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때의 시기에 가장 문제점은 너무 많았으나 제일 중요한 점은 지역자치지구의 해체와 관련된 것이다. 결국 왕정의 중앙집권화가 모든 것의 시초였다. 왜냐고 물어본다면 지역자치를 실행할 경우 그 지역구의 시민들이 직접적으로 시장 내지 구장을 선출하여 그들 스스로 운영하기에 세금이나 행정, 관리 등을 직접 관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절대왕정시대에 왕권에게 가장 치명적인 존재는 귀족이란 점에서 지방자치는 지역귀족들에게 하나의 권력을 인정하는 셈이다. 중앙집권화로 통해 귀족들이나 혹은 지방자치기구의 힘을 약화할 필요가 있었고, 그런 행정시스템을 무효로 하고, 그 행정통치권을 매입하는 점에서 엄청난 예산을 투자한 것이다. 중앙집권화로 가는 길은 곧 예산의 낭비로 이어졌고, 그 낭비는 또 다른 낭비를 부르기 시작했다. 만약 길가를 지나가는 도로가 훼손되어 있고 성벽과 성당이 상당히 노후화 되어도 지방자치에서 수리나 복구를 할 수 없었다.

 

그것에 대한 처리권한은 왕권이 임명한 지사에 의해 가능했다. 그들은 1년이란 시간을 기다려야 하나 기본은 2~3년 정도 기다리는 행정착오를 만들었다. 지사의 권한이 지나치게 주어지자, 중앙집권화 그 자체를 보여주며, 구체제가 루이왕정이라고 하여도 생각해보면 지역자치기구의 행정 역시 구체제였다. 하지만 지역자치기구에 대해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것이야 말로 왕정시대이지만 마을주민에게 정치적 참여권과 행정적 감시권이 주어지고, 의사표명을 할 수 있는 민주주의제도가 있었다는 점이다.

 

단지 귀족사회가 주관하는 점에서 다소 한계치를 보이고 있었으나, 적어도 귀족사회는 지역사회의 시민 내지 혹은 농민들에게 중앙집권화로 통해 실시되던 정치적 이득보다 탁월했다는 점이다. 귀족들은 비록 농민들에 자기영지에 대해 경작을 하게하고 소작농으로 하여금 세금을 받았으나, 이들은 농민들의 복지와 생활을 어느 정도 돌본 점은 분명한 점이다. 중앙집권화로 통해 지역사회의 귀족들이 모두 중앙의 벼슬로 가게 되고, 파리는 어느 순간 프랑스의 모든 것이 되었다.

귀족 없는 지역사회에 가난한 귀족만 남았고, 그들의 생활은 매우 비참했다. 게다가 지사의 등장과 중앙집권화로 그들은 귀족으로서 책임이던 장병을 소집할 필요는 없으나, 그 만큼의 혜택도 사라져 갔다. 농민들은 자신들의 농업적 기술을 관리해주고, 생활고에 시달릴 경우 도움을 청할 수 있던 귀족과 그리고 지역 교구들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했다. 지역 교구라는 관리들은 지사로 인해 자신들의 행정적 권한이 축소되었고, 그나마 농민에 대해 호의적인 지역 교구마저 힘을 잃어가자 농민의 생활을 비참해져갔다.

 

중앙정부에서는 그런 와중에 귀족과 귀족처럼 되려고 하던 부르주아의 세금감면이라는 특혜를 받아들이고, 이 모든 것을 지역사회의 농민에게 부과했다. 농민들의 생활은 점차 어려워지고,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분노, 이기심, 증오, 폭력으로 가득했다. 따라서 프랑스혁명의 준비는 지식인들이 실천하였으나, 실행은 후자와 같이 무서운 마음을 가진 자들이 실행한 점이다. 이들의 실행에서 혁명 자체는 성공했으나 혁명 후의 과정이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글도 읽을 줄 모르고, 정치적 판단력도 없었다.

 

구체제의 상징인 루이16세가 단두대 아래 이슬이 되어도 프랑스사회에서 농민의 생활을 개선되지 않았다. 대신 루이왕정과 그 주변의 자리에 다른 자들이 앉아있었을 뿐이다. 아니라면 주인 없는 노예만 되었을 뿐이다. 다소 토크빌이 헤겔의 말을 빌려온 점에서 분명히 프랑스혁명의 계몽되지 않았던 주체들의 실시에서 그 이후의 폭력은 예기된 상황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이성이 옳고 인간의 이성을 가졌다고 믿는 휴머니즘이 오히려 폭력을 야기한 것처럼 계몽이란 칸트의 말처럼 자신이 스스로 깨고 나온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프랑스혁명보다 오히려 개혁정치로 통해 농민에게 강압적 행정보단 그들의 농사체계의 개선, 빈곤의 문제를 해결, 세금의 과중에 대한 격감 등을 보였다면 어떨까 싶다. 이에 반해 신흥세력인 부르주아들은 이미 자신들의 이익에 눈에 멀어 그들 자신이 귀족화되고 있었다. 웃기는 이야기 같이 들리지 않을까 하나, 귀족들은 부르주와 자신들을 분리하고, 부르주아는 자신들과 농민을 분리했다. 가장 먼저 앞서서 총칼에 맞은 농민과 도시빈민들의 고통과 희생은 무엇이 되었는가?

 

토크빌의 <구체제와 프랑스혁명>은 과거의 문서로부터 하나씩 열거하여 그 과정을 정리한다. 그는 프랑스혁명 이후 사람이어도 그의 관점은 마치 프랑스혁명 이전과 그 순간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관찰자로서 프랑스혁명을 말하고 있다. 그의 결론은 그 이전과 그 순간, 그 이후라도 결국 같다는 점이다. 지독한 문맹이던 시절, 요새는 지독한 문맹 대신 지독한 문명으로 오히려 인간들은 세뇌시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나, 인간에게 과연 역사적 진보는 존재해도 정신적 진보는 없는 것인가?

 

본문에 나온 토크빌의 문구는 나에게 상당한 경악을 던져주었다. “대혁명이 시작된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차례에 걸쳐서 우리는 자유에 대한 열정이 끊임없이 소멸과 부활의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또한 미숙하고 정제되지 못한 열정이 앞으로 겪게 될 운명이기도 하다. 자유에 대한 열정은 그만큼 시들거나 질식되어 버리기 쉬우며 피상적이고 일시적인 것이다. 그러나 바로 같은 시기 동안에 평등에 대한 열정은 항상 원래 모습 그대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우리의 가장 고귀한 감정과 연결되어 있었다.

 

자유에 대한 열정은 계속 그 모습을 달리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태의 추이에 따라 감소되거나 확대되었으며 강화되거나 약화되었다. 반면에 평등에 대한 열정은 줄곧 그 모습이 일정했으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완고하고 맹목적으로 동일한 목적을 지나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치려 하였으며, 평등에 대한 열정을 조장해주거나 고무해주는 정부라면 어느 것에나 그 정부가 전제주의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습성과 관념 및 법률들을 제공해주게 되었다.”

 

재미난 일화인지 모르나, 이렇게도 자유와 평등을 외치던 프랑스국민들은 이런 심정으로 프랑스혁명을 일으키고도 후에 나폴레옹과 같이 유럽 전역을 군화발로 밟아버린다.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가끔 촛불행사나 또는 각종 시위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분명히 자유와 평등이란 슬로건, 즉 민주주의 기본권에 대한 참여와 권리를 향하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이것이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프랑스혁명을 보다시피 그것을 만들어낸 주체는 누구인가?

 

앙시엥레짐(구체제)라는 것들에 대한 처분에서 다른 모습은 새로운 구체제가 들어온다고 해도, 계속 조금씩 개선되고 발전(그것은 프랑스나 유럽사회와 같이, 한편으로 그렇지 못한 부분이 늘어가면서도)하는 것은 사실이다. 극단으로 치닫는 그 사회구조와 모순에서 우리가 보고 배워야 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배경이다. <구체제와 프랑스혁명>를 읽어보는 것은 단순히 프랑스혁명만을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그 모습까지도 읽을 수 있다는 하나의 사실이란 점을 망각하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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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바리 - 제2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정윤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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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욕망인 에로스와 그리고 죽음의 욕망인 타나토스, 이 갈림길에서 우리의 인생은 욕망에 의해 살아간다. 그런데 만약 죽음과 삶에 대한 욕망을 상실한 채 살아가야 하는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가끔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살고 싶어도 제대로 살맛이 안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거나 혹은 죽지 못하게 만드는 세상을 말이다. 때에 따라서는 만약 어느 사람이 자신의 처지를 비통하게 여길 때 죽음을 선택하는 욕망조차도 두려움으로 가득하여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는 어떻게 보는 것일까?

 

우리의 주변은 언제나 밝은 부분만 보고 어두운 부분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진실은 언제나 아름다운 존재보다는 차라리 추하고 괴롭고 지루한 것에 가깝다. 진리라는 진실은 언제나 화려하고 웅장한 거짓이 하나의 사실로 감추어 버린다. 아마 신화라는 것도 그렇다. 제목만큼이나 <프린세스 바리>라고 하여 우리 한국 전통 무속신화 중의 하나인 ‘바리데기’를 떠오를 것이나, 그렇게 바리데기처럼 결말은 행복하지 않았다. 물론 바리데기에서 바리공주가 마지막에 부모님을 구하는 약을 구한 후에 신으로 봉해질망정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서사라는 거대한 운명 앞에서 바리공주의 희생을 강요했다.

 

아니 그 강요로 인해 받아들이는 바리공주의 행동조차도 하나의 정당성으로 간주해야 했다. 주체적인 존재로서 희생자의 고통은 미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름다운 효녀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으나, 그 서사 너머의 희생제의란 쉽게 말할 수 없는 대가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그 모든 대가에 대해 최대수혜자는 그저 강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강요로 부탁했고, 모든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못 본 척 외면한 것이다. 신화라는 것은 결국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누가 해주면 좋겠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누가 알아주면 좋겠다는 이중성의 세계이다.

 

현실적인 것을 현실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비현실적으로 이야기해야 하고, 오히려 비현실적인 신화가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바로 그런 연유다. 그런 신화성이 <프린세스 바리>에서는 전반적으로 탈신화를 한다. 그것은 신화의 제의에서 어느 대상 특히 여자아이에 대한 희생에 대한 정당성과 그 희생으로 통해 얻어지는 하나의 보상이다. 남근주의 세상이던 한국사회에서 신화를 보면 여자의 희생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프린세스 바리>는 그 희생에 대한 정당성은 유효해도 그 희생에 대한 보상은 일체 없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희생 후의 보상이 삶과 죽음을 다스리는 신관이란 점에서 분명 바리공주의 신직은 에로스와 타나토스라는 삶과 죽음의 욕망 중에서 그 욕망을 제외한 부분을 관장했다는 점이다. <프린세스 바리>의 최바리는 그녀에게 보상이 없는 것은 지독한 가난과 문맹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녀에겐 바리공주처럼 무장승이란 아주 신출 난 남편을 얻지 못했으며, 겨우 혼인신고식을 올린 남편 청하는 굴뚝청소부로 굴뚝 안에서 일을 하다가 굴뚝이 붕괴되어 석화되었다.

 

게다가 아이도 청하의 아이가 아니었다. 바리는 청하와 사랑을 나누면서 그에게 자신을 좀 더 만져달라고 요구했으나, 청하는 그러고 싶으나 출근해야 하는 이유로 아기씨앗만 먼저 바리에게 주고 출근했다. 그와의 사랑을 나눈 후에 옆방 친구인 나나진과 대화하면서 나나진은 바리가 처음 자본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바리가 자신을 기른 산파 할매가 죽고 난 뒤에 토끼 할머니의 권유로 친부모를 찾아가면서부터 일어난 사건이다. 그녀는 아직 초등교육과정을 밟지 못하였고, 집 근처 외에는 가본 적이 없었다.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던 바리는 화물차가 모이는 곳에 가서 태백에 태워달라는 부탁과 함께 어느 아저씨의 트럭에 타게 된다. 어두운 길을 달리면서 어느 휴게소에서 밥을 먹은 후에 잠이 곤히 들었고, 트럭기사는 잠든 바리에게 수면제를 먹였으며, 잠든 바리의 몸을 덮친 것이다. 임산부가 된 바리가 청하도 없이 병원에 찾아가서 검사받지만, 병원에서 아이가 아버지를 닮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청하의 마지막 핏줄까지 놓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청하의 아이를 갖고 싶던 바리에게 그 사실을 몰랐다는 사실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만약 그랬다면 청하의 죽음을 보고도 삶의 욕망을 뱃속의 아이에게 찾았으니 말이다. 만약 아이가 청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바리는 자기가 이때까지 바리공주가 했던 일의 일부를 자신 스스로 겨누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바리는 배운 것도 없고, 산파 할매가 무리하게 바리의 어머니에게서 속여가면서 빼앗은 아이이기에 바리에게 문맹 상태로 키웠으며, 게다가 호적조차 올리지 않았다. 바리의 호적이 올라간 것은 산파 할매의 죽음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이다.

 

그리고 사랑의 보상인가 아니면 바리의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지식이 없었는지, 산파 할매는 바리의 손아래 죽었다. 물론 바리가 일부러 살인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산파 할매가 죽음을 선택하고 싶었으나, 그 죽음의 용기를 바리에게서 찾은 것이다. 온 몸이 암으로 가득찬 산파 할매는 약초를 잘 다루었으나, 약초내성으로 한방이 듣지 않고 양방으로 처방이 가능하나 돈이 없어서 더 이상 암을 치료할 수 없었다. 죽을 것만 같은 고통, 바리의 결혼을 볼 수 없는 삶에 대한 아쉬움, 그렇다면 그 고통과 에로스의 욕망을 에로스의 대상에게서 타나토스라는 욕망으로 전이시킨 것이다.

 

독초로 이루어진 욕탕 물에서 고통스런 죽음을 선택한 산파 할매였으나, 마음만은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바리의 바리공주가 아닌 바리공주 일이 시작된다. 사는 것에 낙이 없는 사람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사람들을 저승으로 인도한다. 바리가 아주 좋아했던 연슬 언니, 그녀의 죽음은 매우 비참했다. 그 동네는 유리방이라고 있었고, 그 유리방에 유리가 살았다. 유리들은 바리의 친구 나나진이 만들어진 망사스타킹이나 야한 드레스를 입고 가랑이를 벌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연슬은 그곳의 유리였고, 그녀는 자신의 힘든 몸을 뒤로 한 채 동생들의 살림을 돌보았다. 하지만 그녀도 지쳤고, 자살기도를 위해 기름으로 유리방이 있는 집을 태우려 했으나 실패하고 대신 얼굴에 화상자국만 남겼다. 그녀는 엄청난 학대와 얼굴이 망가진 이유로 가족에게 버림을 받았다. 살아도 살아 있지 못한 호모 사케르 같은 존재였다. 그런 연슬에게 바리는 대신 내가 죽여줄까? 라고 묻는다.

 

친구도 없이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외톨이인 연슬에게 더 이상 삶의 희망을 찾아볼 수 없고, 죽는 것마저도 외로워서 죽지 못했다. 자기가 죽으면 누가 나를 생각해주고 슬퍼해주고 알아줄 수 있냐고 말이다. 그런 연슬에게 바리는 입에 독약을 넣어 그녀를 저승으로 인도한다. 죽은 후에라도 그녀의 얼굴을 다시 화장해주고, 흐트러진 옷을 다시 정돈해주던 바리의 손길에서 삶과 죽음에서 인간에게 의미 없는 삶과 그런 삶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비참함을 어떻게 보는 것일까?

 

바리는 이 2사람 말고도 2사람을 더 저승으로 인도하고, 마지막에는 정신강박증으로 괴로워하던 토끼 할매까지도 저승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기대한다. 어떻게 보면 남의 사주를 받던 혹은 당사자의 사주를 하던 사람을 안락사 내지 유도살인을 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다. 그러나 그 범죄는 도덕적, 문화적이라는 법률적인 부분에서는 인정되나, 윤리적으로 과연 범죄일 수 있을까라는 점이다. 최근에는 논란이 되던 안락사도 서로간의 논쟁으로 갈팡질팡하나, 막상 그 죽음을 원하거나 죽음이 최후의 수단이고, 최고의 평화인 절망으로 가득한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오히려 그들에게 죽음을 당당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저승사자의 역할을 하는 바리에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것이 문학소설이란 장르는 분명하고 기존의 신화적 영역에서 탈신화하여 다시 새롭게 신화로서 만들어진 서사라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삶의 억압에서 죽음으로 향하는 해방조차 욕망할 수 없다면 누가 그것을 대신 이루어줄 수 있는가? <프린세스 바리>는 당연한 윤리의식을 내포하나 도덕적, 문화적 의식에선 거론할 수 없는 욕망을 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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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사상 지도 - 마르크스에서 지제크까지, 눈으로 그려 보는 현대 철학
대안연구공동체 기획 / 부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우선 나는 <20세기 사상지도>가 나온 점에서 상당한 기대감을 가졌다. 그 이유는 이때까지 국내에서 발간하는 사상철학 관련 도서 중에는 체계적인 구조로서 소개해주는 도서들이 턱 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철학의 역사 내지 개론 혹은 어느 철학자에 대한 연구나 그 철학자의 번역본은 꾸준히 나와도 어느 철학사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혹은 구성원에 대한 전반적인 맥을 잡아 정리한 사례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물론 내가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혹은 모르고 지나칠 수 있겠으나, 그나마 근현대 철학자 중심으로 철학, 미학, 사상으로 정리한 도서로는 진중권 교수의 현대미학 도서인 <숭고와 시뮬라크르>, 최근 한국 철학계에 급부상한 이택광 교수의 <인문좌파를 위한 가이드>, 연구모임 사회비판과 대안에서 공저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들>이란 도서였다. 그 전이나 혹은 최근까지 우리는 외국에서 수입한 도서를 번역한 점에서 최근 국내에도 학파의 체계나 혹은 사상의 연결성으로 통해 계보적인 구조를 결집하여 전반적인 흐름을 볼 수 있도록 한 점은 매우 긍정적인 부분이다.

 

 

예전에 구조주의에서 대표적인 인물로 소개한 서적인 우치다 타츠루의 <푸코, 바르트, 레비 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나 사단 마럽의 <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기다 겐 외 여러 일본학자들이 만든 <현대사상지도> 등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역시 이런 하나의 체계성을 가지고 집중적인 학자들에 대한 소개와 그 학자들에 대한 도서소개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가졌다.

 

 

물론 작고하신 최성일 선생님의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라는 서적도 있지만, 하나의 체계성을 지니기보다는 개인적 판단아래 선택했다는 점에서 학자들의 연계성이 약하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21세기 사상지도>는 국내 여러 학자들이 모여 집필했다는 점이고, 최근 번역 말고도 해외 지식인이 올 때마다 자리에 참석하거나 또는 자체적으로 강의나 세미나를 열어 한국의 인문에 많은 공헌을 하시는 진태원 교수의 집필했다는 점에서 기대가 되었다. 예전에 자크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과 에티엔 발리바르의 <정치체에 대한 권리>를 읽으면서 진태원 교수의 존재를 알았고, 최근에 여러 철학 내지 인문사회도서를 꾸준히 번역하신 점에서 <21세기 사상지도>의 발간이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책을 열어보는 순간 대부분은 근현대철학이 그렇듯이 비록 지금 나나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21세기에 존재하고 있다고 해도, 아직 20세기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며, 그 20세기에 명성을 날린 철학자 역시 19세기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후설과 같은 현상학자들은 관념이나 인식이란 형이상학적인 영역에 크게 기여한 자로서 그에게 큰 영향을 준 철학자는 임마누엘 칸트였다. 칸트는 19세기가 아니라 18세기 인물에 더 가깝다. 최근 근대철학조차도 칸트의 영향력이 막대한 점으로 본다면 칸트의 철학은 철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물론 니체는 칸트를 비웃었고, 마르크스는 칸트의 논리적 분별력을 수용한 점에서 조금 다른 식으로 나가고 있었으나, 그래도 칸트의 사상은 형이상학이란 관념철학에서 지울 수 없는 존재임은 분명하다. 어째든 이런 20세기 사상에서 <20세기 사상지도>에서는 4명의 철학자를 거론한다. 그들은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니체, 지그문트 프로이트, 페르디낭 드 소쉬르였다. 그런 점에서 이 책 1장에서 4명의 사회학자, 철학자, 정신분석학자, 언어학자의 소개에서 (후기)구조주의로 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레비 스트로스, 자크 라캉, 미셀 푸코, 삐에르 부르디외, 자크 데리다와 같은 프랑스 철학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다. 비트겐슈타인이나, 후설, 배르그송 등과 같은 인식과 관념에서 메를로퐁티, 리오타르, 벤야민 등과 같이 문화적 영역에서 노동과 여가를 다룬 학자, 하이데거, 베버, 사르트르, 네그리 등과 같은 자아와 주체 그리고 사회를 다루는 학자까지 다루었다. 마지막은 욕망과 윤리의 이중적인 영역에서 라캉, 레비나스, 들뢰즈, 지젝 등과 같은 학자를 소개했다. 이 책에서는 (후기)구조주의, 프랑크푸르트학파, 독일관념철학으로 분리하기보다는 국경과 학파보다는 그 학자들이 추구하는 사상적 영역으로 정리하여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어느 학문에서의 1가지 테마를 설정하여 거기에 해당되는 철학자들의 담론과 그 철학자의 생애와 추구하던 가치 그리고 그 철학자들의 서적을 소개한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사상가들의 도서들이다. 보통 외국에서 번역한 도서를 보면 국내에서 찾기가 어렵거나 혹은 번역상의 문제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프로이트로 다시 돌아가자고 주장하면서도 다시 새롭게 자신의 이론을 정립한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과 같은 경우를 보면 그의 도서인 에크리를 읽어야 한다고 한다.

 

 

문제는 라캉의 에크리를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이해하기가 난해해지며, 에크리라는 도서는 읽히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도서란 점이다. 물론 국내에서 불어에 대한 번역이 난제로 겪는 것은 사실이나, 라캉은 불어권조차도 어려운 도서였다. 대신 라캉과 헤겔을 오가는 슬라보에 지젝에 의해 란 도서가 나올 정도이니 라캉의 도서는 정말 어려운 도서는 사실이다. 이 책에서 소개한 <자크 라캉 세미나 11번째 :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을 처음 접할 때는 읽기는 포기했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과 <정신분석입문>을 읽은 후에야 겨우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다.

 

 

물론 다 읽어본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략적인 무엇을 의미하는지 약간의 이해만 가능했다. 그런 문제가 보인만큼 이 책에선 라캉에 대한 연구서적을 소개하는데, 해외 누가 저술하여 국내 어느 번역자에 의해 번역되고 출판사는 어디까지인지 소개한 점이다. 다른 사상가들까지 소개한 점에서 국내 인문학도나 혹은 인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좋은 지침도서라는 점이다. 그 철학자 아무리 유명한들 우리는 그 철학자의 서적이 무엇이 나오고, 어떤 번역이 좋은지가 제대로 알 수 없다.

 

 

대부분 원전의 번역이 제대로 되지 않은 도서를 읽게 되면 그 의미를 전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의 추천할만한 페이지는 1장부터 5장까지 각 장에 해당되는 사상가들이 등장하면 그 사상가가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지가 소개되어 있다. 19세기 사상가들로부터 대부분 시작하는 점에서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소쉬르가 있는 것은 당연하나, 중간에 러셀, 프레게가 있으며, 자신도 4명의 사상가에게 받으면서 다른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준 인물로 레비 스트로스, 하이데거, 베리그송, 후설 등과 같은 인물이 있었다.

 

 

사상은 단절되기보단 후세들에 의해 새롭게 발전하거나 정립 혹은 다르게 해석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볼 때 <20세기 사상가>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가는 아마 마르크스인 것 같았다. <20세기 사상지도>라고 표지에 적으면서 부제로 -마르크스에서 지제크까지, 눈으로 그려보는 현대철학-이란 점에서 마르크스는 2장~5장까지 모두 등장한 유일한 사상가다. 사실 니체와 베르그송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질 들뢰즈도 그의 말년 마르크스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고 싶다고 한다.

 

나도 평소 생각하고 있으나 세계적인 철학에서 마르크스의 영향은 21세기에도 유효한 점이다. 물론 니체와 프로이트 그리고 소쉬르도 마찬가지이나 마르크스는 21세기 세계경제위기에서 새롭게 대안 중에 하나라고 세계지식인들 여길 정도로 강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때까지 플라톤주의에 의해 관념이 현실이 만들어내는 것보다 현실이 관념을 만들어가는 반플라톤적인 요소를 마르크스가 추구했기 때문이다. 물론 신의 죽음을 선포한 니체나 인간의 이성보다 무의식의 장을 열어놓은 프로이트의 기존 서구사회의 반론적인 행위는 20세기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것이 옳음이란 점을 부여하는 것은 세계 1차, 2차 대전으로 충분히 보았다.

 

 

생각해보면 대부분 <20세기 사상지도>에 등장한 사상가들은 2차 세계대전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특히 하이데거와 같은 나치와 협력한 점과 들뢰즈는 2차 대전으로 가족을 잃은 점, 메를로퐁티와 사르트르는 프랑스가 나치에 의해 점령당할 때 레지스탕스에서 활약하고, 튜링이란 과학자는 2차 대전에 암호해독으로 영국에 큰 도움을 준 점으로 보면 2차 대전은 피할 수 없는 20세기의 지난 얼굴이다. 얼마 전 작고한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에릭 홉스봄이란 역사학자는 20세기를 <극단의 시대>이라고 한다면 21세기는 <폭력의 시대>이라고 한다.

 

 

지난 세계 대전으로 피로 물들은 20세기는 그야말로 폭력과 살인으로 무장한 시기였다면 21세기는 새롭게 밝은 미래로 갈 수 있을까 하나, 토크빌이 지적한데로 전체주의적 민주주의에 주인 없는 노예들이 주인이 되어버린 시기에 우리 사회를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의 향기는 선택의 갈래보다는 우리가 추구해야할 가치관이라고 볼 수 있다. 아직 그런 담론조차도 부족한 우리사회에서 그것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물결을 전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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