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토모 카츠히로 감독이 제작한 아키라는 1988년에 제작된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은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와 안노 히데아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더불어 일본 사이버펑크 애니메이션 3대 명작으로 뽑힌다.
사이버펑크(Cyber Punk)의 단어를 줄이면 SF라고 하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단어인 공상과학영화(science fiction film)가 아니라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펑크(Punk)의 합성어이다. 사이버네틱스란 생물 및 기계를 포함하는 계(系)에서 제어와 통신 문제를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고, 펑크는 1970년대 락뮤직 흐름에서 이른바 펑크락이 등장했는데, 이 펑크는 젊은이들이 기존의 기성세대에 반항하는 정신에서 나오는 것으로 사이버로 통한 인간 및 생물과 기계의 조합에서 반항의식을 표출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러나 사이버네틱스가 나오는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펑크라는 저항의식이 전혀 보이지 않는 작품들을 이른바 사이비펑크라고 명명한다.
이런 작품 내의 저항적인 정신을 반영하여 아키라는 기존 관념과 그 관념으로 인해 미래가 암울한 초상이 될 것이라는 다소 비관적인 요소를 담재하고 있다. 물론 아키라가 나올 때의 일본 경제는 그렇게 밝지 못한 상황이었다.
가속되는 경기불황과 젊은 계층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투명성, 그리고 사회적으로 나오는 모순 등 이 모든 것이 아키라에서 비추어지는 하나의 불안요소였다. 그래서인지 아키라의 주된 배경인 2018년 도쿄는 그저 암울하고 폭력적이고 반정부적인 시위가 끊임없이 이루어져 있었다.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은 착실하게 수업 받는 것이 아니라 패거리를 몰려다니며 서로 패싸움을 일삼고, 오토바이로 경기하며, 학교라는 곳은 배움의 터가 아닌 그저 불량배들의 소굴에 불과했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의 압력과 언론통제는 현실의 근본적인 원인을 풀어가기 보단 뭐든 공권력으로 행사했고, 거기서 주인공인 테츠오는 정부의 실험체와 접촉했다는 이유로 군연구소로 끌려 간다.
군에 가서 테츠오는 생체실험을 당하여 그는 이른바 아키라라고 불리는 하나의 새로운 객체로 등장했다. 당시 일본 사회는 매우 혼란스럽고 암울했다. 사회적인 불안감이 군중심리를 자극하여 반정부 테러와 시위, 게다가 불명확한 아키라에 대한 메시아적 신념으로 마치 성난 이리들처럼 군중들은 들고 일어섰다.
이때 테츠오는 군연구소에서 실험당한 결과로 자신의 몸을 아주 강력하게 되자 자신 안에 움트고 있던 반항의식을 물리적으로 표출했다. 그런데 테츠오는 그저 자신의 불만을 돌출했지 자신의 이성적인 가치관에서 표출한 것이 아니었다. 테츠오의 불만은 기존 사회고 그 사회는 군부대가 주도한 정부기관이었다. 자신을 강제로 실험한 것과 그저 목표 없는 불만을 정부 군부대에 도전하자, 방향 잃은 군중들은 테츠오를 하나의 영웅으로 섬기게 되었다.
사회의 불안이 어느 한 불량배를 영웅으로 신격화 시킨 것이다. 그러나 그 영웅은 진정한 영웅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불만과 폭력욕구를 겉으로 폭발시킨 것이다. 자신의 폭력욕구가 지나치다 못해 테츠오는 그 욕구 안에 잡혀 버려 결국 자신마저 버리게 된 것이다.
몸은 너무 비대해져서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갉아먹고,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해버린다. 게다가 자신을 아키라라며 테츠오를 신격화하던 미치광이 광신도마저 죽음의 세계로 삼켜 버린다. 이것이 인간의 광기라는 것일까? 아니면 억지로 억압하여 분출된 인간 자체의 어둠일까? 끝에 보면 충격적인 장면이 나온다.
본래 아키라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사실 아키라의 정체는 어린 아이들의 뇌척수가 어느 표본 통에 보관되어 있을 뿐이다. 어린 생명들을 억지로 개조하여 그들을 하나로 도구로 삼은 정부조직 즉 기존 사회의 비인간화를 그렇게 비극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인간의 가치가 그렇게 도구화되어 혹은 광기화 되어 자신의 존재마저 삼키는 그런 사회상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가를 보여주었다. 그런다고 아키라에서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테츠오는 자신의 친구면서 라이벌인 가네다를 애증의 대상으로 여겼지만, 최후에 테츠오는 자신의 소멸과 더불어 가네다의 우정을 다시금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테츠오는 가네다와 고아원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로 테츠오가 어려울 때마다 가네다가 옆에서 도와주었고, 사실 가네다는 테츠오가 속한 폭주족의 리더였다. 그에게 언제나 도움을 받아 고마움을 알았지만, 가네다의 그늘 아래 있던 울분이 하나의 모순적인 감정으로 이어졌다. 물론 사회적으로 버려진 존재라는 것과 암울한 청춘, 그리고 정부의 강압이 테츠오라는 한 청소년을 괴물로 만든 것이다.
사실 비행을 하고 잘못을 뉘우치지 않은 현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왜 그들이 그렇게 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 우리는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면 단지 그들이 잘못하면 그들에게 책임을 떠맡기면 편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책임의식을 만약 알고 있다면 기성세대들이 가진 어긋난 가치관을 바꾸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자신들의 가치관이 맞다고 하며, 다시 기성세대로 접어드는 젊은 계층에게 강요하고 그들 역시 그렇게 자신들로 만든다. 그래서 이런 모순들은 버리기가 어려운 것일끼?